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존재한다면 전지전능하지 않을 것이고, 전지전능하다면 사악한 존재일 것이다.
파인 모션이 두 번이나 유산한 결과, 사실상 불임에 가까운 판정을 받는 걸 지켜본 트레이너가 가지게 된 종교관은 그러했다. 사실 그는 크게 종교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긴 했다. 속칭 나이롱 신자라고 할 수 있는 분류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신앙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종종 한국에 들어갈 때가 있으면 시간 나면 고해성사도 하러 갔으며 미사에도 참석했으니까.
그러기에 그는 처음으로, 신이란 작자가 너무나도 잔인하다고 느꼈다.
“그런 얼굴 하지 마, 나는 정말 괜찮아.”
특히, 병원에서 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을 들은 날, 파인이 보인 모습을 생각하면 더더욱.
울고 싶을 것이다.
누구보다 통곡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웃었다.
그 감정 전부를 숨기고, 웃으며 오히려 트레이너를 달랬다.
“…파인, 굳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돼.”
“후후,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들은 것에 불과한데 뭐.”
첫 유산도, 두 번째 유산도, 5주를 넘기지 못하고 일어난 일들.
이는 파인 모션의 체질적인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다.
즉, 심각한 난임으로 인한 문제로, 사실상 불임이라는 판정이 왕실을 진단하는 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조심스레 내려진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이를 듣는 그녀의 안색은 내내 어두웠으나, 병원을 나서는 순간 애써 밝은 표정으로 포장되어 그 감정을 감추고 있었다.
“난 당신하고 이렇게 같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응, 그래 그거면 됐어.”
거짓말이다.
누구보다 아이를 가지길 소망했다는 걸 그는 안다.
두 번째 임신이 확정되었을 때, 아기 침대나 용품을 들떠서 준비하던 게 그녀였으니까. 최대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음식 하나까지 자중해가며 입에 넣었다. 그 좋아하던 라면까지 줄였을 정도로. 그렇기에 마음에 그 누구보다 큰 상처를 지금 입었을 이가 파인 모션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라멘집에 들러도 될까? 일본에서 배우고 온 사람이 차린 식당이 있다고 하는데.”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평상시에 보이는 모습으로 덧씌우는 걸 보며 그는 울컥 올라오는 걸 참았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이걸로 조금이나마 그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무엇을 해서라도 파인 모션의 상실감을 덜어줄 수 있다면.
트레이너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
사람의 감정은 자고 있을 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를 두 눈으로 보게 된 트레이너는 아이리시 위스키 한 병을 따서 조용히 잔에 따른 후 마시며 착잡하게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 전, 그는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훌쩍거리는 소리.
숨길 수 없는 조용한 통곡.
이는 파인 모션이 숨겨왔던 내면의 고통과 상실감이 잠자리에 들자, 수면 위로 떠올랐음을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말없이 조용히 다독거려주며 훌쩍거림을 잦아들게 한 후, 침대에서 빠져나온 그는 술이 고팠다.
하늘을 저주하고, 운명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차마 그렇게 할 수 없기에 술을 마시고 싶었다.
너무 가혹했다.
파인 모션이 비록 엉뚱하고 말괄량이 같은 면이 있다곤 하나, 이런 운명을 맞을 이유는 없었단 말이다.
눈물 젖은 파인 모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면서 그의 내면에 있던 일말의 신앙심은 마치 잿더미처럼 흩날렸다. 신이 진실로 존재한다면 분명 사악의 끝을 달리는 존재일 것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희망을 앗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기적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얼음조차 넣지 않은 잔을 이마에 댄 채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거실 한편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을 보면서 말했다.
“예, 압니다. 기적이라 부를 건 2000여 년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어났으니까요. 그러니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전 아주 작은 것만 바랍니다.”
-가능성.
그래, 트레이너 시절부터 우마무스메들에게서 항상 추구하던 것.
그 자그마한 씨앗이 파인 모션에게 깃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느새 기도하듯 모인 손은 단 하나의 기도를, 간절한 소원을 담은 기도를 자정이 넘은 밤하늘에 올렸다.
순간, 밤하늘의 어느 곳에서 어두운 별 하나가 반짝인 것만 같았다.
-⏲-
그 후로 1년이 흘렀다.
다시 일상은 흘러갔고, 파인 모션도 종종 우울한 모습을 가끔 보였지만 그래도 평소의 활기를 되찾았다.
“이상하네, 이런 꿈을 꾼 적이 없는데.”
이날은 뭔가 이상했다.
좀처럼 꿈을 꿔도 금방 잊는 편인 트레이너가 다소 뻐근하게 느껴지는 어깨를 돌리며 몸을 일으켰으니까.
“꿈꿨어? 당신이? 그런 일은 잘 없잖아?”
“응, 그래서 더 희한하네.”
아침의 일과로 물에 발포 비타민 하나를 넣어서 주는 걸로 시작하는 파인 모션은 그의 말에 상당히 의아한 듯 묻는 가운데, 문득 그 꿈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무슨 꿈이었길래 그러는 거야?”
“뭐, 이상하다면 이상한 건데, 뭐라고 해야 하지?”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물을 단숨에 들이켠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짚어 나간 후 말했다.
“시들어 있던 클로버밭에 흰토끼가 뛰어오더니 전부 다시 피어나는 꿈이었어.”
“헤에? 무슨 꿈이 그래?”
“그렇지?”
이때까진 몰랐지.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갈까? 스크램블로?”
“좋지, 점심은 내가 만들게.”
이 꿈이 뭘 의미하는지.
‘탁-. 탁-.’
“흐흠, 읍?”
“파인?”
달걀을 깬 순간, 희미하게 느껴진 냄새에 평소와 달리 입을 막는 파인 모션이 무언가 상황이 이상함을 알리는 징조였다.
“별거 아냐. 좀 피곤한가 봐.”
“어제 푹 잤잖아?”
“그런가? 중간에 깬 거 같기도 한데.”
애써 손사래를 치며 다시 계란에 버터와 크림을 넣고 풀려는 순간, 다시 훅 올라오는 계란 냄새에 이번에는 버티지 못했다.
“우웁!”
“왜 그래?!”
더는 못 견디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그녀를 뒤쫓아 달려가는 가운데, 이전의 기억이 떠올라 극도로 당황한 트레이너는 급하게 병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설마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그날 이후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부담이 온 것일까, 하는 불안감이 일었다.
…
“왕녀 전하, 축하합니다. 임신 8주입니다.”
“네?”
“뭐요.”
어, 근데 이건 예상 못 했다.
확률 까짓거 별거 없네?
극악의 확률을 뚫고, 마의 5주가 돌파당했다.
이게 뭐야.
피폐인줄 알았나
모든 건 해피엔딩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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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해피엔딩은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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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해피엔딩은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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