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럭 틈 사이로
꾸깃하게 구겨진 만원 한 장이 껴 있었다.
어떤 사이비놈들이 심어둔 찌라시같은 게 아닐까 하고
내심 기대는 안 했지만 펼쳐보니 정말로 만원이었다.
평생 땅바닥에서 주워본 돈이라곤 10원 한장밖에 없었는데
횡재라는 느낌을 성인이 되어서 처음 느껴본다.
그런데 이 횡재라는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는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돈을 꿀꺽 삼킨다는 느낌은
결국 도둑질의 경계에서 벗어나진 않을 테니까.
만원을 찾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지만
도로에 사람은 커녕 차 하나도 지나가지 않는다.
결국 만원을 들고 집으로 와 버렸다.
이 만원으로 뭘 해야 하나.
돈 더 보태서 책이나 살까.
만원 더 보태서 치킨이나 뜯을까.
아니면 이왕 만원 생긴 김에 게임이나 지를까.
생각해보니 만원 하나만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애초에 마음이 조금 심란하니 별로 가는 마음도 없는 것 같다.
이 만원의 주인, 지금쯤 돈이 없어진 걸 알았으려나.
설마 이 돈이 자신의 생명줄이라거나 얼마 안되는 생계비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괜히 마음이 더 착잡해진다.
아마 지금쯤 자기 돈을 낼름 먹은 놈을 저주하고 있겠지.
적어도 그 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 이 만원으로 할 건덕지를 드디어 찾은 것 같다.
바로 썩은 게임을 구매하여 그 사람이 바라는 나의 고통을 자처하는 것이다.
4500원에 X카스와 똥게이, 스탈린이 동정 떼는 썰들을
눈앞에서 직관하는 등 유저들의 고통을 뿌리채 뽑아먹는
악명높은 게임을 구매했다.
만원을 전부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한 고통을 자처함에
그 가엾은 이에게 좁쌀같은 넋이나마 풀어줄 수 있으리라.
피해자여. 그대는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는가?
아니면 나의 고통과 불행을 빌었는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대가 어떤 바램을 바랬는지는 몰라도, 그대여.
난 그대의 바램에 한 걸음 걸어가려 한다.
스탈린이 가죽 조끼를 입는다, 그대여.
스탈린이 아다를 뗀다.
스탈린이 마침내 나의 눈을 후벼 파먹는다.
스탈린이 ㅍㄹㄴ 스타가 되었다.
그대여, 그대의 바램대로 스탈린이 나의 눈을 파먹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 잠시 바람을 쐬며
남은 돈으로 커피 한 잔을 사 마셨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흐린 구름이 걷히고 분홍빛 저녁놀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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