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상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왼쪽)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마크 내퍼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이날 워싱턴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나 일본 측 수출제한 조치의 부당성을 설명했다. 외교부 제공
한·일 갈등 사태를 관망하던 미국이 사태 수습을 위한 중재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최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다른 나라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동맹국 간의 분쟁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과 국무부는 (한·미·일) 세 나라 간의 양자·3자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공개적으로나 막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또 “한·미, 미·일 관계 모두 미국에는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는 모두 인도·태평양 지역 및 전 세계에 걸쳐 공동의 역내 도전 과제들 및 우선 사항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미국 입장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발표 이후 전방위적 대미 외교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한·일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원론적 입장만을 유지해왔다. 이날 오테이거스 대변인의 언급은 ‘구체적 행동’을 시사한 것이어서 종래 입장보다 한걸음 진전된 것이다.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정면충돌로 확대되지 않도록 중재에 나설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한·미·일 고위급 협의를 추진했던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스틸웰 차관보는 11~14일 일본을 방문하고 17일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하지만 과거 안보 문제 등에서 한·미·일 3국이 협력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데 적극적이던 일본은 이번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이 같은 태도는 한국에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이유에 대해 ‘북한에 전략물자를 부정반출했기 때문’임을 시사하며 한국을 안보적으로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몰아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또 다음달 초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이 역시 성사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이날 한·미·일 외교장관이 회동할 가능성에 대해 “미리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대사관과 국무부를 통해 매일 이 나라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방미 이틀째인 이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비롯해 상·하원 관계자들을 연쇄적으로 접촉했다. 김 차장은 기자들과 만나 “미국 측 고위급 관료가 아시아 쪽으로 출장을 가니까 이 기회에 3개국의 고위급 관리들이 모여서 회담을 하려 했다”면서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매우 적극적인데 일본 측에서 아직 답이 없고 좀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김 차장은 전날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직무대행을 면담했고 이날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을 면담할 예정이다. 김 차장은 미 행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일본 측 수출제한 조치의 부당성을 적극 설명하고 이 조치로 인해 미국도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희상 외교부 양자경제외교 국장도 워싱턴을 방문해 롤런드 드 마셀러스 국무부 국제금융개발담당 부차관보, 마크 내퍼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 등을 면담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르면 다음주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