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이름을 사용하는 두 이름 체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기보다 상당히 빨리 서유럽에 나타났습니다. 11세기 초부터 악드에서 두 이름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12세기 말에는 유럽의 거의 모든 전역이 두 이름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13세기 후, 중세 말이 되어서야 두 이름 체계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잭 구디는 이를 보고 기독교 세계의 보편화와 그로 인한 세례명을 개인 명으로 사용하는 관습으로 인한 동일 인물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디디에 렛은 이를 유보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즉, 초기에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디디에 렛은 12세기 초반까지 많은 지역에서 게르만식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칼 f 베르너는 귀족가와 왕가에서 사용하던 이름이 보편화되어 정체성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귀족들이 부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귀족들은 그 전에도 성이 위치한 지역명을 별명으로 해서 다른 성에 살고 있는 형제들과 구별했지만 그 별명이 부계명으로 굳어졌습니다. 이유는 성城은 가산이고 곧 세습되기에 가문의 부계명 즉, 성姓으로 사용하기 무리가 없었고 이는 다른 가문들과도 지위적으로도 차별을 둘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계가 지위가 더 높다면 모계 혈족의 부계명을 따름으로서 지위를 높였다고 합니다.
여튼, 12세기에 들어서 성이 서민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저 귀족을 따라 하기 위한 일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사회의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문서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한 이름 체계에서 중복되는 이름이 많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공증인들은 모호한 계약 관계는 피하고 싶어 그 인물을 특정할 또 다른 별명이나, 추가 이름이 필요로 했고 또 기재 했습니다. 또한 로마의 라티움 지방에선 세례명이 많이 선호되는 통에 중복되는 이름이 많아져 꼭 부계명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12세기 평민의 성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장자는 아버지의 이름과 성을 따랐지만 차남, 삼남은 전혀 다른 성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13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부터 성은 집안 구성원에 상속됩니다. 이유인 즉, 중세 말로 갈수록 문서와 국가의 행정이 체계화 되면서 인구수의 조사 또한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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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중세 시대에도 성과 이름이 있었어! [3]
2019.06.02 (12: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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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예로 로베르 기스카르. 의는 귀족들이나 지역명 붙을 때 썼고. 별명은 우리가 아는 성 | 19.06.02 12:3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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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도 아크의 잔 이란 뜻이고 | 19.06.02 12:3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