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8월 28일에 정발되는 7권 결말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에필로그
경매가 끝나고 며칠은 아무일도 없이 지나갔다.
나는 평소처럼 출근해,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는 은행의 대금고(貸金庫)에 맡겨져 있다. 시오리코씨는 모친으로부터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어떨지,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다.
비블리아 고서당이 유명한 희귀본을 손에 넣었다고 아는 인간은 거의 없다. 허패당(虚貝堂)의 스기오나 타키노들이 사정을 덮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매 때 낙찰받은 책이 가짜라고 요시하라가 아우성친 탓에 우리가 다액의 빚을 짊어졌다는 소문이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정정하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같지만, 진짜가 손에 들어온 사실이 알려지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수억엔의 가치를 가진 희귀본이 젊은 자매 둘이 사는 시노카와가에 있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는.
요시하라 키이치는 그 뒤로 우리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매가 있던 날에 나가쵸(帳長)에서 소란피운 끝에 가벼운 심장 발작으로 병원에 옮겨진 모양이다. 물론 생명에 지장은 없다. 다만 고령이라는 것도 있어서 만일을 위해 잠시 입원하게 됐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가 건강해지기 전에, 폴리오를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지도』
타키노로부터는 전화로 충고받았다. 그렇다곤 해도, 한동안은 평온한 날이 이어질 것 같았다.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를 둘러싼 사건에 대해서 얘기할 것은 이제 거의 없다. 앞으로 한가지만 사소한 의문은 남아있지만,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정기휴일 오전, 나는 시노카와가에 와 있었다. 오늘은 스쿠터가 아니라 전철을 타고 왔다. 돌아갈 때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벨을 울리자 들어오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을 연다. 그녀는 옷깃이 달린 품위 있는 파란 원피스를 입고 복도에 서 있었다. 소극적이지만 제대로 메이크도 하고 있다. 정돈된 얼굴에 잘 어울렸다.
"……올라와주세요"
"실례합니다"
나는 안에 들어갔다. 평소보다 긴장하고 있다. 평소의 스니커와 다른 가죽 로퍼가 벗기 힘들었다. 옷도 새로운 폴로 셔츠와 치노 팬츠로, 나로서는 다소는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있다.
오늘 저녁, 시오리코씨를 우리 집에 데려가기로 되어있다. 어머니가 빨리 회사에서 돌아오기에 셋이서 식사할 예정이었다.
경매로부터 날을 비우지 않고 만나자고 정해진 것은 내가 자택을 담보로 넣어 빚을 지었기 때문이다. 민폐를 끼쳤기에 내 어머니에게 사죄를 하고 싶다고 시오리코씨가 양보하지 않고, 좋은 기회니까 서로 제대로 인사를 하자는 일이 되었다.
일부러 자리를 마련해 인사를 하는 이상, 앞으로의 이야기는 결혼으로 흘러가겠지. 그대로 흘러가도 괜찮겠지만, 그 전에 제대로 말로 프로포즈하고 싶어서 일부러 시간을 냈다. 그녀도 같은 기분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자신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어제 전화로 들었다.
일본식 방에 들어가자 테이블에는 이미 보리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주보자 거리가 먼 것 같아서 간격을 좁히듯이 앉았다.
"아야카짱, 예비교인가요"
나는 가장 먼저 확인한다.
"예에. 오늘밤은 그대로 미즈키씨네 집에 실례하고, 조모님과 요리를 만든대요"
"자주 가고 있네요, 요즘"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미즈키가의 사람들과 완전히 친해졌다. 일가의 상태를 넌지시 찾아본 바로, 평범하게 사이가 좋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 한번 미즈키 타카시는 고맙다고 말하러 비블리아 고서당에 찾아왔다.「에이코씨와의 사이를 중재해줬으니까」라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끌어안고 있던 비밀을 부친에게 어디까지 밝혔는지는 말하지 않았고, 우리들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보다 좋은 상황이 됐을거라 믿고 싶다.
"그래서, 할 얘기라는 건……?"
시오리코씨는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꾹 말이 막힌다.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앉고 나서 아직 3분도 지나지 않았다. 조금 더 잡담을 끼우고 싶었다. 내게 있어서도 평생에 한번 있는 일이다.
"그, 그러고 보니, 한가지 신경쓰였는데"
질문을 무시하고, 억지로 화제를 바꿨다.
"지난번 경매가 끝난 뒤, 회의실에서 어머니와 작은 목소리로 뭔가 얘기하셨죠. 그건 무슨 이야기였나요?"
사소한 의문이라는 건 그 일이었다. 고서회관을 나온 뒤에는 퍼스트 폴리오를 은행에 맡기러 가거나, 미즈키 에이코가 있는 곳에 검은 복제본을 전해주고 모든 것을 보고하거나 준비가 많아서, 물어보는 걸 완전히 깜빡하고 있었다.
"그때의 이야기는……"
말을 흐려, 발밑으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그런 느낌은 없었지만, 의외로 심각한 이야기였던 걸까. 덩달아서 나도 바닥에 시선을 향한다. 옆으로 앉아있는 시오리코씨의 하얀 맨발이 원피스 아래에서 뻗어있다.
(응?)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의 몸 뒷편에 커다란 보따리가 놓여있다 우리집에 가져갈 선물이라고 하면 꽤 호화──아니, 아마 다른 무언가다. 그녀가 준비한 건 내 어머니가 좋아하는 고치(高知)의 토속주로, 아까 현관에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실은……몇년인가 자신의 일을 돕지 않겠느냐고 어머니께 권유받았어요"
"어, 정말인가요"
그런 제안이었던 건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양서를 취급한 경험이 없어도, 의뢰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한 모양이에요. 이번 일로 너희들에게 능력은 있다고 알았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아끼지 않고 전할 생각이라고……물론 무리하게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지금 당장 정할 필요도 없는 모양이에요. 후미카짱이 대학에 들어가서, 안정되고 나서라도 전혀 상관없다고"
이전에 시노카와 치에코는 이 사람을 억지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때보다는 많이 소극적인 제안이다. 어디까지 신용해도 될지는 의문이지만.
"받아들일 생각인가요, 그 이야기"
"처음에는 바로 거절할까 생각했지만……일에 대한 것만을 생각하면 같이 일하면 플러스가 되는 건 틀림없다고 생각해요. 시간도 있으니까, 어떻게 할지 다이스케 군에게 상담하는 정도는 괜찮을까 해서……"
확실히 플러스는 될 것 같다. 만약 몇년간 가게를 쉰다고 해도, 퍼스트 폴리오를 판 이익으로 그녀의 여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도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 뭐, 내게 상담이라는 거라면, 시오리코씨를 그 모친과 둘이서 보내다니 있을 수 없다는 대답밖에 없지만──.
"어라, 방금『너희들』이라 말하지 않았던가요?"
"네. 저만이 아니라 다이스케 군도 같이, 라는 거예요. 아마도, 어머니는 다이스케 군이 마음에 든 거라고 생각해요……책을 읽을 수 없는 건 결점이지만, 자신이라면 그걸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단련시킬 수 있다고"
호되게 매도당한 기억도 있지만, 그 경매를 거친 결과, 나라는 인간은 단순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아니게 된 모양이다. 다만, 멋대로 평가를 올리고 내리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권유에 간단히 넘어가는 것도 좀 어떨까 생각하네요"
"물론이에요"
하고 시오리코씨는 힘차게 고개를끄덕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는 저희들이 정하는 거예요……어머니의 제안은 그냥 제안에 불과해요"
그래, 나는 나다. 서둘러서 정할 필요는 없겠지. 차분히 생각해가면 된다.
"그밖에 뭔가 들었어요? 어머니한테"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시오리코씨는 침묵했다. 곤란한 듯이 양손가락을 맞춰서,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저기……이제 둘다 그럴 생각이겠지만, 호적에 올릴 생각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다이스케 군과, 제가……"
훼엥 방이 조용해진다. 무심코 눈을 감아 천정을 올려본다. 설마 이 일까지 그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흐름으로 말하는 건 되려 부끄럽다.
"앗, 그래도 신경쓰지 마세요. 그래서 어떻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이런 일은, 어디까지나 당사자끼리 정할 일이고"
"시오리코씨"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부끄럽건 어떻건, 이제 말해야 한다.
"오늘 하고 싶었던 말은, 그 건이에요……"
그리고 나서 말을 끊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는 또렷히 대답한다. 그리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오래토록 잘 부탁드립니다"
"앗, 저, 저야말로……잘 부탁드립니다"
약간 더듬으면서, 나도 재차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 정도 이 자세로 있으면 되는걸까. 슬슬 괜찮을 거라고 서로의 모습을 살피면서 고개를 든다. 그 뒤에는 더는 무엇을 얘기하면 좋을지 몰랐다. 최초의 5분만에 볼일이 끝나버렸다. 저녁까지 그저 마주보고 있기만 할 수도 없다. 너무 낯부끄럽다.
"그, 그러고 보니"
시오리코씨가 상기된 목소리로 과장스럽게 손뼉을 쳤다.
"깜빡할 뻔 했어요. 제쪽에서 할 말이 있었네요."
"에……?"
나는 당황했다. 결혼 이야기가 주제가 아니었던 건가? 그 이외에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퍼스트 폴리오, 결국 어머니께 팔기로 했어요. 2주 뒤에 넘길 거예요"
갑자기 책 이야기가 되서 확 힘이 빠졌다. 아니, 이것도 중요한 일이다. 뭐라해도 단순 계산으로 1억엔 가까운 이익이 나왔다. 아직 실감은 전혀 없지만, 터무니없는 대금이긴 하다.
"그래서, 팔기 전에 말이죠……"
시오리코씨는 자신의 뒤에 놓여있던 보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상당히 무거운 것 같아 쿵, 하고 탁상이 울렸다. 매듭을 풀자, 나타난 것은 본 적이 있는 붉은 가죽 표지였다.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다.
"어, 어째서 여기에……은행의 대금고에 넣어둔 거 아닌가요?"
"오늘만, 여기에 가져왔어요"
시오리코씨의 얼굴에 파앗 웃음이 퍼졌다. 어딘가 그리운, 내가 좋아하는 미소였다.
"안에 적혀있는 걸, 다이스케 군에게 얘기하고 싶어서요"
그랬었다. 경매에 참가하자고 둘이서 정한 날, 그녀는 내게 말했다──적혀있는 것을, 오랜 시간을 들여서 내게 말하고 싶다고. 나는 방에 있는 시계를 본다. 아직 충분히 시간의 여유는 있다. 아니, 이 책의 이야기라면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시오리코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는 책이 보이기 쉽게 그녀의 옆으로 이동했다. 문득, 오오후나역 앞에서 다자이의『만년』에 대해 말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이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 마침 1년이 지나려 하고 있다. 이번에는 책 한권도 들어갈 틈도 없이, 그녀에게 딱 기댔다.
시오리코씨는 책 표지를 펼쳐, 내 얼굴을 올려본다 그리고 릴랙스한 말투로 매끄럽게 말하기 시작한다.
"이전에도 조금 말했던 대로, 퍼스트 폴리오는 1623년에 간행된 셰익스피어의 희곡집이에요. 이 책은 그가 소속되어 있던 극단의 동료였던 존 헤밍스와 헨리 콘델이 추모(追悼)를 위해서 기획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서문에서는 오리지널 원고에 근거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다고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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