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한 사람과 산책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무심코 주운 물건이 자꾸 돌아와요. 해가 지면 귀신이 보여요. 자꾸 저도 모르는 상처가 나 있어요. 매일 밤 자다가 누가 팔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깨요. 초현실적인 상황 뿐 아니라, 저에 대한 오해가 너무 커져서 사람들이 저를 피해요. 다이어트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더 나아지자는 다짐을 하고 헤어지는 모임이었다.
그 사람은 대학교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하는 사람이었는데 오해가 생겨 곤란하다고 했다. 골목길을 걸으며 가로등을 여서 일곱개 지나며 그 이야기를 더 깊게 들었다. 저는 그런 적이 없는데 제가 누굴 추행했다느니 제가 이상한 연락을 했다느니 수근 거려요. 하지만 저는 정말 아니거든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힘들겠다, 생각했다. 나도 그런데.
또 한번 그 모임을 가졌을 때. 새로 온 어떤 사람이 무엇에 쫓기고 있다고 했다. 온통 흰 색인 사람같은데 사람은 아니고 키가 무척 크고 얼굴이 없다고 했다. 고무겹 같은 걸 잔뜩 뒤집어 쓴 거 같이 불투명하다고 했다. 그 존재가 점점 더 제 가까이로 다가오는 거 같아요. 정말 억울해요. 왜 제가 그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그래서 이런 모임이 있다고 전해듣고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나왔습니다. 이런 존재에 대해 아는 게 있는 분 계신가요. 아무도 들어본 적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말 억울하시겠어요. 그 중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제가 다니는 한의원이라도 알려드릴까요? 저도 전에 그런 기척 같은 거에 시달렸었는데 주변 사람이 기 보충해주는 약이라도 지어먹으라고 해서 요즘 먹고 있는데 효과가 있는 거 같아요.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사람은 한의원의 전화번호를 받아갔다. 그리고 다음 모임에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남자가 한의원 보약을 먹고 정말 효과를 봤나보다 이야기하고 병원에서 일한다던 사람에게서 그 한의원 전화번호를 받아갔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주일 만에 효과를 보는 보약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쫓기고 있던 그것에게 잡힌 걸까. 그 때 그 남자는 그것이 더 가까이 성큼 다가오는 것은 '정말 억울해 왜 나에게.' 하고 생각하는 시점이었다고 했다. 잊은 듯하면 불쑥 나타나고 골몰하면 더 가까이 쫓는 거 같다고 했었다. 그 남자가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정말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됐구나 했다.
모임이 끝나고 지하철역으로 가던 길에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해서 억울하고 곤란하다고 했던 그 야구선수가 한곳을 가리켰다. 저기에 뭔가 이상한 게 있지 않느냐고, 그쪽을 보니 무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았다. 맨 처음 그것을 본 그는 겁을 먹은 듯 했다. 점점 더 가까이 오는 거 같다고, 무언가 희뿌연 것이 마구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야구선수가 멋대로 달려나갔고 나도 지하철이 아닌 그를 따라 마구 뛰었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그것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마구 달리는데 더욱 가까이 달려오는 거 같았다. 그러다 앞에 두갈래 길로 갈라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급히 ' 여기서 갈라져요!'하고 외친 후 바로 옆길로 빠졌다. 뒤를 돌자 괴물은 내가 아닌 그 사람을 향해 달렸고 그 남자는 멈칫하다가 괴물에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떠한 막같은 걸로 그 남자를 칭칭 동여맸다. 온몸을 전부. 나는 놀랄 틈도 없이 달렸다.
두 갈래 길로 갈라지자는 말을 너무 늦게 했나. 나는 알고 있었나 저 남자에게 괴물이 달려들줄을. 억울해하는 사람을 쫓아가는 걸까. 내가 너무 늦게 말했나. 내가 저 사람이 잡히도록 만든 걸까. 아니야, 나는 그러지 않았어. 억울해하지 않을 거야. 안 할 거야. 그럼 쫓아오지 않을 거야. 나는 쉼 없이 뛰었다. 어디로 가야하지. 누가 날 도울 수 있을까. 골목을 다 돌면서 생각을 떨쳐내려고 했다. 뒤를 돌자 그 괴물이 나를 쫓고 있었다. 맨 처음 보았을 때 보다 더 또렷하게 보였다. 난 억울하지 않아. 나는. 나는 저 이상한 재질로 뒤덥히고 싶지 않아. 괴물이 들어올 수 없게 도망쳐야 겠어. 나는 집을 향해 달렸다. 엘리베이터는 너무 먼 곳에 있고 나는 14층인 집까지 계단을 달려올라가기로 한다. 키가 무척 큰 그 괴물은 나를 바짝 쫓아 온다.
간신히 도망쳐 집 문을 열고 닫는다. 나는 억울하지 않아. 억울하지 않아. 그런데 괴물에게 잡혀 칭칭 감겨지던 남자가 생각 난다. 내가 일부러 그랬나 그 사람이 잡힐 줄을 알고서, 나는 그가 왜 그런 상황에 처 했는지 다 들었었는데. 내가 일부러 그랬나. 아니야. 억울하지 않아. 나는 나는 그냥 우연히 두 갈래길에서 그런 선택을 한 거였어. 그런 거였어.
저건 곧 사라질 거야. 암시를 건다.
그리고 쿵.
쿵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티비를 켜고 재밌는 방송이나 영화 따위를 튼다.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자 부딫치는 소리가 점 점 줄어 든다. 나는 티비 소리를 더욱 올리고 내용에 집중하려고 한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광고가 나오는즈음 다시 그 남자와 괴물이 생각 난다. 그 때 다시 쿵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야, 아니야 중얼거리며 다른 프로그램을 튼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나는 다른 것을 눈에 우겨 넣는다.
다음 날, 그리고 다음날, 나는 그것을 완전히 잊은 듯 지낸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잠들고 일어나자마자 신나는 노래를 듣는 식이다.
그것이 떠오르기에 모임에도 참가하지 않고 몇 주를 일상처럼 지낸다.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는 중에 유리창 너머로 야구 선수 유니폼을 입은 이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언뜻 쿵 하는 소리를 들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