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테스트
유미는 착한 여동생이 되기 위해 하쿠레이 신사로 향했다. 신사의 무녀인 레이무는 분명, 인간과 요괴를 가리지 않고 무서운 존재였지만, 그녀에겐 언니를 거스를 만한 힘과 배짱이 없었다. 까라면 까는, 굴종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던 유미는 무녀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유카의 집을 나선 유미는 하늘을 날아 태양의 밭을 지나 인간 마을도 지나쳤다. 그러는 와중에 호기심이 발동한 유미는 지나쳐가는 마을 주민의 스테이터스를 감정으로 훔쳐봤다.
성명: 타다노 카즈하라
종족: 인간
성별: 남자
연령: 38세
직업: 前야구선수. TDN
힘: 880
지력: 210
체력: 1200
민첩: 640
정신력: 2000
마력: 1100
특수 스킬: 요츤바인.lv20
스킬: 이퓨즈볼.lv99, 호모비 출연.lv8, 알아챔.lv12, 쾌락내성.lv0, 드래프트 지명 취소.lv7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평범한(?) 마을 주민이 자신보다 스테이터스 수치가 높았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유미는 이곳 환상향의 주민들이 강함이 이상하고 생각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인간이 저리도 강해질 수 있는 걸까. 실제로 유미는 자신 보다 작은 소녀에게도 진 경험이 있었다.
'여긴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터무니없는 곳이야.'
이렇게 수치화된 스테이터스를 보니, 그 터무니없음이 더욱 실감이 되는 유미였다. 평범한 인간이 이런데, 요괴. 그것도 정점에 가까운 대요괴라면 어떨까? 유미는 앞으로도 평생 언니인 카자미 유카에게 대들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 대요괴와 맞먹는 괴물인 하쿠레이 레이무.
유미는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강함을 지녔다는 그녀의 스테이터스는 어떨지에 대해 상상도 하기 싫어졌다. 유카와 마찬가지로 감정되지 않거니와 그 편린조차 알아 볼 수 없겠지.
그런 번뇌를 머릿속에서 억지로 지워내며 하쿠레이 신사로 향하는 걸음을 빨리했다. 시킨 것을 후딱 헤치우고, 얼른 돌아가야지. 괴물들로 득시글한 환상향에서 살아 남으려면 절대 딴 생각을 해선 안 되는 법이었다.
*
이제 막 짐승길에 들어선 유미는 목표인 하쿠레이 레이무를 빠르게도 찾아냈다. 신사에 가까워질수록 겁이 난 유미가 땅에 내려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머리가 두 쪽 난 요괴와 함께 공중에서 낙하한 것이었다.
그 인상적인 등장에 유미는 등골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레이무는 그런 유미를 차가운 눈으로 훑어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헤에-. 유카의 똘마니인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공포심으로 굳어진 유미는 얼른 정신을 차려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좋은 날씨네요."
"그런데?"
나름 용기를 쥐어짜내 한 말이었지만, 레이무의 반응은 영 신통찮기만 했다. 이러다 머리가 두 쪽 나서 떨어진 요괴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에 유미의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그런 유미에게 레이무가 다가오면서 물었다.
"넌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 그냥.. 신사에 조금 들릴까~ 하고."
"적당히 지어낸 대답 같은데? 정말이야?"
"네엣!"
유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피력했다. 그러나 '흐응?'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레이무. 불제봉으로 툭툭, 제 어깨를 치며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유미의 안면에는 식은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렸다.
이거 죽겠구나. 하는 직감에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 했다. 그래도 언니가 시킨 것만은 해놔야 한다는 의무감에 그녀는 두 눈을 밝히며 감정 스킬을 시전 했다.
눈에서 쏘아지는 빛이 레이무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유미의 눈앞에 레이무와 관련된 스테이터스가 표시된 콘솔창이 떠올랐다.
성명: 하쿠레이 레이무
종적: 초인간
성별: 여자
연령: 56세
직업: 하쿠레이 무녀. 가난 신을 등에 업은 무녀. 요괴 학살자. 깡패. 월인 버스터.
힘: ???
지력: ???
체력: ???
민첩: ???
정신력: ???
마력: ???
특수 스킬: 몽상천생.lv??, 용신의 가호.lv??
스킬: 비행.lv??, 퇴마술.lv??, 강신술.lv??, 하쿠레이 비술.lv??, 봉인술.lv??, 결계술.lv??, 초인강도.lv??, 증폭.lv??, 직감.lv??, 강운.lv??, 예지.lv??, 초감정.lv??, 탄막.lv??, 스키마.lv89, 어검술.lv85, 불굴.lv77, 광포화.lv75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정확한 수치까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 유카의 감정 결과와 같이 직업란의 호칭만큼은 제대로 보여 지고 있었다. 그 시선을 알아 차렸는지, 레이무의 눈이 얼음장 같이 싸늘해졌다.
"그런 거구나. 역시.."
위기를 감지한 유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 직후, 회전하면서 날아오는 불제봉에 머리를 강타 당해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불제봉을 회수한 레이무는 다시 그걸로 제 어깨를 툭툭 치며 한심하다는 눈으로 쓰러진 유미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시킨 건지 뻔하긴 하지만... 감히, 숙녀의 정보를 읽으려 하다니."
오늘 아침, 갑자기 콘솔창이 뜨는 둥 게임소설 같은 풀 다이브 mmorpg같아진 환상향에 조금. 아니,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던 레이무였다. 쓸데없이 생겨난 콘솔창에 자신의 정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정보까지도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곧 자신의 정보가 타인에게 읽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정보란 것이 사생활이라고 할 정도까지 세세하진 않다지만, 직업란에 적혀진 호칭들이 문제였다. 그것은 분명 불명예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호칭들이었다. 아주 당연한 하쿠레이 무녀라는 것만 빼고는.
그래서 감정 스킬로 자신의 불명예스런 호칭을 엿본 자들을 가리지 않고 처벌하는 일을 반복 했었고, 그러던 차에 유미를 만난 것이었다.
불제봉에 맞아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있는 유미는 레이무의 새로운 희생자였던 것이다. 자신의 정보를 엿본 것 때문에 무심코 욱해서 때려버리긴 했지만, 유미를 이대로 내버려 두긴 조금 걸리는 레이무였다.
"저 녀석. 저래 뵈도 전생자에 유카의 여동생이기도 하니까."
작게 한숨을 내쉰 레이무는 유미를 번쩍 들어 그대로 어깨에 들쳐 멨다. 그리고는 그대로 자신의 신사를 향해 날아올랐다. 이 빛은 나중에 톡톡히 치르게 해 줄 거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
"유카리, 쳐들어가기 전에 나와!"
별채의 안방 한 구석에 유미를 눕혀 놓은 레이무는 그렇게 천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러자, 잠시 후 호출에 응하듯 허공에 검은 선이 그어지더니 양끝에 리본이 달린 악취미인 스키마가 생겨났다.
그 스키마 안에서 예상한 대로 유카리가 뿅! 하고 상반신을 드려냈다. 유카리는 그렇게 모습을 드려내자 마자, 바로 분노를 담은 불제봉에 머리를 가격 당했다.
"아야야얏!"
불의의 일격으로 눈가에 눈물이 잔뜩 고인 유카리가 얻어맞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음했다. 그리고는 볼을 한껏 부풀리면서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뭐야~! 기껏 불러내 놓고 갑자기 머리를 때리다니..!"
"맞을 짓 했으니까 때린 거야."
"맞을 짓?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레이무."
부루퉁해하며 묻는 말에 레이무는 한 번 더 딱! 소리 나게 유카리의 머리를 불제봉으로 때렸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레이무는 그런 유카리에게 잘 들으라는 듯 또박또박한 어조로 얘기했다.
"이런게 환상향 개편이라는 거라면 난 절대 반대야."
"무슨.. 나 혼자 결정한 것도 아니고, 현자들이 다수결로 정한 건데."
"그래서 혼자서는 결정된 사안을 물릴 수 없다?"
"바로 그거야! 게다가 지금은 아직 베타 테스트 같은 거고."
레이무는 심통 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차피 자신은 중대한 결정에 왈가왈부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고, 그저 이변이나 해결하는 무녀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 개편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 줄이야.
이번만큼은 현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베타 테스트라면 아직 개선될 요지가 있다는 거지?"
레이무가 확인 차 물었다.
"응. 며칠 정도 상황을 보았다가 조금씩 고쳐나갈 생각이야."
그리고 유카리의 입으로 확답을 얻어낸 레이무는 입가를 틀어 올리며 번뜩이는 시선으로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개인 정보를 타인이 볼 수 없도록 해봐. 그게 무리라면 적어도 호칭만이라도 좋아!"
그것은 레이무에게 있어 절실한 요구였다. 그런 무녀의 생각쯤은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유카리는 여유 있는 얼굴로 미소 지으며 답했다.
"좋아. 그거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