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야기는 이걸로…….”
이야기도 이 정도면 끝일까. 서로 간에 주고받는 대화도 없어져 그리 생각한 마미조는 술을 담았던 잔을 탈탈 털어내고 호리병의 뚜껑을 닫으며 일어나려 들었다. 접힌 무릎이 서서히 각도를 높여가는 순간, 마미조는 멀리서 안겨든 무언가에 의한 반동에 의해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만.
“무슨 일인게냐?”
마미조는 품에 안겨든 부하 너구리를 살살 쓰다듬고는 물었다. 무슨 일에라도 휘말린 것인지, 벌벌 떨어대며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들고 있었다. 쓰다듬는 손길을 거부하기까지 해 얼른 손을 떼고는 마미조는 다시 물었다.
“아-!”
그 순간 들려온 아큐의 목소리. 마미조와 레이무, 둘은 단숨에 소리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아큐는 부드러운 너구리 꼬리의 감촉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손을 쪼물대고 있었다. 마미조는 얼떨떨한 눈치로 부하와 아큐를 번갈아 보았다.
“저기, 마미조 씨- 너구리 좀 다시 여기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
“거기까지 들리나요? 저기요~”
“그만 됐네.”
마미조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가리개와 마개를 풀었다. 감각이 자유로워진 아큐는 마미조의 가슴팍에 버둥버둥 매달려있는 너구리를 다시 안아들려 들었다. 마미조는 몸을 홱 뒤로 빼곤 주저하더니 말했다.
“……너구리는 좀 살갑게 대해주지 않겠는가.”
“꼬리만 만졌는데…….”
“성범죄자 같은 얼굴로 그런 말은 그만두게. 설득력이 없어.”
마미조는 내주지 않겠다는 듯, 부하너구리를 꼬옥 끌어안은 채로 말했다. 그런 단호한 태도에 아큐는 아쉬운 듯 혀를 다시고, 부드럽던 꼬리의 감촉이 남아있는 손에 시선과 미련을 뒀다. 이내 손가락으로 마미조의 꼬리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그럼 잠시 그 꼬리에라도 파묻히고 싶어요.”
“……아큐 처자, 자네 의외로 변태스럽구만.”
“아직도 손에 푹신푹신한 감촉이 남아서…. 후흐흐…….”
중증이구먼. 중얼거리던 마미조는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레이무 쪽으로 돌리며 어떻게 좀 해 달라 살며시 입을 뻐끔거렸다. 팔짱을 낀 상태로 관망만 하던 레이무는 이내 대답했다.
“뭐, 왜 날 봐. 나보고 뭘 어쩌라고.”
“아니, 어떻게 좀 해주지 않겠는가?”
“내가 뭘 해. 쟨 인간인데.”
“나 빼고 전부 다 한 통속이로군.”
“그러지 말고 레이무, 너도 이리로 와봐.”
잔뜩 고양되고 흥분한 표정으로 아큐가 레이무를 잡아당겼다. 물론 인간 따위의 힘에 끌려갈 레이무가 아닌지라, 힘이 부친 아큐는 낑낑 당기다가 이내 미끄러졌다. 다행이라면 넘어지는 방향이 마미조의 꼬리 쪽이었다는 것일까.
자신 방향으로 넘어지는 아큐를 보며, 마미조는 순간 꼬리를 움직일까 하다 말았다. 아큐가 땅바닥에 넘어지면 다칠 이유도 있었고, 옆에서 레이무가 꼬리를 비켰다간 너부터 죽여버리겠다는 눈으로 자신을 째려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그 찰나의 순간을 아큐가 눈치 챌 일은 없어, 그녀는 무사히 꼬리에 착지했다.
“짱이야…. 그냥 여기서 살래…….”
푹신한 감촉이 느껴지는 꼬리에 얼굴을 파묻은 아큐는 볼을 부비부비 부벼대기 시작했다. 마미조는 아큐가 왜 이렇게까지 거리낌 없이 달라붙는지 고민하다가 쓸모없는 생각임을 깨닫곤 체념하여 픽,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한동안 파묻힌 채여도 일어날 기세가 보이지 않자, 레이무는 꼬리에 계속 앵기고 있는 아큐의 옷깃을 잡아들어 올렸다. 아큐는 저항했으나, 당연히 레이무의 힘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돌아가자. 일도 끝났으니까.”
“조금만… 더…….”
“날이 아직 차. 계속 그러다가는 얼어 죽어.”
레이무의 말대로, 날은 아직 서늘했다. 백옥루로 아직 봄이 모여 있는 탓인지 온도는 영하에 육박하고 있었다. 레이무가 자신을 편들어주는 의외의 상황에 마미조는 들뜬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그렇다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닌가 라고. 그렇게 설득을 시도하는 마미조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집으로 돌아가서 마음껏 해.”
레이무가 후에 말을 덧붙일 때까지는. 마미조는 귀를 살짝 후벼대며 지금 들린 것이 사실이냐 라는 뉘앙스를 취했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지금 내가 잘못들은 겐가?”
“아큐, 저쪽이 못 들었나봐. 다시 말해줄게. 그건 집으로 돌아가서 마음껏 해.”
“그 말은, 아큐 처자를 따라가야 한다는 소리…….”
“불만 있어?”
“아니, 없네.”
마미조는 체념하기로 했다. 지금 여기에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가는 자신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돌아가는 때까지 꼬리에 일을 부담이나 줄이려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했다. 꼬리가 사라지자마자 아큐는 살짝 입을 다시며 아쉬워하는 눈치를 보였으나, 금방 기대를 삼키며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분명 행복에 겨운 얼굴인데도 마미조의 입장에서는 하도 흉흉하게 보이는 표정이라, 뒷목에 소름이 돋으려 그랬다.
마미조를 아큐의 저택에 들일 수 있던 표면적인 이유는 구문사기의 작성이었다. 일단은 후타츠이와 마미조가 요괴임이 밝혀졌으니 구문사기에 작성해야 되는 게 옳지 않은가. 나름대로는 설득력 있는 이유라 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큐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실제로 저택에 들인 이유는 그냥 부드러운 꼬리에 파묻히고 싶다는 사심 듬뿍 어린 욕망이었다.
“씻으러 가죠!”
“……지금 내가 잘못 들은.”
“씻으러 가요!”
마미조가 반문하자 아큐는 확인사살의 의도로 다시 한 번 외쳤다. 이것까지 체념하여 받아들여야 하는가. 마미조는 진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요생 통틀어 이런 식으로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될 줄은 전혀 몰라 그 황당함은 더했다. 아큐는 마미조의 팔을 잡고 흔들어대며 얼른 꼬리를 꺼내라 보채대었다. 좀 더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결의 꼬리에 안겨서 자고 싶다는 욕망이 듬뿍 담긴 행동이었다. 그 복슬복슬한 털을 빗질하고 싶은 충동에 뒤덮여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난 먼저 자러 갈게.”
“어? 어. 그래.”
욕실로 들어가는 둘에게 레이무는 덤덤히 말했다. 구제를 원하는 마미조의 손길 따위는 무시하며 둘의 방과는 다른 곳의 문을 열었다. 자신이야 어쩌다가 저택까지 들어서 한 밤을 지새우게 된 것 뿐이니까. 아큐에게 살짝 안전장치까지 걸어두었으니 안보에서도 별 문제가 없을 듯 해, 그냥 빨리 잠을 청하기로 했다.
“…….”
방에 들어선 레이무는 되도록 빨리 잠을 청하고 싶었으나, 그리 쉽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옆방에서 꼬리에 파묻힌 아큐가 헤실거리는 소리나, 그런 부담스런 행각에 쩔쩔매는 마미조의 목소리 탓도 있었지만, 주된 이유는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코스즈가 능력을 개화했다. 아큐에게 듣기로는 온갖 글자를 읽는 정도의 능력이라더라. 종류까지야 그렇게까지 관심은 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것은 코스즈가 요괴가 될 조짐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능력의 개화는 곧 비일상과 얽혀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능력을 개화한다고 하여 모두가 요괴가 되는 것은 아니다만, 레이무는 머릿속에 감도는 불안을 쉽게 떨칠 수는 없었다. 후타츠이와 마미조가 요괴가 되지 않게 해준다고는 말했지만, 확신조차 아직은 없었다.
“무사하길.”
때문에 레이무는 바라는 점을 중얼거렸다. 주위 사람이 어떠한 형태로든 다치는 꼴은 더 이상 사양하고 싶었다. 자신이 아무리 강해도, 전부를 헤아려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부디.”
그 아이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염원을 담아 레이무가 다시 말했다. 바싹 깍지 끼고 있던 손을 더욱 맞붙여 살며시 기도했다. 요괴가 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불행이니까.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레이무는 천천히 잠에 들었다. 마음속의 갑갑함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이라, 별로 좋지 않은 꿈을 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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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에피소드는 목 없는 말 요괴랑 카자미 유카와의 전투
이쪽 레이무가 얼마나 쎈지 체감하게 될 에피일 겁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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