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 사건은 피해자에게는 공포감과 PTSD를, 피해자의 가족에게는 막대한 심리적 고통을 준다.
그리고 여기에 어린 시절 유괴를 2번이나 당했던 사람이 있다.
△ 1차 유괴 사건을 보도한 신문. 주간 부산, 1978년 11월 5일.
1차 유괴 사건
1978년 9월 5일 낮, 정효주(1969년생, 당시 남성국민학교 2학년)는 귀가 도중 한 40대 남성에게 유괴를 당했다.
이후 범인은 정효주를 데리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협박전화를 걸었고 정효주를 시켜 돈을 부치라는 편지를 쓰게 시키기도 하였다.
경찰은 범인의 차량 번호를 밝혀내기 위해 대한민국 최초로 최면수사기법을 동원하였고, 결국 번호를 알아내는데 성공한다.
유괴 33일째 되던 날, 범인은 전화를 걸 공중전화를 물색하던 도중 부산시경 소속 공길용 경사한테 검거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범인은 매석환으로, 유괴(곽영주의 아들을 유괴한 적이 있었다.) 등 전과 9범을 기록했던 남자였다. 어느 승객이 "남성국민학교에는 부잣집 자식들이 많이 다닌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매석환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1989년 만기 출소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차 유괴 사건
1차 사건으로부터 7개월 후인 1979년 4월, 정효주는 등교 도중 또다시 유괴를 당했다. 1차 사건 이후로 정효주는 매일 가족과 같이 등교를 했는데 딱 하루 혼자 등교하다가 유괴를 당한 것이었다. 본 사건은 1차 사건으로 피해 아동의 이름, 얼굴과 신상 정보가 알려지면서 발생한 모방 범죄이기도 하다.
범인은 효주의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며 1억 5000만원을 요구하였고, 신체를 절단해 보내겠다는 협박도 하였다.
정효주의 아버지는 딸만 살려주면 뭐든 해주겠다며 애원하였고, 당시 옥중에 있었던 1차 사건의 범인인 매석환은 "불안감을 떨치려면 애를 풀어주고 자수하라"라는 편지를 썼다.
사건 5일째 "유괴범이 효주를 무사히 돌려주면 최대한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라는 대통령 담화가 발표되었고 그날 밤 범인은 정효주를 경주IC 인근에 내려놓고 도주하였다.
사건으로부터 1년 8개월 후 범인인 이원석 이 검거되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피해자를 무사히 풀어준 것이 반영되어 20년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1999년 만기 출소하였다.
이후
피해자였던 정효주는 다행히도 무사히 성장하였고, 현재는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