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白凡逸志)』에 실린 김구(金九)의 회고담이다. 김구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이른바 아기접주로 활약했으며 이듬해인 1895년 안중근의 부친인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몸을 숨겨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적이 있다. 당시 김구는 열아홉 살이었고 안중근(安重根)은 열여섯 소년이었다. 당시 김구는 안중근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뿐 깊이 교유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다시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독립운동을 대표하게 될 두 인물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안태훈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크게 활약하였다. 농민군으로서 활약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보다는 오히려 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으로 감영으로부터 이른바 의려장(義旅長)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그는 김구와 적대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됨을 보고 그를 품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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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학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비판 내용은 "안응칠 역사"에 잘 나와 있음.
안중근의사 자서전,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전자책] 안응칠역사 - 예스24 (yes24.com)
안중근_안응칠 역사 | 어문 | 공유 마당 (copyrigh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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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당 토벌 부분임.
유년시절
동학당 토벌
천주교 입교
의협청년 시절
대한제국의 혼란기
을사늑약
학교 설립, 인재 양성 진력
의병 활동
풍찬노숙과 기아극복
이토 거사 계획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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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연으로 김구 가문이랑 안중근 가문이랑 서로 연결도 많이 됐었지 중국에서 독립운동할 때도 안중근 가문 쪽 사람을 김구가 많이 챙겨줬었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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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연으로 김구 가문이랑 안중근 가문이랑 서로 연결도 많이 됐었지 중국에서 독립운동할 때도 안중근 가문 쪽 사람을 김구가 많이 챙겨줬었다고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