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자네의 무거운 입을 믿고 부탁할 일이 있네.”
어느날, 아그네스 타키온이 맨하탄 카페를 불러내고는 그리 말했다.
“싫어요.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 알아보세요.”
카페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단칼에 거절하고 등을 돌려 떠났다.
“그러지 말게나, 카페! 내가 자네에게 홍차도 타주지 않았나!”
“‘싫다고 한 제게 강제로’ 타주셨죠. 은근슬쩍 각색하지 말아주실래요?”
카페의 손을 붙잡고 끈덕지게 매달리는 타키온. 하지만 카페 역시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사인가? 서운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군 그래!”
“하아… 뭔데요? 듣고 결정할게요.”
결국 또 이렇게 되는군. 카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제정신이에요, 당신?”
약 3분에 걸친 타키온의 열띤 설명이 끝난 뒤 카페가 한 말이었다.
“물론이지! 난 언제나 제정신이라네.”
“아니, 트레이너씨와 외딴 곳으로 합숙을 가서 발정제를 먹이고 뾰이한다는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발상이에요?”
“새삼스럽게 왜 그러는가? 중앙 트레센에서 그 정도는 예삿일도 아니잖은가.”
“아니… 하….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은 없긴 한데….”
카페의 말문이 턱 막힌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타키온의 발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가 최소 5회는 있었으니까.
“...전 못 들은 걸로 할게요. 그런 정신나간 짓에 엮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역시 귀찮은 것은 사양이다. 카페는 재차 매몰차게 거절하며 몸을 일으켰다.
“부탁이네 카페! 요즘 모르모트 군에게 꼬이는 암컷들이 너무 많단 말이네! 이대로라면 내 우수한 조수이자 피험체인 그가 위험하다고!”
이번에는 타키온이 카페의 다리를 잡고서 늘어진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다급함을 보아하니, 타키온 역시 꽤나 절실한 모양이다.
“하아…. 정말이지. 그러면 그냥 트레이너씨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교제하시면 되잖아요?”
“하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자기를 무턱대고 실험용 피험체로 써버리는 이런 정신나간 여자를 그 누가 좋아하겠나!”
“아니, 자각이 있었어요? 알면 좀 자제하시라구요!”
답답함에 한 마디 쏘아붙여 보니, 터무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 알면서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 상상 이상으로 질이 나쁘다, 이 여자.
“그럴수야 없지. 과학자로서 머릿속에 번뜩인 영감을 어찌 억누를 수 있겠나.
나한테 그런 자제력은 없다네, 카페!”
“내가 말을 말지.”
그것을 합리화하는 과정 역시 너무나 타키온다웠기에, 카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서 이번 계획을 짠거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시기만 하면 5분만에 성욕만 남은 괴물이 되어버리는 특제 미약을 만들었다네!
모르모트 군은 꽤나 고지식한 면이 있으니, 나와 일선을 넘기만 하면 분명 날 책임지겠다 하겠지.”
언제나처럼 광기로 가득찬 눈빛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타키온.
“나는 모르모트 군에게 꼬리치는 암컷들을 차단할 수 있으니 이득이고, 모르모트 군은 안심하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으니 이득이지. 쌍방 모두 이득만 보는 완벽한 계획이야! 어떤가?”
“태클 걸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알겠어요. 일단 도와드릴게요.”
“만세! 카페 군이라면 도와줄 거라 믿고 있었다네! 고맙네, 정말 고맙네!”
결국 이긴 것은 타키온이었다. 기쁨에 겨운 타키온은 카페의 양손을 맞잡고 격하게 흔들었고, 카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흐음.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와보는 것은 처음이군.”
두 사람이 우선 향한 곳은 트레센 근처의 대형 쇼핑몰 센터. 합숙날에 입을 승부속옷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하하핫, 카페! 이것 보게! 속옷으로서의 기능도 할 수 없는 천쪼가리군! 아주 흥미로워!
이거라면 모르모트 군 같은 쑥맥도 한번에 뇌쇄시킬 수 있지 않겠나?”
타키온은 중요 부위가 모조리 노출된 속옷을 집어들고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건… 추천하지 않아요.”
“어째서지? 남자들은 이런걸 좋아하지 않나?”
“그 허전한 유사 속옷만 입고 트레이너 앞에서 아양떠실 수 있겠어요? 당신.”
카페의 지적에, 이 속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타키온.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트레이너의 모습을 떠올리니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계획인지를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군. 좋은 지적 고맙네.”
“누가 누구보고 쑥맥이라는 건지.”
타키온은 순식간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손에 든 속옷을 얌전히 내려두고 귀여운 프릴이 달린 무난한 속옷을 골랐다. 카페는 그런 타키온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고맙네, 카페! 이 은혜는 내가 반드시 갚지! 우선 합숙에서 승전보를 울리고 나서 말야!
자네도 담당 트레이너를 약물의 힘으로 자빠뜨리고 싶다면 언제든 말하게!”
속옷 외에도 이것저것 구매하며 쇼핑을 마친 타키온이 활달하게 말했다.
“답례라… 전 그런거 필요 없어요. 합숙… 잘 다녀오세요.”
카페는 왠지모르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서 타키온과 헤어졌다. 타키온은 너무 들떴던 탓에 깨닫지 못하였지만 말이다.
————————————
“후우! 잘 잤나! 모르모트 군!
참고로 말해두자면, 나는 너무 신이 나서 한 숨도 못잤다네! 아주 심장이 터질듯이 두근대더군!”
합숙 당일, 교직원 기숙사 앞에 캐리어 하나를 끌고 나타난 타키온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 있었다.
“아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뭐 평범한 합숙 정도로 밤을 새고 그래….”
트레이너는 그런 타키온을 보며 어이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미안하지만 이번 합숙은 절대로, 저얼대로 평범하지 않을거라네. 모르모트 군. 후후후….’
타키온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트레이너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단잠을 청했다.
“으히히… 모르모트 구운… 킥킥.”
“뭐 좋은 꿈이라도 꾸나?”
심지어 잠꼬대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으레 있던 일인지라, 트레이너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타키온? 일어나 봐. 도착했어.”
“으응? 벌써 말인가? 빠르기도 하군.”
“빠르다고 하기엔 5시간이나 걸렸지만 말야. 여튼 일어나. 체크인해야지.”
타키온은 목적지인 료칸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어났다.
“졸려서 걷고 싶지가 않아. 프론트까지 업어주게나, 모르모트군!
자, 빨리! 빠, 알, 리!”
타키온이 양팔을 벌리며 트레이너에게 업어주길 청한다.
“하여간… 손이 많이 간다니까.”
트레이너는 툴툴대면서도 군말 없이 타키온을 업었다.
“타키온? 너 체중이 너무 가벼운데. 또 나 없다고 식사 대충 했지?”
타키온을 업고 두어 걸음 걸어간 트레이너가 말했다.
“가벼워졌다 해도 기껏해야 2kg 정도일 텐데,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가 있는 건가?
이거야 원, 자네도 영 제정신이 아니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타키온은 작게 타박하면서도 싱글싱글 웃었다. 트레이너가 자신의 작은 변화를 알아채 주는 것이 기뻤으니까.
“실례합니다. 아그네스 타키온으로 방 두 개를 예약했는데요….”
타키온은 트레이너가 체크인하는 것을 보고서 몰래 다른 종업원 하나에게 다가갔다.
“저기, 잠시 이리로… 네네.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내일 아침까지 저희 방 근처에 아무도 못오게 해주세요. 여기 방음 잘 되는 것 맞죠?”
평소와 사뭇 다른 태도로, 타키온은 뒷돈을 먹여둔 종업원과 비밀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리 전달했던 지시사항들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타키온? 거기서 뭐해?”
“응? 아무것도 아니네, 모르모트 군! 룸서비스가 되는지 궁금해서 말야. 하하!”
타키온은 트레이너가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며 시치미를 뗐다.
“그보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분명 방 두개로 예약했는데, 더블룸 하나가 예약됐대.”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남는 방이 없어 변경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끙…. 5시간이나 걸려서 왔는데 돌아갈 수도 없고.”
종업원은 타키온이 미리 지시한 대사를 내뱉었다. 곤란해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트레이너를 보니 양심이 조금 쿡쿡 찔려왔지만, 양심을 따르기에는 받은 돈의 액수가 너무 컸다.
“뭐… 어쩔 수 없지 않겠나, 모르모트 군. 나는 이런 것도 여행의 풍류라고 생각한다네.”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그 방으로 할게요. 이불 두 개 깔아주세요.”
“네, 양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종업원과 타키온이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한다. 종업원은 타키온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측은한 눈빛으로 트레이너를 바라보며 자리를 떴다.
“모르모트 군! 오늘 여기까지 운전하느라 수고했네! 저쪽에 꽤 품질 좋은 차가 있길래, 한잔씩 타 와 봤다네.”
타키온은 방에 짐을 풀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찻잔 두 개를 쟁반에 받쳐 가져왔다. 말할 필요도 없이, 트레이너의 찻잔에는 타키온의 특제 미약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근데 저쪽에 있는 노천탕, 자유롭게 써도 되는거야?”
트레이너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노천탕을 가리키며 말한다.
“응? 물론이지! 그렇지 않으면 뭣하러 이런 비싼 방에 묵겠나?”
“그렇구나. 아, 차 고마워. 오? 진짜 맛있네.”
“하핫, 당연하지. 알다시피, 내가 차에 좀 일가견이 있잖은가.”
트레이너가 자신 몫의 찻잔을 받아들고는 절반 정도를 비운다.
‘후후… 내 계산이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군.
걱정말고 본능에 몸을 맡기게나, 모르모트 군. 내가 잘 리드해 줄 테니까!
최근 한달간 뾰이허브에서 이론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네.’
타키온은 자신이 타온 차를 아무 의심없이 마시는 트레이너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격한 기대감 탓에 목이 말라, 타키온은 자신 몫으로 가져온 찻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런데 이 감각은 뭐지? 화장실은 아까 다녀왔…는데엣♡?!’
타키온의 아랫배가 쿡쿡 쑤신다 싶더니, 순간 두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황홀경이 온몸을 휩쓸었다.
“앗, 아앗♡ 앗♡! 핫♡!!”
그자리에 그대로 쓰러져서는 온몸을 움찔움찔 꼬아대는 타키온. 땀과 눈물, 침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러넘치고, 온 신경 마디마디를 은근하게 애태우는 간질임 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카페 말이 진짜였네…?”
그런 타키온을 보며 트레이너가 멍하니 읊조린다.
-타키온 양의 트레이너 씨…. 타키온 양을 좋아하시죠?
-대답은 안하셔도 돼요…. 다만, 미리 말씀드릴게 있어서….
-타키온 양을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면… 이번 합숙때 타키온 양이 주는걸 절대 먹지 말고 그녀가 먹도록 유도하세요….
-좋아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먹지 마세요. 무슨 핑계를 대서든. 무슨 수단을 사용해서든….
-제 말… 명심하시는게 좋을거에요.
사실, 합숙 전날 맨하탄 카페가 트레이너를 불러내고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말이 왜인지 계속 마음에 밟혀, 타키온의 주의를 돌린 사이 찻잔을 몰래 바꿔쳤더니 이 꼴이다.
타키온이 준 차를 아무 의심 없이 마셨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야! 너 나한테 뭘 먹이려고 한거야!”
“모, 못, 모르모트 구운♡ 내, 내 가방… 가방에 해독제가, 읏♡! 있네! 어서 가져와 주게나! 빨리잇♡♡!!”
당장 따져들고 싶었지만, 눈물을 줄줄 흘려대며 애원하는 타키온이 안쓰럽다. 마음이 약해진 트레이너는 서둘러 타키온의 가방을 뒤져 앰플 하나를 꺼냈다.
“이거 맞지? 그건 그렇고, 대체 무슨 약이야? 네가 먹은거.”
“나, 남녀노소 5분 만에 성욕에 미친 괴물로 만드는 미약이라네! 어서 해독제를 이리 건네주게!”
타키온이 한층 더 다급해진 목소리로 손을 뻗는다. 하지만 트레이너는 돌연 앰플이 들린 손을 우뚝 멈춰세웠다.
“음… 5분만에 성욕괴물로 만드는 미약?
…그걸 나한테 먹이려고 한 이유는 뭐지요? 타키온 양?”
“으, 으응? 그, 그건 좀 있다가 설명해 줄테니 일단 해독제를… 모르모트군! 뭐하는건가!”
타키온이 대답을 얼버무리자, 트레이너는 해독제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그와 머리 하나쯤 차이가 나는 타키온으로서는 닿을 수 없는 높이였다.
“모르모트군… 읏♡! 부탁이네! 제발 해독제를! 이대로는 정말 큰일…나버린…♡ 호옷♡♡!”
평소였다면 우마무스메의 압도적인 완력을 바탕으로 아주 쉽게 빼앗았겠지만, 약물 때문에 똑바로 서는 것조차 어려운 지금의 타키온은 트레이너에게 비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똑바로 설명해, 아그네스 타키온. 줄지 말지는 그 다음이야.”
“모… 모르모트 군과… 기정사실을… 만들고 싶어…서엇… 그래서 그런거라네…♡ 대답했으니 빨리잇♡♡ 제발♡”
트레이너가 자신의 풀네임을 부른다- 매우 화가 났다는 뜻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한 타키온이 귀를 잔뜩 젖히고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약에 절여진 탓에 전혀 진지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기정사실? 무슨 말이야, 그건? …미약을 나한테 먹이고 뾰이하려고 했다는 소리야? 너 지금 네가 무슨 이야기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트레이너의 언성이 한층 높아진다. 그에 따라 타키온은 더욱 움츠러들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 그렇지만… 모르모트 군이 요즘 다른 여자들과 계속 가까이 지내니까앗…읏♡ 불안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야카와 타즈나라던가, 라이트 헬로라던가, 키류인 아오이라던가, 안심자와 사사미하고 잔뜩 놀지 않았나…?”
타키온의 목소리가 젖어든다. 그녀도 내심 서운했던 것이다. 자신만의 모르모트, 트레이너가 자신 외의 여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자신에게는 소홀해진 것이.
“존칭 붙여, 욘석아. 그분들이 네 친구야?”
“흐잉!”
트레이너가 타키온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날린다.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니게 된 타키온은 요상한 비명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분들하고는 그냥 업무상 미팅을 했을 뿐이야. 불안해할 만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난 너를 우승시켜서 빛나게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 없다고.”
“저… 정말인가, 모르모트 군?”
타키온의 목소리가 약을 마신 이후 처음으로 밝아진다. 자신이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던 것이다.
“여, 역시… 내 모르모트 군이야…. 아주 반가운 소식인…걸, 흣♡ 그, 그, 그럼… 슬슬 해독제를…읏♡! 건네주겠…나?”
트레이너가 자신만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몸의 저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한다. 타키온은 다리에 힘이 도무지 들어가지 않아 무릎을 꿇은 채 트레이너에게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아니?”
하지만 트레이너는 무슨 연유인지, 해독제의 뚜껑을 따서 쓰레기통에 모조리 부어버리는 것이었다.
“뭣… 지금… 무슨 짓을?”
예상 밖의 상황에 그대로 굳어버리는 타키온.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동안 제멋대로 군 것에 대한 벌을 주려는 것일까?
“타키온 양이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게 꽤 서운해서 말야….”
트레이너는 입고 있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풀어내려갔다. 탄탄한 대흉근과 복근이 드러남에, 타키온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이 말괄량이 우마무스메에게 내 진심을 조금 보여줄까 해서. 교원으로서 학생 지도도 할 겸.”
그리 말하는 트레이너의 눈동자는 광기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마치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 아그네스 타키온처럼.
“모, 모르모트 군? 눈빛이 좀 무섭다만…”
타키온은 본능적으로 주춤주춤 뒷걸음쳤다. 압도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눈앞의 수컷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콰악!
“아힛♡?!”
트레이너가 그 이상 멀어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타키온의 양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한계 이상으로 민감해진 타키온은 그것만으로 달콤한 교성을 내뱉었다.
“자… 잠깐…♡ 모르모트 군? 으읍♡!”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타키온은 말로라도 트레이너를 진정시켜보려 하였지만, 트레이너는 그것마저도 허락할 수 없었는지 자신의 입술로 타키온의 입을 막았다. 더없이 연약해진 타키온의 신체는 트레이너의 완력을 잠시도 버틸 수 없었고, 결국 그가 미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에 깔린 이불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대충 격렬한 우마뾰이 씬)
한바탕 우마뾰이가 끝나고, 트레이너와 타키온은 노천탕에 딸린 수도에서 몸을 씻었다. 트레이너에게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한 타키온은 팔을 들어올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기에, 트레이너가 그녀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모, 모르모트 군….”
머리에 샴푸 거품이 북실북실한 타키온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트레이너를 불렀다.
“내가 약의 피험자가 되어보니, 그동안 모르모트 군에게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알겠네.
이번 일도 내가 정말 경솔했네. 모두 내 잘못이야. 사죄의 의미로 뭐든 할테니, 제발…”
무언가 큰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방약무인하게 굴던 지난날과 다르게,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발… 날 미워하지 말아주게나….”
애원하는 타키온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젖어든다. 그녀의 얼굴을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너는 대답하지 않고 타키온의 머리에 물을 끼얹어 거품을 헹구고는,
“춥지? 빨리 탕 들어가자.”
라 말할 뿐이었다.
그것이 타키온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굳세게 잡고 있는 트레이너의 커다란 손이 왜인지 안심이 되어서, 타키온은 가만히 미소지었다.
“....”
“....”
트레이너는 타키온의 뒤에 앉아 그녀의 몸을 아무 말 없이 껴안고 있었다. 등을 통해 전달되는 그의 온기가 마음에 들어, 타키온 역시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타키온.”
“네, 넷! 아, 아니. 크흠. 왜 그러나, 모르모트 군?”
침묵을 깨는 트레이너의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하고 마는 타키온.
“대답이 늦어서 미안. 말을 정리하는게 생각보다 좀 오래걸려서.”
“그… 그런가? 난 괜찮으니 말해보게.”
타키온이 떨려오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평정을 유지한다. 트레이너를 훨씬 더 좋아하게 된 지금, 만에 하나라도 거절당한다면 버틸 수나 있을까?
“좋아해, 타키온.”
“아헤?!”
타키온의 귀가 쫑긋 선다. 귓가에 직접적으로 속삭여진 사랑고백이 상상 이상으로 짜릿했던 탓이다.
“역시 이 이상으로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야.”
“저, 저… 정말인가… 모르모트 군? 내가 그렇게나 제멋대로 굴며 억지를 부렸는데도?”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타키온이 더듬거리며 다시금 묻는다. 트레이너가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포자기한지가 벌써 몇 년인데, 좋아한다니!
“타키온. 남자라는 건 본능에 솔직한 생물이라고.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가 부리는 억지에 어울릴 리가 없잖아. 네가 벌이는 사고를 전부 다 수습한 것도, 네 투정을 하나하나 다 들어준 것도, 전부 널 좋아하니까 그런 거라고.”
“아… 흐으… 흐으으윽….”
타키온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트레이너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타키온을 한층 더 깊이 감싸안으며 손으로 가볍게 다독여 주었다.
“정말이지… 내 처음을 빼앗은 책임은 제대로 지도록 만들걸세. 난 귀찮은 여자니까 말야.”
어느샌가 울음을 그친 타키온이 평소와 같은 말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타키온이 귀찮게 한다면 난 얼마든지 환영인걸.”
트레이너는 원래대로 돌아온 타키온의 모습에 만족스레 웃었다. 분명 오늘 일로 둘의 사이는 크게 변해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분명 이제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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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5222464
예전에 떠올린 소재로 써봄
유리대포 타키온은 정말 최고야
우마뾰이 이후 씬은 너무 오글거려서 그냥 찍 쌌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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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저렇게 잘 되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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