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붉게 물든 주위와 알 수 없는 현상으로 떠 있는 사람들, 현미경으로 찍은 꿈틀대는 붉은 아메바들.
트레일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게임은 공포 장르라고.
공포라 말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건드리지도 않을 게임이었다.
그러나 각종 리뷰를 보아하니 라라 크로프트 비슷하게.
맵을 탐험하면서 나쁜 애들 없애고 봉인하는 게임이라 한다.
장르도 내 생각과 다른 액션 어드벤처이었다.
이에 나는 안심하고 이 게임을 해봤다.
가장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뉴욕으로 어느 위압을 풍기는 건물에 말없이 들어가 안을 둘러보는 장면.
그 순간 이후로 그 건물 인테리어 전부 내 마음에 들었다.
냉혹하다고 느껴지는 그 회색빛 벽과 무미건조한 장식.
건물 안은 전체적으로 은은한 형광등이 밝히지만,
공사장처럼 생긴 곳은 공업용 조명이 군데군데 한정된 범위만을 비추어 빛의 대비가 있다. 둘 다 매력적이다.
이처럼 게임 배경 디자인은 철저히 실용성과 합리성에 초점을 맞추어 디자인되어 있어
직원 개인실마저 삭막하다고 느낄 만큼 사무용품밖에 없다.
게임을 하다 보면 나오는 일본식 고양이 도자기 인형이 매우 이질적이라 느낄 정도다.
이 게임과 비슷한 배경디자인을 가진 게임을 꼽자면 포탈시리즈와 스탠리페러블이 있다.
이 게임이 앞서 언급한 두 작품과 다른 점은 공간이 전체적으로 큼지막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이 게임에 주인공은 포탈2 인트로에 나오는 거대한 수면 인간 보존시설 규모와
엇비슷한 공간을 날아다니며 싸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게임의 적들(악당)은 '히스'에 감염된 전 시설직원들로 이루어져 있고
가끔 콘크리트 조각 덩어리와 플로피 디스크 같은 80년대 생활상에
흔히 등장하는 물건들이 나와 그것들과 싸우기도 한다.
그것들에는 어떤 특별한 힘이 깃들어져 있으며
주인공의 초능력으로 그것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시스템에 구속한다.
이 초능력을 주인공이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가 독특하다.
주인공이 어릴 때, 이 소녀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프로젝터를 켬으로써 마을을 붕괴시켰고
폴라리스라 부르는 무언가가 도와줌으로써 주인공과 동생은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 안에 초능력과 또 다른 자아가 생기게 되었다.
주인공이 가진 자아는 두 개다. 주인공 자아와 그것과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자아다.
이상하게도 그 유별난 자아는 주인공의 내적 질문에도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으며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삼자인 우리는 이 주인공을 "컨트롤" 하면서 주인공이 말을 거는 상대가
우리가 아님에도 마치 그가 대화를 시도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폴라리스'라 불리는 주인공의 또 다른 내적 자아는 맵 --(삭제됨)--
폴라리스가 주인공에게 대답하는 유일한 때는 게임 종반부, 주인공이 각성할 때다.
히스라 불리는 적에게 주인공이 "컨트롤" 당할 때, 이를 물리치고 원래로 돌아가기 위한 힘을 준다.
끝까지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폴라리스는 주인공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조력자다.
혹자는 플레이어가 폴라리스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히스'는 이 게임에서 모든 갈등이 생기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사실 속삭임이라 번역되는 게 좀 더 올바르다고 본다)
국장 등 많은 사람을 감염시키고 연방 통제국을 (이 기관 이름에도 컨트롤이 들어간다는 걸 주목하자)
거의 기능마비 수준에 이를 정도로 심각히 붕괴시켜버린다.
그러나 당연히 주인공이 모두 퇴치하고 통제국은 평화를 되찾는다.
'히스'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자. '히스'는 속삭임. 악마의 속삭임. 곧 욕망이다.
어떤 이가 꿈꾸는 욕망일까. 주인공이 히스에 지배당할 때 보이는 장면들은 마치 기계 같다.
커피, 복사, 문서 배달 심부름을 무한히 반복하는데 주인공은 군말 없이 이 지시에 따른다.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회사라는 체제에 구속된 주인공. 회사가 내리는 지시라지만,
사실 쉽게 생각해서, 모두 상사의 지시다.
상사라는 타인, 부모라는 타인, 고객이라는 타인. 타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주인공은 움직이고 있다.
보통 현실에서 어느 정도 그들의 욕망을 이루고 나면 그들은 우리에게 보상을 준다.
돈, 사랑, 명예, 실적 등. 그럼 이제 우리도 우리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움직인다.
타자의 욕망, 자신의 욕망은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이는 히스와 폴라리스의 관계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폴라리스를 번역하면 북극성이라는 것도 재밌는 사실이다.
뱃사람에게 북극성이 방향의 기준이었듯이 우리가 흔히 무언가를 선택할 때,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다.
그러나 히스에 지배당한 직원들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휘둘리는 때가 있다.
부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던가. 남들이 칭송하는 것에 자신도 아무 이유 없이 끌린다던가.
목소리도 없이 타인으로부터 무언의 압박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혹은 남의 길이 나의 길이라고 자신을 납득시키고 자신의 길을 찾길 단념하기도 한다.
'히스'를 부정적이라 생각하지 말자. 어쩌면 수많은 사람이 가는 길도 맞을 수도 있다.
남이 가라는 대로 갔는데 어쩌다 보니 그 길이 맞을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길을 나 스스로 만족하냐는 거다.
스스로 물어보자. 내가 '컨트롤' 될 때, 누가 나를 조종해야 만족하는가?
이 게임은 시종일관 히스를 적이라 간주하고 있다. 물론 게임이라는 매체의 한계겠지만,
히스와 폴라리스의 융합이나 조화를 결말로 하면 좀 더 의미 있지 않았나 싶다.
혹은 내가 이를 발견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
이를 빼고 시스템적인 면을 봤을 때, 이 게임에서 총에 달린 모드는 어떤 걸 써도 다 어정쩡하다.
기본 모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저격, 유탄, 산탄 모드가 있는데 성능이 다 그렇다.
체력을 체력 알갱이를 주워야 회복되게 만든 점은 싫다. 회복 약이란 게 없어 자꾸 죽었다.
염력과 비행 같은 초능력은 신선했다.
한 번쯤은 해도 좋을 게임이다. 메인 스토리만 봐도 충분하다.
이 게임에 나오는 건물 인테리어는 내 집도 따라 하고 싶을 정도다.
다만 창문이 없으니 창문만 추가해서 시공해달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