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쓴 남자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황홀감을 감추지 못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농축시킨듯한 아름다운 푸른빛이 눈에 다 담을 수도 없을만큼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푸른 빛은 거대한 나무의 형태로 그를 맞이했다.
"이게 신목이구나."
코트 메달리아는 순수한 감정으로 감탄했다. 그의 옆에있던 제시아 호라이즌조차 그 찬란하고 거대한 나무 앞에서는 말을 잃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네요."
"이자벨에게 커다랗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코트는 탐스러운 음식을 보는듯 신목의 빛을 감미롭게 바라보았다. 푸르게 반짝이는 빛의 그늘 아래로 발을 딛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를 짓누르는 듯 하다.
"내 눈에는 비치지 않는게 있어."
남자는 모자를 벗어던졌다. 한참동안 깎지않은 기다랗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푸른 전광에 찌릿거리며 나부낀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눈에 비치지만, 유일하게 비치지 않는 것이."
제시아는 코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있다. 가끔씩 그가 그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할때마다 코트는 기쁜 마음을 제대로 감추지 못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눈에 그 미래를 바치는데, 유일하게 나에게 자신을 조공하지 않는 존재."
남자가 활짝 팔을 벌렸다.
"왕관을 쓴 나에게 복종하려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가 왕관을 쓰려고하다니. 불경스럽기 그지 없어."
자신에게 대드는 반역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불쾌함도 비치지 않는다.
"이 힘을 온전히 빼았으면 스탠다드는 그걸로 끝."
신목은 시티와 지하 도시들, 거의 모든 전기를 생산하는 거대한 에너지원이다. 이 세상에 나라라고는 하나 없는 거대한 도시의 전력을 빼았기위해 남자는 탐욕스러운 손을 내밀었다.
"내게로 와라."
코트의 묵직한 목소리에 신목이 흔들렸다. 남자에게로 빨려들어가는 푸른빛. 시청 지하의 광활한 공간을 가득 채운 신목이 급격하게 꿈틀대자 지진이 일어났다. 벽면에 금이 가고, 두 다리로 자세를 지탱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빛의 급류가 남자를 덮쳤다.
"윽?"
한참동안 즐겁게 빛을 받아들이던 코트가 갑작스럽게 표정을 일그러트린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에게 빨려들어가던 빛에 붉은빛이 섞여나왔다. 왕의 내시를 표방해 그에게 접근하고서 칼침을 놓은 반역자가 있던 것이다.
"보스!"
코트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자 제시아가 그에게 달려갔다. 빨간색이 섞인 빛의 줄기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잘라버렸다. 코트가 쓰러진 뒤로 신목은 그에게 흡수되는 것을 멈추고,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다.
코트가 고개를 들자, 그의 목 아래로 가슴 한 쪽이 완전히 텅 비어버린 구멍이 보였다.
"이렇게 반항할줄이야."
코트는 가슴이 꿰뚫린 상태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제시아는 텅 비어있는 그의 가슴을 보고 위화감이 들었다.
'상처가 회복되는게 느려.'
상처를 입으면 곧장 회복하는 제시아처럼, 코트도 상처를 입는다면 그 상처는 순식간에 치료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게 당연한 상처를 입더라도 코트라는 남자는 숨을 헐떡이다가 이내 털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상처부위를 부여잡고 끙끙 앓고있다.
……
Selected Ones - 25
Blaze
……
등뒤에서 엄청난 속도의 바람이 불어왔다. 땅에 발을 딛고 못 서있을 정도로, 지상에 얼굴을 내민 건물들이 휘청거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돌풍이 그녀의 등뒤에서 불어왔다.
바람만 불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짚고있는 땅바닥도 바람이 불어오자, 크게 휘청거렸다. 땅바닥이 춤추듯 울렁거렸다.
"우욱!"
그것만이 아니었다. 섬뜩하고 강렬한 압력이 그녀를 비롯해 세상 모든 것을 강하게 짓눌렀다. 소름이 돋는 꺼림칙한 압력에 세라는 토할뻔 했다.
"가뜩이나 골치아픈데 이건 또 뭐야."
세라가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스윽 닦아냈다. 그녀는 레니 스탈리와 싸우고 있다. 세라의 앞, 저 높디 높은 천공에는 찬란한 광채의 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저 괴물에게 다섯 방이나 얻어맞고도 이렇게 서있을 수 있는 자신에게 대견함마저 느껴졌다.
"내 턴. 드로!"
필드도 패도 한 장 없는 그녀에게 생사를 가를 카드 한 장이 들어왔다.
"좋았어. [연옥의 허몽] 발동!"
세라는 그 카드를 곧장 듀얼 웨펀에 꽂아넣었다.
"발동시킨 허몽을 묘지로 보내고 효과를 발동한다."
"지속 마법인데?"
"이녀석이 좀 그렇거든!"
[연옥의 허몽]은 상대에게 전투 데미지를 절반만 주는 대신, 자기 필드의 "인페르노이드" 몬스터의 레벨을 모두 1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세라는 그 효과에는 관심이 없고, 그 다음 효과가 절실하다.
"덱에서 "인페르노이드" 여섯을 융합!"
"덱융합이구나."
[인페르노이드 릴리스]와 [인페르노이드 네헤모스]. 그리고 다른 "인페르노이드" 넷을 꺼내들어 즉각 묘지에 꽂아넣는다. 이미 꺼져버린 푸른 불꽃이 다시금 불타올라 드높게 치솟았다.
기계 부품으로 구성된 거대한 악마 여섯이 땅바닥을 깨부수고 솟아올랐다.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악마들이 우렁차게 포효하며 붉게 타올랐다. 까마득한 높이의 기계탑이 지어지고, 그 탑들이 바느질하듯 서로 꼬이며 끼긱거렸다.
"융합 소환. [인페르노이드 티에라]( LV 11 / ATK 3400 ) "
산보다 높고, 태양에 머리가 닿을 조형물. 불경스러운 외모, 뱀의 몸을 가진 악마가 녹색 머리 여인의 등 뒤에 나타났다.
"밀키보다 높은 공격력. 하지만 그래봐야 400 차이야."
"400 차이?"
세라는 코웃음을 쳤다.
"나는 그런 자잘한 숫자 모르겠는데."
"음?"
"티에라 효과 발동!"
여인의 뒤에선 불경한 악마가 양팔을 벌리고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의 덱에서 차례로 3장 카드가 빠져나와 불타버렸다.
"덱에서 3장. 엑스트라 덱에서 3장을 골라서 서로 묘지에 꽂는다."
"흐음."
"내가 엑스트라 덱에서 묻을 카드는 [구신 누토스]."
3장이나 같은 카드를 펼친 세라는 그것을 곧장 묘지에 버렸다.
"누토스는 묘지로 보내지면 필드의 카드를 하나 파괴하지."
"그런데 왜 셋이나 보낸거야. 둘이면 충분할텐데."
"나는 필드의 모든 카드를 파괴할거거든."
"!"
악마가 손짓하자, 날카로운 창 세개가 펼쳐졌다. 하나는 하늘을, 하나는 허름한 신전을, 마지막 하나는 자신을 겨누었다.
"없애버려라."
누토스의 날카로운 창이 섬광을 터트렸다. 눈부신 빛이 걷히자, 지상에는 푸른 불꽃의 잔해만이 조금 남아있었다. 지상에는.
"이걸로 필드는…… 어?"
"밀키의 효과."
눈부신 빛이 하늘을 찔렀음에도 창은 저 멀리 은하까지 닿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다.
"묘지에서 천사족 몬스터 둘을 제외하고 파괴되지 않아."
"그럴수가……."
레니의 묘지에서 [신성한 구체] 두 장이 빠져나왔다. 그녀의 묘지에는 천사족 몬스터가 아직 다섯이나 남아있다.
'아냐 어쩌면…….'
티에라의 효과로 세라와 레니는 엑스트라 덱에서 몬스터를 셋 골라서 묘지에 보냈다.
'8장은 된다고 생각해야겠지.'
앞으로 4번은 파괴되도 멀쩡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띵해졌다.
'뭐 이런 지랄맞은 경우가 다 있어.'
티에라를 괜히 자폭시켰다. 남겨두고 공격해서 400이라도 데미지를 줘야했는데, 괜히 이상한 자존심에 일을 그르쳤다.
'에휴. 어쩔 수 없지!'
"묘지에서 "인페르노이드"를 셋 제외하고, [인페르노이드 네헤모스]( LV 10 / ATK 3000 ) 특수 소환!"
푸른 화염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악마들의 영혼과 육체를 양식삼아 세라는 또다른 악마를 불러낸다. 새빨간 틀이 달린 기계부품들이 서로 결합한다. 창백한 색의 화염 속에 새빨간 피빛 짐승이 나타났다.
"네헤모스의 효과 발동. 자기를 뺀 나머지 몬스터를 모조리 파괴시킨다."
화륵 타오른 불길의 끝이 하늘로 올라가 퍼졌다.
"파괴되는 대신 묘지에서 [신비의 대행자 어스]와 [창조의 대행자 비너스]를 제외하겠어."
"그럴 줄 알았지. 배틀이다!"
네헤모스가 뱀처럼 꽈리를 튼 몸을 펼치며 커다란 날개를 퍼득였다. 날개 아래에 숨은 수십 다발의 다리가 하늘높게 치솟았다. 다리의 끝에는 날카로운 화살촉 같은 머리들이 달려있다. 그 뾰족한 머리들은 동시에 입을 벌리며 짙은 붉은 색의 화염을 쏘아보냈다.
"파괴되는 대신 [힘의 대행자 마르스]와 [죽음의 대행자 우라누스]를 제외."
"네헤모스는 파괴된다."
하늘을 찌르려고 한 불화살은 도리어 지상에 떨어졌다.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의 비가 새빨간 괴물을 짓이겼다.
'남은 천사족 몬스터는 넷!'
"메인 페이즈2. 묘지에서 [인페르노이드 네헤모스]( LV 10 / ATK 3000 ) 소생!"
세라는 다시금 세 장의 "인페르노이드"를 제외하고 네헤모스를 소생시켰다.
"불태워라!"
"[신성한 구체]와 [신성기사 파샤스]를 제외."
화염이 하늘을 덮쳤지만, 저 거대한 은하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걸로 파괴 내성은 한 번 뿐.'
"턴 엔드."
--- 레니 스탈리 ( LP : 700 ) ---
몬스터 : □(#)[밀키웨이]
마법 / 함정 :
패
--- --- ---
--- 세라 밀리언스 ( LP : 200 ) ---
몬스터 : □[인페르노이드 네헤모스]
마법 / 함정 :
패
--- --- ---
"언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잘 알겠어."
이제 한 번만 더 부숴버리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세라를 바라보며 레니가 오른손으로 안경 중앙을 건드렸다.
"언니 묘지에 남은 "인페르노이드"는 넷. 그리고 내 묘지에 남은 천사족 몬스터는 파샤스 2장."
"그래. 한 번만 더 파괴하면 끝이지."
"정말 그럴거라 생각하는거야?"
"뭣."
"드로."
의미심장한 말을 한 레니는 드로한 카드를 곧장 발동시켰다.
"[이차원에서의 매장] 발동."
"앗."
"제외된 천사족 셋을 묘지에 보내겠어."
네헤모스의 효과를 발동하면 저 카드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네헤모스를 릴리스해야 한다. 네헤모스가 사라지면 더이상 세라를 지킬 것은 없다.
"밀키로 네헤모스를 공격."
"으윽!"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세례가 내려졌다. 광활하게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화살. 상스러운 악마를 불태우며 화살 몇 개는 세라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잇. 따갑다고!"
사람이 맞았더라면 커다란 부상을 입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초월체가 된 이후로 그녀의 살가죽이 훨씬 두터워진 텃에 어렵지않게 몸에서 빼낼 수 있었다.
"밀키를 파괴하는 대신 묘지에서 파샤스 둘을 제외."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이걸로 턴 엔드."
세라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녀석 묘지에는 천사족 몬스터가 셋. 아니야. 어쩌면 티에라 효과로 하나 둘 정도 묘지에 보내졌을지도 모르지.'
네헤모스를 소생시켜 효과를 발동해도 밀키는 파괴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전투 파괴를 시도했다간 네헤모스만 깨지는 수가 있다.
'그럼 소생도 못 시키고 정말 끝장이야.'
세라의 묘지에는 네헤모스의 소환을 위해 제거할 "인페르노이드"가 세장밖에 남아있지 않다. 만약 네헤모스만 파괴되는 날에는 그대로 끝장이다.
'누토스 한 장만 묻고 티에라를 두 장 묻어서 성역만 파괴해야 했어. 이 얼간아!'
하지만 자책해도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턴은 지나서 세라 자신의 손에 돌아왔다.
"후."
아무리 봐도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세라에겐 아직 남은 것이 하나 있다.
'지금 내 덱에는 저녀석을 단숨에 무찌를 카드가 있긴 해.'
[인페르노이드 벨제불]. 아니면 데카트론이라도 뽑아서 벨제불의 효과를 카피해 밀키웨이를 치워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파괴내성처럼 뭐가 남아있을지 모르지. 그리고 뽑을 확률도 얼마 안 되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하급 몬스터를 잔뜩 넣어놓는 것이였다고 세라는 후회했다.
그 때였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푸른 화염 속에 무엇인가가 비쳤다.
"어?"
익숙한 모습. 주변 여성들에 비해 키가 큰 세라의 가슴 아래로밖에 키가 되지 않는 작은 소녀였다.
"넌……."
어째서 그런 환각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너무나도 뜨거운 열기탓에 생긴 아지랑이를 사람이라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습은 분명 세라의 기억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알겠어."
세라는 아직 말도 꺼내지 않은 소녀를 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드로!"
새빨갛게 타오르는 화염이 그녀를 휘감았다.
"묘지에서 "인페르노이드" 몬스터 셋을 제외. [인페르노이드 네헤모스]( LV 10 / ATK 3000 )를 특수 소환한다!"
다시금 일어서는 기계 악마. 새빨간 피빛 짐승이 다 부숴진 상태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다시 자폭할 생각?"
"아니. 누가 자폭한데."
"음?"
"잊은 거 아냐. 나도 너처럼 초월체란 사실을!"
"설마……."
"네헤모스를 릴리스한다!"
그녀의 손에 잡힌 처음 보는 카드 한 장. 그녀가 네헤모스를 집어 묘지로 보내자, 방금 막 드로한 카드를 중심으로 그녀의 손이 새까맣게 불타올랐다. 인간이었을 때보다 살가죽이 훨씬 단단해졌음에도 엄청난 고열에 팔이 타버릴 듯 했다.
"큭!"
너무나도 뜨거운 불길에 세라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하지만 행동을 취소할 수도 없다. 세라는 화상을 견뎌내며 이를 악물었다.
"설한을 녹이는 바람. 어둠을 몰아내는 불꽃. 새파랗게 타올라라!"
세라의 몸에 뜨겁게 타오르는 쇳덩이가 들러붙었다. 그것은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 사슬은 그녀의 심장을 관통하고 새파랗게 타올랐다.
"나의 화염! (#)[염열의 스트로리]( LV 6 / ATK 2000 )"
사슬을 끊고, 새파란 불덩이가 그녀의 앞에 떨어졌다. 새까만 머리의 자그마한 소녀. 화염은 그녀의 등허리 밑으로 늑대의 꼬리처럼 흔들리며 타올랐다.
"그게 언니의 링커. 하지만 공격력은 훨씬 낮아졌어."
"스트로리의 효과 발동."
까만 머리 소녀의 손에 푸른 화염이 타올랐다. 화염은 어깨까지 올라가, 그녀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묘지의 [인페르노이드 네헤모스]를 장착한다."
"장착……?"
"(#)[염열의 스트로리]( LV 6 / ATK 2000 → 5000 )의 공격력은 장착한 몬스터의 공격력만큼 상승하지."
"공격력 5000!"
"짜잘한 데미지로 이길 생각은 없다고 했었지."
스트로리는 불타는 두 손을 들었다.
"배틀. 공격해라!"
지상에서 하늘로, 푸른 화염이 높게 치솟았다. 푸른 화염은 하늘을 불태우며 달과 별빛의 바다를 새하얗게 만들어버렸다.
……
머리가 아프다. 원인모를 진동이 바닷물을 뒤흔들고, 심해마저 떨려오는 극심한 흔들림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크윽."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온의 오른손에서 타오르는 검은 화염은 그의 손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불러라……."
가온의 귀에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빛으로 칠해진 영혼의 바다 속에서 가온은 끊임없이 짓눌렸다. 타오르는 듯한 격통과 심장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 상반되는 격통이 그를 쑤셔온다.
까딱 잘못했다간 정신을 잃을 것만같은 중압감이 그를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히려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 한채, 자신의 것도 아닌 카드 한 장을 쥐고 그는 침전했다.
"크으으윽!"
가온이 눈을 부릅 떴다. 이대로 당할수는 없다. 눈 앞에 있는 괴물을 해치우고, 그 다음은 그의 동료였던 흑발의 여자도 물리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서 듀얼을 끝내고 이 새까만 감옥을 부숴야만 한다.
"[익센트릭 데몬]( LV 3 / ATK 800 ) 소환."
가온의 앞에 나타난 것은 보랏빛 피부의 악마 소녀였다.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 물에 푹 젖어버려 허둥대기 시작하자 SS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냐. 그 몬스터는."
"데몬을 릴리스 하고 효과 발동. 바리언을 파괴한다."
악마 소녀는 한 손에 쥔 화려한 지팡이를 휘둘렀다. 물살에 막혀 의도한 것의 반쯤 휘어진 지팡이가 그린 곡선에서 날카로운 빛이 쏘아졌다. 그 빛은 바리언의 갑옷 틈새를 꿰뚫고 지나갔다.
"멍청하긴. 네가 파괴해야 할 몬스터는 그게 아닐텐데?"
"너한테서 뺏은 이 카드를 쓰려면 이렇게 해야 하거든."
"뭐라고?"
어드마이어 데스 사우전드. 서로의 묘지에서 같은 랭크의 엑시즈 몬스터를 하나씩 선택해, 그보다 랭크가 높은 카오스 몬스터를 소환한다.
"네가 그걸 쓰겠다고? 헛소리 하긴."
SS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친다.
"랭크업이 허락된 것은 우리들뿐. 그중에서도 어드마이어 데스 사우전드를 쓸 수 있는 건 나정도는 되야한다!"
SS는 침략의 선봉으로 달려온 남자다. 엑시즈 차원에서도 내로라하는 강자인 SS가 겨우 사용하는 카드가 바로 어드마이어 데스 사우전드. 이 기괴한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오로지 코트 메달리아에게 선택된 인물 뿐이다.
"그게 어쨋다는 거냐."
하지만 가온은 그따위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네가 할 수 있는 걸 내가 못 할거라고 생각했냐!"
가온은 당연하단 듯이 초록색 카드를 뒤집었다.
"[RUM-어드마이어 데스 사우전드] 발동!"
"네가 감히 그걸!"
새까만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피비린내 나는 물을 빨아들이며 소용돌이는 점차 거대해졌다. 바닷속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 가온은 그 사이에 불쑥 오른손을 넣었다.
"으으윽!"
살가죽이 모두 화상을 입고 타버릴 것 같았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가온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손이 나간 것이었다.
"기다려라."
새까만 화염이 그의 팔을 타고 치솟았다. 이미 그의 팔은 다 타버려서 감각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불속에서 카드 한 장을 빼내자, 그와 SS를 감싼 바닷물이 일제히 말라버렸다.
"이게 무슨!?"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었다. 가온과 싸우며 이런 일이 이미 있었다. SS가 몬스터를 소환하며 방출해낸 힘을 가온이 모두 밀쳐내고 소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것은 지금과 비교하면 극소량이었다. 링커조차 불러내지 않았던 그 때와 지금은 바닷물의 압력부터가 다르다.
"설마 그것때문에?"
가온이 링커를 못 쓰게 된 원인을 SS는 다시금 절감했다.
"내 피를 마시고 다시 눈을 떠라!"
그 사이, 가온은 불꽃에서 꺼낸 카드를 들고 외쳤다. 그를 중심으로 바닷물을 모두 증발시킨 화염이 정체를 드러냈다.
화염의 정체는 푸른 나비의 날개를 가진 한 소녀. 새까만 흑발을 허리 아래로 늘어트린 그녀가 살며시 걸음걸이를 걸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날개를 보며 가온은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나의 화염! (#)[CX 블레이징 모르포]( Rank 5 / ATK 2000 ) "
새파란 화염을 걷어내고, 소녀는 피식 웃었다.
- 얼마만이냐.
"그러게말이다."
모르포는 눈 앞의 거대한 상어를 보았다.
- 나오자마자 또 바쁘게 뛰어야겠구만.
모르포는 목을 으득거리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가온은 꼬마가 본격적인 운동을 하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듯한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박살내버리자고."
- 너 방금 웃었냐.
"그럴 때가 아니지. 배틀!"
- 오냐. 내가 이번 한 번만 봐준다.
둘은 바닷물을 잃고 새까만 허공을 헤엄치는 괴물 상어를 노려보았다.
"가라!"
- 트라이!
소녀가 한 걸음에 일 미터 넘게 뛰어넘어 날개를 퍼득이며 높게 날아올랐다.
- 봄버어!
공격력은 메가로 샤크가 근소하게나마 더 높다. 약한 몬스터를 강한 몬스터에게 들이박는 자폭 행위. 그런 무의미한 짓을 가온이 지금 할리가 없다. 분명히 무엇인가 있다. SS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모르포의 주먹이 괴물을 향하는 그 순간, SS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포세이돈 웨이브] 발동. 네년의 공격을 막는다!"
SS의 발 아래에서 폭포수가 치솟았다. 메가로 샤크를 후려치려던 그녀의 주먹은 방대한 약의 격류가 치솟음에 따라 막혔다.
"그리고 가온! 네놈에게 데미지를 주지!"
"그렇게는 안 되지. 패에서 [차우차우짱]을 버리고 효과 발동!"
"!!!"
"네 함정의 발동을 무효로 하고 파괴한다!"
쏟아져내리는 급류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모르포. 하지만 그녀는 오른팔을 뒤로하고서 다시금 앞으로 되감았다. 그녀의 주먹에 새빨간 화염이, 새까맣게 불타오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 뒤져라!
사나운 목소리와 함께 주먹이 메가로 샤크의 머리에 꽂혔다. 소녀의 불꽃이 폭포수를 모두 증발시켰고, 새하얀 증기가 터져나왔다. 그 증기는 상어의 몸 속에서도 맹렬하게 터져나오며 그의 몸을 육편으로 분해해 폭발시키기에 이르렀다.
"모르포의 효과 발동! 오버레이 유닛을 하나 제거하고, 네 몬스터의 공격력을 0으로 한 다음 그 공격력을 모르포에게 부여한다!"
메가로 샤크의 공격력 2100. 모르포는 그걸 합한 4100의 공격력을 가지게 되었다.
"공격력 4100……. ( LP : 100 → 0 )"
새파란 청년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화염의 덩쿨 속에 휩쓸렸다.
……
염열의 스트로리
LV 6 / 화염 속성 / 악마족 / ATK 2000 / DEF 1400
① : 이 카드가 어드밴스 소환에 성공했을 경우에 자신 묘지의 몬스터 1장을 선택하고 발동할 수 있다. 그 몬스터를 장착 카드로 취급하고 이 카드에 장착한다
② : 이 카드의 공격력은 이 카드의 효과로 장착한 몬스터의 공격력만큼 상승한다.
CX 블레이징 모르포
Rank 5 / 어둠 속성 / 악마족 / 엑시즈 / 효과 / ATK 2000 / DEF 1400
LV5 몬스터X2
이 카드는 자신 필드의 랭크 4의 엑시즈 몬스터에서 엑시즈 소재를 2개 제거하고, 그 엑시즈 몬스터의 위에 겹쳐 엑시즈 소환할 수도 있다.
① : 1턴에 1번, 이 카드가 상대 몬스터와 전투를 실행하는 데미지 계산 전에 이 카드의 엑시즈 소재를 1개 제거하고 발동할 수 있다. 턴 종료시까지, 그 상대 몬스터의 공격력을 0으로 하고, 그 원래 공격력만큼 이 카드의 공격력을 올린다.
② : 이 카드의 엑시즈 소재가 없을 경우에 발동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는 상대 묘지의 "RUM" 카드 한 장을 제외하고 발동할 수 있다. 이 효과는 그 카드의 발동시의 효과와 같아진다. 이 효과는 상대 턴에도 발동할 수 있다.
드디어 주인공측 링커들이 나왔습니다.
사실 둘 다 2안인데, 1안은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