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살림을 일컫는 말 중에 조반석죽(朝飯石粥)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루 세 끼를 다 찾아먹기는 커녕 하루 두 끼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저녁 때는 그나마 죽을 끓여먹는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건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아침만큼은 제대로 먹는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서양 속담 중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왕자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활기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아침식사를 든든히 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먹기 좋은 그래놀라를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준비물은 오트(귀리) 4컵, 아몬드 2컵, 호두 1컵, 건포도 1컵, 말린 크랜베리 1컵, 설탕과 소금 약간, 그리고 바닐라빈이 들어갑니다.
호두와 아몬드는 핸드 블랜더로 갈아줍니다.
푸드 프로세서로 너무 잘게 갈면 씹는 맛이 없고, 그렇다고 칼로 썰어주자니 손목이 아파서 중간쯤 되는 절충안입니다.
핸드 블랜더로 갈면 가루가 좀 생기는데, 이 덕에 따로 밀가루를 넣지 않아도 됩니다.
다진 견과류와 말린 과일, 설탕, 소금을 넣고, 바닐라빈을 갈라서 씨앗을 긁어넣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 재료는 귀리입니다. 다 부어놓고 보니 절반 이상이 귀리네요.
서양에서는 오트밀이라고 해서 귀리를 갈아서 만든 가루나 잘게 부순 것에 뜨거운 물이나 우유를 부어 죽처럼 만들어 먹곤 합니다.
귀리 자체가 섬유질도 많고 단백질 함량도 높아서 영양학적으로는 좋은 아침식사이긴 한데...
생긴 것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아침부터 먹는 오트밀은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기분 전환에는 좋지 않습니다. 맛이 별로 없어요.
이렇게 한 번 가공을 해서 그래놀라로 만들어 먹는 편이 훨씬 더 맛있습니다.
올리브유와 꿀을 부어서 골고루 섞어줍니다.
다 섞으면 넓은 베이킹 팬에 유산지를 깔고 그 위에 펼쳐 줍니다.
오븐을 120도 정도로 맞춰주고 굽는데, 10분마다 한 번씩 타지 않도록 뒤섞어 줍니다.
다른 레시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온에 굽는지라 대략 한시간 좀 넘게 걸려야 갈색으로 예쁘게 구워집니다.
일반적으로는 160~180도 정도로 30분만에 구워내는데, 그럴 경우 건과일은 탈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섞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좀 수고스럽더라도 다 함께 섞어서 저온에 오래 구우면 건과일 향이 견과류에 배어들어서 좀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더라구요.
요거트는 요거트 스타터를 이용해서 만들어 줍니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는 유산균 종균을 이용해서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원하는 만큼 걸쭉하게 만들어지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강제로 유산균을 왕창 때려넣은 스타터를 이용해서 만들어 먹는 중.
우유도 분말 형태로 들어가 있는지라 물만 넣어서 흔들어 준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넣은 통에 담가서 12시간쯤 기다리면 됩니다.
맛도 좋고 다 좋은데 비싼게 흠이죠 -_-; 한 봉지로 1리터 만들 수 있는데 $8 수준.
가격만 놓고 보면 사먹는 것에 비해 별 이득이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오늘 죽이 아주 질이 좋다는 것이다. 귀리 까샤(러시아식 죽)이다. 귀리 까샤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보통 하루에 풀죽이 두 차례 나오거나 멀건 보리죽이 고작이다.
귀리 까샤는 낟알도 섞여있고 됨직해 보이는 것이 먹고 나면 배가 제법 든든해서 좋다.
슈호프는 어릴 적에 자주 말에게 귀리를 먹이곤 했다.
그 때만 해도 슈호프 자신이 이런 귀리죽 몇 숟갈에 행복해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중에서
예전부터 귀리가 그닥 고급스러운 작물로 대접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고 재배가 쉬워서 구황작물 비슷한 위치에 있기는 해도 밀로 만든 빵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요.
그래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지역에서는 귀리가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기보다는 말먹이로 사용되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스위스의 영양학자 막시밀리안 비르허-베네(Maximilian Oskar Bircher-Benner)가 자기 환자들에게 영양식으로 귀리와 견과류 및 과일을 섞어 만든 뮤즐리를 만들어 먹이면서 건강 식품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죽으로 끓여먹어도 맛이 없는 귀리를 생으로 씹어먹는 건 고역인지라 나중에 제임스 케일럽 잭슨(James Caleb Jackson)이라는 사람이 재료들을 갈고 반죽해서 볶아 먹는 영양식을 고안해 냅니다.
뉴욕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던 잭슨이 이 영양식에 붙인 이름이 그래뉼라(Granula).
조그만 곡식 낱알이나 알갱이로 구성된 물건을 나타내는 형용사지요.
그런데 왜 그래뉼라가 아니라 그래놀라라고 부르는가 하면, 나중에 켈로그에서 거의 똑같은 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입니다.
잭슨과의 상표권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켈로그에서 붙인 이름이 그래놀라.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입니다.
세계구급 씨리얼 회사인 켈로그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오리지널보다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다들 그래놀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유에 말아먹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엔 너무 금방 눅눅해지기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어제 만들어뒀던 수제 요거트를 한 그릇 떠서 그 위에 그래놀라를 한웅큼 뿌리고 바나나를 몇 조각 곁들여주면 맛있고 간편한 아침식사 완성입니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그래놀라가 바삭바삭 씹히고, 여기에 부드러운 맛의 요거트가 섞여 들어옵니다.
귀리 덕에 배도 든든하고 달달한 걸 먹어서인지 뇌에도 영양분이 공급되는 기분입니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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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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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에 살짝 웃은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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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원래는 "교통사고 나면 카놀라유?" "그래놀라" 하려다가 '이건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아재개그 100선에 들어간다'싶어서 안 했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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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참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朝飯石粥 -> 朝飯夕粥 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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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거걱 놀라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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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참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朝飯石粥 -> 朝飯夕粥 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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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그러네요. 한자를 칠 수가 없어서 인터넷에서 한글로 치고 나온 한자를 긁어붙였더니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17.01.17 14: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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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석자 보고 저도 읭? 했음 ;; | 17.01.18 05: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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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꾸덕꾸덕하게 해서 그래놀라 바를 만들기도 합니다. 근데 요거트에 말아먹는게 더 맛있더라구요 ㅎㅎ | 17.01.17 14: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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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거걱 놀라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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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그래놀라 | 17.01.17 17: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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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떡볶이
이런거에 살짝 웃은 내가 싫다.. | 17.01.17 19: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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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원래는 "교통사고 나면 카놀라유?" "그래놀라" 하려다가 '이건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아재개그 100선에 들어간다'싶어서 안 했는데...-_-;; | 17.01.17 21: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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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놀랐어요.. 크리스토퍼 놀란 | 17.01.18 11: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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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갓매생님 등장 | 17.01.18 16: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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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고기!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17/read/30572613?search_type=name&search_key=40075 | 17.01.17 21: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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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여자가 안해줘서 못 먹는다는 말을 하시는지 ㅋㅋㅋ 여자들이 아침 안 챙겨주면 남자가 챙겨주고 챙겨먹으면 되죠 | 17.01.18 13: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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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여자가 해주는밥을 먹고 있습니다만 지금 세대라고 해서 다 그런건 아니고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죠 ㅎㅎㅎ 요즘은 여자가 안해준다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게 통념으로 많이 바뀌는 중이죠 저는 1.5 세대라 좀 공감은 안하고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 17.01.19 13: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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