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역시 내 청춘 이세계 생활은 잘못됐다.
“용사가 오셨으니, 우선 왕궁 주변에 출몰하는 마의 무리들을 소탕하도록 하죠!”
식탁을 사이에 두고 티유는 힘차게 말하며 태훈을 바라보았다.
“싫어.”
“왜요.”
“힘들어.”
“힘들다뇨! 이건 전부 다 왕국민들을 위한 희생이자, 봉사라고요!”
티유는 태훈의 말에 소리치며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리고 어차피 거부해도 소용 없어요, 안태훈 씨!”
“뭐? 왜?!”
“제가 용사를 위한 특별 의뢰를 받아서 왔거든요!”
티유는 그렇게 말하며 소매에서 양피지로 된 두루마리를 꺼내 태훈의 눈앞에 들이댔다.
“나하고 아무런 상의도 없이 들고 왔다고?”
“네. 게다가 아무거나 들고 왔어요! 읽지도 않고!”
“적어도 무슨 내용인지는 읽어봤어야지!”
“왜요? 어차피 여기서 읽을 건데.”
티유는 뭐 그렇게 따지냐는 듯이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티유의 그 자세에 태훈은 복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그럼 한 번 읽어볼까요~.”
티유는 태훈이 무슨 기분을 느끼든 말든 상관이 없는지 두루마리를 펼치려했다. 그리고 태훈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야, 만약에 우리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의뢰 같은 게 있으면 어쩔 거냐.”
“그야 다시 갖다 놓으면 되죠.”
티유의 말에 태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냥 갖다놓기만 하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만약에 여기에 이상한 장치가 되어 있어서 철회할 수 없다거나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
“네? 그, 그런 경우가 있나요?”
“보통 우리 세계에서는 그런 걸 계약 사기라고 하긴 하는데, 순진한 사람을 낚아서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오게 하는 거다.”
“무, 무서워요! 겁주지 마세요, 안태훈 씨!”
티유는 정말 무섭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태훈과 티유는 가만히 숨을 삼키며 그녀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내려다보았다.
“그, 그러면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직접 의뢰를 받으러 갈까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렇죠?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역시 안태훈 씨, 머리가 좋으시군요!”
“하하, 네가 멍청한 거겠지.”
“하하하하하.”
“하하하.”
티유와 태훈은 마른 웃음을 흘린 뒤 한숨을 쉬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다가오더니 티유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빼갔다.
“어머나, 이거 의뢰 두루마리네요?”
“헉, 어, 언니?!”
언제 내려왔는지 티유의 옆에 데미스가 앉았다.
“여기 여관에서 가져온 거니?”
“네, 그, 그런데요?”
“후후, 안 되잖니, 티유. 이런 의뢰서는 잘 알아보고 들고 와야 한단다. 안 그러면 덤터기를 쓸 확률도 있어. 특히 이건 두루마리를 펼치면 자동으로 의뢰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거란다.”
“그, 렇군요. 그러면 역시 갖다 놓는 게 좋겠죠?”
티유는 태훈을 힐끔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렇지, 그렇지. 갖다 놓는 게 좋을 것 같다, 티유.”
태훈은 격하게 티유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되돌려 놓을 것을 추천했다.
“그러면 갖다 놓고 올…….”
티유는 그렇게 말하며 데미스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두루마리에 닿는 일은 없었다. 데미스가 자신의 손을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저, 언니? 그건 왜 그렇게 높게, 들어 올리시나요?”
“후후후, 용사님.”
“어, 어?”
데미스는 티유의 질문을 무시하며 태훈을 불렀다. 태훈은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제가 여기서 이 의뢰서를 열면 어떻게 될까요?”
“……뭐?”
“후후후후.”
당황한 태훈을 무시하고 데미스는 양손으로 두루마리를 쥐었다.
“전 말이죠, 용사님. 아시다시피, 남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걸 참 좋아한답니다?”
“야, 잠……?!”
“언……!”
태훈과 티유가 제지하기도 전에 데미스는 양피지를 열었고, 양피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아!”
티유와 태훈은 동시에 괴성을 질렀다.
“후후후, 이걸로 의뢰를 받아들여 버렸네요.”
“무슨 짓거리야!”
태훈의 외침에 데미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후후, 이걸로 용사님이 괴로워하는 모습도 봤네요, 후후후.”
데미스의 말에 태훈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이런 녀석이 자신의 파티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대한 허탈함과 이런 녀석을 파티의 힐러로 추천하려 했던 티유에 대한 분노가 동시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용사님이 괴로워 하시는 모습은, 의외로 귀엽네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가늘게 뜨는 데미스의 모습을 보자 태훈은 자신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이 진성S녀가 진짜……!”
태훈은 작게 화를 냈다.
“후후후, 그렇게 화내는 모습도 귀여우시네요~.”
하지만 상대는 이미 만렙에 가까운 상태였다.
“젠자아아앙!”
“자, 그러면 어디 의뢰내용을 확인해볼까요?”
화를 내는 태훈을 무시한 채 데미스는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식탁 위에 펼쳤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때쯤, 태훈 일행은 드넓은 벌판에 와 있었다.
“의외로 쉬운 게 걸려서 다행이네.”
“그러게요. 전 완전 식겁했었다고요, 안태훈 씨.”
“그게 누구때문이었더라.”
“죄송합니다.”
태훈과 티유는 들판을 바라보며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오늘은 넘어가주마. 난 관대하니까.”
“역시 안태훈 씨, 아량이 넓군요.”
둘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런 둘을 보며 뒤에서 데미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런 걸 바란 게 아닌데요.”
그리고는 실로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는 낙승이겠지?”
“당연하죠! 슬라임 정도야 쉽게 잡을 수 있다고요!”
아쉬워하는 데미스를 무시한 채 티유와 태훈은 그렇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들판 군데군데에는 하늘빛의 바둑돌 같이 생긴 미묘하게 귀여운 느낌을 내는 슬라임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후우. 뭐, 어쩔 수 없겠죠. 그러면 작전을 짜볼까요, 용사님?”
“에이, 작전이랄 것까지야 저런 잡몹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다고. 게임에서도 그냥 잡몹들인데 뭐.”
데미스의 제안에 태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거절했다.
“맞아요, 언니! 저 정도 잡몹들은 저 혼자서도 없앨 수 있다고요!”
티유 또한 슬라임을 무시하며 그렇게 말했다.
“하긴, 티유 정도의 공격력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겠구나. 이 언니는 티유만 믿을게.”
티유의 말에 데미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 음. 여러분. 슬라임을 그렇게 무시하시는 건 조금…….”
다만 호프만이 어째서인지 자신만만한 그들을 걱정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가 걱정이냐, 호프. 저 정도의 몬스터는 나도 잡을 수 있을걸? 슬라임은 나도 알아.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최약체 몬스터잖아?”
“그 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는 전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슬라임을 그렇게 무시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호프는 뭔가 걱정되는 거라도 있는 것인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 슬라임이란 게, 내가 생각하는 거하고는 다른 건가?”
호프의 말투에 뭔가 불안함을 느낀 태훈은 방금까지의 들뜬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물론 슬라임이란 몬스터가 그렇게 강한 몬스터는 아닙니다만, 그게…….”
“아, 안태훈 씨! 슬라임이에요, 슬라임! 제가 먼저 공격할게요!”
호프가 입을 열려던 그때 티유가 소리치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어?”
티유의 외침에 태훈은 순간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뭔가 불안했다.
“파이어 애로우!”
태훈이 말리기도 전에 티유는 완드를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고, 허공에 불의 화살이 나타나 슬라임에게 꽂혔다. 그러나.
슬라임은 아무런 타격도 없었는지 계속 꿈틀거리며 기어갈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조금 부풀어 있는 것 같았다.
“어?”
태훈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티유 또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 실수했군요! 저 같은 아크메이지가 고작 저런 몬스터를 맞추지 못 하고 빗겨나가다니!”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
“파이어 애로우!”
태훈의 말을 무시하고 티유는 또 다시 완드를 휘둘러 불의 화살을 슬라임을 향해 날렸다. 아까 전보다 위력이 강한 건지 이번에는 폭발이 일어났다. 폭음과 함께 후폭풍이 밀려왔다가 먼지가 걷힌 뒤 나타난 것은.
하늘빛의 바둑돌을 닮은 거대한 슬라임이었다. 아까보다 몇 배는 커 보였다.
“어째서어어?!”
티유는 절규했다.
“야, 저거 어째 아까보다 더 커진 것 같은데?”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움직여 슬라임을 올려다보았다.
“차, 착각이에요, 착각!”
티유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완드를 치켜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제 최강의 마법으로!”
“위험합니다!”
그리고 호프는 소리치며 티유를 밀쳐내며 방패를 꺼내 앞을 막았다.
“꺽!”
영 이상한 소리를 내며 티유는 바닥을 나뒹굴었고, 그와 동시에 호프의 방패를 향해 액체가 뿌려졌다. 슬라임에게서 뿌려진 액체는 방패에 닿자마자 연기를 뿜어냈고 방패의 일부가 녹아내렸다.
“윽!”
호프는 방패를 집어던졌다. 땅에 떨어진 방패는 녹아내려 일부분만 남았다.
“뭐?!”
태훈은 놀란 듯이 소리쳤다.
“아까 말씀드리려고 했던 겁니다만, 슬라임은 마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호프는 자신이 밀어 넘어뜨린 티유를 일으키며 말했다.
[큐루루루루루.]
슬라임은 그런 울음소리를 내며 온 몸을 떨었다.
“앗, 또!”
호프는 그렇게 외치며 기껏 일으켜 세운 티유를 옆으로 던졌다.
“으갸악!”
티유는 이번에도 영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고, 호프는 그 반대편으로 뛰어 멍하니 서 있던 태훈과 데미스를 붙잡고 바닥을 굴렀다. 호프가 서 있던 자리에 아까 전 그녀의 방패를 녹인 액체가 뿌려졌다.
“윽!”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땅에서 연기가 올라왔고, 태훈과 데미스도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리고, 화가 나면 부식액을 뿜어냅니다.”
“그건 진작 얘기해줬어야지!”
“전 티유 님도 아실 거라고 생각해서.”
호프는 말끝을 흐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뒤로 한 채 거대해진 슬라임은 티유를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
“어? 야, 잠깐만. 저 녀석 왜 저쪽으로 가는 거야?”
“슬라임은 화가 나면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공격하는 습성이 있어서…….”
호프는 그렇게 말하다가 자신이 뭘 실수 했는지를 깨달았다.
“으아아, 티유 님?!”
호프는 티유를 목놓아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큐루루루루루.]
슬라임은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티유를 향해 꿈틀거렸고, 호프는 일어서려다가.
“윽.”
그대로 주저 앉았다.
“하, 하필 이럴 때 체력이…….”
“장난하냐아아!”
태훈은 호프에게 소리친 뒤 티유를 향해 뛰어갔다.
“젠장! 저 자식이 없으면 난 원래 세계로 못 돌아간다고!”
태훈은 그렇게 외치며 티유를 향해 달려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우으으.”
티유는 신음을 내며 축 늘어졌다. 태훈은 그녀를 끌어당기며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태훈 혼자서 티유를 끌어당기기에는 버거웠다.
“젠장! 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이 멍청아!”
태훈은 티유의 뺨을 연달아 때리고 흔들었지만 그녀는 도저히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큐루루루루루!]
그리고 어느새 슬라임은 태훈과 티유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 망했…….’
거대한 슬라임을 보며 태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19년 인생, 이렇게 무너져 내리다.
“용사니이임!”
그러나 그런 생각을 부정하듯이 호프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검이 슬라임에게 박혔다.
[큐륵?!]
부식액을 뱉기 위해 온 몸을 떨던 슬라임은 뒤돌며 호프를 바라봤다.
“도망치십시오, 용사님!”
호프는 그렇게 외치며 슬라임에게 박아 넣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때, 땡큐!”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티유의 옷깃을 잡아 그녀를 끌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의 방……!”
호프는 그렇게 외치며 검을 치켜들었으나, 그 순간 슬라임은 온 몸을 굴렸다.
“패으아아?!”
호프는 당황했고, 그 순간 슬라임이 그녀를 깔아뭉갰다.
“호프으으으?!”
태훈은 놀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큐루루루루!]
호프를 깔아뭉갠 채 슬라임은 온 몸을 떨며 포효했다. 뭔가 귀여운 울음소리였지만 그 울음소리에 반응했는지 그 벌판에 퍼져 있던 슬라임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히이익!”
태훈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슬라임을 보며 낮은 비명을 질렀다.
“야, 데미스! 힐! 티유든 호프든 상관없으니까 힐 좀 해줘!”
태훈은 그렇게 외치며 데미스를 보았다. 그리고 데미스를 본 순간 글러먹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이유를 알고 싶지는 않지만 충분히 알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이 진성S가 진짜!”
태훈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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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생실습도 열심히 진행중이고요.
네이버 웹소설에 이어서 조아라에도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제목은 똑같이 올렸습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조언과 피드백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