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게이 여러분 안녕
조금씩 날이 차가워져 가는 가을날이다
이럴 때는 가을 분위기에 맞는 차분한 곡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좋지
그래서 가지고 온 곡이 로베르트 슈만의 마지막 작품, 유령변주곡(Geistervariationen)이다
제목이 왜 유령인고 하니 이렇다
로베르트 슈만은 평생에 걸쳐 조금씩 정신질환이 심해지면서 창작에 고통을 겪었는데
죽기 전 2년 전인 1854년 2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독하게 마음 먹고 라인강에 투신했는데,
그 바로 직전에 악보에 적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곡이 바로 이 유령변주곡이다
다행히 강에 있던 어부가 구해줘서 목숨은 살았는데, 이 사건으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슈만은 마침내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슈만은 이 정신병원에서 2년 더 살다가 죽었지만 멀쩡하던 시절 세계적인 작곡가로 추앙받던 슈만이 이렇게 망가졌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부인 클라라 슈만 때문에 철저히 외부와 단절되어 살다가 죽게 된다.
슈만이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몇 곡을 더 썼다고 하던데, 그 작품들은 클라라가 모두 빼앗아 불태워서 현재 남아있는 게 없다.
유령변주곡 역시 클라라가 슈만이 죽을 때까지 이 곡의 존재를 숨겼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다가 죽고 나서 후배 작곡가 브람스 때문에 겨우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운 좋은 케이스다.
자 그럼 유령변주곡을 아래 링크에서 한번 들어보자.
원래 슈만 곡의 특성은 활발한 리듬감과 대담한 화성, 그리고 역동적인 다이내믹과 레토릭이다.
쉽게 말해 빠르게 도약하고 자유분방하게 오르내리면서 본인 내면의 끓어오르는 예술혼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스타일이라는 것이지. 그런데 이 곡은 사실 그같은 특성과는 정반대에 있다.
선율은 아름답지만 악상은 차분하면서도 멜랑콜리하고, 화성은 고음역으로 올라가지 않고 상당히 단조롭다.
그리고 곡을 끝까지 지배하는 수수께끼같은 일렁임이 물결처럼 반복된다.
사실 앞에서 제대로 설명을 빠뜨렸는데, 이 곡에 유령변주곡이란 이름이 붙은 건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던 슈만이 어느날 이 곡의 멜로디를 듣고는
'아아, 이건 천사가 불러주는 음악이군'하고 생각해서 그 악상을 그대로 적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슈만은 이런 천상의 멜로디를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꼭 오선지에 옮겨야겠다고 마음먹고 이 변주곡을 작곡했고, 마침내 마지막 마디를 완성하고 나서 라인강에 투신한 거다.
그런데......
https://ncache.ilbe.com/files/attach/new/20211010/157494/3403621561/11371818301/ee64169e42c4bd48f7030d6a357cfb0d_11371821495.jpeg" width="764" loading="on" style="margin-bottom: 6px; font-family: inherit; font-size: inherit; font-style: inherit; font-variant-caps: inherit; font-stretch: inherit; line-height: inherit; vertical-align: top; outline-style: none; box-sizing: border-box; max-width: 100%; height: auto;" />
클라라와 브람스가 본 이 곡은 다름 아닌 슈만이 1년 전 작곡한 또 다른 곡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의 그것도 주제선율이었다.
심지어 12년 전에 작곡한 현악4중주에도, 5년 전에 작곡한 '어린이를 위한 앨범'에도 똑같이 쓰였던 멜로디였던 거다.
아마 클라라는 그래서 이 곡을 발견하고 울었을 것이다. 남편이 너무 가엽고 안타까워서.
슈만은 오랫동안 자기 머리속에 있었던, 자신이 만들어 내고도 기억하지 못한 이 선율이 천사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끝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거다.
천재 예술가 슈만의 인생을 돌아보며 10월의 가을밤을 느껴보자.
유령변주곡,
Ich wei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