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지금 당장 이사하자!」
「갑자기 웬 소리야. 아직 ‘다녀왔어’도 안 했는데」
「그럼 빨리 말해 줘!」
「다녀왔어」
「어서 와! 그럼 이제 빨리 이사하자!」
「잠깐만, 잠깐만.
왜 갑자기, 이사니 마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거야?」
「난 이사 안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사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
「나는, 네가 왜 갑자기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그게 지금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 하나도 안 중요해! 눈앞에 위험이 닥쳐왔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니까! 일단 그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는 거야!」
「여기가 그렇게 위험하다는 거야?」
「위험……일지도 몰라.
아니, 위험해! 그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고 나면 늦는다고!」
「이치카에게――?」
이치카는 두 살 된 우리 딸이다.
「그래. 그러니까 제발, 이사 가자, 응?
당신이 회사 가 있는 동안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번엔 나 혼자선 감당 못 할지도 몰라」
「또?」
「또라니니, 이럴 때가 아니야!」
「장난치는 거 아니야. 일단 진정부터 하자.
자, 심호흡해볼까? 자, 들이쉬고― 내쉬고―」
「(슈우―, 하아―)
미안, 흥분했나 봐. 이제 완전히 진정했어」
「그럼 다행이고」
「그러니까 빨리 이사하자! 허리업! 허리업!!」
「전혀 진정이 안 됐는데…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좋아, 설명해 줄게. 시작은 그래, 2주 전쯤이었어.
낮에, 나랑 이치카랑 둘이 집에 있었거든. 나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고, 이치카는 거실에 있었어. 그러다 이치카가 오더니, ‘띵동 했어?’ 라고 말하는 거야」
이치카는 요즘, 서툴지만 말이 부쩍 늘었다.
「나는 ‘내가 베란다에 있어서 인터폰이 울렸는데도 못 들었나?’ 싶어서, 이치카한테 ‘고마워’라고 말하고 서둘러 현관으로 갔어.
그리고 문에는 잠금장을 걸어 둔 채, 먼저 도어스코프로 밖을 내다봤어. 누가 왔나 싶어서.
그랬더니――」
「그랬더니……?」
「――아무도 없었던 거야」
「뭐야, 그런 거였어?」
「그래도 혹시 해서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어 밖을 살펴봤는데, 정말 아무도 없었어.
‘아, 이치카가 잘못 들었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때는 말이지」
「그때는――?」
「다음은, 일주일 전쯤이었어.
밤에, 이치카랑 같이 목욕하고 있을 때였어. 갑자기 그 애가 귀를 기울이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쿵쿵쿵, 문 했어?’ 라고.
나는, 도어체인을 걸어 둔 걸 깜빡해서, 당신이 퇴근하고 와서 열쇠로 문을 열어도 안 열리니까, 인터폰을 눌렀는데 내가 못 듣고, 그래서 문을 쿵쿵 두드리고 있는 줄 알았지」
「가끔 그런 적 있긴 하지」
「‘정말 가끔’ 정도는 있겠지.
어쨌든, 나는 서둘러 욕실에서 나와서 수건을 둘러매고, 도어스코프로 밖을 내다봤어.
그랬더니――」
「그랬더니……?」
「――역시, 아무도 없었던 거야」
「뭐야, 또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보, 여긴 맨션이잖아. 옆집이든 위층이든 어디서든 별별 소리가 다 들려. 그걸 이치카가 우리 집에 누가 온 줄 알고 착각한 거지 뭐」
「당신은 그렇게 말하지만, 낮에 이치카랑 둘만 있는 나로서는, 이치카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엄청 신경 쓰이는 거야?
게다가 나, 도어스코프라는 게 왠지 질색이야. 그 일그러진 시야. 그 안에 누가 있든 없든, 괜히 심장이 쿵쾅거려.
언젠가, 보면 안 되는 걸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도어스코프 밖 에서, 거꾸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무언가’라든가……」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그거 보기 싫으면, 인터폰 모니터로 밖을 확인하면 되잖아?」
「현관 앞에서 상대를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게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습관처럼 일단 문 앞까지 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도어스코프를 보게 되는 거지」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조금 기다리게 하는 정도는 별일 아닌 듯도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없었잖아? 이치카가 헷갈린 거야」
「――바로, 조금 전 일이야」
아내는 말을 이었다.
「방 불을 끄고,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이치카를 재우고 있었어. 겨우 잠이 슬슬 오나 싶던 때, 그 애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이게 뭐 소리야?’ 라고 말하는 거야.
나도 귀를 기울여 봤는데, 조용한 밤이라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 밖을 지나는 차 소리도, 고양이 울음소리도.
그런데도 걔가,
‘쿵쿵쿵, 문, 누가, 왔어?’
라고 말하는 거야」
어딘가 겁먹은 기색이었다고 한다.
「나는 ‘괜찮아, 아빠일지도 몰라’라고 달래고, 현관으로 갔어」
이치카가 눈부셔할까 봐, 방이랑 복도, 현관 불은 켜지 않은 채, 아내는 도어스코프를 들여다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무도 안 있었던 거지?」
「――아니.
도어스코프 너머가 안 보였어. 새까맣게」
맨션 복도는 밤에도 항상 등이 켜져 있다.
그런데도.
「새까맣다고……? 그건……」
그때, 안쪽에서 이치카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서둘러 침실로 뛰어갔다.
보니, 이치카는 이불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머리랑 발 방향이 완전히 뒤바뀐 상태였다. 이불도 발로 걷어차 버렸다. 더워서 잠을 설쳤던 걸까.
다시 곱게 눕혀 주고, 이불을 덮어 주고 나서, 우리는 작게 웃었다.
「――그래서, 아까 이야기 이어서 말인데」
내가 말하자, 아내가 「이어서?」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이야기 중이었잖아.
도어스코프를 들여다봤더니, 새까매서 아무 것도 안 보였다고.
복도 조명이 꺼져 있었던 거야?
아니면…… 누가 서 있었다는 거야?
누가, 문 반대편에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이거」
아내가 뭔가를 내밀었다.
평범한 천 테이프였다.
하지만 그 위에는 매직으로 작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나는 가족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느끼며,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도어스코프 바깥쪽에 붙어 있었던 거야?」
그래서 아무것도 안 보였던 거라고.
하지만,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도어스코프 안쪽 에 붙어 있었어.
여보, 여긴 위험해. 우리 이사 가자, 응? 가능한 한 빨리」
아내는 두 팔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이사하자.
이번 주말 바로 부동산 다녀오자.
있잖아, 이사 관련된 일은 전부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동안 너랑 이치카는 후쿠시마 친정에 다녀오는 건 어때? 장인어른이랑 장모님도 계속 이치카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
나는 아내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내 손에 쥐어진 천 테이프에는, 매직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더 이상 들여다보지 마」
그 글씨는, 아내의 필체와 닮아 있었다.
〈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