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한적한 동네였다. 허름한 아파트 두채만이 덩그러니 놓인 빈 공터였다.
처음 방문을 열었을때 맞딱뜨린것은 곰팡이 핀 벽지와 퀘퀘한 냄새가 가득한 공기였다. 오랜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여기 열쇠요."
건물주인으로 보이는 노파가 나에게 열쇠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월세 15만, 보증금 100만, 서울에서 이런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후우..."
후회가 들이닥쳤지만 이미 지불된 금액이었다. 환기 좀 시키고 새 벽지를 바르면 훨씬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얼른 다음의 계획을 실행했다.
곧장 이사짐이 기다리고 있는 지상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외벽에 둔탁한 것이 통통 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런 외진 곳에도 엘리베이터는 있구나, 하긴 7층까지 왕복한다면 허벅지가 터져버릴지도 몰라- 헛생각을하며 실실 웃음을 터뜨렸다.
두어번을 왕복하며 대부분의 짐을 올리게 되었다. 어차피 혼자사는 인생이라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지막 한 번의 꾸러미만이 남았다. 1층으로 내려와 힘차게 두 어깨를 풀며 이삿짐을 바라보는데 왠 꾀죄죄한 할머니 한 명이 꾸러미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근 10년은 옷을 갈아입지 않았음이 틀림없었다. 신기하게도, 바라만 보는데 악취가 풍겨왔다.
할머니는 꾸러미를 뒤적이더니 조카가 선물로 주었던 작은 인형 하나를 냉큼 집어들었다. 죄책감은 있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 그거 놔두세요."
다가서지는 못한 채 멀리서 외쳤다.
"그대로 두시라고요."
할머니와 나의 침묵은 5초쯤 유지되었다. 품에 인형을 꼭 껴안은 할머니는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나의 뜀박질이 시작되었다.
"헐머니!"
외쳐됐지만 소용없었다. 아파트 뒷편으로 향하던 할머니의 뒷모습은 이내 사라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곳까지 따라나섰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음지는 보기에 흉했다. 듬성듬성 자라난 잔디와 가느다란 나무 몇 그루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듯 했다. '철컹'하는 쇠문 닫히는 소리까지 따라나섰다. 분명 그 할머니가 이 뒷편의 어딘가 쇠문이 달린 곳에 은거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아파트 뒷편의 군데군데, 지상보다 낮게 움푹파인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콘크리트로 작은 욕조크기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앞에 쇠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허리를 굽혀서야 들어갈만한 작은 쇠문을 바라보니 어릴적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 이 시설물은 분리수거가 시행되기 전에 쓰레기를 버리던 곳이 틀림없었다. 매 집마다 뒷베란다에는 여닫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고 그 안으로는 아래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이곳, 쇠문안의 작은 공간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온갖 쓰레기들이 이 공간으로 떨어졌다. 음식물, 똥귀저기, 심지어 죽은 애완동물까지 그저 통로 안으로 밀어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쌓인 쓰레기들은 주기적으로 청소차가 달려와 처리했다. 물론, 지금은 불법이기에 막아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할머니가 이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찝찝함을 각오하고 쇠문의 입구를 두드리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쇠문 안의 틈에서 곱등이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히익!"
벌레는 질색인지라 곧장 뒤로 물러섰다. 기다란 더듬이를 꿈틀거리는 녀석은 꼼짝을 안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보기에도 징그러운 녀석을 잠시 바라보는데 뒤이어 또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자 괴로운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저 문을 열면 수백마리의 곱등이가 동시에 튀어나오며...
결국 인형은 포기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시중에 많이 팔고 있는 제품이었다. 조카는 커서 자신이 어떤 선물을 주었는지도 기억못할것이 틀림없었다. 마지막 짐꾸러미를 어깨에 짊어지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모든 이사가 끝났다.
그날 밤에 조촐한 집들이가 벌어졌다. 말이 집들이지, 결국 친구들과 술한잔 하고 싶은 속셈이었다. 초인종이 울리고, 기쁜 마음에 문을 열었는데 보기 싫은 얼굴 하나가 섞여있었다. 미소는 지었지만 불편함은 지울 수 없었다.
녀석은 다 좋은데, 술만 먹었다 하면 지난 날의 과거를 들추었다. 물론, 내 잘못이 있기는 했다. 그와 썸을 타던 여성과 내가 눈이 맞아버린 것이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 갈등했지만 그녀와의 키스 한방에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나와 녀석은 주먹다짐까지 하며 싸움을 벌였고 결국 멀어졌다. 이렇게까지 투쟁을 벌인 연애사는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내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두고 싸우는 남자들의 모습을 즐겼던 것이었다. 정체가 드러나고 우정은 회복됬지만 여전히 앙금은 남았다. 평소에는 좋은 녀석인데, 술만 들어가면 그 이야기다.
"그 애가 그렇게 좋았냐?"
또 시작되는 넋두리에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즐거웠던 분위기는 이 한 마디에 확 죽어버렸다.
"그만해라."
"그래, 말해봐. 그 애 가슴은 어떻디? 소문으로는 짝짝이였다던데, 어느 쪽이 더 컸냐?"
"그만하라고."
"왜? 그냥 말해봐, 옛날인데 뭐 어때. 응? 그년 ㅁㅁ은..."
나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냅다 녀석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러자 녀석도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두 남자는 현관 앞까지 걸어갔다. 나는 그대로 놈을 힘껏 대문으로 집어던졌다. 비틀거리며 현관문 앞에 부딪힌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쪼개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 이만 간다."
녀석은 현관문의 문고리를 잡고는 돌려댔다. 그대로 나가겠지, 생각하던 나는 술자리로 돌아섰다. 허나 예상과는 달리 녀석이 빈 소주병 하나를 냉큼 집더니 내 뒤통수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눈치챈 나는 재빨리 녀석의 오른손을 막아냈다. 강한 충격에 쥐어졌던 소주병은 그대로 혼자 허공을 날더니 술잔이 놓인 유리 테이블 위에 그대로 떨어졌다. '와장창'하는 큰 소리와 함께 유리 테이블은 다섯 조각으로 갈라지며 풀썩 주저앉았다.
이쯤되자 남은 일행들이 녀석을 붙잡고 밖으로 나섰다. '미안하다.' '즐거웠다.' 빠른 인사들을 마치고 모두가 모습을 감췄다. 침묵속에 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중얼거리며 깨진 유리조각으로 향했다. 그런 와중에 따끔한 고통과 함께 무릎을 굽혔다. 언제 흩뿌려졌는지 제법 큰 유리조각 하나가 발바닥에 박혔다.
"아, 시발!" 욕설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대충 청소는 끝이 났다. 모아둔 유리조각의 크기와 무게가 제법 되었다.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려는데 방금 다친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시발, 시발." 여태 쌓아두었던 긍정의 힘은 결국 무너졌다. 지난 날의 창업실패와 깨진 약혼녀, 이런 거지같은 집에 살게 된 자신을 저주하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허나 분노는 이 유리조각을 치우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냥 자기에는 찝찝하고, 버리자니 괴롭고, 어떻게 해야하나...
문득 뒷베란다가 생각났다. 오래된 건물이니 여전히 그 통로가 남아있을까, 절뚝거리며 베란다로 향했다. 구석 끝에 검게 색칠된 투박한 작은 문이 하나 보였다. 슬쩍 열어보니 휑한 어둠이 보였다. 용기를 내 고개를 통로로 내밀었다. 퀘퀘한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아래를 보니 어둠에 휩싸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허나 통로는 여전히 뚫려있는 듯 했다.
고민은 없었다. 유리 조각들을 질질 끌고와 통로 앞에 섰다. 그러고는 지체없이 아래를 향해 던졌다. 커다란 칼날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아래를 내려보던 난 쉽게 해결되었음에 만족하며 작은 문을 닫았다.
몇 시가 되었을까, 잠이 들었던 나는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탁탁탁탁....
뭔 소리지? 비몽사몽속에 귀만 쫑긋 세웠다.
-탁탁탁....
소리는 비슷하게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탁탁탁탁.' '탁탁탁탁.' 네 번, 네 번. 이건... 누군가 방바닥을 두드리는 소리인가? 왼손으로 네 번, 오른손으로 네 번...?
눈을 번쩍 뜨고는 몸을 일으켰다. 소리는 거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잠시 방문앞에 서서 귀를 대었다. 잠시 조용하나 싶더니,
-쾅쾅!
누군가 문을 거칠게 내려쳤다. 너무 놀라 몸이 뒤로 나자빠졌다. 분명 저 소리는 손바닥으로 방문을 내려치는 소리였다.
"누구야!"
나는 있는 힘껏 소리치며 방문을 바라보았다. '쾅쾅'대는 소리는 계속 이어지나 싶더니 '북북' 긁는 소리로 바뀌었다. 손바닥으로 방문을 비벼대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잠시 이어지나 싶더니 급기야 문고리가 거칠게 철컥철컥,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러나기 전에 잠가두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다. 허나 짐은 많지 않았고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누구냐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외침뿐이었다. 핸드폰을 찾았으나 배터리는 방전이 되어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급하게 연결잭을 찾는데,
문이 거칠게 열렸다. 뭔가 덩치가 큰 것이 불쑥 자신의 앞으로 들어섰다. 너무 놀란 나는 쥐고있던 핸드폰을 정체불명의 것에게 집어던졌다. 미친듯이 헛발길질을 해가며 방의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뭔지 모를 것이 이부자리를 개패듯 내려쳐댔다. 찢겨나간 이불의 솜이 내장처럼 튀어나왔다. 정신을 차리며 열린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 바로 옆에는 현관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안하면 죽는다.' 몸을 일으켜 각오를 하고는, 온힘을 다해 달려나갔다. 다행히 이상한 것의 방해는 없었다. 현관문이 눈앞에 다가왔다.
"왜 안열려!"
다시 정신나간채로 외쳐대며 문고리를 쥐어잡았다. 고장이 났는지 돌아는 가는데 쇠못이 꿈쩍을 하지 않았다. 돌리고 돌리고 돌려봐도 현관문은 닫혀있었다. 어깨로 두 번 들이받는데 문득 방안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내 시선은 방문으로 쏠렸다. 현관에 기대어 선 채 보이지도 않는 방 안의 내부에 대한 끔찍한 상상이 이어졌다. 현관 위의 센서등이 고장이 났는지 붉은 빛을 껌뻑거리며 꺼뜨렸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방 문 앞에서 사람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손은 상당히 낮은 위치에 놓여있었다. 이내 바닥을 '탁탁' 내리치더니 또 다른 한 손이 불쑥 튀어나오고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앞으로 조금 나서더니 다시 '탁탁', 뭔가를 찾는 듯 했다. 마치 더듬이 같았다.
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손에 걸쳐진 누더기의 옷을 확실히 기억했다. 아침에 보았던 그 할머니의 옷이었다.
"할머니...?"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이제 그 손이 달린 몸뚱이 전체가 보였다. 엎드린 채로 두 팔로 바닥을 훑어가며 점점 다가오는 그 몸뚱아리는 분명 할머니가 틀림없었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머리가 있어야할 부분이 텅비어 있었다. 붉은 조명아래 텅 빈 목 위로의 공간이 섬뜩했다. 마치 그 붉은 살점안에 커다란 입이 달려 자신을 물어뜯을 것 같았다.
머리가 없는 몸뚱아리는 기어다니며 필사적으로 바닥을 훑고 있었다. 분명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임을 짐작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신을 노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는 필사적으로 탈출할 방법을 떠올렸다. 이곳은 7층이었다. 현관이 아니면 나갈 곳은 창문 뿐인데 떨어지면 무조건 죽을 뿐이었다. 끈이나 밧줄을 만들 새는 없었다. 외쳐대며 도움을 바랄 시간도 없었다.
베란다의 통로가 떠올랐다. 까마득한 어둠속의 그 통로가 떠올랐다. 그 좁은 통로라면 어찌 되지 않을까, 방법은 바로 그려졌다. 한쪽면에 등을 맞대고 다른 한쪽을 두 다리로 민다. 그러면 마찰력으로 인해 몸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버틴다. 그대로 슬슬 내려가다 바로 아래층의 통로 문을 걷어차고 들어서면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5분? 10분? 만약에 떨어지면 어쩌지? 문이 안열리면 어쩌지?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할머니의 손바닥이 자신의 발가락을 건드리자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뒤에서 신발장이 무너지는 소리 같은게 들려왔지만 확인할 새가 없었다. 오로지 뒷베란다의 그 통로뿐이었다.
문을 열고 두 다리부터 통로를 향해 쑥 내밀었다. 다행히 거친 벽면은 충분히 버틸만했다. 아예 온 몸이 통로 안으로 들어서고 벽면에 기댄 채 버티게 되었다. 상상대로 되자 조금 기쁜 나머지 작은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제 한 걸음씩...
발을 떼자마자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지탱하고 버티고 하는 모든 것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북북대며 긁히는 등껍질이 아프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그렇게 허공에서 5초간 해매더니 두 다리가 먼저 지상에 닿았다. '뚜둑'하는 뼈부러지는 감각에 통각이 되살아났다. 그 뒤로 몸이 발라당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뒤통수를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띵한 소리가 두 귀에 울려퍼졌다.
어둠 속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어서 일어나서 이곳을 탈출해야 해- 몸을 일으키려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몸 구석에 뭔가가 뚫고 나와 우뚝 서 있었다. 유리조각이었다.
"..."
자신이 버린 유리였다. 말을 꺼낼수조차 없었다. 부들부들떨리는 팔로 몸을 뚫어버린 유리조각을 더듬었다. 이걸 어떻게든 뽑아내야 하는데- 고개를 돌려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았다. 다른 한 팔로 바닥을 더듬는데 뭔가 물컹한 것이 손에 잡혔다. 부드러운 솜이었다. 집어들고는 눈 앞으로 가지고 왔다. 일전에 잃어버린, 자신의 조카가 선물해준 인형을 쥐고 있었다.
어떤 하나의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지난 날, 던저버린 유리조각들이 저 할머니의 머리를 잘라버리고 말았구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다. '그럼 머리는 어디로 간거지?' 어둠의 옆에서 뭔가 딱딱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를 세게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저 어둠속에서 뭔가가 슬슬 기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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