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실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를 옹호하거나, 이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려는 글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의문을 갖는 부분은 실존 피해자가 없는 순수 가상 창작물까지 실제 아동이 등장하는 성착취물과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점입니다.
현행 아청법 제11조에 따르면 성착취물 제작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구입이나 소지, 시청은 1년 이상의 징역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가상의 그림이나 애니메이션도 포함됩니다.
물론 같은 법정형이라고 해서 실제 재판에서 선고되는 형량까지 반드시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의견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1. 현행법의 기준은 충분히 명확한가?
현행 아청법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명백하게'라는 기준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걸까요?
예를 들어 외모는 어려 보이지만 설정상 성인인 캐릭터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성인처럼 보이지만 미성년자로 설정된 캐릭터도 있을 겁니다.
나이가 명시되지 않은 작품도 있을 테고요.
물론 대법원에서는 외모나 신체발육 상태, 작품의 설정과 제작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만으로 일반인이 어떤 표현물이 처벌 대상인지 사전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까요?
특히 제작죄의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 만큼, 처벌 대상의 기준도 그에 맞게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의 규제가 앞으로 창작의 자유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우려됩니다.
창작물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규제하는 논리가 지나치게 확대된다면, 나중에는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등 다른 창작물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 모든 창작물이 똑같은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고,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불편하거나 부적절하다고 평가되는 표현과 국가가 형사처벌까지 해야 하는 표현 사이에는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실제 피해자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적절한가?
실제 아동을 이용해 성착취물을 제작하면 그 과정에서 직접적인 피해자가 발생합니다.
반면 실존 인물을 이용하지 않고 완전히 가상으로 창작한 표현물에는 제작 과정에서 직접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없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음주운전이 있습니다.
음주운전은 사고를 내지 않아도 그 행위 자체로 처벌받습니다.
음주가 판단력과 반응 능력을 떨어뜨리고 교통사고의 위험을 높인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실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가상 표현물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가상의 캐릭터를 대상으로 한 창작물을 제작하거나 소비하는 행위가 현실의 아동에게 어떤 위험을 발생시키는지, 그 위험성이 어느 정도 확인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제 아동이 피해를 입는 경우와 직접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같은 법정형으로 규정할 만큼 두 행위의 위험성과 해악을 동등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3. 가상 표현물과 실제 성범죄 사이의 인과관계는 어느 정도 입증되어 있는가?
가상 표현물이 잘못된 성적 인식을 형성하거나 실제 아동 대상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는 어느 정도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표현물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특정 성향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원래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표현물을 소비한 것인지, 아니면 표현물을 소비하면서 그런 성향이 형성된 것인지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특정 표현물이 사람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과 실제 범죄를 증가시킨다는 주장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해 반드시 실제 범죄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행위가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그 위험의 크기나 인과관계가 충분히 확인되었다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관련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저도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4.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규제 방향
저는 순수 가상 표현물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규제 범위를 구체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AI 기술의 발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AI를 이용해 실제 사람을 촬영한 사진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이런 기술적 변화를 고려하면 단순히 그림인지 사진인지보다는 실제 인물과의 관련성이나 표현물의 현실성을 기준으로 규제 범위를 논의하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규제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실제 아동을 촬영한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으로 제작된 성적 표현물입니다. AI로 생성했든 사람이 직접 그렸든 실제 촬영물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실존 아동의 얼굴이나 식별 가능한 외형을 이용해 성적으로 묘사한 표현물입니다. 이 경우에는 그림체가 만화풍이더라도 실제 인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고 실제 사진으로 오인할 가능성도 낮은 순수 가상 캐릭터까지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해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제가 제시한 기준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를 실사풍으로 볼 것인지,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사용했는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마련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저는 가상 표현물이 무조건 무해하다거나 관련 규제를 전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적에 동의하는 것과 현재의 규제 범위 및 처벌 기준이 모두 적절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성착취물과 순수 가상 창작물 사이의 차이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 그리고 현행법이 일반인에게 충분히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련 법률이나 연구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세 줄 요약
1. 현행 아청법의 가상 표현물 판단 기준이 충분히 명확한지 의문입니다.
2. 실제 피해자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할 만큼 위험성과 인과관계가 입증되었는지 궁금합니다.
3. AI 기술의 발전을 고려해 실사와 혼동될 수 있는 표현물이나 실존 아동을 이용한 표현물 등으로 규제 대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본문
[잡담] 스압주의, 마지막 요약 있음) 가상 표현물 관련 아청법 의견을 나누고싶습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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