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글만 자꾸 쓰다 보니 안되겠다 싶어서
오늘 거란군이 귀주로 도망치게 만드는데 1등 공신을 한 노전.
하지만 실제 고려사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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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契丹)이 다시 노전(盧戩) 및 합문사(閤門使) 마수(馬壽)로 하여금 격문(檄文)을 가지고 통주(通州)에 이르러 항복할 것을 권유하니,
성 안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중랑장(中郞將) 최질(崔質)·홍숙(洪淑)이 소매를 걷고 일어나서 노전과 마수를 잡았고,
이에 방어사(防禦使) 이원구(李元龜), 부사(副使) 최탁(崔卓), 대장군(大將軍) 채온겸(蔡溫謙), 판관(判官) 시거운(柴巨雲)과
함께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곧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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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그냥 통주성에 항복을 권하러 갔던 드라마 초반의 모습에서 그대로 통주성에 억류된 것이 기록의 끝임.
그런데 왜 드라마에서는 가짜뉴스 맨이 되서
거란군을 귀주로 보내는 역할을 담당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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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년 2월 11일(음) 을해(乙亥) ,
1018년 3월 1일(양) 현종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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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9년에는 1018년 3차 전쟁 직전에는 중추부원사 상호군까지 진급을 함. 거기다가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꾸준히 진급을 계속하여 현종 14년에는 삼사사
덕종 즉위년에는 호부 상서에 이름.
즉, 단순히 포로로 잡혔다가 거란에 투항한 것 때문에 오히려 결격사유 투성이인 인물인데 이상하리만치 꾸준히
진급을 계속함.
나아가서는 충선왕 때 이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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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왕 즉위년 1298년 역대공신 및 전몰공신 후손의 등용 규정을 하교하다.
충선왕(忠宣王) 즉위년(1298)에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태조(太祖) 때 공신(功臣)의 친가와 외가[內外] 5세 현손(玄孫)의 아들,
역대[代代] 배향공신(配享功臣)의 친가와 외가 5세 현손의 증손(曾孫),
태조 때에 사직(社稷)을 보위하고 전사한 김락(金樂)·김철(金哲)·신숭겸(申崇謙) 및
거란군[丹兵]을 퇴각하게 할 수 있었던 서희(徐熙)·하공진(河拱辰)·노전(盧戩)·양규(楊規) 등에게는,
친손자와 외손자 및 현손 중에서 각각 1명에게 처음 벼슬길에 오르는 것[入仕]을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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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놀랍게도 거란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뿐인
노전이 양규와 동등한 위치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음.
이것은 우연이 아닌데 왜냐하면 충선왕은 복위한 1308년에도 동일한 교지를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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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때의 위사공신(衛社功臣)인 김락(金樂)·김철(金哲)·신숭겸(申崇謙) 및
성종(成宗) 때의 공신 서희(徐熙),
현종 때의 공신인 하공진(河拱辰)·노전(盧戩)·양규(楊規)의 친가·외가 현손의 현손을 전례에 따라 1호당 1명에게 첫 벼슬을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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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고려사의 기록대로 가면 노전은 굉장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되어버림.
1. 거란군에게 투항하여 포로로 잡힘.
2. 통주성에서 고려군에게 다시 억류됨.
3. 복귀 후 갑자기 계속 승진함.
4. 약 200년 뒤에 충선왕 때에는 서희, 양규 나아가서 삼한 벽상 공신인 김락, 신숭겸 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음.
즉 전후 과정을 살펴보면 고려사에 누락된 무언가 큰 공을 세웠을 공산이 있는데
문제는 노전이 3차 전투에서는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이 양반이 거란군 격퇴에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는
정작 포로로 잡힌 2차 전투 뿐이라는 거임.
다시 말해 2차 전쟁 때 몽진을 건의한 후 사라진 강감찬보다도 훨씬 어마어마한 기록의 공백이 존재하는 인물인 셈.
적어도 강감찬은 현종을 호종하다가 창화현에서 아전(향리)의 변란 때 현종과 헤어졌다고 봐도 될 여지가 있는데
이 양반은 거란군에게 포로로 잡힌 걸 제외하면
'서희, 양규와 동등한 위치에 둘 수가 없는 인물' 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사에서 서희, 양규와 동등한 위치에 두다보니
드라마에서는 이걸 적절하게 각색해서 거란군에게 완벽한 가짜 뉴스를 던져줬고
요나라 성종에게 치명타를 날리는데 일조 한 것으로 각색한 셈.
이 정도 각색은 오히려 굉장히 필요한 각색이라고 생각됨.
(IP보기클릭)59.20.***.***
중간에 기록이 없다고 하지만 진짜 미스테리한 인물임. 도대체 뭘 했길래 양규, 서희와 동등한 반열에 오른 건지. 모르겠음.
(IP보기클릭)118.41.***.***
목숨을 걸고 적진 한복판에 가서 구라를 친다 작중 소배압이 내 동생이 말하던데 고려인들은 구라를 ㅈㄴ 잘친다고 그래도 나한테는 안돼 이런식으로 말하던데 다 속았죠
(IP보기클릭)119.196.***.***
아 중간에 기록이 없다구요 ㅋㅋㅋ
(IP보기클릭)58.78.***.***
창작의 영역이 들어간다는건 이런 부분이구나 사료 부족이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경우이다보니
(IP보기클릭)121.186.***.***
드라마야 각색을 하겠지만 그래도 기록이 없어서 아쉬운 부분이구만 거란에게 얼마나 거대한 빅엿을 먹였길래...
(IP보기클릭)221.161.***.***
하공진이랑 같이는 아님. 통주성에서 잡혀있었음. 김훈, 최질, 정성과 같이 싸웠거나 해야하는데 그쪽 기록에도 안 나옴.
(IP보기클릭)121.130.***.***
기록도 못하고 도강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양규만치 대우 해준거면 드라마서 각색해준것도 있지만 기록에 남은 하공진이랑 같이 퇴로에서 뒤지게 고생하게 만든게 아닌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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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중간에 기록이 없다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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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기록이 없다고 하지만 진짜 미스테리한 인물임. 도대체 뭘 했길래 양규, 서희와 동등한 반열에 오른 건지. 모르겠음. | 24.01.06 23:2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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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영역이 들어간다는건 이런 부분이구나 사료 부족이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경우이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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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야 각색을 하겠지만 그래도 기록이 없어서 아쉬운 부분이구만 거란에게 얼마나 거대한 빅엿을 먹였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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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도 못하고 도강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양규만치 대우 해준거면 드라마서 각색해준것도 있지만 기록에 남은 하공진이랑 같이 퇴로에서 뒤지게 고생하게 만든게 아닌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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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이랑 같이는 아님. 통주성에서 잡혀있었음. 김훈, 최질, 정성과 같이 싸웠거나 해야하는데 그쪽 기록에도 안 나옴. | 24.01.06 23:4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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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적진 한복판에 가서 구라를 친다 작중 소배압이 내 동생이 말하던데 고려인들은 구라를 ㅈㄴ 잘친다고 그래도 나한테는 안돼 이런식으로 말하던데 다 속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