“짐빔.”
잇토키가 말을 꺼냈다.
“짐빔은
미국에 불리한 무기 도입 계약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과연 CIA는 모르고 있었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방위산업 관련 계약을?”
잇토키가 국장에게 말했다.
물론
국장은 대답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CIA의 대단함을 보여 주기 위한
팸투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짐빔이라는 그 양반이 걸렸단 말이지.
뭐, 의심은
이쪽 업계에서는 직업병 같은 거니까.
그래서일 수도 있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찝찝한 기분을 떨굴 수가 없었고.
그래서 생각했지.
생각할 시간은 많았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잇토키는
다시 국장의 눈을 보았다.
물론
국장은 무표정한 얼굴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저놈의 눈동자가 떨리는 모습을 보려면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겠군.
잇토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미국이 원하지 않는 계약을 만들던 짐빔이 죽었다.
그것도 딱 좋은 시점에.
미국이 짐빔을 죽였다?
아니, 뭐
직접 죽이지는 않아도 방임했다 정도로 해 둘까요?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짐빔이 죽었는데,
왜 나를 이곳으로 불렀을까?
마치 휴양이라도 즐기라는 것처럼 위장을 했지만,
실제로 상황은 엉망진창인 이곳에?
함정일까?
일이 어그러지면
그 책임을 묻기 위한 함정일까?”
거기까지 말한
잇토키는
자연스럽게 팔장을 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일이 어그러지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사실 미국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일본 그 멍청한 놈들이
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위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와 협상을 한다?
러시아제 수호이?
크레믈린의 불곰들도 안 믿을 이야긴데.”
잇토키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짐빔이 죽으면?
그다음 협상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
미국은 일본과의 협상에서
단 한 번도 불리한 조건으로 사인해 본 적이 없으니까.
이번에도 그러할 테고.
설사, 일이 어그러진다고 해도,
방위산업 계약 건을
고작 독립 요원인
나에게 책임을 묻지는 못하겠지.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 나를 여기로 불렀을까?”
-생각이 듣고 싶군.
국장이 말했다.
“트레이시.”
잇토키가 트레이시를 입에 올렸다.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트레이시는 어떨까?
‘왜’는 나중으로 미뤄 두고
일단 ‘어떻게’부터 생각해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용기 승무원 역할이나 맡던
젊은 아가씨에게
미국과 일본의 차세대 전투기 계약서 작성 사전 조율을 맡겼다.
당연히
그와 관련한
사전 지식이나 실무 경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트레이시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잇토키가 국장에게 물었다.
국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 해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런 일을 맡겼을까?
이유는 하나뿐,
일본과의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한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할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
앞서 말했지만,
미국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미국은 일본과의 협상에서
단 한 번도 손해를 본 적이 없었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니까.
협상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
아무리 짐빔이 장난질을 치고,
트레이시가 일을 망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혀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트레이시라는 ‘개인’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녀는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
-재미있군.
국장이 말했다.
“성급하시군, 이제 시작인데.”
사쿠라바 잇토키가 말했다.
-기대되는군.
국장이 말했다.
“부담되는데.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면,
이제 ‘왜’라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트레이시를 위해 만들어진 함정이라면,
이유가 필요하다.
왜 트레이시를 함정에 빠트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
잇토키는
마치 강의를 하는 강사 같은 말투로 말했다.
“조금 더 들어가서,
얼마 전까지
정보도 주어지지 않고
권한도 없는 하급 요원에 불과했던
트레이시가
전용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올 정도의 권한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녀의 가치가 올라간 것일까?
젊고 아름다워서?
물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짧은 순간에
높은 자리로 올라간 사례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트레이시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했을 것 같지는 않군,
CIA에서 그런 방법이 통한다는 생각도 무리가 있고,
아마도 나와의 접점.
그 이유 때문이겠지.
앤 챔버에게는 챔버 부인이 붙어 있다,
잠깐 대화를 나눠 본 것이 불과하지만
그녀는 능력이 있는 사람 같더군.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백악관에 끌려간 국장을 대신해
상황실을 지킬 정도의 권한은 가지고 있다.
단순히 능력 덕분일까?
아니지.
그녀가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앤 챔버의 옆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위치를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
다시 트레이시로 돌아와서,
트레이시도 분명 가치가 있다.
젊고, 아름답고,
그리고
나와 접점이 있고.
그런데
그녀 또한 챔버 부인처럼
대체 불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니지.
그래서 트레이시가
대체 불가의 존재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번 작전이 계획된 것이지.
테스트.
트레이시의 자격시험.
그녀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
그리고
그 시험 문제가 나.
당신들이 기프티드라고 의심하는
바로 나.
그게 바로 내가 여기 와 있는 이유.”
잇토키가 말했다.
-기프티드인가?
국장이 물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으셔서
이스라엘까지 끌어들여서
장난질을 치셨다?”
잇토키가 되물었다.
국장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중요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중에 만나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하기로 하고,
오늘은 간단히 정리합시다.
챔버 부인이 그러더군.
나와 잠을 자라고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그 말을 듣는데,
나는 그런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
꼭 말로 해야만 ‘지시’가 아니다.
채점자는
그 항목도 점수를 매길 것 같다는
그런 생각.
그렇게 테스트는 계속 진행되었고,
그녀는 몰랐겠지만,
채점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그리고
낙제점을 받았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통화를 했으니까.”
잇토키가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직접 전화를 건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내가 시애틀과 통화를 한
그 순간,
당신들은
트레이시에게
대체 불가가 아니라는 성적을 매겼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떠올렸겠지.
지금 현재
일본의 내 집인
이가 닌자 가문에 있는 ‘그녀’.”
사쿠라바 잇토키와
밀러 국장은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CIA와 같이 일을 하겠다고 하던데,
들었소?”
-들었네.
“계약금을 잔뜩 안겨 줬으면 좋겠군.
월급은 많고,
할 일은 없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고.”
-생각해 보지.
“아무튼 ‘그녀’가
트레이시의 자리를 당장 차지하지는 못하겠지.
난 그 분을
그럴 용도로 쓸 생각은 없으니까.
당신이라면
어머니와 같은 분을
그런 식으로 쓰고 싶을까?
그럼 누가 남았지?
나와 접점이 있는 또 한 사람.
앤 챔버가 남았군.”
잇토키가
앤 챔버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런데
그녀는 안 될 것 같은데.
남녀가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임신이야 그렇다고 쳐도,
출산만큼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 테니까.”
잇토키가
앤 챔버의 제한 조건을 말했다.
“자,
트레이시는
이제 낙제 확정,
그런데 ‘그녀’는 아직 안 된다.
앤 챔버도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하지?
그녀가 맡고 있던 가교 역할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지?
기밀도 알려 주면서
내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그런 인물이
누가 있지?
그러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가교가 필요할까?
직접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으니,
그래서
타이밍 좋게 등장하신 거지.
CIA의 국장님께서,
친히
직접 면담이라는 카드를 들고.”
거기까지 말한 사쿠라바 잇토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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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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