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진입자가 새로운 시장에 접근할 때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미 닳고 닳아 시장에서 입증된 것들을 모아서 짜집기하는 것이다.
닌텐도는 이런 방법을 자사의 철학으로 삼아서 크게 성공했다. 그리고, 여기 그 방법을 본받아 콘솔 시장에 새로이 진입하려는 국내 대형 게임개발사가 있다.
개발사가 공개한 몇 개의 영상에서 보여주는 인상과 같이, 이 게임의 큰 틀은 업계의 성공 사례들을 짜집기해 온 것이다.
기본 컨셉은 '다키스트 던전' 을 베이스로 '세계수와 이상한 던전' 을 섞었으며, 3X3의 진형에 따른 버프와 캐릭터 연계는 '소녀전선' 에서 가져왔다. 음울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 밝은 분위기의 배경음악과 모에풍 SD 캐릭터의 투박한 전투 연출,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협동기와 '탐험 스킬' 처럼 '크리미널 걸즈'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도 있다. 즉, 이 콘솔 미드코어 게임은 모바일 라이트 과금강요게임이나 가챠 쓰레기에 질려 다른 것을 찾는 오타쿠 계층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개발사는 '높은 난이도' 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장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호들갑을 떨 만큼 높지는 않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하드코어 근본주의자들은 여기서 크게 실망할 것이다.)
게임의 기본 흐름은 세계수 시리즈 같은 던전 RPG가 그렇듯이,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더 깊고 강한 몬스터가 있는 던전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던전은 '다키스트 던전' 과 같은 1층짜리 1회용 던전이다. 던전의 이름과 크기. 몬스터 레벨과 종류는 정해져 있지만 그 밖의 특성은 무작위이다. 덤으로 여기에 일종의 시간제한을 두어, 저레벨 던전에 붙박혀 노가다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은 돈과 마을 업그레이드 재료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강화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장비 아이템을 얻으려면 던전 어딘가에 있는 금은동 세 등급으로 나뉜 열쇠와 상자를 찾아 짝맞추기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던전을 최대한 돌아다니며 상자를 따는 것이 단기목표가 되는데, 던전에서는 특정 탐험 스킬로만 처리할 수 있는 함정과 장애물이 잔뜩 깔려 있으며, 만복도와 조명도라는 수치가 빠르게 소모된다. 만복도가 떨어지면 체력과 마나의 자동회복이 멈추며, 조명이 소모되면 단순히 디버프를 받는 것을 넘어서 시야가 실제로 제한되어 심볼 인카운터 형식 몬스터에게 원하지 않을 때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투를 치르게 될 위험이 늘어난다.
몬스터 심볼들은 여타 게임의 그것들처럼 '귀찮게 따라오는 성가신 것들' 을 넘어선 존재들이다. 이것들은 좁은 던전에서 수적, 지형적 이점을 누리며 플레이어에 준하는 인식범위와 호전성, 플레이어와 같은 속도를 갖고 있다. 이것들은 특정 스킬을 쓰거나 수풀에 숨지 않는 이상 아주 적극적으로 플레이어를 추적하고 쓰러트려도 일정 시간 뒤에 부활하며, 부활한 것을 다시 처치했을 때는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는다.
던전에서는 언제나 무언가 출혈을 강요받으며,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그 출혈이 점점 무의미하게 변해가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소비아이템을 필요 이상으로 싸들고 간다면, 퀘스트 이후 남은 아이템들은 높은 확률로 안개의 독기에 '오염' 되어 효과가 낮고 부작용을 일으키는 폐품으로 변해 버린다. (또한, 공식 사이트에서는 독기가 장비나 대원의 성격과 대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급해 놓았으나 간담회 시연판에서는 이 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정통파 로그라이크 못지 않게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죽이려 드는 놈들과 함께 지내는 음습한 느낌'을 주며, '스톨링' 이나 '영웅 1회용으로 쓰고 버리기' 같은 다키스트 던전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 준다.
전투는 3X3의 진형 내에서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다키스트 던전' 과 마찬가지로 주고받는 피해가 크고 진형에 따라 쓸 수 있는 기술이 제한되어 있다. 칸이 3개로 줄어든 만큼 기술 사용제약은 적은 편이지만, 위치이동기의 비중이 훨씬 늘어난 데다가 합체기와 진형 버프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원본 못지 않게 배치에 머리를 써야 한다. 대원이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숫자가 다양하기 때문에, 정식판에서는 (밸런스 붕괴 기술이 나오지 않는 한) 아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스트오버에는 스트레스 대신 아주 고전적인 전투 자원이 존재하는데, 이는 탐험과 유동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마나는 탐험 중에는 만복도를 소모해서 빠르게 회복되지만, 전투 중에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소수 기술에 조건부로 붙는 정도로 크게 제한되어 있다. 게다가 평타를 제외한 모든 기술은 마나를 소비하며, 강력한 합체 기술은 특히 더 많이 소모한다. 따라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전을 치르면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적과 합을 주고받거나 최후의 일격을 가하면 회복되는 특수 전투자원 '요력' 을 사용하는 일부 캐릭터들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만, 반대로 이들은 마나 회복 능력으로 아무 이득을 얻을 수 없으며 요력이 다 떨어졌을 때 수세에 몰리게 된다.
장비의 레어도에 따른 화력 인플레는 (필자가 경험한 초급 던전에서는)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지만, 최하급 장비라도 뭔가 장비하고 있는 상황과 장비가 없는 초기상황의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 대부분의 RPG에서는 신참 캐릭터에게 저질 장비라도 대충 쥐여주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덮고 넘어가지만, 미스트오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후술할 것처럼 장비 칸도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연회에서 첫 번째 보스를 잡은 사람이 드물었던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상기했던 것처럼 큰 틀은 튼튼하게 짜여 있고, 예상 고객층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고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 정식 발매 이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수정하지 못한다면 옥의 티로 남게 될 것이다.
첫 번째로, 게임의 진행이 직관적이지 않다. 시연회에서 첫 번째 보스를 잡은 사람이 드물었던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앞서 말한 미스트오버에게 영감을 준 게임들은 하나같이 몹시 직관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미스트오버(의 현 빌드) 에서는 이런 미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의 구분마저도 되어 있지 않아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살짝 언급했듯이 게임 내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던전을 클리어할 때마다 세계 멸망까지 남은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바늘이 표시되어 당겨지거나 늦춰지고, 이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면 게임 오버가 된다. 마을의 날씨도 시계바늘의 상태에 맞게 변하는 등 세계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 치고는 시계바늘을 움직이는 조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나 제대로 된 실마리가 전혀 없다.
이러한 시스템을 일찍이 채용한 페르소나 시리즈나 다키스트 던전 같은 작품에서는 스토리상으로나 가시상으로나 시간 제한에 따른 게임 오버 조건을 명확히 제시해서, 이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오버를 당하거나 세이브 파일을 날려먹더라도 납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하지만 미스트오버에서는 그런 것이 (현 빌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간담회 시연장에서 첫 번째 보스를 격파하고 위풍당당하게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역시나 게임 내에서 정확히 제시되지 않은 이유로 시계바늘이 두 칸 앞으로 이동해 자정을 맞이했고 보스 격파에 대한 보상으로 게임오버 화면이 주어지게 되었다. 정식 발매되는 게임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스꽝스러운 부조리극이라는 평을 받게 될 것이다. 제작진이 이러한 평가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난해한 진행은 초창기 RPG에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현대의 플레이어들은 이런 불편함을 용납하지 못한다.
두 번째로는 게임의 인터페이스가 미숙해, 더 숙달된 콘솔 개발사의 게임에서는 요구하지 않는 성가시고 불필요한 추가 관심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보통 분리되어 있는 캐릭터 장비/기술 설정/상태 정보는 서브 메뉴를 두 번(캐릭터 상태-장비/스킬 설정) 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으며, 장비 부분은 캐릭터 상태창 왼쪽 구석에 처박혀 있어 (실제와 달리)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그릇된 인상을 주기 쉽다. 그 흔해빠진 '가장 강력한 장비 장착' 기능마저도 없다.
다키스트 던전에서는 기본 화면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투를 마치고 진형이 흐트러진 파티를 원래 진형으로 복귀시킬 수 있지만, 미스트오버에서는 메인 메뉴를 열고 진형 항목을 선택해야 열린다. 그리고, 마을 업그레이드에 쓰이는 서적류나 독기에 오염된 아이템들은 멀쩡한 소모품과 창고를 공유하기 때문에 아이템 구매를 방해한다. 서적류는 창고 칸을 차지하지 않도록 하고, 독기에 오염된 폐품들은 일괄판매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투 연출을 스킵할 수 있게 하거나, 자주 신세를 질 식량과 조명은 단축키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고, 던전 내에서 대기 버튼을 꾹 누르면 자동으로 턴을 넘겨 체력과 마나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예로, '풍래의 시렌' 에서는 A버튼과 B버튼을 같이 누르면 자동으로 턴을 넘긴다)등의 편의기능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들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자잘한 불편함들은 콘솔 조작을 고려하지 못한 미숙함의 결과로서 추후 빌드에서 개선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점이 있다면, 번역기만 돌려놓고 손을 전혀 보지 않은 게 틀림없는 품질의 한국어가 있겠다. 특히 다키스트 던전의 기벽에 해당하는 '징크스' 부분은 일본어 어미를 온전하게 옮겨 와서 몹시 어색하다. 이 문제를 한국어 원어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치지 않는다면 *한국* 대기업의 야심작이라는 위치에 먹칠을 하게 될 것이다.
사족: 개발 총괄 PD는 자신이 패키지 게임 제작에 몸담았다는 것을 잠깐 언급하면서 자랑스러운 '씰' 과 자랑스럽지 못한 '천랑열전' 을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간에 낀 '나르실리온' 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이 건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르실리온' 은 개발 전부터 지금까지도 '한국 최후의 패키지 게임' 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미스트오버' 는 '한국 최초의 콘솔 게임' 같은 이름을 얻을 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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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버전에서는 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수정한다면, 좋은 결과는 약속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잘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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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소감 감사합니다. 한국 콘솔게임은 나올 때마다 기대가 높은데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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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에도 나오듯이, 프로젝트 초기에는 일본 시장에 주력하기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모든 개발 리소스가 그 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래서 음성도 일본어로 더빙이 되어 있었는데,(성우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수준 자체는 높습니다) 추후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의 음성을 차근차근 추가할 예정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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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소감 감사합니다. 한국 콘솔게임은 나올 때마다 기대가 높은데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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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버전에서는 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수정한다면, 좋은 결과는 약속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잘 나왔어요. | 19.05.25 23: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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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서도 언급했던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 페르소나 시리즈나 다키스트 던전에서는 보스를 클리어하면 플레이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큰 이득을 주는데, 미스트오버에서는 이 점을 대놓고 무시한 처사를 하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수정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 19.05.26 17: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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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리뷰에서 언급한 '모바일 라이트 과금강요게임이나 가챠 쓰레기에 질려 다른 것을 찾는 오타쿠 계층' 이라면 특히 더 그렇습니다. | 19.05.27 12: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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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에도 나오듯이, 프로젝트 초기에는 일본 시장에 주력하기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모든 개발 리소스가 그 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래서 음성도 일본어로 더빙이 되어 있었는데,(성우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수준 자체는 높습니다) 추후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의 음성을 차근차근 추가할 예정이라 합니다. | 19.05.28 01: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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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겁니다. 마무리를 잘 한다면 말이죠. | 19.05.30 03: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