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52. 일요일에 먹는 아이스크림 선데이 파르페

[40075km]

워낙 날씨가 덥다 보니 차가운 간식을 계속 만들어 먹게 됩니다.

덕분에 아이스크림 제조기는 쉴 틈이 없네요 (http://blog.naver.com/40075km/220913186344). 

오늘도 열심히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맨날 아이스크림만 퍼먹다 보면 그것도 질리기 마련.

일요일이니만큼 아이스크림 선데이를 파르페 스타일로 만들어 먹기로 합니다.

가니쉬 중에서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다 미리 준비합니다.

웨하스는 그냥 꽂는 것보다 대각선으로 잘라서 펼쳐주면 날개처럼 보여서 좀 더 예쁩니다.

그 외에도 파라솔 모양 이쑤시개에 오렌지와 체리를 꽂아두고 장식용 민트도 손질해서 준비합니다.

마라시노 체리를 따서 글래스 가장 밑바닥에 깔아줍니다.

흔히들 병조림으로 만들어진 붉은 체리를 마라시노 체리로 알고 있는데, 짝퉁이 오리지널을 밀어낸 사례입니다.

진짜 마라시노 체리는 크로아티아 특산품인 마라스카 체리를 마라시노 술에 절여서 만듭니다.

당연히 생산량도 소수에 불과하고 가격도 비싸지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초창기부터 좀 더 저렴한 체리를 저렴한 술에 절여서 대체품으로 사용했습니다.

1912년 미국 식품관리법에도 "마라시노 체리는 마라스카 체리를 마라시노에 절인 것", "다른 종류의 체리에 인위적으로 색소를 섞어 설탕을 가미한 경우에는 마라시노 체리 모조품(Imitation Maraschino Cherries)"이라고 한다고 정의하고 있지요.

그러던 것이 1920년대 금주령 발표와 함께 전세가 역전됩니다.

술에 절인 오리지널 마라시노 체리는 판매가 금지되고, 설탕과 인공색소에 절인 짝퉁 마라시노 체리가 유일한 대체품이 된 거지요.

어찌나 잘 팔아먹었던지, 마라시노 체리를 만들던 회사들이 로비를 펼쳐서 1940년에는 아예 식품관리법을 바꿔버립니다.

"마라시노 체리는 붉게 염색한 체리를 아몬드 오일이나 그 외의 첨가물에 섞은 설탕 시럽에 절인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진짜 마라시노 체리를 먹어 본 적이 없는지라 인위적인 붉은색으로 밝게 빛나는 체리 통조림이 오히려 익숙합니다.

사람마다 파르페 채우는 스타일은 다 다른데, 전 개인적으로 가장 바닥에 마라시노 체리 시럽과 탄산수가 섞여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먹던 추억의 맛이랄까요.

파르페 글래스가 없는지라 예전에 하드락 카페에서 기념품으로 사 온 글래스로 대체합니다.

오리지널 파르페 글래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길쭉하면서 입구가 넓은 것이 의외로 파르페 만들기에 어울리는 듯 합니다.

길쭉해야 층층이 예쁘게 쌓을 수 있고, 입구가 넓어야 재료를 채워올리기 편하거든요.

체리 위에 과일 칵테일 통조림을 부어넣고 탄산수를 채워줍니다.

탄산수는 가게에서 주로 사다먹다가 '이거 짊어지고 다니다가 손목 나가겠다' 싶어서 그 후로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중입니다.

그냥 재료를 쌓아올리기만 하면 되는 파르페인데도 난이도가 제법 있는 이유는 단시간에 재빨리 완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탄산수 풀업까지는 천천히 해도 되지만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넣고, 휘핑크림을 조금 짜 넣은 다음, 후르트링(씨리얼)을 붓고, 다시 휘핑크림을 올리고, 아이스크림을 떠 올린 다음, 초콜릿 소스 뿌리고, 견과류 뿌리고, 민트 꽂고, 과자 꽂고, 오렌지 가니쉬 꽂고, 빨대 꽂는 일련의 과정을 순식간에 해내야 합니다.

중간에 모양 좀 예쁘게 만들겠다고 꾸물거리기라도 하면 탄산수와 크림은 섞이고,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리고, 과자는 눅눅해지고, 아이스크림이 녹으면서 꽂아뒀던 장식들은 옆으로 쓰러지거나 흘러내리는 총체적 난국을 만나게 됩니다.

파르페라고 하면 프랑스어로 완벽하다는 뜻인지라 프랑스 디저트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프랑스식 오리지널 파르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냥 틀에 넣어 굳힌 아이스크림에 가깝습니다.

층층이 쌓아서 휘핑크림이나 체리 등 여러가지 토핑을 얹어먹는 것은 아이스크림 선데의 일종인 미국식 파르페로 분류되지요.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고, 특히 청교도들이 세운 국가인지라 기독교 원칙을 바탕으로 둔 웃기는 법들도 많았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일요일에는 아이스크림 소다를 먹지 말 것"이라는 법이었지요.

예전에는 탄산음료에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얹은 크림 소다가 많이 팔렸는데, 상당수의 경우 소다에 술을 섞어서 팔기도 했습니다.

일요일을 경건하게 보내려는 입장에서는 술, 담배 등의 기호식품을 금지시키는 김에 크림 소다도 엮어넣기 좋은 대상이었구요.

당시 아이스크림이나 술, 담배 등을 주로 팔던 약국 주인들은 당연히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지금은 약사들이 아이스크림 소다 파는 장면이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1900년대 초중반에는 약국에서 기호식품도 많이 팔았거든요. 코카콜라를 만든 존 팸버튼이나 펩시콜라를 만든 칼렙 브레드햄도 약사였지요.)

가족 모두가 쉬는 일요일이 장사하기 가장 좋은 날인데, 효자상품인 크림 소다를 팔 수가 없게 되어버렸으니 탄산음료를 제외하고 이것저것 다른 토핑을 잔뜩 얹어서 사람들을 유혹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디저트가 바로 아이스크림 선데이 (Ice cream Sunday). 

그런데 이걸 또 꼬장꼬장한 교회 목사가 "신성한 일요일을 고작 간식거리 이름으로 쓰는 건 불경스럽다"고 따지고 드는 바람에 최종적으로 바뀐 이름이 아이스크림 선데 (Ice cream Sundae).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여러가지 재료를 층층이 쌓아서 만드는 미국식 파르페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종착점이지만 그 끝은 시원하고 달콤합니다.

가니쉬로 꽂아놓은 과일을 빼먹고, 과자를 빼서 살짝 녹은 휘핑크림과 아이스크림을 푹 찍어 먹습니다.

민트는 스푼으로 으깨서 향만 낸 다음 빼버리고 민트향이 묻어나는 아이스크림을 절반정도 먹어줍니다.

아래쪽으로 파고들면 바삭바삭한 씨리얼과 아이스크림을 섞어먹는 재미가 있고

좀 느끼다하 싶으면 빨대로 체리 시럽이 섞인 탄산수를 한 모금 빨아먹습니다.

그러다보면 아이스크림 섞인 과일 통조림과 만나게 되고, 그것도 다 먹어치우고 체리를 하나씩 꺼내 먹을 때 쯤이면

포만감과 아쉬움이 함께 찾아오곤 하지요.

그리고 그제서야 더운 여름의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는 실감이 나곤 합니다.

[아디아]

의외로 상당히 우여곡절이 많은 디저트였네요

[40075km]

음식중에는 기구한 사연을 가진 것들이 많지요.. ㅎㅎ

[치킨마요 먹고싶다]

우와 파르페 오랜만에보네요 옛날에는 카페에 다들 파르페는 기본으로 팔고 있었는데요

[40075km]

그러게요. 손이 너무 많이 가서일까요, 요즘엔 잘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TricoloreAirline]

언제나 죽여주는 퀄리티의 사진과 내공과 요리군요

[40075km]

감사합니다!

[KhalDi]

팬입니다....다른질문이 아니고
닉네임 에 의미가 무척 궁금합니다..

[▩웨하스▩]

지구 한바퀴 둘레입니다

[KhalDi]

고맙습니다.♥♥♥

[Landsknecht™]

오오

[설원늑대]

미터법 정의대로라면 딱 4만 km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적도로 재면 75km가 더 늘어나나보네요.

[40075km]

지구한바퀴입니다!

[music lover]

제대로된 파르페를 먹어본적도 없지만 탄산수 까지 들어가다니 정말 신세계네요;

[40075km]

사이다로 대체해도 됩니다 ㅎㅎ

[40075km]

고난 끝에 도달한 천국이랄까요. 아이스크림은 반드시 냉각기 내장되어있는 녀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게됐지요.

[인휘닛히]

읽을 때마다 느끼는건데
진짜 책 한 권 쓰셔도 될듯.

[40075km]

좀 쌓이면 텀블벅이라도 한 번 진행해볼까요 ㅎㅎ

[해리키위]

나오면 레알 바로 지릅니다 ㅇㅇ

[TricoloreAirline]

나오면 레알 바로 지릅니다 ㅇㅇ(2)
돈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주기만 하시죠!

[chocobanana]

제 돈 가져가세요

[Landsknecht™]

굿입니다 프로의 향기가 나네여

[40075km]

가끔 가다 프로페셔널한 교육과정을 통해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돈과 시간이 문제지만요..ㅠ_ㅠ

[누나의 진동토템♡]

님꺼 항상 기다리고 있어요
정말 잼나요
원룸 구해서 나가면 아이스크림 기계는 꼭 사고 싶네요 ㅎㅎㅎ

[귀여운 플랑시간]

[귀여운 플랑시간]

[40075km]

아이스크림 기계도 좋지만 빙삭기도 좋습니다! 빙삭기로 얼음 갈아서 과일 농축액 뿌려 먹으면 가성비 최강!

[누나의 진동토템♡]

감사합니다'ㅅ'/
그것도 메모장에 적어놓을께요 ㅋ

[쳐웃지마라]

오른쪽에서 한번 더 뵙겠습니다!
항상 글보고 감탄하고 있어요!

[40075km]

감사합니다!

[사토 카즈마]

와... 정말 대단하네요.

[40075km]

서너번만 만들면 뭐 익숙해집니다 ㅎㅎ

[風林火山]

쿠진아트 ICE-100으로 검색해보세요.

국내엔 안팔고 직구로만...

[40075km]

모델명은 윗분이 말씀해주셨고.. 근데 전 아마존에서 20만원 정도에 구입했는데 한국에선 두배 이상 비싸서리... 냉각기 포함된 모델 중에서 저렴한 녀석으로 구입하시면 될 듯 합니다.

[킹롸드]

볼때마다 놀랍네요

[40075km]

먹을때마다 맛있습니다 ㅎㅎ

[호박단고구마]

와.. 엄청난 비쥬얼이네요!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40075km]

옆집 사시면 만들어 드릴텐데 말이죠...

[루리웹-5751853222]

저런 이유로 파르페가 난이도가 상당히 있었군요. 선천적 얼간이들에서 카페 점장인 피에르가 파르페에 환장하는 손님들을 볼 때마다 눈이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네...

[40075km]

그래서 파르페가 메뉴에 있는 카페를 발견하면 왠지 기분이 좋지요.

[유게개노잼]

기계 살 엄두도 안나고 있어도 귀찮아서 안해먹을 것 같네요.. 역시 즐기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40075km]

뭐, 만드는 건 기계가 만들고 저는 설거지만 하면 됩니다. ㅎㅎ

[40075km]

대략 베스킨라빈스 쿼터 정도 나오는 듯 합니다.

[PleSeries]

아이스크림 선데 볼때마다 왜 아이스크림에 일요일이 붙나 했더니 저런 사연이 있었군요.
매번 이런 사연을 써주시니 글을 볼때마다 음식 관련 지식이 하나씩 늘어나는듯 합니다.

[요리왕 비룡]

개인적으로 흰색과 빨간색 조합의 나선형 스트로우 빨대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롤리팝 느낌이 나기도 하구요
사실 그냥 빨대라서 맛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지만 다른 빨대를 쓰는것보다 저 빨대를 쓰면 뭐든지 훨씬 더 달콤해지는거같은 느낌이라서
저런 롤리팝 느낌의 빨대를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ㅎ

[아시타카™]

옛날에 커피숍가면 친구들은 전부 커피 마시는데 저는 항상 파르페 먹었죠..
남자 새퀴가 뭔 파르페냐 하지만...가성비로 따지면 파르페가 맛나고 훨 나은데..뭔 상관 ㅋㅋㅋㅋ

그립다 파르페 냠....

[dlhun]

저 체리 90년도에 커피숍할때 아이스크림 메뉴에 저런거 많이썼었는데..오랜만에 보네요

[초강대국]

사진과 글이 참으로 정성스럽습니다.

[니트곰탱이]

아이스크림 제조기...츄릅 부럽네요

[☆★五德友☆★]

블로그 홍보?

[별들의전쟁★]

우연히 글을 읽게되서 역주행 하게됬습니다.
정말 글들이 하나같이 재밌네요!

[프로구경꾼]

매번 잘보고 있습니다. 정말 필력이 너무 너무 부럽군요.

[시로바코]

흔히 볼 수 있는 썬데가 무슨 의미인가 궁금했었는데 사연이 깊군요.. 완벽하다는 의미의 파르페도 처음 알고 갑니다. ^^

[에티놈]

흐아아..아이스크림 제조기 ....정말 그동안 올리신 아이스크림중 이번 파르페가 역대급이군요. 너무 맛나보이는 비쥬얼.....ㅠㅠㅠ

[AsumiKana]

사실
덥다고 아이스크림 먹으면
거기에 들어간 우유 때문에 소화하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 더 더워질 수도 있습니다

...는 쓸데없는 다큐모드고

능력자 부럽네요 크읅 @_@

[메밀밭의파수꾼]

평소에 잘 먹지않던 파르페가 땡깁니다!!

[잠이든다]

(글을 보며 침을 흘린다)
(주변에 파르페 파는곳을 검색한다)
(돈이 없다. 포기하고 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