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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Ones - 26
Ablaze a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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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를 쓰러트린 것까진 좋은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 아?
SS를 쓰러트렸음에도 가온을 가두는 새까만 감옥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만약 SS가 패배한 순간, 그와 같이 소멸해버렸다고 한다면 상공 10미터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떨어지는 격이니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었을 테지만 말이다.
- 뭘 그런 걸 고민하고 앉아있어.
모르포는 가온의 걱정이 하찮은듯 코웃음을 치며 답한다.
- 누님한테 맡겨봐라.
오른팔을 걷는 시늉을 하며 힘을 주는 모르포. 암만 봐도 자기 나이의 절반밖에 안 되 보이는 꼬맹이가 그런 말을 하자 가온은 무심코 폭소할 뻔 했다. 그 순간,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힘을 자랑하는 그녀가 전력을 다해 새까만 벽에 뛰어들었다.
- 트라이 봄버!
새파란 날개를 펼치며 화살처럼 빠르게 날라간 모르포가 온힘을 다해서 벽면을 강타했다. 그녀의 어깨에서부터 시작해 그녀의 팔 전체가 새파란 불꽃을 불태웠다. 새까만 감옥 전체를 태울 기세로 새파란 불길이 치솟았고,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엥?
그렇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는 못 했다. 벽에 활활 불이 붙었을 뿐, 감옥이 깨져버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안 부숴졌네?"
- 방금 꺼는 실수거든.
모르포는 주먹을 한 방 더 날리면 깨부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가온은 그것이 허세임을 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제길. 빨리 나가야되는데 이게 방해가 될 줄은."
조급해하는 가온을 보며 잠시 모르포가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 카드 하나 꺼내봐.
"음?"
- 어쨋든 빨랑.
"그래."
가온은 듀얼이 끝나고 다시 정리해놓은 덱에 손을 올렸다. 카드 한 장을 휙 뽑았다.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링커도 무엇도 아닌 카드[초중무사소울 그레이트 월]이었다.
"이걸로 어떻게……."
- 너 잊어먹은 거냐.
"잊어먹어? 뭘?"
- 네가 날 불러냈다는 건 너한테 힘이 돌아왔다는 거잖아.
"그렇지."
- 그 힘이 어떤건지 모르겠어?
"……?"
- 진짜로 모르는 눈치네.
모르포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손가락 세개를 들어 자기 머리 위에 올렸다.
- 네 머리에 지금 이게 났다고.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는 가온. 그제서야 자기 머리 위에 딱딱한 무엇인가가 올라가있음을 눈치챈다.
"이건 혜르랑 싸울 때 났던……."
- 그래. 반쪽밖에 없긴 하지만 왕관은 왕관이지.
"이게 갑자기 왜 나타난거지?"
- 나라고 자세히 알겠냐. 그래도…….
모르포가 스윽 뒤를 쳐다보았다. 새까만 벽밖에 보이지 않는다.
-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소름끼치는 영혼들이 짙게 깔려있어.
"그렇다면 혹시."
가온은 SS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링커를 소환하지 못 하게 된 이유. 그것은 다름아닌 가온의 영혼이 조각조각 나뉘어 그의 몸에 묶이지 못 하고 밖으로 모두 방출되고 흩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링커는 인간의 영혼을 먹고 사는 존재, 그들이 살기 위해 필요한 영혼을 인간이 제공하지 못한다면야 그들이 나타날 이유도 없다.
"네가 나타났다는 건 그 문제가 해결됬다는 건가."
- 그래. 아무래도 바깥에 짙게 깔린 영혼들이랑 이 단단한 감옥이 널 이중으로 눌러서 그게 원인이 된 듯 하구만.
모르포가 미간을 찌푸린다.
- 잠깐. 그러면 이 감옥을 만든 놈의 의중은 뭐지?
의심스러운 점이 생겼지만 그녀는 굳이 그것을 말로 꺼내지 않았다.
- 하여튼간에 내가 카드를 뽑으라고 한 이유가 뭔지 알겠어?
"……. 조금은?"
- 실체화 시키라고.
"실체화를 시킨다. 그렇다면 빅벤-K가 더 좋았을텐데."
- 아냐. 지금은 그 그레이트 월이라는 게 더 적당해.
"어째서?"
- 네 힘으로 일부러 실체화시키는 건 처음이니까. 기왕이면 링커같은 느낌보단 그녀석처럼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녀석을 실체화시키는 게 좋겠지.
"그런가."
가온이 듀얼 웨펀에 카드를 올리려던 것을 모르포가 한 손으로 막았다.
- 멍청아. 기계에 의존하지 말고 네 힘으로 하라고.
"내 힘으로……."
어떤 느낌으로 해야하는 것일까. 모르포를 불러내듯, 그레이트 월도 불러내면 되는 것일까.
"그레이트 월을 불러낸다."
솔리드 비전으로 보았던 그의 몬스터를 다시 떠올려본다. 전선으로 나가서 직접 싸우기보단 무사들의 방패이자 검이 되어 싸우던 그레이트 월을.
"내 무기로서 나타나라."
그는 생명없는 카드에 대고 말을 했다. 카드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실패였나" 하고 말하기도 전에 조금이나마 빛이 보였다.
"!"
그의 오른팔에 으르렁대는 짐승같은 것이 올라왔다. 그것은 곧 초록색 철판으로 바뀌어 무사들이 으레 장착하던 그것으로 변한다.
- 성공했구만.
"그래."
가온이 모르포와 나란히 섰다. 새까만 벽을 향해 둘은 오른팔을 내밀었다.
"부순다."
- 오케이.
이지러질듯한 새파란 화염이 작렬한다.
……
"다음은 네년이다."
초록 머리의 여인 세라 밀리언스는 새까만 흑발의 여인에게 소리쳤다. 스트로리에게 당해 패배한 레니 스탈리는 듀얼로 입은 충격탓인가 기절해버렸기에 저 멀리에 내버려두었다.
"오호라. 벌써 끝난 듯 하구나."
까만 머리 여인은 힘있게 외치는 세라를 보고선 피식 웃는다.
"어딜 보는 거지?"
하지만 세라를 상대하기에 앞서, 그녀는 아직 초아와의 싸움을 끝내지 않았다.
"너와 하는 듀얼은 재미가 없어."
"뭐가 어째?"
"여기까지 하도록 하마."
초아와 그녀, 누구 하나가 우세할 것 없이 지루한 싸움이 지속되던 찰나에 세라가 새롭게 날아들었다. 검은 머리 여인의 관심은 늙은 초아에게서 젊은 세라에게로 돌아갔다.
"음?"
초아와의 듀얼을 강제로 중지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하늘에 떠오른, 10미터는 족히 되는 높이에 맺힌 새까만 구가 깨져버렸다.
"호오."
어지간한 힘으로는 저것을 내부에서 부술 수는 없다. SS조차 모든 힘을 다 하더라도 과연 부술 수 있을까 싶은 것이 바로 저 감옥이니까.
"그렇다는 건 그 아이겠구나."
감옥이 깨져버리자, 그 안에서 한 남자와 소녀가 떨어졌다. 소녀가 푸른 나비 날개를 펼치며 지상으로 유유히 내려온다. 반면에 갈색 머리 청년은 급속도로 떨어지며, 자세조차 제대로 잡지 못 했다.
'링커를 쓸 수 있게 되었구나. 하지만 링커를 부리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
날개짓하며 내려오는 소녀가 자신을 붙들게 하고 내려와야 하는 게 맞거늘, 가온은 막무가내로 떨어져내리고 있다. 저래서야 지면에 충돌해 죽거나 큰 부상을 입는 게 눈에 선하다.
화륵. 불길이 지펴오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
가온의 몸에 새빨간 불꽃이 점화되더니, 귀신같이 방향을 틀어 검은 머리 여인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별이 떨어지듯 뜨겁고 빠르게 추락한 가온. 그의 몸이 새빨간 열기로 타올랐고, 오른팔은 두터운 초록 비늘로 덮힌 방해 한 자루가 달려있다. 방해 아래, 손등 위로 거대한 포구가 둘 달려있다. 포구가 노리는 것은 새까만 머리의 여인. 여인은 그것을 눈치채고 방향을 틀려고 했다.
"윽!?"
틀려고 마음을 먹었던 그 순간, 이미 불길은 쏟아져 나왔다. 매서운 화염이 그녀를 덮치고 몇 미터나 몰아낸 것이다.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못 한채 맨몸으로 맹렬한 불길에 태워지는 검은 여인. 가온은 그녀를 아직도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다.
"그정도로는 안 죽었겠지. 넌 내가 상대해주겠다."
"허허."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죽고도 남을 포격을 쏟아놓고는 당연히 죽지 않았을테니 일어서라는 가온의 말에 여인은 헛웃음이 나왔다.
"아주 막무가네구나."
가온의 예상대로 그녀가 입은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화염에 그을린 피부는 이내 치료되었고, 남은 불길마저 바람을 세게 불자 꺼져버렸다. 여인은 가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몸을 감싸고 타오르는 화염도, 오른팔에 장착한 포구달린 방패도 모두 가온이 만들어낸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머리 위에 맺힌 반쪽짜리 왕관일 것이다.
"역시 이정도로는 왕관이 완성되지 않나보구나."
여인은 혀를 찬다.
"가온만 있는 게 아냐."
"아직 우리도 남아있다."
가온의 옆에는 초아와 세라가 남아있다. 그녀는 짐짓 못 이기는 척 한 발자국 뒤로 밀려난다.
"오늘의 싸움은 여기까지로 해두지."
여인이 손짓하자, 새까만 문 두 개가 펼쳐졌다. 한 쪽문이 열리자, 세찬 바람이 불어 가온의 불길을 완전히 꺼트렸다.
"으윽!"
"내 이름은 폭시 크리스타. 잘 기억해두거라."
"기다려!"
가온은 또다른 몬스터를 실체화시켜 폭시를 공격하려고 했다. 푸른 뇌광이 폭시를 덮치려던 그 순간, 다른 한 쪽 문이 열렸다. 그의 손에서 쏘아진 굵은 전격은 폭시 앞에 펼쳐진 새까만 방패에 의해 막혔다. 그것은 폭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설치한 방패였고, 그 주인은 가온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넌……!"
"가자꾸나 이자벨."
"알겠다냥~."
소녀가 허공에 붓질을 한다. 폭시가 만들어낸 것과는 또다른 새까만 문이 펼쳐졌다. 그것은 그녀들의 고향인 엑시즈 차원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거기 서!"
"방해된다냐."
다시금 푸른 뇌광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의 붓질에 가로막혔다. 결국 폭시와 이자벨은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