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럭셔리 시장의 제일 큰 이슈는 아무래도 디올백 원가 8만원이라는 뉴스일텐데요, 이 뉴스의 핵심은 디올을 위시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Made in Italy라는 라벨을 붙이기 위해 이태리 안에서 이민자들에게 반인간적인 노동 착취를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디올백 8만원이라는 한 문장의 파괴력이 너무나 큰 탓에 이 핵심 이슈가 덮힌 느낌이 있죠. 그래서 과연 디올백 8만원이라는 것이 정당한 내용인지 생각해보는 글을 써봤습니다. 사실 디올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들의 전반적인 이야기입니다.
1. 디올백의 원가는 8만원이 아니다.
2. 럭셔리는 명품인가 사치품인가 - 고급 제품이라는 단어로의 대체 가능성
3. 공산품과 공예품의 차이 - 브랜드의 헤리티지
1. 일단 디올백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쨌거나 8만원이라는 것은 하청 공급장에서 디올에 납품하는 가격이죠. 이 가격에 백을 받은 디올은 이제 이걸 마케팅을 해야 하며 전세계 매장에 공급해야 하고 매장 렌트도 내야 하고 매장 직원들의 월급도 줘야 합니다 (백을 만들기 전부터 디자인이라거나 샘플 제작 뭐 이런 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당연히 있겠죠). 그 과정에서 들어가는 돈은 당연히 납품가에 포함이 되지 않으므로 그 가격을 더한다면 당연히 8만원이 넘겠지요. 이걸 3-400만원이 넘게 책정해도 되느냐는 그 회사가 알아서 할 일이구요.
이걸 게임으로 비교한다면 공 DVD 값 뭐 100원, 패키지 제작 플라스틱 비용 100원, 그리고 게임 내용물은 프로그래머들을 쥐어짜서 500원에 만든다고 치고 이렇게 해서 게임을 700원에 팔지는 않지 않습니까. 아니면 단순히 식당을 가도 음식 재료 원가만 받고 팔지는 않는걸요 (또는 음식점에서 소주를 시킨 후 편의점 가격도 아니고 공장 출하 가격에 달라고 하는 느낌). 같은 원리인거죠. 그래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디올백 8만원은 어폐가 있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뭐 어쨌든 대중의 인식은 나락으로 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만 그건 애초에 디올이 초래한 일이고, 이미지로 먹고 살아야 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참 난처하겠지요.
사실 디올백 8만원이라는 말의 배경에는 럭셔리 제품군의 끝없는 가격 고공 행진에 반동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어떤 임계점을 넘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조건적인 사치를 지양하자는 의미일 수도 있구요, 또는 비싼 물건의 존재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도 있겠구요. 그래서 요즘 럭셔리라는 단어를 명품대신 사치품으로 번역하려는 움직임이 있죠.
2. 저도 예전 글의 제목에 명품이 아니라 사치품이라고 명시했고 럭셔리는 사치품이라는 전제에 기본적으로는 동의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질이 떨어지는 제품들을 보자면 이것들을 명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그런데 럭셔리는 사실 고급 제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적당할 거 같네요. 고급 제품은 사치품이 될 수도, 명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럭셔리 제품들이 명품이라고 불린 것은 물론 한국에 들여올때 처음 번역을 그렇게 해서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사실 럭셔리 제품들은 다 명품이었던 제품들이었죠. 이들이 처음 시작했을때 주 고객층은 부유층이었고 고객층의 요구를 맞춰주기 위해서는 장인들이 제대로 만들었어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제작 기술이 발달하고 브랜드들의 헤리티지가 쌓이고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주요 제품군이 오뜨꾸뛰르 (주문 제작형 맞춤 옷)에서 가방이나 신발등의 악세사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산층의 증가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고급 제품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고급 제품 시장은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파노플리 효과라는 것이 있죠. 이는 사람들이 특정한 제품을 구입하면서 비슷하거나 같은 수준의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같은 부류가 된다는 동질감을 느낀다는 효과입니다. 그래서 회사들은 연예인 광고도 계속 하는 것이고, 특히 요즘은 SNS로 인해 유튜버등 인플루언서들이 소비하는 물건들이 팔리고 이런 게 다 파노플리 효과에 의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고급 제품이라고 불리는 제품들은 이미 브랜드 헤리티지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누가 써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도 유명한 이 브랜드를 쓴다, 라는 인식을 줍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장원영"이" 입은 티셔츠가 어디 브랜드더라, 라고 해서 반짝 유명해지는 무명 회사의 티셔츠가 있다면 장원영"도" 루이비통 백 들더라, 라는 정도의 차이겠죠. 물론 이 브랜드들의 제품도 유명인사가 입어서 유명해지는 과정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 켈리가 가방으로 임신한 배를 가려서 유명해지고 이름까지 바꾼 에르메스의 켈리백이 그 대표). 하지만 이 브랜드들은 거기서 반짝 한 철 장사로 그치지 않고 그런 과정을 반복해서 쌓아 올리며 결과적으로 이 유명인사/상류층의 고객들은 계속해서 브랜드 헤리티지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고급 제품 브랜드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소위 상류층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소비하는 제품으로 보여지기를 원하고 그로 인해 대중이 그 브랜드를 원하게 되는 파노플리 효과를 일으키는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특히 Kpop 아티스트들을 브랜드 홍보위원 (엠베서더라고 하죠)으로 쓰면서 걸어다니는 샤넬, 인간 샤넬 이런 별명이 연예인들에 붙기도 하죠. 이 마케팅의 타켓은 주로 연예인을 동경하는 어린 친구들이며 이는 브랜드들이 미래의 (또는 심지어 현재의) 잠재 고객들을 만드는 작업인 것입니다. (이 마케팅은 비윤리적이라는 비판도 받습니다만 그건 별개의 이야기)
이런 고급 제품들은 당연히 가격대가 비싸집니다. 이는 고급 제품들이 베블런재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베블런재란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증가하는 제품들을 말하며 주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제품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높은 가격은 희소성을 불러오고 그걸 소유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그만큼 자신의 소득 수준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는 고급 제품들은 사치품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럭셔리를 사치품이라고 단순 치환 번역을 해서 그걸 사는 사람들을 타박하는 것은 옳은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그건 또 아니죠. 일단 자기의 소비 가능 한도 안에서 고급 제품을 사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집도 차도 음식도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데 인생 한 번 사는거 돈 좀 모아서 가방 좀 좋은거 들어보겠다는게 뭐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소비 가능 한도를 넘어가면서까지 고급 제품을 사는 소비 행태와, 고급 제품에는 평소 관심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이 고급 제품을 사는 것은 사치라면서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소비 제한적 태도입니다. 명품을 들기 전에 자기 자신이 먼저 명품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여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허세 부리는 사람들의 인식을 깨부수기 위해서 디올백이 8만원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실 디올이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가치는 허세 부리는 데만 그치지 않습니다.
3.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드는 공산품들과 예스런 방식을 고집하며 만드는 공예품에는 분명 차이가 있죠. 거의 무엇이든지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세상에서, 품을 들여서 뭔가를 정성스럽게 만든다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시대착오적인 낭만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명품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제품들은 그 제품을 만든 사람들의 낭비되어 보이는 시간을 우리가 사는 것이겠죠. 이 점이 공예품과 공산품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예품을 공산품화해서 팔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의 신뢰는 깨어지는 것이며 이 점이 바로 디올이 하는게 중국산 택갈이하고 다른 점이 뭐냐라고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 됩니다. 단 차이점은 존재하는데요, 디올에는 아직까지 쌓아온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 헤리티지라는 것은 역사적 유산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 동안 브랜드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쌓아온 디자인이나 그 동안의 거취등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사실 왠만큼 이름을 들어본 브랜드들은 다들 뭔가 예전에 획기적인 일을 했거나 대단한 디자인을 했다거나 아니면 유명세를 탈 일이 있은 이후 이걸 계속 이어간다거나 하는 일을 잘 해왔습니다. 마차용 짐이 도적들에게 털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특별한 자물쇠를 만들어 대박을 터뜨린 루이비통 (당대의 탈출 전문 마술사인 후디니한테 도전장을 던졌다고 하죠), 여성들에게 작업복이 아닌 패션으로서 셔츠와 바지를 유행시키고 말 그대로 탈코르셋에 공헌한 샤넬, 전후 피폐해진 파리를 패션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패션계에 라이센싱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디올, 여성용 턱시도를 처음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디올의 제자 입센로랑 등등 각각 뭔가 스토리들이 다 있어요. 그리고 이 브랜드들은 계속 상류층/부유층들에게 팔리면서 스토리를 써나가죠.
그래서 아무리 누가 갑자기 오늘 세상에서 제일 섬세한 방직기로 디자인이 끝내주고 가격도 저렴하고 오래가는 가방을 만들어도, 그 가방이 오드리 헵번도 사랑했던 루이비통 스피디라거나 영국 다이아나 왕세자비도 애용했던 레이디 디올이라거나 하는 타이틀을 가져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제 여기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헤리티지가 주는 힘이에요. 제대로 관리를 한다면 헤리티지는 브랜드를 계속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브랜드들은 너도나도 헤리티지를 쌓기 위해 다들 열심히죠.
이것은 심지어 공산품에도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을 보면 현대차가 헤리티지를 쌓는데 요즘 열심히죠. N74 발표했을때 포니 쿠페 감성을 가져온다거나, 계속 WRC 랠리에 참여해서 우승도 하고 한 역사가 생기는 것이 브랜드 헤리티지를 쌓는 일이고 이것들이 계속 쌓이면 그것이 브랜드의 신뢰로 직결되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나이키도 조던을 계속 만들고 하는 것이죠. 반대로 이렇다할 헤리티지가 없는 중국산 공산품들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의심부터 받고 시작합니다. 이렇게 공산품에서도 중요한 헤리티지는 공예품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식이 하는 택갈이는 다르다! 라는 뭔가 이상한 결론이 나와버리는데...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왜냐면 고급 제품은 이미지를 파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이제 디올은 헤리티지에 먹칠을 한 결과가 나온 것이고 이것은 브랜드의 이미지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굳건히 쌓아온 디올의 브랜드 헤리티지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라고 하는 것은 또한 지켜봐야 겠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며 아카데미상 의상상 후보에도 올랐던 2022년 개봉작 코미디 영화인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걸어놓겠습니다. 패션에 관심이 없어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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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장수정코코
네 확실히 그것까지 인정하게 하는 것이 브랜드 헤리티지의 힘이지 싶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명품보다는 사치품으로써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겠지요 ㅎㅎ | 24.12.24 13:0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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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본문에서 말한 브랜드 헤리티지입니다! | 24.12.24 13:07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