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교수님을 뒤에 두고 쓰는
교수님 검수 하의 고려사 시간이 되겠읍니다.
이번 글은 유게이 댓글에 따라 고려 4대 왕, 광종의 치세에 대한 평가가 되겠읍니다.
이번 글은 유게이 댓글에 따라, 노국대장공주 사후 공민왕 및 고려에 대해 쓰는 글이 되겠읍니다.
- 이 글은 『고려사』『고려사절요』, 그리고 박용운 선생님의 『고려시대사』를 기반으로 쓰는 개론 이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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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희가 고려사에 대해서 배울때 진짜 탑5안에 드는 왕에는
광종이 빠질 수 없습니다.
우선 광종의 업적을 큰 것들 위주로 정리하자면
과거제를 통한 신진인사의 기용
노비안검법을 통한 국가 재정 확출
(노비안검법 : 노비의 신분을 조사하여 본래 양인이었던 자를 해방시켜 환량還良시킨 제도)
그리고 이런 정책들의 배경에서 빠지지 않는, 이른바
'호족 탄압 정책'이 주요 업적들로 남죠.
그런데 이런 광종의 치세에 대해 최근에는 양면성을 강조하는 말이 상당히 나옵니다.
역사적으로는 좋은 왕이었을지 모르나, 인간적이나 도덕적으로 그리 좋은 왕은 아니었다...라고요.
이러한 광종의 치세에 대해서는 『고려사』나 『고려사절요』가 편찬된 조선 초기에도 논란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다음은 『고려사절요』권2 광종총서에 실린 이제현의 찬입니다.
- 예로써 신하들을 대하고, 일을 듣고 처리하는 데에 밝았으며,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학문이 깊고 품위가 있는[儒雅] 이들을 존중하며,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써 거의 태평한 정치를 이루었다. 중엽 이후로는 참소를 믿어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불법(佛法)을 매우 좋아하고, 절도가 없이 사치스러웠다.
이렇게 광종에 대현 평가는 옛날부터 갈렸고, 현대 최근에 저 논란이 조명되었다.
라는게 교수님의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이런 논란이 생겼는가에 대해 하나씩 짚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배경으로 확실히 해둬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고려사』, 『고려사절요』의 편찬 시기는 성리학이 기본 이념이었던 조선 초기라는 점입니다.
이걸 확실히 해야 하나씩 짚고 넘어가는데 도움이 되죠.
그럼 제대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위에서도 나온
중엽 이후로는 참소를 믿어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입니다.사실 광종대에 대규모 숙청이 있던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부정할 수 없죠. 일부에서는 지나친 수준이라고도 하더라고요(꺼무위키 발췌)
그런데 광종의 이러한 대규모 숙청은 필요악이었습니다. 그 원인을 찾자면.
광종 위 3명, 태조, 혜종, 정종. 이 세 사람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죠.
다들 잘 아시다시피 태조는 워낙에 많은 수의 후비들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호족, 혹은 이전 왕조의 왕족 출신이었죠.
자연스럽게 이 후비들의 가문, 즉 호족들의 권력이 비대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간 왕위계승에 대한 분쟁 역시 계속 일어났는데
그런 과정을 눈앞에서 겪던 사람들이 2대 혜종, 3대 정종입니다.
둘 모두 광종의 형제(혜종은 이복, 정종은 동복)로써, 이들의 지지기반은 각자 외가 호족들과 그 동지들이었습니다.
즉 고려 극초기 왕위계승 혼란은 호족세력에 의한 것이었다, 고 정리할 수 있죠.
이걸 다 보고 경험하면서 즉위한 광종에게, 호족들은 말 그대로 사회,정치적 악이라고 보였을 겁니다.
또한 자기가 그랬던 것 처럼 왕위를 위협할 것이라는 경계심도 들었겠죠. 자기가 해 본 건데.
그래서 이런, 후대에 보기에는 과도해보이는 숙청이 뒤따랐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교수님이나 저는 광종의 숙청은 필요악이었다. 이렇게 봅니다.
다음은
불법(佛法)을 매우 좋아하고,~ 입니다.
사실 광종대에 불교 관련된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죠.
이 시기 광종의 개혁에 있어서 종교적 기반이 되어준 건,
균여의 화엄사상과 법상종 통합운동, 즉 성상윤회 사상입니다.
광종은 균여의 불교세력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지원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성리학을 통치기반으로 하던 조선 초기 고려사 편찬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개 꼬운 내용이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광종과 불교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후대 유학자들의 부정적 서술 이었다고 봐도 괜찮을겁니다.
여기에 대해선 이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죠.
그리고 세 번째는, 현대 평가로는 '편집증'이라고 보일 정도의 경계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도 이게 굳이 비판받을 일인가? 이건 악의적 서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 비판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바로 광종의 시위군 강화였거든요.
조선 이후로는 이 시위군 강화는 필요 이상으로 비대했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광종은 자신의 안전에 필요 이상으로 경계했다'라고 평가하고 있는거죠.
그렇지만 위와 같은 광종의 개혁정책은, 어디까지나 저 시위군을 중심으로 한 '왕실의 무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개혁이었습니다.
원래 개혁이라는 건 왕실의 무력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실패하기 일쑤니까요.
거기다 지속적으로 신변의 위협을 당했던 형들을 생각하면,
광종이 자신의 안전에 집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아니 애초에 왕이 자기 신변을 지키지 못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건데;;
사실 이건 좀 어거지 비판이라고 보입니다.
아무튼 여기까지가 광종에 대한 주 비판점들에 대한 반박들이 되겠습니다.
사실 고려사 공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태조보다 광종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태조가 건국자라면, 광종은 실질적으로 '초기 고려를 완성'했다고 평가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누군가는 손에 피를 묻혔어야 하는거니까, 광종이 이런 점으로 비판받는 건 조금 에바참치김치꽁치네요.
결론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 광종의 정책과 개혁 과정 숙청은 필요악이었으며, 후대인 조선의 악의적 서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 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더 궁금한 내용이나 다른 주제가 있으시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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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은 이상한 이름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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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윗댓에는 나도 동의하는 바고 정윤이라는 칭호에 대해서는 20년대 이후 연구에서 1. 태조는 이전 국가인 신라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새로이 만든 칭호 2. 불교국가임을 공인하기 위해 : 정윤은 불경에서 따온거니까 3. 이전 '태자'라는 칭호를 사용했음에도 생겼던 왕위분쟁에서 태자라는 칭호에는 의미가 더이상 없다고 판단 이런 이유들을 들고 있었음 물론 이게 정답이라는 법도 없고, 태조의 판단이 무조건 옳았다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 태조의 판단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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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원인을 따지자면 최대한 손해 안보고 나라 통일시키려고 호족들의 권리신장에 힘을 쓴 태조가 잘못한게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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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원인을 따지자면 최대한 손해 안보고 나라 통일시키려고 호족들의 권리신장에 힘을 쓴 태조가 잘못한게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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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만 20명넘게둬서 후계부터 개판으로 만들어 혜종대 되서야 그나마 정상적으로 가계가 내려오게 된거고 호족세력이 워낙 막강하니까 눈치를 안볼수가 없으니까 | 24.05.17 10:3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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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현종이구나 혜종은 호족 눈치 봐서 태자로 못세우고 정윤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후계자다 라고 한 2대 왕이고 | 24.05.17 10:3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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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 입장에서는 박술희를 비롯한 개국공신, 고명대신들이 충분히 혜종의 뒷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게 미스였다고 봄 | 24.05.17 10:3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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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은 이상한 이름이 아님 | 24.05.17 10:3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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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기보단 호족들한테 어느정도 힘을 실어준게 통일전쟁 뿐만 아니라 북으로 가서 거란과의 전쟁에서도 이용할 생각으로 한것같은데 힘고르기 하다가 사망해서 뒷일이 제대로 되질 않은거지 그게 아니면 거란 사신이 들고 온 낙타를 조질 이유가 없음 당장에 할거 아니면은 외교적으로 불가침의 상태로 만들거나 했어야 했는데 선전포고 한거나 다름 없었으니까 | 24.05.17 10:3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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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이름 맞지 황제의 후계자는 당연히 태자인데 왜 정윤이 되어야 함? 장인들 눈치봐야 하니까 하고 싶어도 못하고 정윤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후계자라고 공인한것 뿐임 또 그게 명분이 되서 동생들이 멋대로 황좌를 차지하게 만들 원인이 된거지 | 24.05.17 10:4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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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윗댓에는 나도 동의하는 바고 정윤이라는 칭호에 대해서는 20년대 이후 연구에서 1. 태조는 이전 국가인 신라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새로이 만든 칭호 2. 불교국가임을 공인하기 위해 : 정윤은 불경에서 따온거니까 3. 이전 '태자'라는 칭호를 사용했음에도 생겼던 왕위분쟁에서 태자라는 칭호에는 의미가 더이상 없다고 판단 이런 이유들을 들고 있었음 물론 이게 정답이라는 법도 없고, 태조의 판단이 무조건 옳았다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 태조의 판단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고 봄 | 24.05.17 10:4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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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이 무슨 장인들 눈치봐야 하니까 붙인 이상한 이름이라고 하는거임? 그리고 왕건이 무슨 호족들 눈치봐서 혜종을 태자로 못세웠다고 이상한 말을 하는거임? 왕건은 딱히 호족 장인들 눈치를 보지도 않았고 혜종을 후계자로 선택할때 붙인 정윤이라는 이름은 이상한 이름이 아님. 정윤은 작성자가 말한 고려가 불교국가임을 공인하기 위해 후계자인 태자를 불경에서 나온 단어인 정윤이라고 못을 밖아둔거고 동생들이 황좌를 차지하려고 할때 그 정윤이라는 이름이 명분이 된건 더더욱 아님. | 24.05.17 14:1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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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 쭈쭈가 우스워?! | 24.05.17 10:4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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