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대한제국 시기의 체전부(우체부)인 우전부(郵傳夫)와 전전부(電傳夫)를 그려봤습니다.
우전부는 일반 집배원을 의미하고, 전전부는 급한 전보를 전달하는 전배원(電配員)입니다.
이들의 복식을 살펴보면, 평상복을 입고 활동하던 조선시대 체전부와는 달리 검은색 제복에, 오른쪽 인물은 서양식 캐피 모자를, 왼쪽 인물은 이엄(耳掩)을 착용하고
그 위에 벙거지를 썼습니다. 단추는 5개로 아무 무늬도 없었거나, 이화문(李花紋)이 그려져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발은 왼쪽 인물이 짚신, 오른쪽 인물은 가죽 단화를 신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900년 통신원에서 의정부에게 품의하여 승인을 받은 우편기입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제복의 소매 부분입니다. 당시 체전부는 '우'라는 표식을 소매 부분에 달았습니다.
우정총국 체신기념관에서도 이를 재현해 놓았는데,(아래 사진) 아쉽게도 'ㅜ'부분의 아래 획이 좀 길어진 채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원본 사진에선 손까지 닿지 않고 중간에서 끊깁니다.
체신기념관에서는 단추에 이화문을 새겨서 재현했기에, 본 그림에서도 단추에 이화문을 그렸습니다.
(실제로는 민무늬였을 확률도 있습니다.)
체전부들의 모자에는 당시 통신원(通信院) 우체사(郵遞司)의 '郵(우)'를 형상화 한 모표를 부착하였습니다. 형태는 붉은 바탕에 노란색의 '우'자가 부착된 형태입니다.
특이한 것은 우전부와 전전부의 모표가 서로 달랐다는 것인데, 집배원인 우전부는 일반 모표를, 전배원인 전전부는 빨간 모표를 착용하였습니다
당시 체전부들의 가방은 서양식 크로스백으로, 갈색빛의 가죽 가방이었습니다. 1909년 6월 2일 자의 대한민보 삽화를 보면 가방을 멘 체전부가 묘사되어 있고, 1984년에 발행한 대한민국 우표에서도 그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가방의 명칭은 황성신문에 게재된 통신원령제3호 국내우체세칙(通信院令第三号 國內郵遞細則)에 우체행낭이란 단어가 보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우체행낭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황성신문』 1903년 3월 19일
통신원령제3호 국내우체세칙(通信院令第三号 國內郵遞細則) 속(續)
(전략)
○제33조 우체물 체송(遞送)은 발송시각 전 30분 이내로 우체행낭을 쇄봉하야 발송ㅎㆍㅁ을 예비ㅎㆍㅁ이 가ㅎㆍㅁ이라
○제34조 체송 행낭 폐쇄하난 시각 전에 영수(領受)하난 우체물은 즉행 체송하고 차체(次遞)를 대하야 체송ㅎㆍㄹ을 득(得)지 못ㅎㆍㅁ이라
○제35조 우체행낭은 좌개사종(左開四種)으로 구별ㅎㆍㅁ이라 1.백소행낭(白小行囊) 2.적행낭(赤行囊) 3.대행낭(大行囊) 4.첨행낭(添行囊)
(후략)
※ 아직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위 사진의 모자를 자세히 보면, 모표 양 옆으로 줄이 보입니다. 관련 기록을 찾지 못하여,
다른 박물관에서 복원한 것처럼 모체를 검게 칠하긴 했으나, 대한제국의 군모처럼 다른 색상이 들어갔을 확률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체전부는 아래 링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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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모자를 여러개 겹처쓰기도 했습니다. 일단 탕건+정자관이 가장 많이 알려져있고, 복건 위에 갓을 쓰기도 했습니다. 저 위에 우체부는 이엄에 벙거지를 쓴 형태네요. 아마 겨울에 찍은 사진같습니다. | 18.11.09 21: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