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구시대망령님이 올리신 소수로 다수를 상대로 승리한 전투라는 글에 송 보병 2000명 대 금 기병 17기가 있었는데요,
갑자기 생각나는게 있어 글을 써봅니다. 전투라는것이 수만 많다고 절대적으로 이기는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지휘관에 따라
또는 병사들의 사기나 훈련도에 승패가 갈릴수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결과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처럼
당시 금 기병은 보병을 향해 돌격해서 적을 벤것이 아니라 활로 원거리에서 치고 빠지는 작전을 수행했을것인데 17기의
기병만으론 돌격해서 2000명이나 되는 적의 대열을 뚫는것은 불가능한데가 만약 시도를 했다면 분명히 피해를 입었을것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기병의 생명은 속도와 돌파력인데 이 둘을 잃는 순간 말 위에서 싸우는것이 오히려 핸디캡이
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 위에서 싸울땐 높이로는 보병보다 우위에 있지만 말이 멈춰섰을시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하기에 상대적으로 불리합니다. 기병이 파괴력이 있는것은 창이나 칼을 뽑아들고 돌격할시 말의 높이, 속력,
무기의 무게, 무기를 휘두를때 병사의 힘과 말에 속도에 합쳐져 증폭되는 살상력 그리고 상대에게 심리적 압박을 줄수있는
능력인데 말이 정지하는 순간 이런 능력들을 상실합니다. 또한 만약 말 위에서 칼을 쓴다면 한손으로밖에 사용못하고
창을 쓴다면 양손으로 사용하지만 칼보다 다루기 힘들죠. 그리고 동서고금 막론하고 모든 보병들의 주무기는 창인데
대게 보병들이 사용하는 창은 기병들이 사용하는 창보다 무겁고 깁니다. 그리고 송나라군은 언월도를 사용했는데 (보통
언월도하면 관우를 생각하지만 삼국시대에는 없던 무기로 나관중이 고증을 거치지않고 소설을 썼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것입니다) 이 칼의 별명은 참마도로 이 별명에서 알수 있듯이 대 기병용 무기였습니다. 따라서 고작 17기로
칼을 들고 돌격했다면 포위되어 섬멸됐을것입니다.
따라서 기병은 멈춰서는 안되고 그 수가 적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할때는 기동력을 이용해 도망가거나 원거리에서
보병을 상대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금나라 기병은 좌 중 우를 나누어 활로 공격했고 송나라군은 손실을 입자 동요합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점이 있는데 송나라군은 수는 많았지만 활같은 원거리 무기가 없었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오합지졸이였을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송나라는 조선 중후기때와 비슷하게 무를 천시했습니다. 송나라에선 군대는
천민들이나 가는것으로 인식이 되어있었고 따라서 질적으로 상당히 부족한 군대였습니다. 반면 송 보병 2000을 상대한
금 기병 17기는 사절단과 그 호위병력이기 때문에 모두 잘 훈련된 직업 군인들인것을 짐작할수있습니다. 또한 기록에
언급되어있듯이 송나라군의 혼란으로 인해 병력 절반을 잃은것입니다. 17명이 활을 아무리 쏴봐야 다 잡을수도 없고
위에 제가 언급한것처럼 그렇다고 돌격할수도 없었죠. 궁기병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고 오합지졸이였던 송나라군은
도망치다가 자멸한것입니다. 그리고 기록엔 금 기병이 적을 쫒아 베었단 말이 없음을 미루어보아 길을 뚫는 목표를
달성한 금 기병은 그대로 본국으로 돌아간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기록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저는 과장은 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이 기록 자체가
송나라에서 남긴 기록인데 고작 17 기병한테 진 치욕을 과장되게 부풀릴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왜곡하려 했다면
차라리 송 보병 2천명이라고 쓰지않고 한 200으로 줄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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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만명이었는데 너무 치욕적이라 2천명으로 줄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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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 모르죠. 진실은 저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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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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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록에는 송나라는 17명의 기병이었고 2천명의 보병을 상대로 진을 형성했다고하니 걔중에 중기병들도있었을거고...2천보병이라고하긴하는데 저게 정신나간 관리가 공을 세운답시고 모은 어중이떠중이들이라 지휘관이랄것도없이 중기병 돌진에 경기병의 교란만있었어도 자기들끼리 놀라서 허둥거리다가 도망쳤을가능성이...근데 진짜 저거 읽으면서 느낀게 금나라애들이 먼치킨이네가 아니라 송나라 관리가 제정신아니네하는생각만...고려가 왜 북방이민족국가랑 전쟁하게됐는지 생각해보면 답나오는데 제정신이었던가 싶을정도로...만약 저기서 금나라사신이 죽었으면 송나라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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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가능합니다. 왜냐구요? 송나라니까요. 중국 왕조 중 가장 군사력이 약했던 왕조가 송나라입니다. 사실, 금 이전에도 송나라는 요나라(거란)와 탕구트(서하)로 부터 침략 위협을 받았고, 그때마다 매년 재물을 보내 그들을 회유했을 정도로 군사력이 형편없었습니다. 당 말 절도사(무신)들의 할거시대를 겪었던 연유에서 비롯한 문치주의 정책(무신들이 강성해지는 것을 막아 그들의 세력이 나라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문신들을 우대했던 정책)이 무를 천시하는 데 한몫했었죠. 문인중시주의 때문에 무인은 매우 경시되어 중국 속담에서는 '좋은 철은 못에 없고, 좋은 인간은 군대에는 없다'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병사를 모집하기 위한 것에도 고생이 많아, 병사들은 죄인출신자 및 품행이 좋지않은 자들로 구성되어 채워지게 되었기에 사기 및 규율도 낮아지게 된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죠. 도망을 방지하기 위해 병사들에게는 모두 문신을하여 일반 백성들과 구별할 정도였구요... 또한, 보병 위주의 군대가 기병을 사용하는 정복왕조(요,금,서하)의 군사력과 패기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실전 경험이 없는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였던 것도 송의 군사력이 매우 형편없었던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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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만명이었는데 너무 치욕적이라 2천명으로 줄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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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 13.03.29 1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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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록에는 송나라는 17명의 기병이었고 2천명의 보병을 상대로 진을 형성했다고하니 걔중에 중기병들도있었을거고...2천보병이라고하긴하는데 저게 정신나간 관리가 공을 세운답시고 모은 어중이떠중이들이라 지휘관이랄것도없이 중기병 돌진에 경기병의 교란만있었어도 자기들끼리 놀라서 허둥거리다가 도망쳤을가능성이...근데 진짜 저거 읽으면서 느낀게 금나라애들이 먼치킨이네가 아니라 송나라 관리가 제정신아니네하는생각만...고려가 왜 북방이민족국가랑 전쟁하게됐는지 생각해보면 답나오는데 제정신이었던가 싶을정도로...만약 저기서 금나라사신이 죽었으면 송나라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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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가능합니다. 왜냐구요? 송나라니까요. 중국 왕조 중 가장 군사력이 약했던 왕조가 송나라입니다. 사실, 금 이전에도 송나라는 요나라(거란)와 탕구트(서하)로 부터 침략 위협을 받았고, 그때마다 매년 재물을 보내 그들을 회유했을 정도로 군사력이 형편없었습니다. 당 말 절도사(무신)들의 할거시대를 겪었던 연유에서 비롯한 문치주의 정책(무신들이 강성해지는 것을 막아 그들의 세력이 나라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문신들을 우대했던 정책)이 무를 천시하는 데 한몫했었죠. 문인중시주의 때문에 무인은 매우 경시되어 중국 속담에서는 '좋은 철은 못에 없고, 좋은 인간은 군대에는 없다'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병사를 모집하기 위한 것에도 고생이 많아, 병사들은 죄인출신자 및 품행이 좋지않은 자들로 구성되어 채워지게 되었기에 사기 및 규율도 낮아지게 된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죠. 도망을 방지하기 위해 병사들에게는 모두 문신을하여 일반 백성들과 구별할 정도였구요... 또한, 보병 위주의 군대가 기병을 사용하는 정복왕조(요,금,서하)의 군사력과 패기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실전 경험이 없는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였던 것도 송의 군사력이 매우 형편없었던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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