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은 세자가 되었을 때,
태종의 뜻이 세종에게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미친 체하고 사양하니,
태종이 결국 폐하고 세종을 세웠다.
양녕이 능히 때에 따라
자기의 재주를 감추어 드러내지 않고
이럭저럭 지냈기 때문에,
내외(內外)ㆍ상하(上下)에 모두 환심을 얻었고,
세종도 양녕을 높이고 사랑하여,
매양 대궐로 맞아들여
술을 대접하고 거의 매일 서로 즐겼다.
여러 번 잔치하는 기구를 주셨고,
양녕이 사냥을 좋아하므로
세종이 여러 번 성 밖으로 나가 청하니,
지극한 정의가 무간(無間)하였다.
세조(世祖)가 임금이 된 뒤에
왕자와 대신이 많이 죽음을 당하였지만,
양녕은 능히 지혜로써 스스로를 보전하였고,
세조도 혐의 없이 높이 대우하니,
사람들은 그가 임금 자리를 사양하여
어진 이에게 밀어 준 것을 어려운 일이라 하지 않고,
끝까지 몸을 잘 보전한 것을 더욱 어렵다 하였다.
- 김시양의 " 자해필담 "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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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적게 잡아도
조선시대 중후반기부터 미화가 계속된 거라
미화의 역사만 꼽아도 되게 오래되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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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중간만 가도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는데 그걸 발로 찬다고? | 25.08.30 21: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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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황희라고 써 | 25.08.30 21: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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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행동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자연스레 짐작하기 때문에 저런 해석도 나온듯 | 25.08.30 21:1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