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때 태어나서 명종 때부터 열심히 뛰어 을묘왜변 진압에 공을 세우고
대포...배에다가 ㅈ나게 대포를 실어야한다.
대포...
라는 일념으로 판옥선도 제작하고 73세의 나이로 퇴직해서 고향에서 편하게 쉬려는데 5년 뒤에 들어는 봤지만 본 적도 없는 31살 아래의 까마득한 후배놈이 쳐들어와서 갑자기 끌고 감.
정걸 : 야 ㅅㅂ 유비도 제갈량 삼고초려했는데!
이순신 : 그래서 삼초 고려했는데요? 역시 선배가 필요합니다.
정걸 : ....
그렇게 끌려가서 거북선 만드는데도 투입되서 구르고 한산도 해전 부산포 해전에서도 열심히 구르다가 한계가 오는걸 본인도 이순신도 느꼈는지 후방인 충청 수사로 배임받은 이후 한성 인근에서 조선 육군이 치열하게 10배 이상의 적 병력과 싸운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있는 물자 싸그리 긁어다가 지원갔는데
그게 바로 행주대첩
실제로 마지막 순간에 여기서 밀리면 ㅈ된다고 미쳐버린 일본군이 권율의 본진을 압박했는데 그 순간에 나타난게 정걸의 충청함대
그러다가 정유재란 직전 1597년에 83세의 나이로 병사함. 그나마 다행이었던게 칠천량 해전을 보지 않았다는 거.
이순신도 감옥에서의 고초보다도 칠천량의 패전 소식 듣고 건강이 심각하게 망가진거 고려하면..
훨씬 더 고령이었던 정걸에게는 더 크게 작용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