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로 다양한 일상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서벌이예요.
잘 부탁드려요..
봄날의 코스모스처럼
1. 두 아이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것에서부터
좋아함을 느낄 수 있다.
아직 아침해가 채 뜨지도않은 이른새벽.
조용한 골목 어귀를 깨우는 청소차의 엔진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침 늦게까지 잠이든 채 죽은 듯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는 유진이였지만 오늘은 왠일인지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도 잠에서 깨어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놓은 채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무언가 생각하는듯한 표정으로 정면에 보이는 전신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일명 “개”의
모습이었다.
정말로 개 라는 동물이 아니라 마치 개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난장판이 따로없다는 의미였다.
머리카락은 손질을 하다만듯이 뒤죽박죽이었고 의상은 마치 어디서 놀다가 바로 들어온듯이 셔츠가 거의 풀어헤쳐진 채 어깨에 걸쳐져있었다.
조금은 퀭한 눈빛으로 거울너머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이봐도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이른아침인데 어제저녁을 기억하려하니 자꾸만 두통이 몰려오는 그녀였다.
얼추 기억을 되짚어 보자니 어제도 역시나 오랜 친구녀석과 함께 클럽이라는 곳에 놀러가서 진탕 난리를 치다가 온것.
혹시나 무슨 실수를 저지른게 있는지 다시금 곰곰히 생각을 되짚어보았지만 기억나지 않는걸보면 다행히도 큰 실수는 하지 않은듯했다.
하지만 이정도로 몸이 찌뿌둥한걸 보면
어제 어지간히도 마시긴 마셨나보다.
방안역시 다소 어지럽게 널부러져있는건 그녀가 여태 귀찮아서 치우지 않은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신 거울을 바라보며
이마를 짚은 채 한숨을 내쉬던 그녀의 두 눈을 번뜩이게 한 것이 있었다.
머릿속에 무언가 매우 중요한 사실이 하나 떠오른듯이 유진은 이마를 손으로 탁! 한번 쳤다.
“크으 ㅡ ” 라는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그녀는 몸을 침대뒤로 홱 눕혀버렸다.
나름대로 교사가 되고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어 열심히 공부하여
사범대학을 졸업하였지만 정작 현실은 실력부족으로 고시를 합격하지 못한 채 집에서 대주는 돈을 받으면서도 술집이나 바같은곳 밥먹듯이 다니는
그녀었다.
그런데 어느날 마땅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자신에게 얼마전 정말 기적같은 기회가 생겼는데 다름아닌
고등학교에 교생으로 가게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친구 녀석의 추천 때문이기도 하지만..
며칠동안 얼마나 들떠있었는지 모른디.
자신이 교생으로 가게될 고등학교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느곳에 있는지까지 일일이 다 검색하고 직접 찾아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오늘이 바로 그 고등학교로 실전을 가는 것이었는데 전날 들떠서 그렇게 놀아버린것이 그제서야 후회되는 유진였다.
약간이지만 그래도 두통은 상당히 신경쓰이고 귀찮은것인지라 여전히 손으로 머리를 짚은 채 그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방을 나갔다.
졸업이후 작은 빌라에 세들어와서 혼자산지도 일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친한 친구정도가 찾아오는일 외에는 딱히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거실로 나온 그녀가 느낀것은 여느때와같은 텅 빈 공간에 맴도는 공허함이었다.
“하아 ㅡ 이거 참.. 남자라도 들여야하나..”
무의식적으로
혼자 중얼거리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사업가이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버지의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돈을 쓰는일과 남자나 여자들을 만나고 노는것이 일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경험해본 결과
남자라는 동물들이 어떤놈들인지 뻔히 잘 알고있는 그녀였기에 방금전의 생각을 곧바로 지워버리는 그녀였다.
샤워를 마치고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의외로 빨리 지나간듯 하다고 느끼는 그녀였다. 그도 그럴것이 창밖으로 보이는 골목은 방금전까지 맴돌던 새벽 기운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따스한 여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홀로사는 그녀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천천히 옷을.갈아입었다.
방안에 놓여진 전신거울을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블라우스 셔츠를 새로 갈아입었다.
평소처럼과 달리 그녀의 머릿속에는.온통 첫 직장에서 이미지를 바꿔보자는 결심으로 가득했다.
평소 쓰지도않던 안경을 서랍에서 꺼내 써보기도 하고 거울에 서서 여러 포즈를 취해가며 어떻게 단정한 모습을 취할 수 있을지 고민해하였다.
그러기를 심십분정도 소비하고 나서야 유진의 행동은 그제서야 딱 맘추었다.
탈색을 하지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여운이남는 연갈색의 염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섞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블라우스 셔츠를 속에입고 겉에 옅은 커피색의 여성용 정장을 걸쳐입은 그녀의 모습은 누가봐도 깔끔하고 단정해보였다.
한손에 작은 손가방을 들어보던중 그녀는 문득 뭔가 떠오른듯 귀쪽으로 손을 갖다대었다.
잠시후 그녀는 자신이 여태 끼고있던 은색의 피어싱 귀걸이를 떼내었다.
자신이 일하게될곳이 학생들이 있는 학교라는 이유가 그중 하나이기도했고 무엇보다도 학교라는곳에서 비록 교생이지만 새로운 이미지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귀걸이는 뗄 수가 없었다.
친구가 선물해 준 하나의 귀걸이.
이 귀걸이만은 뗴어놓을 수 없는 그녀였다.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허리춤에 손을 걸친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전신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새로 시작해 보는거니까 잘해보자.!”
한껏들뜬 유진은 그렇게 자신 스스로에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여태껏 받기만하고 직접 스스로 벌지않았으니 혼자의 힘으로 직장에서 일을 해보자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까지만해도 모르고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교생 생활에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립여자고등학교는 말 그대로 민간 재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고등학교 중 한곳이었다.
언뜻 이름만 들어보면 사람들은 사립 학교니까 환경도 좋고 인재들도 많을거라고 생각할텐데 그 생각은 맞다.
사립 여학교는 환경도 좋고 사립 학교답게 교육이 체계적이어서 인재들 또한 많았다. 하지만 그런 학교에도 조그마한 문제는 꼭 있는법.
다른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학생들 중에는 일명 문제학생이 조금 있다는 정도였다.
여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조금은 문제가 있는데다가 교사들 역시 개인이 통제하기 힘든 학생도 간혹있었다.
하지만 이를 알 턱이없는 유진은 아침일찍부터 집을나와 자신이 가게될 그 학교로 차를 몰고서 이동했다.
물론 처음가는곳인지라 조금은 긴장이 되기도하고 그랬지만 우연인지 다행인지 자주 자기집으로 놀러오는 친한 친구녀석이 그 학교에서 일을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였다.
“고등학교..고등학교..라...”
그녀는 살짝 몸을 숙인 채 학교를 찾기.위해서 유리창너머로 이리저리 시선을.돌렸다.
얼마나 헤멨을까?
문득 학교앞 과속금지라는 표지만이 눈에띄었고 그 바로앞에는 사립여자고등학교라는 학교명패가 벽에 붙어있었다.
1차선 도로인지라 조금은 그래도 위험할 듯 싶어서 그녀는 차량을 살짝 옆으로 기댄 채 학교 정문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운전대를 돌려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동안 몇몇 학생들이 학교내로 걸어들어가는것이 눈에띄었다.
흰색의 블라우스셔츠에 연회색의 교복치마라...
여학교의 하복은 여느학교든 다 비슷비슷한가보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래도 이른 아침인데도 일찍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은 일찍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에 봉착했으니.. 일단 학교 안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주차장을 찾을수가없었다.
그렇다고 학생을 붙잡아 놓고 주차장 위치를 물어볼까 싶기도 했기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머뭇거렸다.
결국 그녀는 조금 더 기다리다가 뒤이어 학교내로 들어온 차량을 뒤따라갔고 학교 뒤편에 위치한 주차장을 찾을 수 있었다.
차량을 주차시키고 조심스럽게 학교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안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알 수가없어 다시 또 이리저리 고개릴 기웃거리던 그녀는.이번에는 마침 등교하는듯한 한 여학생을 붙잡아 교무실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저기 교무실이 어딘지 알려줄 수 있니?”
“...아 교무실이요. 그..”
그 여학생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돌아와야 할 대답이 돌아오지않자 유진은 여학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인지 살짝 얼굴을 붉힌 채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여학생의 눈앞에 손을 휘휘 내저어보이며 말을 걸었다.
“저기...얘...교무실이 어디냐니까..”
”아!!! 저쪽 끝으로 가시면 교무실이있어요.”
그제서야 그 학생은 흠칫 놀라 정신을.차린듯 재빠르게 대답을 하고나더니 황급히 이층으로 올라가버리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 학생이 자신을보고 멍을때린건지 그녀는 알고있었다.
그녀의 외모는 지금 사실 누가봐도
예뻐보였으니까.
본인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우쭐대거나 자랑할 생각도 없었다...
잠시후 그녀는 여학생이 알려준대로 일층 복도로 나와 왼쪽으로 쭈욱 걸어갔다.
조금 더 걸어가보니 정말로 그 여학생이 알려준대로 교무실이라는 이름이써진 팻말이 위에보였다.
그녀는 문앞에서서 심호흡을 한번하고 조심스럽게 교무실 문을 밀어열었다.
교무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일학년부터 삼학년 교사들이 한 공간안에 있다보니 교무실은 자연스럽게 넓어질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교사들 자리가 특정하게 밀집되어 있었으며 그 밀집공간 사이사이는 플라스틱 재질의 사무공간 분리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면 조금은 낡은 천장에 유치할지도 모르다고 생각될만큼 팻말이 걸려있었는데 그 팻말에는 각 학년의 표시가 써져있었다.
유진은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할지 몰랐기에 교무실 한켠에있는 의자에 천천히 몸을 기대었다.
아직 교사들이 별로 오지않아서.그런지 교무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십여분정도가 지나자 한두명씩 사람들이 교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자신과 친한 동년배 친구 여교사가 있었다.
물론 어제도 같이 클럽에 간 그 친구말이다.
처음이라 초조하고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던 그녀는 그 친구를 발견하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그 이름을 불렀다.
“유진아.”
문득 자신의 이름이 불려온것을 들은 그녀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자신을 부른 사람이 혜주라는것을 알아채고나서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생각보다 빨리왔네?너.”
혜주는 미소릉 지으며 그녀의 곁에 앉았다.
“다행이다. 너를 만나서..”
자신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유진을 바라보던 혜주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별말없이 바로 일어나는 혜주를 바라본 유진은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듯 머뭇거리며 따라 일어났다.
“혜주야. 근데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여기 처음인데.”
“인사드려야지.”
“인사?”
“당연하지. 교장선생님께서 오셨으니까 인사부터 드려야지. 안그래?”
“그..그렇지...”
애써 담담해하려는 유진를 힐끗힐끗 바라보던 혜주는 피식 작은소리로 웃음을 내었다.
“왜...왜웃어?”
“아니..후훗...유진의 이런 모습은 처음봐서..”
혜주의 대답에 유진은 조금 멋쩍은듯이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아.....나도 긴장할땐 긴장이 된다구...”
“그래도 너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고하니까 난 좋은걸 ”
“뭐..뭐..네 도움이...있었다는건 인정하는거니까...내 능력으로 한게 아니라
은근히 화가 난다고..”
“아아.. 그래그래..그래두 어쨌든 교생부터 시작하는거니까 잘해. 그리구 꼭 나 만나는거 잊지말구.”
“하아...알았어.”
“그럼 이제 가자.”
“어어 잠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혜주는 유진의 손을 잡더니 그녀를 일으켰다.
그녀를 따라서 교무실을 가로질러 걷는동안 유진은 먼저온 다른 교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방금 온 교사도 있었고 이제 막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서 교재들을 손에 한아름 드는 교사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 그녀를 보고있었는데
어떤 교사는 자신을 향해 방긋 미소를 짓는이도 있었고 또 어떤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채 힐끔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간에 이 모든것이 유진은 낮설고 생소한것들인지라 긴장으로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살짝 고개를 치켜든 채 혜주의 뒤를 따라가던 그녀는 이윽고 살짝 창가에 내비치는 햇볕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을 보았다.
강렬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두상이 눈에띄었는데 이는 마치 반짝이는 쇠공처럼 보였다.
“미러..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그녀는 순간 사방에서 들려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털썩하고 책들이 바닥에 쏟아지는듯한 소리도 있었고 푸흡 ㅡ 하며 기침을 내뱉는 소리도 들려왔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옆에서있던 혜주는 조금 당황한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 이건 미러...콜록..미러볼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머리야 머리. 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그 말을 듣는순간 그제서야 유진은 눈을 비비고서 그 구형체를 보았다.
의자에 앉아있는데다가 원채 체구가 작은 교장선생은 언뜻보기에도 나이가 많아보였다.
게다가 할아버지뻘쯤 되다보니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가 언뜻보면 공처럼 보일수도..
유진은 그것이 공이 아니라 바로앞에있는 교장선생이라는것을 알았고 당황스러움과 죄송스러운 마음에 허리를숙여 사죄를 요청했다.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고의적으로 그런겅 아닙니다. 정말이예요.”
유진은 조심스럽게 교장선생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이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교장선생은 잔뜩 인상을 쓴 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방금전 자신의 착각으로 인해서 크게 화가난 듯했다.
유진은 눈을 살짝 감은 채 속으로 짜증이아닌 짜증을 내었다.
“아...첫날부터 이러네...짤리려나...”
“김유진. 라고 했던가?”
귀에 들려오는 묵직한 목소리에 유진은 눈을 뜨더니 대답했다.
“아! 네! 교장선생님. ”
자신을 쭈욱 인상쓴 얼굴로 올려다보는 그것이 점점 부담스러웠던 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을.꺼내려했다.
“저...짤..”
“허허허!”
그러나 그녀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미처 들리기도전에 인상을 쓰고있던 교장선생의 너털웃음이 교무실전체에.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유진은 물론이고 옆에있던 혜주역시 갑자기 웃는 교장선생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잠시후..
교장선생은 책상에 팔을 올린 채 그녀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까전과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였다.
“저기.. 교장선생님 왜 웃으신...”
“재미있어서 웃는거라네. 허허.”
“재미있..어서요?”
“허허허. 유진씨. 아니 유진 선생이군 이제..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다네. 하지만 자넨 운이 좋은게야. 요즘 재미있는일이 없었다네. 그런데 유진 선생이 날 오랜만에 웃겨주는구먼!”
“에... 그럼 제가 잘한거라는 말씀이신가요?”
“물론 잘한건 아니지!”
“죄송합!..”
그녀가 또다시 허리를 숙이려하자 교장선생은 손을 내저어보이며 말했다.
“또 사과할 필요는 없네. 허허.. 그러고보니 내 소개를 안했구먼..
나는 이 학교의 교장인 김형식 라고 하네.
유진 선생. 앞으로 교생으로서 세달간 이 학교에서 잘 지네보게.”
“아....!네! 교장선생님.감사합니다!”
”허허. 뭘 내게 감사할필요까지..
고마움은 옆에있는 혜주 선생한테 해야지.”
“....아 네!.. 네....?”
당황스러우면서도 유진은 교장선생이 말한 마지막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유진씨는 언제 학교를 졸업하셨나요?”
“에...작년에 졸업했습니다.”
“그러면 공백기간동안 열심히 다른일을 하셨나보네요?”
“에.... 네.네!그.. 그렇죠”
[사실 난 백수예요! 라고 말할 순 없었다..]
유진은 복도를 뒤따라가면서도 앞에서 계속 질문을 퍼붓는 여선생을 뒤에서 힐끔힐끔 보았다.
약간 연한 담갈색의 단발머리카락을 어깨까지 흘러내린 그녀는 세라 선생이었다. 진학담당이자 삼학년 일반의 담임인 그녀는 원래의 모습이 그런건지 원채 날카로운 눈빛과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얇은테의 안경을 쓰고있으니 더더욱이 날카로워보이는 이미지가 한 층 더 돋보였다.
유진이 세달간 맡아서 아이들을 가르칠 학년은 삼학년이었다.
일 이학년도 아니고 당장 대학 입학고시에 매달리고 또 예민한 시기의 고등학교 삼학년들을 생판 초보교생인 자신에게 맡긴다는것이 뭔가 조금은 꺼림칙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세라 선생을 따라 마지막층으로 올라왔고 거기서 오른쪽 복도의 맨 끝반으로 걸어갔다.
맨 끝에있는반인 일반이었다.
일반부터 오반까지 있었는데 유진가 앞에 선 반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저가고 뭔가 난장판이 일어나는듯한 소리가 교실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자 들어가죠.”
세라 선생은 그녀에게 묘한 미소를 보이더니 교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교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세라선생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하던 유진은 교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책상들은 아침부터 제 위치를 이탈해 있었고 학생들은 서로 장난을 치고 있었던 듯 했다.
“모두 주목!”
그순간
놀랍게도 세라 선생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널부러진 책상을 가지런히 열을 맞추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의자에 앉았다.
세라 선생은 교탁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이윽고 교실전체를 한번 쭉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혼자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유진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유진은 우물쭈물 거리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교실로 발걸음을 들였다.
그순간 약간은 의문의 탄성과 목소리들이 앞에서 들려왔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뿐이었다.
교탁앞에 선 유진은 세라옆에 서더니 심호흡을 한번 가다듬고서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반가워요. 세달달동안 이 학급에서 생활을 하게된 김유진라고 해요.
잘부탁드려요. 여러분.”
말이 끝나고나서 유진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며 앞을 바라보았다.
서른명 가까이되는 학생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가 아닌 과거 밖에서 놀러다닐때도 시선을 많이받곤 했지만 그것보다도 어째서인지 더 부끄러워지는 그녀였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세라에게 속삭였다.
“저기...선생님? 제가 잘못한건가요?”
그녀의 말에 세라 선생은 별다른 표정없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뜬 채 대답을 마주하더니 출석부를 교탁에 놓고서 나가는 것이었다.
“잘못한거없으니까 애들 출석부르고 보면서 기억해요.”
“첫날인데 저 혼자요?”
유진가 그 말을듣고 맏받아서 말을 꺼냈지만 이미 세라 선생은 교실을 나가버린 뒤였다.
유진은 그녀가 나간 앞문을 보다가 이내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음.. 일단 그래. 출석부터 부를테니 호명하는 사람은 손을들어요.”
“선생님! 애인있어요?”
“....그질문 왜 안나오나했지..“
출석을 부르려고 준비하던 유진은 한 여학생의 질문에 손으로 이마를 탁.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출석을 부르려고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의 질문이 발단이었을까?
교실 곳곳에서 갖가지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출석을 전부 부를 수 있었던건 일교시 수업이 다 끝나갈 때 쯤이었다.
하지만
출석을 다 부를때즈음 그녀는 교실의 끝자리가 두군데나 비어있다는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퍼져 나오고 나서야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교탁의자에 놓인 출석부를 들고서 교실밖으로 나왔다.
“유진 선생.”
그때 복도로 나오자마자 그녀를 기다렸다는듯이 세라 선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는 언뜻보기에도 계속 밖에서 교실안을 지켜보고 있었던것 같았다.
여전히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는 그녀는 유진을 한번 쭉 바라보다가 그녀의 출석부위에 무언가 묵직한것을 올려놓는 것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무게에 유진은 팔에 힘을 주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게 뭔가요? 세라 선생님?”
“유진 선생은 이제 삼학년 일반의 부 담임이잖아. 물론 교생이지만 부 담임이라는 직책은 담임과 별반 차이거 없지.”
조금은 의미심장한 말에 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에 올려진 묵직한 종이뭉치들을 바라보았다.
“본듯이 그건 애들 진로조사표거든.
일년에 총 여섯번의 상담을 하는데 이번이 네번째야. 이번 상담은 나대신 유진 선생이 해보라구.”
“아...네. 근데 저....”
“무슨 문제있어?”
“애들 상담을 해본적도 받아본적도 없는데요..전”
“그러니까 해보라는거지.”
“아..네!”
유진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라 선생이 이윽고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유진은 뭔가 떠오른듯 그녀를 불러멈춰세웠다.
“저기! 세라 선생님?”
그녀의 부름에 세라 선생은 살짝 고개를 돌린 채 등을지었다.
“무슨일인가요? 유진선생.”
“교실 끝자리 두군데가 비어있던데
그 아이들은 누군가요? 출석 명단에도 두명이 빠져있더군요.”
“그 두명은 문제가 좀 많은 녀석들이니까 그냥 신경쓰지마요. 유진선생. 괜히 신경스면 머리만 아플테니까...”
담임으로서 선생으로서는 조금은 무책임한 대답이라고 생각한 유진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뭔가 말을 꺼내려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꺼내지기도전에 세라 선생의 말이 먼저 나와버렸다.
“선생으로서 무책임한 대답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조만간 다시 나올겁니다. 그러니 걱정말아요. 유진선생.”
그렇게 말을 마치고 다시 저만치 복도끝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진은 몸을 움찔거렸다.
자신의 생각을 읽은건가?하는 의구심과 동시에 그녀의 마지막 말이 정말일지에대한 궁금증이 일기도했다.
하지만 그 생각들도 잠시..
그녀는 뒤에서 들려온 혜주의 목소리에 그녀에게 발걸음을 돌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점심식사를 교내 식당에서 해결한
두 사람은 남은 점심시간동안 교내를 쭉 둘러보기로했다.
일학년들이 있는 맨 아래층부터 이학년과 삼학년이있는 마지막 윗층까지..
그 외에도 음악실이나 기타 각종 부실들을 둘러보았다.
어느정도 교내를 다 둘러본 그녀는 혜주 옆에서서 어느 한 부실에 멈춰섰다.
교내의 꼭대기층은 아래층과 달리 낡고 오래된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말없이 미소만 지으며 낡은
부실문을 연 혜주는 곧이어 그 부실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서 부실로 들어온 유진은 두 눈으로 부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언뜻보면 휴게실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이었는데 곳곳에 책상이며 의자며 각종 가구들이 쌓여있었다.
마치 창고같았는데
그나마 앞에는 창문이 두개정도 달려있어서 열려있는 창가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창고라기에는 먼지도 없었고 누군가 손질을 해놓은듯 꽤나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었다.
혜주는 창가에 놓여있는 의자에 익숙하게 털썩 몸을 기대었다.
교무실에서나 학생들앞에서 본 행동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여기 자주 들락거리나보네? 너.”
유진은 그제서야 긴장이 조금은 풀렸는지 허리에 손을 걸친 채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서는 창가쪽으로 걸어가더니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선선한 여름 바람이 불어 들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간지럽혔다.
“애들이 네 말 잘들어?”
“물론. 우리 애들은 착하니까.”
“그렇구나.”
“넌?”
“글쎄...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벌써 두명이나 문제가 생겼는걸.”
그녀의말에 혜주는 뭔가 생각난듯이 피식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웃어? 너.”
“그 두명. 꽤나 문제가 많지. 여러모로.
소문이 많은데. 아참. 너 세라 선생의 반이지.? 부담임이라... 말이 그렇지. 너가 다하겠네 이제.”
“뭔소리야 그건 또..”
”세라 선생의 반이니까 고생좀 하겠다는거지. 그 사람은 워낙 우리도 못말리는 고집투성이라..”
“.....하아....일부러 날 여기에 넣은거야..?”
“유진. 힘들어?”
혜주는 여전히 의자에 등을 뒤로 기댄 채 눈을감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차분하게 들려왔다.
“있지 아이들을 가르치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거 나도 잘 알아.
어렵지. 힘들구..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알아가고 친해지면서 그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정말 좋은 추억이 생기거든.”
“...혜주가 그렇게 말하니까 뭐...”
유진의 대답에 혜주는 미소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꺼내는데. .
“무엇보다도 너가 선생이 되는 모습이 정말 보기좋거든. 난 네가 이루고 싶은 꿈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야. ”
“칫...”
유진은 고개를 돌리며 애써 다른데로 시선을 옮겼다.
“곧 수업시작하겠다. 가자.”
그녀의 말에 그제서야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난 혜주는 부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동시에 유진의 어깨에 팔을 감싸며 기대었다.
“잘해봐. 유유~. ”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참...“
오후에는 다른 별다른 수업없이 세라 선생이 시킨대로 아이들을 한명씩 대해가며 진로 상담등을 하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은 어색해하면서도 머뭇거렸지만 한명두명 계속 대하다보니 조금씩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과의 대화간에도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상담이 끝날즈음 시간을보니 벌써 아이들은 하교를 할 시간이 되었고 다른 일부 선생님들은 벌써 퇴근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명을 상담하고나서 상담 종이들을 정리할때서야 세라 선생이 와서 그 종이들을 가지고 갔다.
언뜻 생각해보면 본인이 귀찮아서 자신에게 여러일들을 떠맡아 시키는거라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유진아.”
교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유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그 목소리의 주인은 혜주였다.
그녀역시 교내문을 나와서 주차장쪽으로 오고있었다.
“너도 퇴근하는거야?”
“그럼! 이제 퇴근하는걸. 너는 상담때문에 늦은거야? 어땠어?”
“음....글쎄...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니까 뭐...”
“너때랑은 다르지?”
그녀의말에 유진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에...맞어. 아하하...그래도. ”
머리를 긁적거리던 유진은 주차해놓은 자신의 차량문을 열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왠지 아이들이 착하다는걸 느꼈다랄까....빈자리의 그 두녀석도 보고싶긴한데..”
“음...유진아, 오늘 술한잔할래?”
“됐거든요.? 나 오늘은 무지 피곤해.”
“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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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누가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