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쉬맨을 보기 위해 이틀을 썼습니다.
역시 3시간 반을 계속 앉아있는건 불가능했어요.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역시 70 넘은 할아버지들이 마흔 즈음인 캐릭터들을 연기하고,
또 영화가 길면서도 주연 배우들이 계속 보여지다보니, 특히 움직임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영화 보는 우리 관객들은 로버트 드 니로가 실제 몇살인지 알고 있잖습니까.
하지만 연기가 뛰어나고, 관객을 바보 취급하는 "음악으로 특정 감정 유도하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에 집중하기에는 좋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필요한건 관객 당신의 체력 뿐!
디즈니가 성공적으로 돈 빨아들이는 대형청소기가 되어 영화계를 균일화 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그 때문에 극장에조차 거의 가지 않게 된 저 같은 사람에게는 넷플릭스의 존재가 구세주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영화는 2시간 안에 반드시 끝나야 하고, 음악으로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유도하는 방식이 당연한 것처럼 이용되는 지금,
아이리쉬맨을 가능하게 한 넷플릭스가 고맙습니다.
아이리쉬맨 보고, 연기를 포함해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시는 분은 넷플릭스에 있는
The irishman in conversation도 보세요.
40분쯤 마틴 스코세시,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가 이 영화에 대해 수다를 나눕니다.
많이 설명 해 주지는 않으나, 약간은 이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과 현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일정 방식에 맞추지 않은 예술작품을 만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재미 없으면 지나갑시다.
저는 이야기를 경험하고 나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며
내가 살고 있는 삶과는 다른 어딘가에서 일어날 수 있을법한 행복과 괴로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손가락 똑 하면 세상 생명 절반이 없어진다는 설정 안에서 "머리를 노렸어야지" 같은 이야기 놓고
"다 같이 때려서 머리를 노리고 뭐고 두부 으깨듯 산산조각을 내야지 뭐하는거야!"란 생각만 들게 만드는 그런거 말고요.
그런 이야기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안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주류가 된 현실은 마주하기 괴롭습니다.
다스베이더 더 안 나오나...
이 아래로는 긴 제 넋두리.
지금 문화계는 완벽히 전문가 체계로 움직이고 있지요.
고도로 전문화 된 각 분야의 사람들이 프로젝트 별로 동원되어 움직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그 결과물이 최신 기술의 집약체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나,
당연히도 비용이 많이 드니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거기에 발 맞출 수 있으면서도 작품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불리는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스티븐 소더버그겠습니다.
소더버그는 영화 템포를 잘 조절하면서도 전체 길이를 2시간 이하로 만들 수 있는 뛰어난 편집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런 뛰어난 한 인물을 기준으로 업계가 움직이면서 업계 전체가 무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일에는 자원, 즉 돈이 들지만, 돈을 제1의 목적으로 움직이는 예술은 예술의 본래 목적인 행복과 즐거움에 방해가 되는 때도 있는 듯 느껴집니다.
영화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관객을 가능한 한 많이 끌어들여야 하므로
그렇게 하기 위해 영화를 특정 길이 이하로 줄이고,
알기 쉽게 만들기 위해 음악으로 감정을 해설하고 분위기를 유도하고,
배우들은 특정 감정을 위해서는 특정 움직임을 하도록 훈련되어, 정확하지만 한편으로는 만화캐릭터 같이 표현하고,
이 전부가 당연한 것처럼 되었지만
생각 해 보시면 금방 느낄 수 있듯, 이 전부는 당연한게 아닙니다.
지금의 음악은 완벽한 템포에 맞춰 모든 악기가 움직이는게 당연한 듯이 연주되는게 대부분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연주되지도 않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게 하니 그렇게 해야 안전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게 되지요.
저는 그게 재미있는건지 의문이 크게 듭니다.
우주선 쏴 올리기나 핵발전소 가동처럼 안전에 관한 문제도 아닌데 왜??
그런 현실에서, 비싼 배우들을 왕창 데리고, 요즘 경향과는 다르지만 확고한 경험을 가지고 만들어진 결과물을
가능하도록 한 어느 회사가 고맙기만 합니다.
최신 타란티노 영화도 좋았지만, 아이리쉬맨은 훨씬 더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감독과 배우 전부 베테랑들끼리 모여서, 본인들이 제일 잘 하는, 하고 싶은걸 한 결과물을 본 기분이었어요.
해피엔딩도 배드엔딩도 아니고, 저런 시대가 있었으며 삶은 확실히 선을 그을 수 있는 끝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결과인 것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알기 쉬운건 재미가 없고, 너무 난해한건 개구리가 외국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마냥 의미가 없고,
적당히 난이도가 있는 퍼즐게임처럼,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볼 수 있는게 좋아요.
아이리쉬맨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3시간 반은 너무 기네..
로버트 드 니로 너무 할아버지고 등 너무 굽어서 연기만으로는 속일 수 없는 지경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