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 사무실의 저녁 시간대는 제법 시끌벅적하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트레이너답게 학생회실 부럽지 않은 전용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그는, 저녁 식사 이후에는 그 광활한 사무실을 저주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트이자 베테랑 트레이너답게 딱 죽지 않을 만큼의 과중한 업무가 그를 짓누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우마무스메라는 이름의 망아지들이 그의 사무실에 쳐들어와 시시콜콜 수다를 떨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해야 하는데.
그런 그의 업무를 방해하는 담당 우마무스메들은 일곱 시 정도만 되면 어김없이 그의 사무실 문을 열고 쳐들어온다. 그리고 그런 담당 우마무스메들을 쫓아낼 수 없는 것이 담당 트레이너의 의무인 부분이다.
그리고 이 담당 우마무스메들은, 오늘도 그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저녁의 티파티를 즐기며 하하 호호 수다를 떨고 있다.
게다가 이런 일을 말려야 하는 학생회장―심볼리 루돌프마저도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은 채로 녹차를 즐기고 있으니…트레이너로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아무튼 전부 땅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사려 깊은 메지로 아르당마저 어느 순간부터 뻔뻔할 정도로 자주 얼굴을 들이밀고 있으니…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란 말인가. 그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단순히 차를 즐기고 가는 것뿐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우마무스메가 여섯이 모이면 수다를 떠는 것은 그녀들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한 망아지가 입을 열면, 그 주제로 한동안 불타오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그 주제를, 오늘은 심볼리 루돌프가 던진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라스 원더의 생일이더군. 마루젠스키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지 뭔가.”
“에…그런 걸 회장이 깜빡할 리가 없잖아.”
“하하, 테이오. 아무리 나라도 완벽 초인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은 실수할 때도 있는 법이란다.”
“완벽 초인…아니었어?!”
“테이오……?”
심볼리 루돌프는 황당한 표정으로 토카이 테이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메지로 맥퀸의 그 자그마한 가슴을 불쑥 내밀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저는 이미 그라스에게 선물을 주었사와요. 무릇 메지로의 이름은 주변 사람들까지 챙겨야 하는 법이와요. 그렇죠, 아르당 언니?”
“후후, 나도 이미 선물을 주었단다.”
메지로 아르당이 웃으며 혈족의 말에 맞장구를 쳐준다.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가 맞은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한 마디 조용히 던진다.
“하지만 그라스 원더, 내게 선물을 받고도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뭔가…슬픈 듯 보였다고나 할까.”
“회장의 선물을 받고 그라스 씨의 기분이 나빠졌을 리는 없으니까. 다른 원인이 있는 거 아닐까, 회장?”
“후후,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테이오.”
“헤헤, 헤헤헤헤~”
심볼리 루돌프가 테이오의 머리를 기특하다는 듯 살살 쓰다듬자, 테이오는 헤실헤실 웃으며 갸르릉거리는 고양이같이 황제에게 딱 달라붙는다.
그런 살짝 소란스러운 저 소파의 망아지들의 말과는 별개로, 그는 그라스 원더의 기분이 온종일 나빴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 그라스 원더가 생일에 기분이 좋지 않을 이유가…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한숨을 내쉬며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ㅂㅈ 못하게 슬쩍 휴대폰을 꺼내어 문자를 보낸다.
수신인은 그라스 원더의 담당 트레이너 녀석. 내용은 ‘너 담당 우마무스메 생일은 챙겼냐?’라고 짤막하게 보낸다. 챙겼으면 다행인 것이고, 아직이라면 지금부터 어떻게든 준비해서 목숨만은 건지겠지.
그리고 부우웅,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며 곧바로 답장이 온다. ‘아.’
“…….”
그 한 글자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하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 뒤에는 그라스 원더의 담당 트레이너가 알아서 처신해야 할 문제다. 아직 시간은 여유롭게 남아 있기에, 제빵소에서 케이크라도 사서 입을 잘 털면 내일 아침 해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라면 한 명의 유능한 트레이너를 잃게 되는 것이고.
하지만 그는 남의 사정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담당 우마무스메들의 대화 주제가 삽시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물꼬는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먼저 틔웠고, 키타산 블랙이 옆에서 같이 거들었다.
“그런데, 트레이너 씨의 생일은 언제인가요?”
“저희도 트레이너 씨의 생일을 챙겨드리고 싶은데요.”
“…….”
“…….”
“…….”
“…….”
심볼리 루돌프도, 메지로 아르당도, 토카이 테이오도, 그리고 메지로 맥퀸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각자 입을 다문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모른다.”
“모르…네요.”
“우우…모른다구.”
“모르는…것이와요.”
네 명 모두, 담당 트레이너의 생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야, 사토노 다이아몬드도 키타산 블랙도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가 된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모를 수 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니다.
특히 심볼리 루돌프는, 그에게 중등부 시절부터 트레이닝을 받으면서도 그의 생일을 모른다. 그것이 그녀가 침묵한 이유였다.
마찬가지로 메지로 아르당은, 트레이너 씨가 그녀를 굉장히 아끼고 섬세하게 대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트레이너 씨에 대한 것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토카이 테이오는 트레이너를 좋아한다고 자부한다. 애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만큼, 트레이너의 생일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메지로 맥퀸은, 언제나 일심동체를 부르짖는 것 치곤 트레이너 씨의 생일조차 모르는 것이다. 부끄러움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라, 왜 다들 트레이너 씨의 생일을 모르시나요?”
“작년에는 챙겨드린 것 아니었나요?”
그래서,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키타산 블랙의 순수한 그 질문이, 그녀들에게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푹푹 꽂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침묵을 유지한다면, 두 망아지가 더 이상하게 생각할 터, 심볼리 루돌프는 크흠, 헛기침을 한번 하고 천천히,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게, 트레이너 군은…자기 생일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요!”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조용히, 키타산 블랙은 큰 소리로 충격을 받는다. 그러더니 이내 담당 트레이너 씨가 업무를 보고 있는 책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트레이너 씨.”
“생일, 가르쳐 주세요!”
곤란하다.
망아지들 수다의 표적이 자신이 되어버린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그는 담당 우마무스메들에게 그의 생일을 가르쳐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야 어찌 보면 당연하다. 생일을 빌미로 이 망아지들의 무슨 짓을 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 연말에 외롭다는 빌미로 그를 잡아먹으려던 황제부터 시작해서, 폿키 데이에 어른의 폿키 게임을 시도한 메지로 맥퀸, 어디서 이상한 거 배워와서 새해 아침부터 히메하지메라는 거 해달라고 조르던 토카이 테이오, 그리고 믿고 있었던 메지로 아르당마저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입으로 먹여달라고 졸랐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생일을 가르쳐 준다면, 그 쓸데없는 독점력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특히나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키타산 블랙은 요주의 우마무스메다. 알려줄까 보냐.
“안 돼.”
“엣, 어째서죠?”
“에에―!”
딱 잘라 거절하고, 두 망아지는 투덜거리며 해명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이 녀석들에게 ‘너희는 위험하잖아’라고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어른의 핑계를 댄다.
“생일을 빌미로 로비와 청탁 등이 들어올 수 있어서, 나는 생일을 가족 이외의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아.”
“그, 그렇지만 저희는 그런 것 따위…!.”
“맞아요! 저희는 순수하게 축하해드리고 싶어서―”
“너희는 그럴 마음이겠지만, 다른 어른들은…그리 순수하지 않단다.”
“……네에.”
“으으…….”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본격화가 끝나 신체만큼은 성인 여성의 그것이라 하지만, 정신은 중등부 꼬맹이다. 어른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이해할 정도로 성숙한 것은 아니리라.
물론 심볼리 루돌프나 메지로 아르당의 경우는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겠지만, 그런데도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물론, 매년 보는 얼굴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황제의 저런 얼굴을 보았으니까 말이다.
“트레이너 군, 그래도 역시 알려주었으면 한다.”
“……루돌프?”
하지만 올해는 뭔가 달랐는지, 심볼리 루돌프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그리곤 그의 책상으로 빠르게 걸어와,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키타산 블랙을 제치고 그의 책상을 쾅! 하고 내리친다.
“이건 불공평하지 않은가. 트레이너 군은 우리들의 생일을 다 알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주는데…우리는 트레이너 군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너희가 나한테 뭔가 해줄 필요는 없어.”
“스승의 은혜를 갚지도 말라니, 어불성설이군.”
“스승의 은혜는 레이스로 갚으렴.”
“큭…….”
하지만 황제라 해도 결국은 고등부 아이. 어른의 말빨을 이기려 들어도 십 년은 이르다. 물론 심볼리 루돌프가 열 살을 더 먹는다면,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군 또한 열 살을 더 먹을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영원한 아이다. 시간은 동등하게 흐르는 법이다.
그래서 황제는 조용히 물러난다. 여기서는 논리적인 접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논리와 말싸움으로는 트레이너 군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다음 타자에게 슬쩍 눈짓을 보낸다. 그 사인을 받아, 메지로 아르당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성으로 안 된다면, 감성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트레이너 군이 메지로 아르당을 조금 더 세심히 신경 쓴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기에, 그 점을 이용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메지로 아르당이 트레이너 씨의 책상으로 조심스레 접근하자, 그는 슬그머니 아르당으로부터 눈을 피한다.
“트레이너…씨?”
“…….”
“트레이너 씨의 생일…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얼굴을 슬쩍 들이밀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트레이너 씨를 공략한다. 몸을 앞으로 숙였기 때문일까, 메지로 아르당의 거대한 흉부가 더욱이 강조되어 보이고, 그 유려한 가슴의 흔들림에 트레이너 씨는 넋을 잃고 그의 생일을 실토하―
“안 돼.”
“엣.”
―기는 커녕, 눈을 돌린 채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메지로 아르당의 미인계에 넘어가지 않은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메지로 아르당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 트레이너 씨에게 무릎베개도 해준 사이가 아니던가. 메지로 아르당은 트레이너 씨에게 특별한 우마무스메가 아니던가.
그런 믿음이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아, 그녀는 재차 트레이너 씨를 재촉한다.
“부탁이에요, 트레이너 씨. 한 번이라도 트레이너 씨의 생일을 축하해드리고 싶은걸요…….”
“그렇게 말해도 안 돼.”
“……엣.”
하지만 트레이너 씨는 단호했다. 어쩌면 소중한 사람에게 더욱 엄한 타입일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메지로 아르당은 견딜 수가 없었다.
빈혈인 걸까, 살짝 현기증이 일어나 휘청거렸지만, 트레이너 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보고 있던 메지로 맥퀸이 황급히 그녀를 받아들었다.
“아르당 언니!”
“아…맥퀸. 나는 괜찮아….”
“……트레이너 씨. 너무하신 것이와요.”
그리고 아르당을 소파에 앉힌 뒤, 맥퀸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트레이너 씨를 노려보았다.
“트레이너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시다면, 어서 생일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와요…!”
“가르쳐 주겠냐.”
“가르쳐 주지 않으시겠다면, 강제로라도―”
마치 스위츠를 한 달이나 굶은 것처럼, 메지로 맥퀸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로 트레이너 씨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제지해야 할 심볼리 루돌프도, 메지로 아르당도, 심지어 무조건 맥퀸보다 자신이 우선이라고 달려드는 토카이 테이오 조차 가만히 있었다.
전부…전부 회장이랑 한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녀석을 전부 한 패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일곱 시가 삼십 분쯤 지난 시간이다. 이때쯤 여기에 찾아오는 마지막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메지로 맥퀸이 트레이너 씨에게 달려드는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무언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공중에서 서류들이 흩날리고, 그것을 보며 트레이너는 한숨을 푹 내쉰다. 에휴, 오늘도 야근이겠구나.
“맥퀸 양, 트레이너 씨를 곤란하게 하면 안 된답니다?”
“…타즈나 씨.”
목덜미를 붙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맥퀸을 천천히 내려놓은 채, 하야카와 타즈나는 으르렁거리듯 눈앞의 망아지들에게 고한다.
“여러분들도, 트레이너 씨를 너무 곤란하게 만들면…안 된답니다?”
온화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우마무스메는 사람보다 훨씬 본능적인 동물이기에, 하야카와 타즈나로부터 풍겨 나오는 옅은 기운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경고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그런 부류의 경고.
평상시에는 한없이 온화한 사람이지만, 이사장 비서의 역할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리고 철없고 사고뭉치인 이사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돌보며 학원의 여러 가지 일들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망아지들 정도는 짓눌러버릴 위압감 정도는 자연스레 체득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그녀들은 하야카와 타즈나가 부재한,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붙잡혀 있는 메지로 맥퀸이 투덜거리듯 말한다.
“네…알겠사와요, 타즈나 씨.”
그렇게 얌전히 소파에 다시 앉으려는 찰나, 메지로 아르당이 이사장 비서에게 작은 반기를 든다.
“타즈나 씨는 알고 계시나요, 트레이너 씨의 생일?”
“……네?”
“트레이너 씨와 알고 지내신 지 꽤 오래되셨잖아요. 직장 동료 사이라면 한 번쯤 생일도 챙겨주셨을 테고요….”
“…….”
메지로 아르당의 말에, 하야카와 타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문 채, 트레이너 씨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 속에 담긴 말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트레이너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한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이럴 때는 한없이 비겁한 사람이라니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야카와 타즈나는 다시 망아지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트레이너 씨의 생일은 모르네요.”
“정말…인가요?”
“네. 저 트레이너 씨는 토키노 미노루를 담당하던 시절부터, 누구에게도 생일을 가르쳐 주신 적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아…….”
그 말에 메지로 아르당이 고개를 내젓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우마무스메들도 쓴웃음을 짓는다.
트레이너 씨의 첫 담당 우마무스메인 토키노 미노루에게조차 생일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면, 정말로 가르쳐 줄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녀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여도, 그에게서 직접 생일을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포기하는 것이 맞다. 삼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다. 트레이너 씨에게 들을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알아내리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론 그런 생각조차, 하야카와 타즈나는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가 모를 리가 없잖은가. 자신도 그녀들과 같은 생각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무래도 트레이너 씨의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을 더 강화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눈앞의 이 사고뭉치 망아지들에게 축객령을 내린다.
“자자, 저녁의 티타임은 이걸로 끝이에요. 다들 트레이너 씨의 일을 방해하지 말고 기숙사로 돌아가세요. ……루돌프 양은 학생회실로 가고요.”
“왜 나만…!”
“학생회장의 업무가 남아 있잖아요? 에어 그루브 양이 찾고 있던데.”
“루나아앙…….”
고개를 푹 숙이며 심볼리 루돌프는 트레이너 사무실에서 쓸쓸히 퇴장한다. 그 뒤를 따라 토카이 테이오도, 메지로 맥퀸도 사무실을 나간다.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뭔가 한마디 하려 했지만, 눈치 빠른 키타산 블랙이 하하 웃으며 그런 친구의 입을 막고 질질 끌고 나간다. 지금의 그녀들이 뭐라고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르당 양은 기숙사로 안 돌아가시나요?”
하야카와 타즈나의 말에 메지로 아르당은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후후 웃으며 하야카와 타즈나의 말에 다시금 반기를 든다.
“그렇게 말씀하시곤, 트레이너 씨와 단둘이 있으려 하시는 건가요, 타즈나 씨?”
“아르당 양.”
예상치 못한 반기에, 하야카와 타즈나는 한숨을 내쉬며 메지로 아르당을 보았다. 평소의 나긋나긋하고 청초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레이스의 결승선을 앞두고 경쟁하는 우마무스메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분위기, 하야카와 타즈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호승심에 불타는 토키노 미노루는 좋아한다. 잠시 내면에 토키노 미노루에게 몸을 맡길까, 고민하다가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 이것 또한 메지로 아르당 나름의 용기라는 것을 이해했으니까.
그래서 고개를 내저으며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서류 뭉치를 눈으로 가리킨다.
“트레이너 씨에게 전달해 드려야 할 서류들이 이렇게 되어 있어서요. 정리하고, 트레이너 씨에게 서류를 드리고, 저도 퇴근해야죠.”
“……그렇네요. 실례했어요.”
하야카와 타즈나의 정론에, 메지로 아르당은 조용히 승복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트레이너 씨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에야 사뿐사뿐 걸어서 트레이너 사무실을 나선다.
메지로 아르당이 문을 닫고 나가고 나서야, 하야카와 타즈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흩어져 있는 서류들을 하나씩 줍는다.
“나도 도울게, 타즈나.”
“아뇨아뇨, 트레이너 씨는 일 보세요.”
트레이너의 도움을 거절한다. 서류 줍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도와줘서 고마워.”
등 뒤에서 작게 들려오는 트레이너 씨의 말에,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예전부터 지금까지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철벽을 치는 것은 여전하면서, 이럴 때만 비겁하다니까.
하지만 괜찮다. 오늘은 하야카와 타즈나…아니, 토키노 미노루가 복수하기 위해 조용히 준비한 날이기 때문이다.
“고마우신가요? 아이들이랑 시시덕거리던 거 방해해서 싫으셨던 게 아니고요?”
“아니, 귀여운 담당들이긴 하지만, 조금 전에는 제법 곤란하던 차였으니까.”
“하여간…그깟 생일이 뭐라고 알려주지도 않으셔서 이러세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니.”
“뭐어, 어릴 적 일이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고개를 내저으며 서류 뭉치를 탁탁, 손으로 두어 번 쳐서 정리한다. 그리고 트레이너 씨의 책상으로 다가가 그것을 내민다.
“여기, 확인해 주실 서류들이랑, URA에서 보내온 공문이랑…이것저것 처리하셔야 할 것들이 조금 있네요, 오늘은.”
“오늘따라 일이 많네. 에휴…피곤하다 정말.”
“그렇네요. 오늘 정도는 편히 쉬셔도 될 텐데 말이죠.”
“……응?”
하야카와 타즈나에서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에, 트레이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위화감은 위화감일 뿐, 그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하야카와 타즈나의 말에, 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트레이너 씨. 아직도 토키노 미노루에게 트레이너 씨의 생일…가르쳐 주지 않으실 건가요?”
“왜, 왜 이래, 갑자기?”
“아니면 혹시, 하야카와 타즈나라면…가르쳐 주실 건가요?”
“야, 야야, 타즈나? 타즈나?!”
어느새 트레이너 씨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이것이 하야카와 타즈나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토키노 미노루로서 이러고 있는 것이라면…다른 어떤 담당 우마무스메보다 위험한 상황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하야카와 타즈나의 이름을 부르며 진정하라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보는 순간, 조용히 한마디 중얼거렸다.
“……미노루.”
그 말에 하야카와 타즈나…아니, 토키노 미노루가 키득거린다. 그리고 트레이너 씨의 귓가에, 그만이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인다.
“트레이너 씨. 제가 아직도 트레이너 씨의 어린 담당 우마무스메로 보이시나요?”
“넌 영원한 꼬맹이야.”
“그 꼬맹이가 이렇게 성장해서 트레이너 씨 앞에 서 있는걸요?”
“여전히 꼬맹이로 보인다고.”
“제게는 여전히 그 시절의 트레이너 씨로 보이는걸요.”
“농담하지 말고…일, 마무리하고 퇴근해야지.”
“그런 점도, 변한 게 없는 ‘제’ 트레이너 씨라니까요.”
후후 웃는다. 그러더니 의외로 순순히 트레이너 씨에게서 떨어진다. 예전의 토키노 미노루라면 이런 기회, 절대 놓치지 않았을 테고…그런 토키노 미노루에게 저항하기 위해 그 또한 나름대로의 수단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러니 왼손의 스턴 건은 내려놓으세요, 트레이너 씨. 아무리 저라도 그거 최대 출력으로 맞으면 아프니까요.”
“…눈치는 빠르다니까.”
위화감을 인지하자마자 그녀 몰래 책상 아래의 비밀 공간에서 집어 든 스턴 건과 같은 것들.
예전의 토키노 미노루라면 그런 것에 당했을 테지만, 하야카와 타즈나는 트레이너 씨의 여러 저항 수단들을 대강 파악하고 있다. 스턴 건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인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단순히 트레이너 씨를 잡아먹으려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복수, 트레이너 씨의 무감각함과 냉정함에 대한 작은 복수를 하려는 것이니까.
“그리고, 여기에 너무 오래 있으면…복도에서 아직 안 가고 있는 아르당 양에게 의심받을 테니까요.”
“아르당이? ……진짜냐.”
“너무 저 망아지들을 믿으시면 안 된다고요? 그러다가 언젠간 잡아먹혀요.”
토키노 미노루의 말에 트레이너 씨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너한테서도 잘 버텼어. 저 정도는 귀엽지.”
“하여간…너무 무감각 하시다니까요, 트레이너 씨는.”
토키노 미노루 또한 픽, 웃는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 트레이너 씨에게 내민다.
“이게 뭐야?”
“열어보세요.”
“……?”
토키노 미노루의 말에, 트레이너 씨는 자그마한 상자를 열어본다. 그 안에는 녹색에 금테가 둘린 커프스 버튼 (소매단추)이 있었다.
“……야, 토키노 미노루.”
그 의미를 아는 트레이너 씨는 인상을 찌푸리며 토키노 미노루를 보았으나,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연다.
“그거, 제 승부복 단추로 만든 거예요.”
“이걸 왜 나한테 주냐고.”
“제가 트레이너 씨에게 드리는 첫 선물이니까요.”
“첫 선물은 무슨, 자잘하게 많이 줬잖아.”
아무래도 먹는 것 정도는 받아줬으니까, 첫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커프스 버튼을 받을 생각은 없다. 돌려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상자를 덮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트레이너 씨.”
“…….”
토키노 미노루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자가 드리는 첫 생일 선물이니까요.”
“어떻게…….”
“알려드리면 재미없잖아요? 아, 하야카와 타즈나의 권한을 쓰진 않았어요. 이사장 비서의 권한을 쓰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 저는 트레이너 씨처럼 비겁하진 않으니까요.”
그리곤 키득키득 웃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녹아웃 펀치를 날린다.
“그러니…소중하게 간직해 주세요, 트레이너 씨?”
거절할 수 없는 통보였다.
오늘도 평화로운 중앙 트레센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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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프스 버튼을 선물하는 것에는 당신을 붙잡아 둘 거라는 의미가 어쩌고저쩌고
생일이라 써본 짧은 잡글
내가 그라스랑 생일이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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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당에게 알려주면 메지로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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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복에서 떼어서 만들었다는게 결혼반지 같은 소중함을 더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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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노에게 알려주면 사토노 당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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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사토 이미지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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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학생보단 성인이랑 연애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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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알려주는 순간 이제 그는 어디로 가게될것인가! 나중에 생일 늦게 챙겨서 트레이너에게 나기나타 휘두르는 그라스짱이 보고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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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도 맛있고(?) 글도 맛있고(??) 생일 축하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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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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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노에게 알려주면 사토노 당하는거고~ | 24.02.19 11:0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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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알려주는 순간 이제 그는 어디로 가게될것인가! 나중에 생일 늦게 챙겨서 트레이너에게 나기나타 휘두르는 그라스짱이 보고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