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술,
천자참칭자.
2세기 말~3세기 초,
군웅할거의 시대에 유명 군벌들 중 가장 비웃음을 많이 산 자.
천년하고도 팔백년이 지나 이제는 빛나던 원씨의 이름값도 빛을 잃었고,
망탁조의와 함께 비난받는 이유이던 한나라의 기치도 꺾인 지 오래인 이 시대에
그는 아직도 조롱거리로 남아있다.
삼국지라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가 비난받던 이유는 무엇인가?
반대로, 그를 비웃던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멈추고 이해를 해보려 한 적은 있는가?
오늘은 원술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원술은 한나라의 명문가였던 원씨 가문의 적자이다.
아버지는 사공 원봉이었으며,
형제로는 190년도에 동탁에 반기를 들고 거병한 원소의 탓으로 원씨 일족이 몰살 당할 때에 사망한 친형 원기와
얼자(어머니가 천인인 자식)인 이복형제 원소가 있다.
원소는 동탁의 원씨 일족 몰살 직전까지
환관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원씨 가문과는 정 반대되는 스탠스를 취하며 정치적 힘을 기르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전제로 깔아두고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술의 행동을 따라가보자.
190년의 지도.
동탁은 원소가 대놓고 반기를 들며 제후들과 호족들의 힘을 합쳐 반기를 들려는 낌새를 보이자 원씨 일족을 몰살시킨 후에,
황실 근위대를 이끌고 있으며 원씨의 적자이던 원술을 회유하고자 시도한다.
이 시기에 원술은 동탁의 손을 잡지않고 달아나 북형주의 남양 땅에 자리잡고 거병했으며,
당대 최고의 맹장 중 하나이던 손견을 수하로 들이면서 명분과 힘을 모두 챙겼고,
본인이 보급을 맡았던 반동탁 연합이 비록 동탁을 몰아내는데에는 실패했다지만 낙양을 탈환했다.
원술은 공손찬에 이은 당대 최강의 군벌 세력 중 하나이자 최고 명문가의 적자이자 가주였고
또한 갓 형주자사에 임명된 유표도 원술을 남양태수에 천거하면서 사실상 형주를 손아귀에 넣은 상황이었다.
이 때 가장 거대한 세력은 한나라의 수도권인 사례 지역과 서량의 핵심인 동부를 장악하고 협천자로 조정을 농락하고 있던 동탁이며,
그 다음으로 손 꼽히는 것이 북방의 강군을 통솔하던 공손찬과 북형주 일대를 장악한 원술이 손 꼽힌다.
원술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고, 이 것이 원술의 1차 전성기이다.
191년의 지도
191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원소와 원술의 대립이다.
반 동탁 연합의 명분은 크게 둘이었는데,
1. 황제 폐위.
(동탁에 의해 소제가 폐위되고 헌제가 옹립되면서 반 동탁 연합 결성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 원소가 원씨 가문의 복수를 명분삼아 반 동탁 연합의 수장을 맡으면서 유우라는 명망높은 황족을 황제 후보로 내세웠는데, 정작 그 유우가 제위를 거부하면서 헌제가 정통성이 있는 황제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이 명분은 무너지고 말았다.
2. 원씨 가문의 복수
→ 원술과 원소가 살아있던 상황 속에서 이 명분이 크게 작용했다.
원술의 친모가 죽었을 때, 6년상을 치루면서 이름을 높인 원소가 반 동탁 연합의 수장을 맡았고,
세력이 크고 동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원술이 보급을 맡아 두 원씨는 쌍두마차로 반 동탁 연합을 이끌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2번이다.
원씨 가문이 동탁에 의해 멸족되면서 원씨 가문의 적자이자 가주가 된 것은 원술이다.
그리고 원소가 천하에 널리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 6년상의 대상은 원소의 어머니가 아니라, 원술의 친모이다.
(원소의 친모는 동탁의 원씨 몰살 당시에 같이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원술 입장에서는 진짜 원씨인지도 의문인 노예의 자식(원소의 친모가 원씨 가문의 노예였다.)이 자기 어머니의 상을 치뤄버리고
그로 인해 자신은 세간의 손가락질과 입방아에 오르게 된 데다, 원씨의 가주인 자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복수는 원소가 한 것이 되어버린 것.
여기에 더해, 애초 따지고보면 원씨 일족이 몰살당한 것은 원소가 대담하게도 대놓고 동탁에게 반기를 들고 거병한 탓에 몰살당한 것이다.
현대로 치환하면 어느 날 갑자기 집에 강도가 들어 가족들이 다 죽었는데,
수십년간 얼굴도 보고 살지 않고 집 나가 살던 사생아가 찾아와 보험금, 유산 상속받아 훌쩍 떠나버린 것과도 같다.
심지어 이걸 복수하기 위해 벌인 전쟁에서도 전쟁 치루는데 들어간 물자는 자신이 댄데다,
반 동탁 연합에서도 여러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실제적으로 동탁과 전투를 벌여 낙양을 탈환한 것은 본인 뿐이었고,
보급을 위해 어쩔 수 없었음에도 세금을 쥐어짰다고 욕을 먹어야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반 동탁 연합으로 얻은 공과 성과는 원소가 다 챙겨갔으니
원술이 사람이라면 꽤나 열이 받았을 것이다.
그 탓인지 원술은 반 동탁 연합이 흐지부지되는 시점부터 원소를 공공연하게 비난하기 시작한다.
"원소는 집안의 노비이며, 원씨도 아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나를 따르지 않고 비천한 종놈을 따른다."
이게 감정적인 듯 보이지만, 정치적 목적도 분명히 담고있었다.
원소의 이름값, 그리고 반 동탁 연합의 수장을 맡은 이유 모두 6년상과 원씨라는 이유에 달려있었는데
6년상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고, 정작 친모의 상은 대충 버려뒀으며,
원씨인지도 의문이라면 원소는 천하의 상놈이 되는 것이고 원소의 업적은 모두 원술의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이 원씨의 적자이자 가주의 입에서 나왔다면 더욱이.
원소는 이 소식을 듣고 분노했고,
원소와 유표, 공손찬과 원술이 손을 잡고 서로 대립하여 전쟁을 했다.
이 과정에서 유표가 손견을 전사시키고 원술을 북형주에서 몰아내면서 원술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하고 만다.
190년과 191년의 지도를 비교해보면 원술의 핵심 지역이던 남양을 유표가 장악하고
정치적 입지는 뛰어났으나 군벌로선 약체였던 원소가 기주로 진출하며 급성장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동탁 사후 제 1세력인 공손찬과 제 2세력인 원술이 손을 잡고 원소-조조를 쳤으나 꾸준히 지속적으로 패배하고 만다.
이후 원술은 193년까지 원소-조조과의 대립에서 빠른 속도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원술이 무능력해서 졌느냐고 하면, 마냥 그렇게 보기도 어려웠다.
192년까지의 전개를 보면
첫번째 전쟁에서 졌다고 해도 여전히 원술은 강력한 군벌이었고 유주의 공손찬, 서주의 도겸, 병주의 장연, 남흉노의 어부라 등과 동맹을 맺었다.
또한 새 황제를 옹립하려다 실패하고 헌제를 동탁의 괴뢰정권 취급하며 인정하지 않은데다,
독단적으로 조조에게 연주자사 등을 내린 원소와 달리 헌제를 인정한데다 공식 관직도 받은 원술은 동탁-이각-곽사의 중앙세력의 호의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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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원소계와 친 원술계의 대립을 대략적으로 지도 위에 덧칠한 것이다.
강력한 군벌 셋(공손찬, 원술, 도겸)을 중심으로 대 원소 포위망이 완성된 상태인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193년.
원소계 군벌인 조조의 기반이 불안정한 틈을 타 장연, 어부라를 끌어들여 조조를 공격했으나 정황상 원소, 유표의 개입으로 패전,
예주를 완전히 상실하고 양주의 구강군으로 도망치게 된다.
황하 이남의 패권은 사실상 여기서 1차적으로 결정되었고, 원술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미지와는 달리 193년까지만 하더라도 원술은 강대한 군벌이었고, 명분도 있었으며, 중앙 정부의 호의도 샀다.
외교도 나쁘지 않았고, 백성들을 쥐어짰다지만 주변 세력들과 비교하여 평가가 나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필자는 이 시점까지 원술이 가진 문제는 솔직히 단 하나였다고 본다.
하필이면 적대하는 것이 원소와 조조였다는 것.
그러나 하늘은 절대 기회를 한번만 주진 않는다고 했던가?
이듬해인 194년, 원술에게도 한 차례 기회가 오긴 한다.
적이 원소와 조조라면, 그건 너무한 것이 아닌가? 그 탓인지 한 차례 밸런스 패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조조가 도겸을 공격하자
진궁, 여포 등이 장막을 수장 삼아 연주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조조는 193년과 194년에 걸쳐 서주 대학살을 벌인 탓에 서주의 인심을 잃었고
장막-진궁-여포가 조조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연주를 장악하며 조조의 세력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났다.
비록 초토화 되었다지만 서주에는 친 공손찬계 세력이었던 유비가 자리잡은 상황에
원술은 형주와 예주에서 세력을 잃었다지만, 손책을 앞세워 양주 쪽으로 세력을 성장시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초한쟁패기에 외진 파촉 지방으로 들어가 세력을 기른 한 고조 유방이 떠오르기도 하고,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웅크리고 재차 사냥을 준비하는 포식자가 떠오르기도 한다.
195년에는 이각-곽사의 중앙군벌에게 통제받던 헌제가 장안을 탈출하였고 이를 조조가 수습하여 허창에 황제가 기거하도록 하였는데,
이 시기에 조조와 원술이 전투를 벌였던 것이나,
조조가 헌제를 맞이하기 위해 서쪽으로 향할 때에 예주에서 원술이 임명한 범 원술계 군벌들을 격파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반 동탁 연합 당시, 원소계 군벌들이 헌제의 정통성을 부정한 것과 달리
원술계 군벌들이 헌제의 정통성을 옹호한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원술 역시 본래 칭제를 생각했다기 보다는 조조와 같은 시기에 협천자를 시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점이 있다.
이 것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원술과 조조의 협천자 레이스에서 원술이 패배하면서 원술은 다시 한번 기회를 잃고야 만다.
연주의 반란은 미처 원술이 호응하기도 전에 꽤나 빠르게 진압되고 말았지만,
서주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 한 친 원소계 군벌 유비가 연주 반란 진압 이후 서주로 도망친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고 만다.
한편 원술은 이 때 혼란스러운 서주에 손을 뻗어 서주 장악을 시도했는데,
결과를 놓고 본다면 비록 원술의 입장에서 최고의 결과(서주를 원술이 장악함)는 얻지 못 했지만,
여포와 혼인 동맹을 맺는 데에는 성공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확보하는데에 성공한다.
원술이 생각하기에,
이미 1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황건적이 남아있었고 황제는 황제가 아니었으며 나라는 두번이나 수도를 잃었다.
이건 나라가 망할 징조였는데,
때 마침 원술은 당대 유학과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다음 황제는 원씨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상태였고,
머지 않아 잃어버렸던 한나라 황실의 옥새까지 얻었다.
원씨라고 하면 세상 천하 어디에 누가 있는가?
감히 원씨라 부를 수 없는 원소 놈을 제외한다면, 원씨 일족이 떼몰살 당한 세상에 원씨라고는 가주인 원술 본인 밖에 없다.
무엇인가 느껴지지 않는가?
하늘의 뜻,
천명이다.
천명이 원술에게 있었다.
당대 기준으로 미신이 아니라,
하늘의 뜻과 세상의 이치를 풀어 설명하는 유학과 오행설이라는 최신 학문에서,
원술을 다음 시대의 황제로 점 찍었으니.
조가 놈이 천자를 곁에 두어 자신을 역적으로 선포할 것이 분명하다면,
다음 시대를 열 것이라 예언된 자신이 직접 새로운 시대를, 망국을 대신할 대안을 보여주면 된다.
지금의 고난은 이 험한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하늘이 내려준 시련인 셈이었다.
그 것도 극복할 수 있음이 정해진.
그리고 원술은 끝났다.
청주는 원소에게 병합당했으며, 공손찬은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였다.
손책은 원술의 뒷통수를 후려치고 원술이 세력의 밑바탕으로 삼으려던 강동지역을 장악했다.
장안에서 탈출한 후 생사를 알기조차 어려웠던 황제는 조조의 품에 들어갔고,
곧이어 줄곧 헌제의 정통성을 주장하던 군벌, 원술은 반역자로 선포되었다.
협천자에 실패하고, 황제가 살아있으며, 조조가 협천자를 해버렸다.
이 시점에서 원술은 재기의 희망을 잃었다.
이미 원소-조조를 견제할만한 세력은 몇 남아있지 않았는데,
이들 모두 굳이 '이미 새로운 시대를 보여줄 것은 자신'이라 선포한 반역자 원술을 도와 원소-조조와 맞설 이유는 없었다.
또한 손가 세력이 이탈한 이후,
수하에 유능한 군사 인재가 없었던 것인지, 원술 본인의 군사적 무능함과 오판이 지속되어 세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원술이 황제를 칭한 197년부터 원술의 세력권은 지독한 가뭄에까지 시달렸다.
원술을 제위에 올려준 음양오행에 따르면 원술은 土에 해당되었고, 가뭄은 원술의 책임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하늘이 원술을 버렸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197년, 원술의 세력권이던 장강과 회수 사이 회남 지역에 지독한 가뭄이 있어 식량 부족으로 식인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이에 원술의 수하인 패국상 서소가 굶주리는 백성들을 보다못해 군량미 10만 곡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했다.
원술은 격노하여 서소를 참수하라 명했는데
이 때 서소가 원술에게 말하기를,
"당연히 죽을 것을 알았으나, 한 사람의 명을 바쳐 도탄에 빠진 수많은 백성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이에 원술은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하며 답하기를,
"족하는 어찌 혼자서만 천하의 명예를 누리려 하는가, 나와는 함께 누릴 수는 없었는가?"라 푸념하였다.
그리고 199년,
조조와 손책이 원술을 노리는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잃은 원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원소에게 투항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 적대하던 원소지만,
유주, 병주, 유주, 청주 등 4개의 주를 장악한 최대, 최강의 군벌이었고,
또한 줄곧 헌제의 정통성을 부정해온 덕에 원술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유일한 군벌이었으며,
자신이 그토록 부정해온 원씨의 혈통이란 사실이, 예언 속 '다음 시대를 열 원씨 황제'라는 조건을 충족하기에.
이에 원술이 원소에게 편지를 보내고 세력을 수습해 원소에게로 향하는데,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나라는 천하를 잃은 지 오래되었고, 천자는 권신들의 손에 끌려다니며 권신들이 정사를 행하고, 영웅 호걸들은 서로 강토를 나눠 각축을 벌이고 있소.
이는 주나라 말기의 전국칠웅이 세력을 다퉜던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종국엔 강한 자만이 (천하를) 거머쥘 것이오.
(이에 더하여) 원씨는 왕이 된다는 천명을 받아 그 상서로운 조짐이 환하게 빛나고
지금 군(원소)께서는 병주, 유주, 기주, 청주의 4주를 옹유하며 인가가 백만으로, 이처럼 강대하고 덕 높은 자가 없소.
조조는 쇠락한 한실을 지탱한들 어찌 끊어진 천명을 잇고 이미 망한 것을 구원하겠나. 군이 삼가 천명에 응하시오."
내용을 해석하면,
"한나라는 망했다. 원씨가 황제가 된다는데, 아무래도 나는 아닌 것 같다.
그래, 니가 원씨 수장이다. 내가 아니라, 네가 원씨의 수장이다. 네가 다음 시대를 열 황제다.
그러니 나를 좀 살려주라."
원술은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존심도 접고서 원소에게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청주로 가는 길목인 하비(청주와의 접경지, 연두색 점)가 조조에게 막혀 멀리 수춘(하늘색 점) 방향으로 빙 돌아 우회하게 되었다.
그런데 원술의 세력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는지,
우회하는 동안 식량이 고갈되고 마실 물도 없어 원술이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꿀물이었다.
원술은 일족을 지켜내지도 못 했고,
실패한 군벌이며, 새로운 시대를 열지도 못 했으며,
끝내 반역자로 남았지만
한 시대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능력은 있었고,
큰 판을 보는 눈과
자신의 손익보다 대의를 보고 그를 존중하는 정도의 인품은 있었다.
무엇보다 얘는 서주대효도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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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상대적 장점이라면 1. 정치적 식견. 생각보다 괜찮았음. 하진 사망 때 재빨리 조정을 쓸어버린거나, ㅎㅈ군직 받고 탈출해서 손견에 힘실어줘서 천통각에 근접한거나. 조조에게 개떡락 당한 뒤에도 양주 지역에서 재도약하거나. 조조를 상대해서 여포에게 힘실어줘서 서주 챙겨준거나. 2. 개인적인 카리스마. 생각보다 괜찮았음. 두번이나 떡락했음에도 원술 근처에는 사람이 남았고, 몇가지 자잘한 에피소드도 있었으며, 한번 개떡락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역 관직 추천을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었음. 뭐 결국 문제점이 장점보다 컸으니 멸망했고, 사실 원술이 키워준거나 다름없는 군사적인 파트너 셋 중 둘에게 통수맞은건 안목이 모잘랐다고 할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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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대체 원술은 자기 어머니 6년상을 본인이 안 했을까. 그것만 본인이 친아들로서 제대로 행했어도 원소는 걍 얼자로 끝났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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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총체적 문제점? 1. 학정. 이건 진짜 빼박임. 원술은 어딜 가서든 학정을 펼침. 남양도, 여강도, 수춘도 죄다 고통받음. 2. 군사적 무능. 정치적으로 꽤 천통에 근접했음에도 번번이 주르륵주르륵 했던건 죄다 이거때문임. 3. 청류적 가치 창출실패. 중앙이 원소-동탁-이각/곽사 3연타로 개.씹.창. 나면서 인재풀은 오로지 청류만 남게 됨. ㄴ 경쟁자인 조조, 원소가 말 그대로 자존심과 피를 깎아가면서 청류적 가치를 창출했던것 과는 대조적이지. ㄴ 물론 군사적 재능에 의지했던 손견/손책, 애초부터 청류 적장자였던 유비와도 비교가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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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술의 학정은 손견이 군사적 결과물을 충분히 이행했었을때도 있었고, 그 원인 자체도 원술 본인의 향락이었음. 2. 원술의 대국적 안목은 『본인이 손견급의 군재를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성립하는 것이었음. 근데 가지고 있지 않았지? 그 결과는 과도하고 타이밍에 안맞는 군사행동과, 그 처참한 실패로 나락행,의 반복이었음. 역사는 결과로서 증명하고, 원술의 계속된 도전과 계속된 실패, 처참한 최후는 그의 눈이 너무나도 높았다는 걸 반증하지. 3. 원술의 카리스마는 자신의 주위사람을 챙기는데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대외적으로는 꽝이었음. 원술과 동맹을 맺었던 손견은 무리한 양양 꼬라박으로 사망, 손책은 원술을 배신하고 독립, 여포 또한 배신으로 화답했지. 군재를 갖춰줄 인재? 원술의 휘하에는 손견, 손책, 여포가 있었음. 여포를 제외하고는 군사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지녔었지. 없어서 아쉬웠던게 아니라 갖췄는데도 못다뤄서 튕겨져 나간거잖아. 운이 없는게 아니라 운을 얻고도 잡지 못한거지. 4. 원술이 아무리 사세삼공 원가 적자라고 할지라도, 대환관 비정후 조등의 양손인 조조에 비할까. 그 조조는 "넌 태평천하의 간적새끼임 ㅋㅋ" 소리 듣고도 웃어야 했고, 나는 새도 떨군다는 건석의 숙부를 때려죽였지. 반동탁 연합 때 조조는 "조공은 없으면 안됩니다!" 소리 들으면서 탈출했을지언정 꼬라박았고, 영천파에 수도를 헌납했지. 그에 비해 원술이 청류파에 속하고자 했다면 조조보다는 훨씬 쉬웠을 걸. 동탁을 낙양에서 몰아낸 명성을 얻었으니까. 근데? 안했지. 조조에 꼬라박고 지고 지고 또져서 예장까지 도망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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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대체 원술은 자기 어머니 6년상을 본인이 안 했을까. 그것만 본인이 친아들로서 제대로 행했어도 원소는 걍 얼자로 끝났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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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면 아직 고구려가 한사군 축출하기 이전임. 비류수 전투를 하기도 수십년 전이었으니. 아 물론 비류수에서도 고구려는 털렸고. | 22.07.24 09:0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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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총체적 문제점? 1. 학정. 이건 진짜 빼박임. 원술은 어딜 가서든 학정을 펼침. 남양도, 여강도, 수춘도 죄다 고통받음. 2. 군사적 무능. 정치적으로 꽤 천통에 근접했음에도 번번이 주르륵주르륵 했던건 죄다 이거때문임. 3. 청류적 가치 창출실패. 중앙이 원소-동탁-이각/곽사 3연타로 개.씹.창. 나면서 인재풀은 오로지 청류만 남게 됨. ㄴ 경쟁자인 조조, 원소가 말 그대로 자존심과 피를 깎아가면서 청류적 가치를 창출했던것 과는 대조적이지. ㄴ 물론 군사적 재능에 의지했던 손견/손책, 애초부터 청류 적장자였던 유비와도 비교가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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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에
원술의 상대적 장점이라면 1. 정치적 식견. 생각보다 괜찮았음. 하진 사망 때 재빨리 조정을 쓸어버린거나, ㅎㅈ군직 받고 탈출해서 손견에 힘실어줘서 천통각에 근접한거나. 조조에게 개떡락 당한 뒤에도 양주 지역에서 재도약하거나. 조조를 상대해서 여포에게 힘실어줘서 서주 챙겨준거나. 2. 개인적인 카리스마. 생각보다 괜찮았음. 두번이나 떡락했음에도 원술 근처에는 사람이 남았고, 몇가지 자잘한 에피소드도 있었으며, 한번 개떡락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역 관직 추천을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었음. 뭐 결국 문제점이 장점보다 컸으니 멸망했고, 사실 원술이 키워준거나 다름없는 군사적인 파트너 셋 중 둘에게 통수맞은건 안목이 모잘랐다고 할 수도 있겠지. | 22.07.24 09:0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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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aBelle
1. 원술의 학정은 손견이 군사적 결과물을 충분히 이행했었을때도 있었고, 그 원인 자체도 원술 본인의 향락이었음. 2. 원술의 대국적 안목은 『본인이 손견급의 군재를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성립하는 것이었음. 근데 가지고 있지 않았지? 그 결과는 과도하고 타이밍에 안맞는 군사행동과, 그 처참한 실패로 나락행,의 반복이었음. 역사는 결과로서 증명하고, 원술의 계속된 도전과 계속된 실패, 처참한 최후는 그의 눈이 너무나도 높았다는 걸 반증하지. 3. 원술의 카리스마는 자신의 주위사람을 챙기는데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대외적으로는 꽝이었음. 원술과 동맹을 맺었던 손견은 무리한 양양 꼬라박으로 사망, 손책은 원술을 배신하고 독립, 여포 또한 배신으로 화답했지. 군재를 갖춰줄 인재? 원술의 휘하에는 손견, 손책, 여포가 있었음. 여포를 제외하고는 군사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지녔었지. 없어서 아쉬웠던게 아니라 갖췄는데도 못다뤄서 튕겨져 나간거잖아. 운이 없는게 아니라 운을 얻고도 잡지 못한거지. 4. 원술이 아무리 사세삼공 원가 적자라고 할지라도, 대환관 비정후 조등의 양손인 조조에 비할까. 그 조조는 "넌 태평천하의 간적새끼임 ㅋㅋ" 소리 듣고도 웃어야 했고, 나는 새도 떨군다는 건석의 숙부를 때려죽였지. 반동탁 연합 때 조조는 "조공은 없으면 안됩니다!" 소리 들으면서 탈출했을지언정 꼬라박았고, 영천파에 수도를 헌납했지. 그에 비해 원술이 청류파에 속하고자 했다면 조조보다는 훨씬 쉬웠을 걸. 동탁을 낙양에서 몰아낸 명성을 얻었으니까. 근데? 안했지. 조조에 꼬라박고 지고 지고 또져서 예장까지 도망쳤지. | 22.07.24 14:4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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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aBelle
당연하지. 솔직히 반동탁 연합 고꾸러지고, 오직 손견과 원술만이 싸워 이겨나갔다는걸 생각하면. 191-192의 원술은 매우 빛났다고. 하지만 그만 손견이 양번에 꼬라박고 "장렬" 하는 바람에.. 근데 양양 공격하자고 먼저 말한게 원술이었나? | 22.07.24 14:5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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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aBelle
사실 원술이 가장 피해본건 연의에서 반동탁연합의 공을 죄다 뺏겨버린게 크지. 가장 큰 공적을, 그것도 원소에게 뺏기다니.. | 22.07.24 17:2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