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PC 버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리뷰에는 사이베리아 시리즈에 대한 내용 누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아마존 원주민들이 그렇듯이 세계의 오지에서 원주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이라는 이름의 흉기다.
-데이비드 그랜, '잃어버린 도시 Z' 중
■ 안녕히 시베리아의 철도여
'사이베리아'? '시베리아'? 혀가 꼬일 듯한 이름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게이머는 이 제목이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제목 옆의 'B. Sokal', 브누아 소칼이라는 이름 역시 말이다. 그렇다면 브누아 소칼은 어떤 인물인가? 벨기에 브뤼셀 태생인 브누아 소칼은 예술 학교 졸업 후 1979년 '형사 카나르도'라는 만화로 만화계에 입성했다. 알콜 중독자인 오리 형사를 내세운 이 시리즈는 미국 펄프 픽션과 필름 느와르의 전통을 독특하게 비틀고 오마주하면서 프랑스/벨기에 만화계에서 주목받았고 해외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후 소칼은 시사풍자, 범죄 장르와 모험극, 사극을 넘나들면서 활동했으며 지금도 꾸준히 신작 만화를 내놓고 있다.
브누아 소칼(좌)과 그의 대표작 형사 카나르도(우). |
하지만 해외에서 그는 만화가보다는 게임 디자이너로 좀 더 유명하다. 소칼은 1999년 미크로이드 사의 어드벤처 게임 '애머존: 탐험가의 유산'에 참여하면서 게임 업계에 들어섰다. '미스트' 풍 1인칭 시점에 퍼즐 디자인도 그리 특별할 게 없었지만, 20년 이상 만화계에서 활동하며 쌓은 특유의 오지 모험극과 미적 감각이 녹아들며 독특한 게임이 탄생했다. 호평에 고무된 미크로이드는 소칼에게 다른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그렇게 나온 게임이 바로 '사이베리아' 시리즈다.
사실 소칼의 만화책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기에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사진은 소칼의 게임 업계 데뷔작인 애머존: 탐험가의 유산. |
사이베리아 1편과 2편은 그 자체로는 그렇게 신선한 게임은 아니었다. 프리 렌더링 그래픽에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는 2000년대 초반에도 이미 한물 간 디자인 취급받았으며, 특히 1편에서는 3인칭 어드벤처 게임에 익숙치 않은지 다소 단순한 퍼즐을 선보였다.
2편에서 발전하긴 했지만 사이베리아 시리즈의 게임 디자인은 이 분야의 거장인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나 루카스아츠를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었다(오히려 이 부분은 '더 롱기스트 저니'가 훨씬 잘해냈다). 이 부분은 발매 당시 어드벤처 팬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지적받았던 부분이다. 원래 계획대로는 한 편의 게임으로 만들어지려고 했다가 예산의 한계로 분할된 게임이었기에 개별 스토리 분량도 다소 애매한 감이 있다.
솔직히 1편 퍼즐 디자인은 약간 단순한 감이 있었다. 3인칭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임에도 1인칭 어드벤처의 영향력도 강했던 편. |
이 게임이 지지를 받았던 건 브누아 소칼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과 미적 감각의 공이 컸다. 먼저 소칼 휘하 제작진은 아르누보풍 스팀 펑크와 전작 애머존에서 다뤘던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물감 없이 녹여냈다. 소칼이 만들어낸 캐릭터와 스토리 역시 훌륭했다. 소칼은 간단한 미스터리에서 시작해 한스 보랄버그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추적하면서, 보랄버그 남매가 겪어야 했던 전후 유럽의 역사적 여정으로 케이트와 플레이어를 인도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도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결말은 매우 아름다웠다. 특히 2편의 결말은 2000년대에 나온 게임 중에서도 인상적인 결말로 손꼽을 만하다. |
발매 당시엔 몰락하던 어드벤처 게임을 부흥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현 시점에서 정리하자면 사이베리아 시리즈는 펀컴의 더 롱기스트 저니와 함께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에게 바치는 유럽의 만가였다. 사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어드벤처 게임계의 상황은 꽤 암울했다. 시에라와 루카스아츠는 어드벤처 게임 제작에서 손을 뗐으며 사람들은 3인칭 액션 어드벤처에 매료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든 액션이 배제된 스토리와 퍼즐 중심의 어드벤처 게임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더 롱기스트 저니와 사이베리아는 그런 구세대의 끝물에 발매된 게임들이었다.
퀀틱 드림의 '인디고 프로페시(좌)'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드벤처 게임은 그야말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상태였다. |
개발 당시 소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르누보의 우아함에 안드로이드마저 구현해내는 오버 스펙임에도 사라져야만 했던 기계인형 오토매턴은 명백히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를 은유한다. 그 점에서 2편의 결말은 꽤나 상징적이었다. 사멸했다고 알려진 맘모스를 기어이 불러내 떠나가는 한스가 그랬듯 소칼과 제작진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 장르를 떠나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점에서 '사이베리아 2'는 한 시대의 만가로 불리기 적합한 게임이었다.
이후 소칼은 미크로이드에서 독립해 어드벤처 게임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파라다이스'는 진지한 주제와 달리(무려 아프리카 독재자의 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역사적 비극을 고찰했다) 게임 디자인 부분에서는 평작이었고 탐정물을 시도한 '싱킹 아일랜드'는 그가 탐정 어드벤처에는 소질이 없다는 걸 증명했을 뿐이었다. 대세는 인디고 프로페시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의 어드벤처로 쏠리기 시작했으며, 소칼 역시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회사가 파산한 뒤 한동안 만화에 집중했다. 이후 올드스쿨 어드벤처는 '브로큰 소드' 시리즈의 레볼루션 소프트웨어를 위시한 몇몇 개발사를 통해 겨우 생명을 이어갔다.
사실 사이베리아 시리즈 이후 소칼의 차기작들은 잘 안 풀린 편이다. 왼쪽은 파라다이스, 오른쪽은 싱킹 아일랜드. |
그래도 두번째 기회는 있었던 모양이다. 인디고 프로페시를 만든 퀀틱 드림은 소니의 지원을 받아 '헤비 레인'을 내놓았고 이 게임은 예상치 못한 히트를 치게 된다. 때마침 대서양 건너편, 남아 있던 루카스아츠 멤버들이 세운 텔테일 게임즈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어드벤처 게임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했다.
퀀틱 드림이 블록버스터 급 어드벤처 게임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텔테일 게임즈는 적은 예산으로도 흡입력 있는 디자인과 에피소드 별 판매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자연히 후발주자도 등장했는데 소니는 슈퍼매시브 게임즈를 끌어들여 퀀틱 드림의 마이너 카피인 '언틸 던'이라는 게임을 내놨으며 돈노드 인터랙티브는 텔테일 게임즈의 전략을 따라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를 만들어 인정받았다. 이러한 게임들이 제작되는 것에 소칼이 자극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이베리아 3'가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다시 돌아온 가난한 12월의 여행자
우선 사이베리아 시리즈 팬을 위한 소식이 있다. 사이베리아 3는 생각보다 과거 사이베리아 시리즈에 충실한 게임이다. 물론 완전히 구시대 유물이 된 프리 렌더링 배경은 폐기되고 그 자리엔 유니티 엔진을 이용한 풀 3D 그래픽이 들어서긴 했다. 하지만 사이베리아 3는 여전히 고정된 카메라 시점과 아이템 핫스팟, 퍼즐 풀기 같은 고전적인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잘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면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긴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를 생각하면 딱 좋다. 당연히 신선하거나 혁신적인 구석은 시베리아에서 트로피컬 귤 까는 수준 만큼이나 없다. 그만큼 사이베리아 3는 풀 3D 환경에 정착한, 고전 어드벤처 디자인에 충실한 게임이다.
예고편이 극적으로 연출되긴 했지만 케이트의 권총무쌍을 바라는 시리즈 팬들은 없었을 것이다. |
그래도 변한 부분을 찾아보자면, 조작과 인벤토리 같은 UI 디자인이 훨씬 콘솔 친화적으로 변했다. 1편과 2편은 기본적으로 마우스로 특정 지점을 찍으면 케이트가 이동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사이베리아 3에서 마우스는 상호작용 포인트를 작동시키거나 둘러보는 정도로 격하되었고 대신 키보드나 패드 스틱으로 케이트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변경되었다. 좀 더 콘솔 게임처럼 변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핫스팟 개념 역시 아이템 근처에 다가가면 명확한 상호작용 포인트가 뜨는 식으로 변경되었고, 인벤토리 디자인 역시 패드 스틱이나 휠 스크롤 조작으로 쭉 살펴볼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한편. 시리즈의 상징이었던 휴대 전화를 이용한 퍼즐이나 대화 시스템은 아예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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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케이트가 AT&T의 고객 서비스에 화딱지가 나서 버렸는지 전작의 휴대전화 기능이 등장하지 않는다. |
가장 크게 변한 건 바로 대화 시스템과 퀘스트 디자인이다. 전작들은 키워드 중심 대화 시스템으로 정보를 알아내는 정도로 그치는 정도였고 진행 역시 일직선이었다. 하지만 사이베리아 3의 대화 시스템과 퀘스트 디자인은 전작에 비해 복잡해졌다. 대화 분량이 늘어났다는 점도 있지만, 텔테일 게임즈의 게임이나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처럼 중간 선택지에 따라 전개가 바뀌는 양태를 띄고 있다. 선택지를 통한 설득에 실패하면 다소 우회해서 진행해야 한다. 물론 큰 전개가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소칼이나 공동 디자이너인 루카스 라그레브트가 안일하게 접근하진 않았다는 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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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설득하는 게 의외로 중요하다. |
핵심이 되는 퍼즐은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퍼즐은 디자인 자체는 평이한데다 시간 조정이라는 초능력에 기대는 경향이 크다면, 사이베리아 3의 퍼즐은 브누아 소칼만의 미학으로 빚어진 독특함이 있다. 중세 도검부터 시작해 콘크리트 운동장에 숨겨놓은 유콜 족의 신전 퍼즐까지, 사이베리아 3의 퍼즐은 작중 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퍼즐 난이도는 전작보다 올라간 편. |
퍼즐 자체의 완성도 역시 어드벤처 팬이라면 만족할 수준이다. 머리를 써야 하는 난이도 있는 퍼즐과 눈썰미만 있으면 금세 풀 수 있는 퍼즐이 적절히 배분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하고 있다. 다만 고전적인 면모를 생각해도 힌트 디자인이 지나치게 불친절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아쉽다. 초보자를 위한 힌트 시스템도 딱 뭘 해야 할지 알려주는 수준이라서 더욱 그렇다.
동양 한 구석에 사는 게이머가 티타임을 언제 하는지 알 리가 없잖아......! by PforP |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이베리아 3는 디자인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하지만 '구현'과 '안정화'라는 지점에서는 문제가 많다. 먼저 조작 체계가 그렇게 편리한 편은 아니다. 고정 시점 퍼즐 어드벤처 게임들이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긴 하지만, 캐릭터의 움직임 자체가 둔탁한데다(이 부분은 사람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순 있다) 카메라 시점도 불편하고 화면이 전환되는 순간 조작 방향이 꼬이는 문제가 있다. 한쪽 방향으로 쭉 가다가 갑자기 다음 화면에서 뒤돌아서 움직이는 걸 보면 짜증나기 마련이다. 또한 크랭크를 돌린다거나 퍼즐 버튼을 조작하는 과정 역시 뻑뻑한 구석이 있다. 상자를 뒤지는 부분의 조작은 수술 시뮬레이터보다 나은 수준이다. 어느 정도 조작에 제약을 두면서, 게임 플레이의 긴장감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결과물은 썩 신통치 않다.
설정상 특수부대인데 예산의 한계 때문에 모양새가 로켓단스러워서 뿜었다. 대령: 가랏! 올가! 람쥐썬더! |
그래픽은 저예산의 한계 속에서도 소칼만의 세계를 어느 정도 구체화하고 있지만, 결점들도 보인다. 사실 구현 자체는 의외로 괜찮은 편이다. 러시아 오지, 유콜 카라반, 수공업 기계들의 디테일을 잡아낸 프로덕션 디자인은 완성도가 높으며(단 동물 모델링은 아쉽다), 미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캐릭터 모델링들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후한 색감과 조명 설계 역시 사이베리아 시리즈 특유의 쓸쓸함을 잘 잡아내고 있다. 적어도 사이베리아 3는 그래픽이 어떻게 구현될지에 대한 방향성은 확실하게 잡아 둔 게임이다.
사실 배경 묘사 같은건 제법 봐줄 만 하다. 거친 유화 같은 질감과 색감이 배어 나오는게 특징. |
하지만 결정적인 애니메이션 부분은 뻣뻣하기 그지 없다. 대사와 캐릭터의 입술 움직임이 심하게 어긋나는 부분도 있으며 표정 변화 같은 건 확실히 어색한 티가 난다. 특히 동영상 파트는 2017년에 발매된 게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글자글한 화질에다 어색한 애니메이션을 보여서 안타까운 느낌마저 준다. 어드벤처 게임에서 캐릭터의 표정 연기나 대사 처리 같은 부분이 중요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치명적이다.
이외에도 모델링 및 성우진 돌려 막기, 심심치 않게 터지는 버그와 긴 로딩, 불편한 세이브 시스템도 한몫 한다. 특히 이번 작의 세이브 시스템은 오로지 체크 포인트로만 이뤄져 있는데, 체크 포인트 위치 배분이 세심하지 못해 퇴보한 느낌도 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나무 장승이 연습하는 것보단 조금 나은 수준의 오토매턴 오스카의 검표원 표정 애니메이션을 보노라면 |
사실 개발 과정이 꽤나 험난했던 걸 생각해보면 지금 결과물보다도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개발 개시 이야기가 나온 것도 거의 8년 전 이야기고, 그 마저도 자금 부족으로 2년 연기된 끝에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기술적 결함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수준이며 고전적인 디자인과 나쁜 의미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좀 더 괜찮은 기술진과 안정된 개발 환경이 있었더라면 소칼이 가지고 있는 진가가 발휘되었을 것인데......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체이스 미해결사건 수사과' 제작진: 소칼 씨, 그 심정 이해합니다. |
■ 슬픈 툰드라
만약 우리와 전혀 다른 사회에서 온 어떤 관찰자가 우리 사회를 보게 된다면, 우리가 그들의 식인 풍습을 비문명적으로 보는 것처럼 그 역시 우리 사회의 어떤 풍습을 매우 비문명적이라고 간주할 것이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 중
그렇다면 스토리는 어떠한가? 간단하게 적자면 전작보다도 나아진 부분도 있으며, 전작보다 못한 부분도 있다. 상술하긴 했지만 1편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임팩트 있는 결말을 보여주었으며, 2편 역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깔끔하게 종결을 지었다. 오히려 너무 깔끔한 결말을 내서 후속작에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갈지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소칼은 이야기를 이어갈 구실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보랄버그 신화가 끝난 뒤의 후일담에서 출발한다. 도입부는 그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케이트는 어떻게 사이베리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지만 죽어가는 상태로 발견된다. 소칼은 도입부를 통해 남겨진 케이트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정신적인 공허함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전작에서 케이트는 주인공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보랄버그 남매를 관찰하고 보조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하지만 2편 결말에서 보랄버그 신화는 완벽하게 끝났고, 시베리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하지만 케이트는 쉽게 자신이 속했던 뉴욕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계약은 깨졌고, 회사는 일단 포기하긴 했어도 가만히 두지 않을 기세다. 전작에서 생긴 관계의 골 역시 케이트를 괴롭힌다. 악당들이 케이트에게 '당신이 여기 있을 이유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도 케이트가 겪는 고뇌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칼은 전작의 사건들이 케이트에게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는 걸 주지시키면서, 케이트가 다시 모험을 떠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케이트에게 라라 크로프트가 다니는 상담의를 소개시켜줘야 되겠어요...... 잠깐 라라도 시베리아에 갔잖아? |
여기다가 소칼은 2편에 잠시 등장했던 유콜 족을 전면으로 부각시킨다. 제1세계 백인 지식인이었던 보랄버그 남매와 달리, 유콜 족은 러시아 오지의 소수민족이다. 이번 편의 전체적인 방향도 이 유콜 족이 쥐고 있다(반대로 오토매턴 얘기는 많이 축소된 편이다). 그는 3편의 시나리오를 짜면서 1, 2편에서 유콜 족의 비중이 너무 낮았던 게 아닌지, 타자화되었던 것은 아닌지라는 고민을 했던 게 분명하다.
때문에 신화적인 소멸을 다뤘던 전작들과 달리, 3편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씁쓸한 게임이다. 유콜 족의 주술엔 방사능을 없앨 힘 따윈 없으며 이주를 위해 만든 다리도 파괴되는 걸 그저 지켜봐야 한다. 신화적 여정은 인종 차별과 환경 파괴, 관료주의로 가로막히고, 각박해진 사람들은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흉본다. 소칼은 거리낌없이 소수민족 차별과 혼혈아, 난민 문제, 문명의 오만함, 폐쇄적인 작은 사회, 방사능 오염으로 대표되는 환경 오염을 올려놓고 비판한다.
차르께서 친히 미크로이드 사에 방사능 홍차를 보내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현 러시아를 비롯해 작금 현실을 대차게 까는 게임이다. |
악역들 역시 전편하고는 다르다. 1편의 세르게이는 죽어가는 미치광이 은둔자에 가까웠으며, 2편의 이반과 이고르는 이익에만 관심 있는 소시민스러운 악당이었다. 기본적으로 사이베리아 시리즈의 악역들은 동기와 행동 범위가 매우 개인적이었다. 하지만 3편의 올가와 대령을 위시한 공산당 비밀부대는 훨씬 적극적이고 위협적인 악역들이다. 목적 역시 구체적이고 악랄하다. 이 점 때문에 역설적으로 3편은 전작보다도 훨씬 선악의 대비가 뚜렷한 전형적인 모험물에 가까워진 게임이기도 하다. 이런 악역 묘사의 변화가 마냥 효과적이었는가, 는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적어도 전작들보다는 서스펜스가 강한 편이다.
사이베리아 3의 미덕은 냉철한 묘사와 달리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고 캐릭터, 나아가 타 문화를 존중하는 부분에서 비롯된다. 케이트의 비중이 늘긴 했지만, 소칼은 케이트가 어디까지나 유콜 족의 보조라는 점을 명확하게 한 뒤 타자의 역사와 문화, 교류를 조심스럽지만 명확하게 그려낸다. 때문에 사이베리아 3는 백인의 오지 모험이라는 상당히 불편해질 수 있는 소재와 장르임에도, 쉽게 착취적인 태도로 떨어지지 않는다. 일하다가 몰래 라디오로 멜로 드라마를 즐기는 유콜 족 일꾼 묘사 같은 부분은 전형적이지 않아 신선하기까지 하다.
오토매턴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 들긴 했지만, 대신 상당히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소수민족의 문화를 그려내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여기다 소칼 특유의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도 여전하다. '모비 딕'에 대한 오마주와 해양 모험담, 역사적 비극을 한 몸에 품고 있는 오보 선장, 1편의 헬레나 로만스키를 연상케 하는 카테리나, 부족의 유적을 보존하려고 했던 칸 티-카와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그의 딸 던야사는 게임 내 버그 마저도 무시할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깨알 같은 팬 서비스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자세한 건 누설이 되겠지만 반가운 캐릭터가 재등장한다. 목소리 톤이 변한 건 아쉽지만. |
3편의 서사가 전작보다 못한 점이라면 지나치게 후속작을 의식한 나머지 만족스러운 결말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결말 자체는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후속작을 기약하면서도 정서적인 매듭을 지으려는 시도 자체는 1편를 의식한 티가 난다. 하지만 3편에서 케이트의 고뇌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1편과 같은 감흥은 없다. 오히려 '아니 후속작을 만들지 못하면 어떡하려고?'라는 걱정마저 들 정도다. 결말 연출도 전작들과 달리 다소 밋밋한 편이라는 점도 한몫 한다. 에피소드식 발매였다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개별 게임으로 발매된 게임이다 보니 미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엔딩을 보면서 차라리 에피소드 별 판매였다면 이렇게까지 허탈 하진 않았을 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
■ 행선지조차 없는 내일로
사이베리아 3는 만인에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8년만에 게임 업계로 돌아온 소칼이 그동안 변한 게임 제작 환경에 낯설어하는 모습도 역력하고, 대형 퍼블리셔나 안정된 투자를 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입지 때문에 생긴 결함도 무시할 수 없다. 그걸 넘어서더라도 이 게임은 퀀틱 드림이나 텔테일 게임즈의 어드벤처 게임처럼 새로운 게이머들을 끌어들일 만한 흡입력은 부족하다. 전작을 좋아해야 이 게임의 결점도 참아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팬심을 제외하고도 소칼 특유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는 지점도 존재한다. 만약 당신이 민속학이나 인류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게임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부분을 주목하는가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이겠지만 사이베리아 3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가 불쑥 선물로 준, 고장이 잘 나지만 매력적인 부분도 있는 오토매턴과 같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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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그림 전공자라면 사이베리아 3 화보집은 소장할 가치가 있다. 프랑스-벨기에 만화의 저력을 보여준다. |
편집 : 이상원 기자 (petlabor@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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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베리아 시리즈 좋아하던 입장에선 그저 안타깝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특히 기자님이 쓰신 '8년만에 게임 업계로 돌아온 소칼이 그동안 변한 게임 제작 환경에 낯설어하는 모습도 역력하다' 는 표현이 가장 와닫네요.
(IP보기클릭)58.234.***.***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접한 1편. 나이는 할아버지이지만 마음만큼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면서도 천재적인 한스. 업무상 미국에서부터 먼 곳으로 날아왔지만 한스에게 동화되는 케이트 워커. 우직하게 자신의 역할을 고지식하면서도 묵묵히 수행하는 오스카. 이 모든 좋은 기억에도 불구하고 3편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4편은 그래픽 보강과 좀 더 짧은 로딩을 구현했으면 한다. 물론 스토리도 좀 더 깔끔하면 좋겠지.
(IP보기클릭)124.46.***.***
4편이 나올수 있을까요? 이번작품이 너무 아쉬운데다가 판매량도 시원찮은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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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어드밴처 스타일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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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베리아 시리즈 좋아하던 입장에선 그저 안타깝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특히 기자님이 쓰신 '8년만에 게임 업계로 돌아온 소칼이 그동안 변한 게임 제작 환경에 낯설어하는 모습도 역력하다' 는 표현이 가장 와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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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아니여요ㅜㅜ | 17.05.15 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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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접한 1편. 나이는 할아버지이지만 마음만큼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면서도 천재적인 한스. 업무상 미국에서부터 먼 곳으로 날아왔지만 한스에게 동화되는 케이트 워커. 우직하게 자신의 역할을 고지식하면서도 묵묵히 수행하는 오스카. 이 모든 좋은 기억에도 불구하고 3편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4편은 그래픽 보강과 좀 더 짧은 로딩을 구현했으면 한다. 물론 스토리도 좀 더 깔끔하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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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이 나올수 있을까요? 이번작품이 너무 아쉬운데다가 판매량도 시원찮은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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