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및 토미오카 기유가 배를 갈라 죄값을 치르겠습니다."
라고 들은 게 며칠 전.
그 때는 우로코다키 씨가 아무 말도 없이 서신을 보내와서 나답지 않게 놀랐었지... 하지만 카마도 남매가 무사해서 다행이군.
탄지로는 나대신 수주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구해야 하니까. 죽어버리면 곤란해
"...."
"크흠...."
"나무아미타불..."
"...젠장"
"...훌쩍..."
그런데 오늘의 주합회의는 뭔가 이상하다.
우즈이도 없고 다들 나를 보는 눈빛이 뭔가... 연민인가 무언가 불쌍한 것을 보는 듯한.. 시나즈가와는 평소보다도 안좋은 표정이군.
아까 먹던 오하기에 콩이라도 섞여있었던 건가.
음. 나중에 새로 사다주자.
"나리께서 행차하셨나이다!"
평소보다 어수선하던 분위기의 지주들이 재빠르게 대열을 갖춰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조용하던 저택 안에서 한 사내가 느릿한 걸음으로 등장했다.
귀살대의 우두머리, 당주 우부야시키였다
"...오늘은 급한 전언에도 모두들 모여주어 고맙구나.. 다들 알다시피 내가 그대들을 부른 것은... "
응? 잠깐.. 난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거지?
설마 내가 미움받고 있... 을 리는 없으니, 뭔가 착오라도 생긴 거겠지. 그냥 조용히 있자.
"탄지로와 네즈코에 관한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이다. 요시와라에서 있었던 우즈이의 임무에 따라간 네즈코가 폭주해 사람들을 해쳤다.. 결국 상현의 6은 토벌했지만 우즈이는 현재 의식불명의 중태로 다시 깨어날 수 없을 것 같다더군."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임에도 다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놀라지 않는다.
그저 칸로지만이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며 정원의 흙을 적시고 있을 뿐.
그런데 어째서 나만 이런 중요한 것을 이제야 알게된 거지?
까마귀의 전달속도가 이상할 정도로 느려!
"...이에따라 신상필벌을 위해 카마도 탄지로와 우로코다키 사콘지를 이 곳으로 불렀으나.. 카마도 탄지로는 입원치료 중이던 나비저택에서 장문의 반성문을 남겨둔 채.. 중태의 여동생을 데리고 야반도주,
교육자 우로코다키 사콘지도 사기리산의 자택에 사람을 보냈으나 행방불명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뎃?, 아니. 무슨?, 거짓말이지? 무슨 소리하시는거야 나리는.
오늘이 만우절인가? 혹시 내 생일이었나?
다들 날 놀리려고 이런 걸 준비한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수주 토미오카 기유. 책임을 져주어야겠다."
아니.. 이건 진짜다.. 나리가 저렇게 분노하신 건 처음봤다... 이마에 혈관이 돋아있는 게 히메지마 씨 팔뚝같잖아...
연어무조림..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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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ㅊ,채..책임이라 하심은 어떤.. 의미인지요.."
내 실력이 모자란 탓에 사비토가 귀신에게 살해당한 이래로, 나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화로를 유지하는 장작처럼 목숨을 던져 불태울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기유"
"나, 나리..."
하지만 막상 죽을 때가 오니 확실히 알겠다.
나는 살고 싶다... 무조건 살아있는 게 낫다..
지금 죽기에는 아직 결혼도 못했고 모아둔 돈도 한참 남았고 연어무조림도 너무 맛있다...
어떻게든 살아남자.. 나리께 싹싹 빌어서라도.
"걱정하지말거라. 기유"
"..예?"
"나도 책임을 지라고 했지만 악마는 아니란다.. 네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
"..끄흡, 가, 감사합니다..."
나리께서는 대체 얼마나 아량이 넓은 분이란 말인가.. 이런 사람 밑에서 직속으로 일할 수 있다니..
나, 지주가 되길 잘했어...!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보조는 사네미가 먼저하겠다고 자청해주었단다.."
그 말을 들은 시나즈가와가 연쇄살인마의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항상 나와 가장 먼 반대쪽 끝에 서던 시나즈가와가 왠일로 옆에 딱 붙어섰길래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달랐던 것 같다...
"...예?, 보조라 하심은..?"
"몇 달 전, 모종의 이유로 번개의 호흡 유파의 교육자가 자진해서 할복했다만... 아무한테도 목을 베어달라고 하지 않아서.. 홀로 격통 속에서 최후를 맞았지..
정말이지 대단한 각오였어."
그 냉정한 말에 하늘을 뚫고 올라가던 기유의 텐션이 단숨에 땅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기유는 눈 앞이 깜깜해졌다!
"아, 물론 너는 그럴 필요없이 깔끔하게 죽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란다."
그딴 배려 전혀 고맙지 않다...!
이대로 나는 죽는 건가...!
온몸의 핏기가 빠져나가는 기분.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솔직히 지주가 된 이래로 지금까지는 상현의 귀신을 만난 적도 없어서 죽음의 공포를 한참 잊고 살았다.. 지금 이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나리!!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이 실수를 책임질 기회를!!"
양쪽 무릎을 공손하게 꿇고 정원의 자갈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이마로부터 뜨듯미지근한 액체가 스며나온다.
내 목청에서 이렇게 큰 소리가 나올 수 있었는 지 처음알았다.
"기유...수주라고 하는 자가... 추하구나."
"이대로 홀로 죽어서는 제대로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우로코다키 사콘지와 카마도 탄지로를 잡아와서 반드시 이 자리에 무릎 꿇리겠습니다!!"
결국 사제와 스승까지 팔아 넘겼다..
내가 생각해도 수치심이 이만저만이 아니건만 옆에서 느껴지는 다른 지주들과 나리의 시선도 따가워서 수치사할 것 같다..
아무리 나라도 이제는 알 수 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미움받고 있는 것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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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몇 달뒤. 사기리 산
"누나가 귀신에게 살해당한 이래로..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격렬한 증오를 품었던 적이 없다. 탄지로."
"기유 씨... 오셨군요. 절 만나러 오실 걸 알고 있었어요.."
다 헤진 바둑판무늬 하오리를 겨우 걸친 채 쭈그려 앉아 나무뿌리를 캐고 있던 탄지로가 일어나 기유를 돌아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분노로 이성을 잃은 풍주, 시나즈가와 사네미가 달려들어서 두들겨 팰 때까지 우부야시키 앞에서 살려달라고 엎드려 빈 기유.
그는 결국 당주에게
"물의 호흡 일파를 잡아오면 할복대신 팔 한 쪽으로 끝내주겠다"
라는 언질을 받아내고 도망친 탄지로와 네즈코를 잡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었다.
"평생 산에서 틀여박혀 살았던 녀석이 다친 몸으로 멀리 도망쳤을 리가 없지. 특히 사기리 산은 험하고 은신처도 많으니 당연히 이 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네즈코를 살리기 위해 겨우 여기까지 왔건만.. 역시 사람에겐 어찌해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는 것이로군요.."
"어째서냐... 어째서 나만두고 너희끼리만 도망쳤지!? 대답해라!!"
고요한 사기리 산 중턱에서 크게 울린 기유의 목소리에는 그의 억울함, 절망감, 분노를 비롯한 여러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잠시의 정적 후 탄지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면목없지만.. 저와 네즈코 대신 책임을 져줄 사람이 필요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발언에 분노한 기유가 탄지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륜도를 뽑은 채 달려나가며 외쳤다.
"나의 생사여탈권을 네 놈이 쥐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