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을 숙대 트젠입학 반대 TF 주동자<<숙명여대생 김지연(생명 16)님>>가 답변할때까지
프레시안 기사에서 인터뷰한 내용하고 계속 인터넷으로 나르면 되는 비교적 쉬운일이라고하니
복붙해서 도와주자!
***공유 부탁드립니다
<<숙명여대생 김지연(생명 16)님께, 트랜스젠더 여성이 드리는 공개편지>>
*2020년 2월 초에 숙명여대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다룹니다. 트랜스젠더 여성 합격생 A님은 숙명여대생을 필두로 한 터프(TERF,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 트랜스젠더 배제적 급진 페미니스트)들에게 트랜스젠더 혐오발언, 범죄 예고발언 등 집단적 공격을 받고 입학을 포기하였습니다.
*이 글은 “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물음표 던지는 '터프'의 입장(프레시안, 조성은 기자, 2020.02.15)”에 실린, 터프 숙명여대생 김지연님이 기자와 나눈 1문 1답을 비판한 글입니다. 제가 작성한 글을 <악의적으로 편집>하지 않는다는 것만 지켜주시면 편하신 방식대로 공유하셔도 무방합니다.
1. 프레시안의 기사에 밝혀진 내용대로 쓰면, 터프인 김지연(숙명여대 생명 16)님은 트랜스젠더 합격생 A님의 입학을 ‘반대하는’ 태스크포스를 운영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부터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김지연님께서는 무슨 자격으로 A님의 입학을 반대하셨나요? 법적, 절차적 문제 전혀 없이 A님 개인이 본인의 능력으로 이룬 학업적 성취에 대해 제3자가 태스크포스까지 꾸려서 운영해가며 ‘반대’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저는 황당합니다. 김지연님이 A님의 숙명여대 합격 및 등록에 있어서 보탠 게 뭐가 있나요? 등록금을 내 주셨나요? 입학금을 대 주셨나요?
※이하 내용 중 큰 따옴표("~")로 표시한 것은, 프레시안의 기사에 실린 김지연님의 발언을 인용한 것입니다.
2. 김지연님께서는 A님의 숙명여대 입학을 좌절시킨 것도 모자라, “성별정정을 허가해 준 법원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낼 생각”도 하셨더군요. 국가가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할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정면으로 맞설 생각을 하신 ‘페미니즘적 근거’가 무엇일지 궁금해서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았습니다.
3. “외부 성기를 수술했다고 해서 남성이 여성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김지연님께서는 본인의 ‘생각’을 근거로 하여 트랜스젠더 후배의 합격을 저지하셨군요. 그 김지연님의 ‘생각’이 충분한 근거를 가진 것일까요? 그래야 할 텐데요. 기사를 더 읽어보았습니다.
4. “A 씨가 굳이 여대를 선택한 것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다.”
▶ 이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성임을 인정받기 위해’ A님이 대리수능을 치르기라도 했나요?
5. “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안전한 공간을 남성이 들어옴으로써 파괴하려 하는가.”
▶ 여자대학교(이하 ‘여대’)의 존재 이유는,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박탈당한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또 그럴 필요가 없다면, 여대의 존재는 ‘전통’이나 ‘관행’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여대의 설립 및 존재 의의를 계승한다면, 트랜스젠더 여성 A님이 숙명여대에 입학하는 것을 학교 본부가 거절했어도 숙명여대생이 똘똘 뭉쳐 A님의 입학을 지지하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벌어진 일은 정 반대였죠.
김지연님께서 이루신 ‘눈부신 성취’ 이후, 안티페미니스트들은 그 일을 근거로 ‘여대를 폐지하자’라고 소리치고 있고, ‘역시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의 이익을 파괴하는 이기주의자들’이라는 식으로 마음 놓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페미니즘의 승리'가 아니라,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벌어진 참극이고 재앙입니다.
6. “여성은 차별받아온 당사자성을 가진다. 여성이라고 주장하지만 남성으로 살아온 트랜스젠더 여성이 그런 당사자성을 가질 수 있나.”
▶ 여성의 삶과 경험하는 차별의 결은 ‘시스젠더(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 여성’ 사이에서도 매우 다양합니다. 어느 여성의 권리와 다른 여성의 권리가 충돌하기도 하며, 어느 여성이 다른 여성을 억압하는 기득권세력이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학습을 하셨다면 당연히 아실 법한 내용인데요.
7. “A 씨는 수능시험장에서 원피스를 입지 못했다고 했다. 원피스를 입는 게 여성성과 무슨 상관인가. 그건 코르셋이다. 저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그 코르셋을 벗겠다고 투블럭(머리 스타일)을 하고 안경을 쓴다.”
▶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고 심지어 억압이었던 것도, 누군가에게는 쉽사리 누리지 못한 권리일 수 있습니다. 김지연님과 같은 분들이 ‘탈코르셋’을 다른 여성에게 요구하는 태도가 ‘강요’에 가까운 점은, 어떤 페미니즘을 지향하는가 이전에,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지키기와 거리유지를 할 줄 아느냐의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이 투블럭 하시고 안경 쓰시는 거랑, A님이 원피스 입는 거랑 무슨 상관인가요?
8. “외부성기가 여성의 것을 하고 있다고 해서 여성이라는 건 여성혐오적이다.”
▶ 그렇습니다. 또한 외부성기 성형수술은 1) 비싸고 2) 신체에 끼치는 부담도 적지 않고 3) 수술 후의 요양도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받아봐서 압니다. 물론 저는 제 성기를 포함한 신체에 디스포리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기성형수술을 받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습니다만, 모든 트랜스젠더의 요구와 현실적 조건(밑줄 쫙, 별표 다섯 개)이 일치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정정에 있어서 ‘성기성형수술’이 ‘필수조건’에서 빠진 것이 중요한 겁니다.
9.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이 무엇인가. 머리 기르고 화장하고 치마 입으면 사회적인 여성인가.”
▶ ‘당연히 여성으로 간주’되지 않는 경험을 하는, 또 김지연님께서 매우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계신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 여성 당사자들에게 이건 생존의 문제입니다. ‘여성으로 간주’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게 어렵습니다. 성별이분법이 강력한 구성 원리인 사회에는 여성 또는 남성으로 ‘확실히 판별되지 않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없습니다.
어쨌든 ‘여성’에 대해 사회가 가진 편견, 특히 겉모습에 대한 사회의 기대를 부수고 교란시키는 김지연님 등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그러고 있거든요.
10. “가부장제가 없다면, 사회적 성 역할이 없다면 스스로 내가 남성이다, 여성이다 생각하는 게 없을 것이다. 그냥 그런 남성, 그런 여성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 개인의 정체성은 순수하게 철저하게 개인 내적인 작용으로만 정해지는 건 아닙니다. 만약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강력한 구성원리가 가부장제와 성별이분법이 아니었다면, 트랜스젠더만이 아니라 시스젠더의 삶도 많이 달랐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요. 김지연님이 당장 그걸 타파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못 하잖아요. 그 사회 구성원리에 의해 쭉 영향 받으면서 살아왔다는 것도 ‘여성으로서의 당사자성’ 언급하면서 인정하고 계시고요.
김지연님은 태어날 때부터 ‘탈코르셋을 할 것이다’라고 결심하셨나요? 김지연님은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서 여성이라고 주장하고 계신데, 당신이 ‘태어남과 동시에 획득’한 조건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을 견뎌야 했던 여성도 있는 겁니다. 그 여성에게 이래라 저래라 숙명여대에 입학해라 말아라 하시는 건, 여성으로 간주되는 삶을 먼저 살아본 사람의 꼰대질 아닌가요?
11.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길러져 온 사람이 수술했다고 여성이 될까.”
▶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길러져 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성이라고 확신하기에 수술을 원하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선후관계를 뒤집어서 생각하고 계시네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그 수술 받아봐서 아는데요, 절대 가볍게 결정할 만한 수술 아닙니다.
12. “정신이 여성이라는 것도 여성성이라는 허구가 머리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은 그걸 파괴하는 것이다.”
▶ ‘정신이 여성’이라는 표현에 담긴 김지연님의 악의에 대해서는 굳이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여성성이 허구라고 주장하신 점, 그리고 여성운동이 그 허구를 파괴하는 운동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게 <그러므로, 난 당신의 삶을 존중하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을 결단코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로 이어지면, 이때부터는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끼리만 모여서 살 수 없습니다. 나에게 유리한 조건만 가지고 살 수도 없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모여서 살아야 했기에, 서로의 이해와 입장과 세계관이 끝없이 갈등을 빚고 경합하고 충돌하는 것을 조율할 묘책을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민주주의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서로 다른, 또 맞지도 않는’ 입장과 견해들이 공존하게 해주는 정치적 토양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궁금합니다. 김지연님은 민주주의에 동의하시나요?
13. “'트랜스젠더 혐오자'라는 낙인도 여성을 향한다. 이상하다. 실질적으로 트랜스젠더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건 남성이다.”
▶ 왜 거짓말을 하세요? 이번에 실질적으로 트랜스젠더 개인에게, 직접인용하기 끔찍할 정도의 언동을 집단적으로 퍼붓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한 거, 김지연님을 비롯한 숙명여대생들과 그들을 필두로 한 터프 여성들 맞잖아요(물론 터프가 여성들로만 구성된 건 아닙니다). 그래놓고 ‘트랜스젠더 혐오자’가 ‘낙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신들에게 ‘트랜스젠더 혐오자’라는 ‘낙인’이 찍혀지는 게 ‘여성이기에 겪는 교묘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14. “남성 집단 내에서 차별과 혐오를 받는다 해서 여성의 당사자성을 가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가부장제를 타파하려면 여성의 파이를 뺏으려 하지 말고 남성의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해야 한다.”
▶ 그러니까 김지연님이 무슨 자격으로...(이하 생략)
15. “헌법소원을 이야기할 때 저는 더 무서웠다. 트랜스젠더들한테 칼 맞을까봐. 수술 받은 남성은 제 신상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 칼 정도 되는 흉기를 들면 누구나 위험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 수술 받고 여러 해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신체에 변화가 큽니다. 예전에 들던 거 못 들어요.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걸 일괄적으로,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성별적합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여성의 신체능력의 평균적인 차이’를 조사하기에는 이 사회가 트랜스젠더에게 너무나 성의가 없네요. 그 성의 없는 사회 만들기에 김지연님께서 이번에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대단한 공포를 극복해내고 정치적으로 타당하며 여성의 권익을 수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양보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과제를 이루어낸 것처럼 착각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정말 많은 말씀들을 하셔서 이미 슬슬 인지하기 시작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 숙명여대에서 벌어진 사건은 모든 페미니스트에게 벌어진 재앙이며, 개인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벌어진 재앙입니다.
16. “퀴어 운동 내에서 작용하는 여성혐오 때문이다. 퀴어가 게이 남성으로 대표되고 여자 레즈비언은 지워졌다.”
▶ 퀴어 운동 내에도 여성혐오, 있습니다. 퀴어들 사이에도 여성혐오, 있습니다. 네.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퀴어 나쁜 녀석들!’ 하고 혼내신다고 해결되는 일 아니고요. 그 퀴어들도 여러분이 사는 사회와 일치하는 원리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정하고 싶으시겠지만 우리는 같은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여성혐오의 세례를 받지 않고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나요?
퀴어운동 내에서 게이 남성의 목소리와 힘이 큰 것은 강산이 몇 번 바뀌기 전부터 꾸준히 비판되어 왔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며 활동하고 페미니즘의 저변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한 선배 페미니스트들이 있습니다. 본인의 지적 게으름을 혐오의 합리적인 근거로 포장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비판하기’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산적해있습니다. 성별임금격차가 대표적입니다. 성별임금격차가 100:64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남성 동성애자 커플의 평균 소득과 여성 동성애자 커플의 평균 소득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비판해야 하고 타파해야 할 점이 분명합니다만, 이걸 남성 동성애자(게이)를 혐오하는 근거로 삼으시는 건 매우 부적절합니다(그러셨다는 게 아니고, 혹시 그러실까봐 첨언합니다). 소득 외에도 남성 동성애자의 삶과 맥락을 결정짓는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그 대부분이 부조리하고요.
17. 이쯤 되었으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지연님은 용서받기 어려울 겁니다. 이유는 위에서 다 설명드렸습니다. 하지만 이해를 잘 못 하실 듯 하여 굳이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김지연님은 숙명여대생을 선동하여, 당신의 후배가 될 수 있었던 한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2) 김지연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그 혐오에 근거한 폭력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배설하는 데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3) 김지연님이 저지른 일은 페미니스트를 비롯, 개인의 존엄성과 그 존엄성을 지켜야 할 국가(내지는 사회, 공동체)의 의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앙입니다. 그 재앙을 초래하고도 당당히 본인의 이름과 학적을 밝히고 인터뷰를 하셨으니, 모쪼록 후회 없으시길 바랍니다.
*첨언
터프의 입장을 기사로 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프레시안을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사를 보시면 아실 수 있듯, 프레시안은 몇 편에 걸쳐 기획기사를 내어 터프와 다른 페미니스트의 입장을 보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음지에서 양지로 튀어나온 터프를 공론장에 소환하여 그들의 바닥을 투명하게 드러낸다면 그건 좋은 일이죠. 오히려 공론장에서 적극적으로 터프가 논의되는 것, 그리고 각 학계에서 논의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 기사 링크
ㅁㅁ프레시안_숙명여대_트랜스젠더_보도_200215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78039
***이 공개편지가 김지연님께 닿을 수 있도록, 활발하게 공유해주시길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