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일정이 생겨서 후속편이 많이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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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 마리, 시차(時差, 視差) - (1), (2), (3), (完)
- 카난, 별(星, 別) - (1), (2), (3), (4), (5), (完)
- 다이아, 우로 (雨露, 愚魯) -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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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한숨이 되어 밤하늘로 올라가고
여름 별자리의 끝에 매달릴 즈음
별이 빛나기만을 기다려 눈을 감으면
눈꺼풀에서 빗겨져 내리는 시간 만이
망막 뒤로 아주 조금 밖에 남지 않은 너의 단편과 함께
그저 조용히 쌓여가
별(星, 別)
별.
밤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밝은 점.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멀리 있어서 망원경으로 본다 한들 누군가는 그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암석 덩어리.
혹은 매일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원을 이뤄주는 존재.
그리고 섬에 태어나 내리 섬에 살아온 누군가가 취미삼아 관찰하는 대상.
그런 별과 벌써 며칠 째 만나지 못하고 있다. 별을 보기는 커녕 갑자기 뿌려대는 비의 탓으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창가에서 묵묵히 시간을 흘리고 있었다.
오늘의 별은 어땠을까.
여전히 거기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을까.
보석을 뿌린 것처럼 은은하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을까.
궁금해서 창문 너머로 잔뜩 낀 비구름을 올려다보지만 별 소용은 없다. 별은 나를 앞서가고, 창문에는 오직 남은 자의 얼굴만이 비칠 뿐이다.
지금은 날씨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원래 천체관측이라는 취미는 이 장소에 아주 어울리는 일이다.
그건 우치우라가 밤만 되면 상시 켜져있는 가로등이나 간판의 불빛이 번쩍번쩍 점멸하는 도시와는 정반대로 조용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시골이라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 속한 아와시마라는 섬이 한층 적막하고 어두운 바다에 침투하듯이 껴안겨 있는 곳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기에 가능한 얘기이다.
한마디로 이 섬은 인위적인 빛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간혹 다이빙 체험을 위해 아와시마에 다녀가는 관광객들 중에는, '저녁이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냉정하게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달리 말하면 여기가 여전히 때묻지 않은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와시마가 굳이 별을 찾으려는 수고를 들이지 않더라도 손쉽게 별이 땅까지 떨어져 내려오는 축복의 섬이라는 건 또 아니다.
애초에 그런 장소는 존재하지도 않고, 별 또한 간단히 손에 들어올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점이 무수히 박힌 밤하늘 자체는 흔할지 몰라도, 그 안에서 오직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에게만 발하는 경이함을 생각하면 당연한 거다.
그 정도의 아름다움이니까 주위로부터 떨어져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혹은 떨어진 자만이 볼 수 있다.
즉, 천연의 어둠이 별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별을 올려다본 자는 그 풍경을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게 된다.
천체관측을 시작한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별을 관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서 나만의 망원경을 구입한 건 중학생 때지만, 별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내 곁에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별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취미를 가지고 계셨고, 아와시마에는 애들의 놀이라고 할 법한게 수영이나 곤충채집 외에는 존재하질 않았으니 아마 기억이 존재할 무렵부터는 별을 들여다봤던 것 같긴 하다.
게다가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너무 어린 아이한테 별을 보여주면 눈이 나빠진다고 했던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제법 어렸을 때가 맞을 것이다. 많이 쳐줘봐야 한 5살 정도의 무렵일까.
당시에는 아와시마 신사에서 별을 올려다 봤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한 쪽 어깨에 기다란 천체용 망원경 세트를 둘러메신 할아버지가 '우리 개구리, 반짝반짝 가자'하고 부르시면, 어둠이 무서웠으면서도 별을 볼 생각에 신이 나서 따라 나섰었다.
할아버지가 망원경을 물려주실 때까지 나는 몇 년이나 할아버지를 따라 신사에 올랐다. 물 속에서 쓰는 랜턴에 의지해 두껍고 커다란 돌계단을 쫄래쫄래 따라 걸었다.
보폭이 좁은 내가 열심히 할아버지의 뒤를 밟는 시간 동안 할아버지께서는 기상과 바다에 관해 많은 걸 가르쳐 주셨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아는 방법이나 구름을 보고 다음날 풍랑이 어느 정도일지를 예측하는 방법 등을.
일반적으로 어린아이가 듣기에는 지루할 뿐더러 흥미조차 안갈법한 내용이지만, 이미 자연에 둘러쌓인 생활을 하던 나는 유심히 귀를 기울였었다.
그 때의 수업 아닌 수업이 현재 내가 아버지의 일을 도울 때마다 사용되곤 하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그 쪽이 목적이신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반드시 익혀야 할 것들을 힘들이지 않고 미리 알려주실 요량으로.
나는 어쨌건 섬의 아이니까.
그런 선견지명이 있으신 할아버지시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이 시작부터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들려주신 거였고, 내가 매번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워낙 졸라댔던 까닭도 있어서 신사에 오르는 길은 원래부터 동화구현의 장이었다.
정상으로의 계단을 나아가는 동안 할아버지의 이야기 주머니에서 나왔던 동화의 대부분은 별에 관련된 옛날 설화였다.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든지 하는, 어느 나라에나 있을 평범한 이야기들이 주된 테마가 되었다.
보챈 만큼 너무나도 많은 것을 들어서 이제와서 전부 기억하지는 못해도,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에 귀뚜라미가 즈윽즈윽하고 울던 주변 풍경이나 몇몇 이야기가 갖는 고유의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내 안에 남아있다.
이미지와 함께 줄거리까지 통째로 생각나는 동화들 중에서는, 왜인지 즐거웠던 내용의 이야기보다 연인이나 가족의 이별처럼 슬픈 내용의 이야기가 더 잘 떠오른다. 아련하게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노을 진 하늘의 색채와 함께.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반짝반짝해야할 별에 대한 이야기가 정반대의 에피소드로 점철되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실제로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들었던 후, 한동안 머리 위로 지나가는 은하수를 올려다 볼 때마다 그 안에 얼마나 깊은 그리움이 담겨 있을지. 또, 서로 닦아줄 수 없는 눈물이 은하를 넘칠 듯 가득 메우고 있어서 은하수가 하얗게 보이는 건 아닌지 하는 상상에 마음이 무거워질 정도였으니.
그래도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 더 끌렸었다. 아마 그 당시 내 딴엔 서로 헤어지며 교차하는 감정의 강렬함도 강렬함이지만, 어찌됐든 남들에게 영원히 전해지게 된 사랑이야기라는 점이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
...아니.
뭐라할까.
사실은 조금 다르다.
정확히는 이별하는 사람이나 이별이 가져오는 고유의 분위기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누가 보기에도 아이가 가질만한 평범한 감정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 늘 주위에 보이는 똑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작은 사회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충분히 동경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었다.
이런 나만의 이상은 남모르게 조금씩 깊어져가다가 마침내 어느날 내 또래의 아이가 선착장에서 아버지로 여겨지는 사람을 배웅하는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된 이후로는, 완전히 머리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떠날 줄을 몰랐다.
어린이 맞춤 선원제복을 입고서 부둣가에 서 있던 여자아이.
눈동자에서부터 망울져 떨어지려는 눈물을 최대한 억누르며 씩씩하게 손을 흔드는 아이가 그 순간만큼은 다른 세계의 속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갸냘픈 입술의 떨림부터 두 손을 기도하듯이 꼭 움켜쥐고 수평선을 쳐다보는 모습까지 전부 동화 속 주인공으로만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진짜 헤어질 때의 감정은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서, 멋대로 그 순간이 특별할 거라고 해석하며 마침내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까지 10년이나 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