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로그램(㎏) 미터(m) 원기
“미 군정 때 들여와”
표준연구소 박신석·김혜진 씨 도입역사 추적 보고
1888년 영·불이 만든 40개 중 일부
한국전쟁 때 분실…9·28 후 되찾아
1894년 10월 개정 도량형령이 발효돼 근대식 도량형제를 수용한 지 100년이 가까워 오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국제표준기기인 킬로그램원기와 미터원기의 도입역사는 지금껏 알려져 오지 않았었다.
최근 한국표준연구소의 박신석, 김혜진 기술원이 4년 동안의 추적 끝에 완성한 〈킬로그램원기 No. 39와 미터원기 No. 10의 국내 도입시기에 관한 연구〉는 표준연구소에 하나씩 보관되어 있는 이들 원기가 1947년 4월 미군정권이 도쿄의 연합군사령부를 통해 28만 7,028엔에 일본으로부터 사들인 것으로 밝혀내고 있다.
일본중앙도량형검정소에 보관되어 있던 3조의 킬로그램원기와 미터원기 가운데 한 조의 부원기인 이 기기들은 그해 1월 미군정청 프랑크로슨 중령과 상공부 중앙도량형소 이호식 초대소장이 일본시찰 때 처음 발견했으나 일본정부에 의해 이양이 거부되다가 연합군사령부의 압력으로 석 달 뒤 우리나라에 넘겨졌다.
이 원기들은 1881년 국제도량형총회의의 결의에 따라 88년까지 6년간 프랑스공예학교와 영국의 존슨맛세이사가 만든 40여개의 킬로그램원기와 30여개의 미터원기 가운데 일부다.
미터원기와 킬로그램원기의 국내 도입설로는 그동안 △1894년 국제도량형국(BIPM)으로부터 직접 또는 일본을 통해 간접 입수했다는 설(박영식 〈계량약사〉) △1902년 국제도량형국에서 가져온 것을 일본에 뺏겼다가 47년 다시 찾았다는 설권영대 49년판 〈표준물리〉) △가짜설(〈동아일보〉 82년 9월 2일자) 등 물증 없는 주장만이 난무, 혼란을 겪어왔다.
연구팀은 구한말 도량형 관장기관이던 평식원과 중앙도량형소 및 국립공업시험소의 각종 기록문서를 비롯해 그동안 발간된 각종 관보와 외교문서, 일본 계량연구소의 관련문서, 전 중앙도량형소와 공업시험소의 직원들을 지난 86년부터 4년간 찾아 다니며 조사한 끝애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 박신석 씨는 “제한된 연구조건과 부족한 자료 탓에 조사하는데 의외로 시일이 오래 걸렸다”며 “반론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1947년 배편으로 도량형소 금고에 실려온 킬로그램·미터 원기는 그 뒤 한국전쟁 중 한때 분실됐다가 9·28 수복 뒤 한국은행 지하실에서 가마니에 싸인 채 발견되는 등 수모를 겪다가 75년부터 공업시험소의 위탁으로 항온 항습시설을 갖춘 표준연구소가 이를 관리하고 있다.
백금 90%와 이리듐 10% 합금의 두 원기는 프랑스 파리의 국제도량형국에 있는 국제원기와 비교·교졍돼 국내 산업체화 학교 등에 측정 ‘잣대’를 제공하고 있다.
미터원기는 “1미터는 빛이 진공에서 2억 9,979만 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라고 정의한 60년과 83년의 제11차, 제17차의 국제도량형 총회의 결의에 따라 크립톤 86과 헬륨네온 레이저에 국가원기 자리를 내주고 지금은 참조표준기로 사용되고 있다.
〈이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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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8일자 한겨레
현재 킬로그램은 저 원기를 쓰지 않고, '플랑크 상수'라는 양자역학의 개념 중 하나를 들여와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도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만 너무 어렵고 글도 길어질까봐 적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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