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본능이라는 기반위에 이성과 도덕을 쌓아올린 위대한 동물입니다.

그렇다 하여 본능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아직 불씨를 품고있는 재 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부터 본능은 조용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불씨는 때로 산들바람처럼 뺨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때로는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인 존재인지 알려줍니다.

그 중 성적 욕망은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솔직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것을 감추려 들고, 외면하며, 절제라는 미덕 아래 억압해버립니다.

하지만 욕망은 그저 단순히 억제한다고 사라지는 감정이 아닙니다.

참는다는 것은 안으로 삭힌다는 것이며, 삭히고 억눌린 감정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입니다.

고요히 쌓인 욕망은 예고 없이 터지는 폭탄처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형태로 터져나오고 맙니다.

'왜 이렇게 까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마음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면

그 마음속의 욕망은 이미 오랜기간 억눌려 있었을겁니다.

그러므로 욕망의 해소는 나약함이나 부끄러움의 징표가 아니라,

그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리듬을 조율하는 고요한 호흡이며, 성실한 삶을 마주보기 위한 쉼표입니다.

저는 그런점에서 적당한 해소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욕망에 솔직해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내면의 자신을 마주보고,

억지로 누르던 욕망들이 녹아내리며 미어터지던 마음속 여유있는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다시 인생을 살아갈 힘을 되찾는 과정이니까요.

저는 처음 유리아 선생님의 신작을 보았을때 강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 분노는 제 마음속 욕망에 패배했다는 패배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표지에 입고나온 의상을 본편에서는 그저 5분만 입고 나왔다는 것이

강렬하게 표지를 장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중심에서 외면당했다는 사실은

저에게 있어 분노로 다가왔습니다.

아니 사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온전히 받아들이려 했던 마음이 농락당했을때의 감정

그것은 분노의 가면을 쓴 슬픔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분노와 슬픔이 잊혀져 갈 때 쯤

오늘의 저는 그 격앙된 감정마저도 제 마음 속 어딘가 오랫동안 쌓여 있던

기대와 억눌림의 융합물이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억눌린 욕망이라는 화약이 작품을 통해 불붙었을 뿐이니까요.

지금은 그 분노조차도 하나의 깨달음이 되어 제 삶의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욕망이란 결코 천박한 것이 아니며,

그 욕망을 품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 오히려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란걸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욕망을 감싸안고 스스로를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더는 보지 않을거라며 어딘가에 넣어두었던 야동을

다시 꺼내어 보는 그 순간이

세상 속 나를 내려두고, 진짜 나 자신을 마주보는 깨달음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일이 끝났을때 나를 강타하는 채념속에는

우리가 외면해온 욕망과 감정의 바다 위로

조금은 무뎌진 자아가 고요히 떠오르는걸 느낄 수 있을겁니다.

그 순간은 분명 겹겹이 쌓여있는 삶을 한 겹 파고들게 되어

작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줄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