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삼성 라이온즈 게시판의 박지원 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라이온즈 팬 분들은 이미 게시판에서 읽어보신 분들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좋은 글이기에 퍼왔습니다. 이번 FA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심정수와 박진만. 그리고 임창용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임창용 선수에게 실망감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통산 10시즌 동안 93승 51패 168세이브 방어률 2.85 탈삼진 1039개의 놀라운 성적을 올리면서도 아직 만 29세밖에 되지 않은 투수가 이토록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박지원 님의 이말에 크게 동감을 표하며 그를 오랜만에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글이었습니다. 상당히 긴글이라 읽기 귀찮을 수도 있지만...
단 한분이라도 좋은 글을 읽으셨으면 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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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찬호선수가 fa로 텍사스로 이적후 계속 부진 할 때 버젓이 i모 스포츠 지의 1면 톱 타이틀로 <라이어 박>이라고 나온걸 본적이 있습니다.
거듭해서 부상을 숨긴 양치기 소년같은 거짓말장이라는 텍사스 지역 언론 인용기사였는데 i스포츠는 한술 더 떠서 이미 챙길걸 다 챙긴 박찬호가 목적의식을 잃어 부상 치료에 전념을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공격 했고, 국내 모 야구인의 말을 빌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부진의 원인이 있으며 야구에만 전념 해야 한다는 기사였지요.
그 기사 뿐이 아니였지요.
박찬호선수에 대한 갖은 비난과 비웃음으로 좋은 기사거리를 잡으신 한동안 기자분들은 참으로 즐거워 하셨습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 일색이었지요.
불과 6개월전만 하더라도 <코리아 특급>이라 칭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몰고 가더니 이번에는 박선수를 마치 매장이라도 시킬 듯한 기세로 몰아붙이더군요.
그러더니 이젠 그 마저도 관심 밖이 되어버린 탓인지 지독했던 기세를 한풀 꺽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극적인 인간성 재판으로 여러 선수를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굳이 누구라 말하지 않더라도 언론 횡포의 피해자들이 누군지 아실거라 믿습니다.
저는 임창용선수도 예외는 아니라 봅니다.
fa과정 중에 일이나 이혼,간통,계약파기등의 일들이 임창용선수의 잘못도 없지는 않겠지만 언론이 조장한 부분도 간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힘들고 괴로운 부분을 그렇게 까발려야만 하는 기자님들의 기분도 깨끗하지만은 않겠지만 공인이라는 이유로 그는 안그래도 힘들 일을 더욱 더 힘들어야 했습니다.
임창용 그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1994년 12월 연고지명선수로 계약금 3,000만원 연봉 1,200만원에 해태에 입단한 임창용선수는 사실 입단초기만 하더라도 180cm 68kg의 작은 체격 탓인지 그다지 주목 받는 투수는 아니었다고 기억합니다.
입단 첫해인 95시즌 그는 29 1/3이닝을 던지며 5.83의 방어율에 2패만을 기록하며 기록상으로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만 신인 답지 않은 대담성과 구위에 많은이들로 하여금 가능성을 논하게 만들었고 이듬해인 96시즌에는 49경기에 출장하며 114와 2/3이닝동안 방어률 3.22에 7승 7패를 기록하여 해태 마운드의 한축을 이루게 됩니다.
벤취와 프론트,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97년 시즌 중반이후부터는 해태의 뒷문을 담당하게 됩니다.
97년과 98년 2시즌 동안 임창용은 123경기에 나서 268과 2/3이닝을 던지며 2.10에 방어률과 22승 15패 60세이브를 기록 했고 삼진도 무려 261개나 잡아내며 많은 타자들의 고개를 떨구게 만드는 무서운 영건으로의 성장을 보입니다.
크로져로서의 위치가 확보된 98시즌은 구원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두시즌 동안 마무리로서는 승패가 많고 세이브가 적은게 아니냐는 의견을 다실 분이 계실까 모르지만 이때 까지도 마무리투수의 위치가 정립이 잘 안된 상태였기에 6회가 지나가서 이길수 있는 경기는 다 나오는게 마무리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 였고 실제로도 크로져가 3이닝이상을 던지는 경우도 허다 했으니 괜찮은 불펜투수들의 혹사가 지금보다도 더 완연하던 시기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여하튼 모두들 기억 하시겠지만 당시 임선수의 직구는 종속과 초속의 변화가 매우 적으면서 공끝의 움직임이 현란하기에 일명 <뱀직구>라 불리우기도 했는데 정말 살아 움직이는 듯한 공이라 기억 됩니다.
당시 저는 주로 포수 뒤쪽에서 관전을 했는데 스텐드에서 그의 공을 볼 때에도 150km대를 넘나드는 그의 볼의 무브먼트와 구위는 대단하였고 그를 상대하는 타자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엄청났으리라 봅니다.
정통파가 아닌 그가 공식 최고 구속 153km (비공식155km)를 뿌려대니 타격코치들도 공략법을 생각하느라 보통 곤욕이 아니였을 거라봅니다.
98년 23세의 그가 구원 1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린 그해 우리는 놀랄 만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98년 12월14일이 었습니다.
<임창용(해태) ↔ 양준혁·곽채진·황두성(삼성)> 이라는 헤드라인이 적힌 스포츠 신문을 받아든 저는 치솓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어 종로 한복판에서 일갈의 괴성을 지르며 포효한 기억이 있습니다.
작지 않은 몸에 곱지 않은 인상의 제가 형용할 수 없는 일갈을 외치며 뛰어다니자 많은 인파가 깜짝 놀라 홍해가 갈라지듯 갈라졌던 종로거리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여하튼 선수협 사태가 있기는 했지만 양준혁이라니......!!
양준혁 선수는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선수였기에 이만수씨나 장효조씨때보다 더욱 가슴이 아렸고, 삼성구단에 느낀 배신감은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고 많은 야구 팬에게 충격파가 정말 컸던 트레이드였습니다.
양팀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두 선수를 선수협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트레이드 했다는 것에 대해 야구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양준혁선수가 선수협과 간련해 구단의 지침을 따르지 않자 구단측은 마땅한 트래이드 카드를 찾고자 당시 감독이던 서정환(97.11.1 - 99.11.10 삼성감독)에 의견을 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서정환씨는 해태시절부터 눈여겨 봐온 마무리 임창용의 영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피력 했고 구단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인데 사실 선동열이 떠난 후 이종범(98~2000 日주니치 드래곤즈)마저 떠난 마당에 해태 역시 쉽게 임창용을 내 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양팀 관계자들은 순수한 선수간 교환이라고 발표했지만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얼마가지 않아서 십억원대 비자금이 삼성에서 해태로 전달됐다는 게 사실로 확인됐었습니다.
지금은 <10억이 큰 돈인가?>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돈이었기에 엄청난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양준혁 선수는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양준혁선수의 광팬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더군요.
게다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타팀에 지명되었지만 삼성에 오기위해서 상무까지 다녀온 양선수의 기분이 어디 온전 했을리가 있겠나 싶습니다.
미치지 않은게 다행이지요.
결국 해태의 끈질긴 설득으로 양준혁선수가 해태에 입단하면서 사태는 진정됐지만, 당시 파장은 대단했습니다.
때문인지 저는 임창용선수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지만 곱게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나 이제 삼성응원 안할란다. 그냥 양 준혁선수나 응원 할란다.>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게 말처럼 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여하튼 서정환씨는 임선수가 들어오자 기대렸다는 듯이 그를 마구 돌리기 시작합니다.
99년 71경기에 등판한 임창용선수는 마무리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138과 2/3이닝을 소화 하며 2.14의 방어률에 13승 4패 38세이브를 올리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당시 그는 <에니콜>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웠는데 참 가슴 아픈 닉 네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참 더울 때인 6월 5일부터 30일까지 13경기(30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6월 14일부터 7월 10일까지 14경기 연속 세이브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플레이오프 롯데전에서는 5경기에 출장, 17.1이닝 2패 2세이브 방어율 4.67을 기록하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만 저는 지금도 임창용이 지탄 받을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적 문제로 동계훈련기간도 모두 소화하지 못한데다가 시즌중에도 심하게 많이 나왔기에 포스트시즌에서의 기대치는 애초 부터 낮추어 잡는것이 좋았을거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임창용은 99년 당시 선발 김진웅과 비교하면 얼마나 자주 나왔는지 잘 알 수가 있는데 99년도 34경기에 등판한 김진웅은 11승 13패를 기록 했는데 이때 던진 이닝수가 171과 2/3라는 겁니다.
그러나 등판 간격을 지켜가며 올라오는 선발과 비교 자체가 무리이기는 하지만 선발과 마무리에 이닝수차가 33이닝이라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다가 제 기억으로는 팀내에서 투구이닝이 노장진- 김진웅에 이어 3위였고 출장 횟수는 전체투수 중 2위로 기억 됩니다. .
여하튼 당시 서정환씨의 야구는 말도 안되는 기용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정말 많았습니다.
투수도 투수지만 저는 시즌 대부분의 기간을 공포의 0.244타율을 자랑하는 빌리홀을 톱타자로 기용하고 통산 타율 0.155의 김영진을 그 앞에 포진시키는 가공할 타선을 고수하는 서감독을 많이도 원망했습니다.
팬들의 마음은 그렇다고 해도 투수들이 어디 던질 의욕이 날런지...
결국 서정환씨는 감독에서 물러나게 되고 김용희(99.11.11 - 2000.10.29 삼성감독)씨가 감독직에 오르는데 김용희감독이 표방한것은 이른바 <무작전 야구>였습니다.
경기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
여하튼 덕분에 00년 임창용은 전년도에 비해서 많이 감소된 88과 2/3이닝을 던지게 됩니다.
정말 교체와 작전에 인색한 야구였습니다.
52경기에 나서서 1.52의 방어율을 보이며 5승 4패 30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언듯 기록 상으로 보면 99년 보다 더 좋은 것도 같지만 공이 조금은 달라진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록 상으로 보더라도 99년 피안타률 0.218 36볼넷 141삼진 피출루율 0.305 였던 반면 00년에는 피안타률은 0.218로 같지만 31볼넷 95삼진 피출루율 0.344을 기록 하며 평균 투구수가 늘어난데다가 구속도 150대에서 140대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기사중에는 임창용이 구위가 단순하기에 스피드를 줄이고 제구력과 볼배합위주로 승부하기에 그렇다라는 c모 스포츠신문의 기사가 있었고 김동수와 진갑용이 모두 까다로운 볼배합을 요구하는 포수라는 점을 드는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일단 투구폼에서 킥킹자세에 변화가 있었고, 왼쪽어깨도 이전 보다는 빠르게 열렸으며 직구의 구속도 140대로 떨어졌습니다.
초속과 종속의 차이도 조금 더 나기 시작했으니 구위는 분명 이때부터 떨어졌다고 보는것이 맞습니다.
01시즌에 김응룡감독이 오고 난후에 임창용은 15승 투수지만 불안불안 했던 노장진과 보직을 변경합니다.
선발 전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많았지만 승리, 탈삼진, 투구이닝에서 팀 최고 성적을 보이며 선발로 우뚝선 그는 전 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되면서 01시즌 14승 6패 1세이브를 거두워 냅니다.
2002챔프시즌에도 그는 36경기 출장(29경기 선발), 17승 6패 2세이브 방어율 3.08의 성적을 거두며 우리의 염원이던 우승을 이루는데 에이스로서의 역활을 톡톡히 해냅니다.
우승에 강물이 푸른물결을 일렁이며 격정처럼 감동을 몰아친 02시즌을 지나고 03시즌을 맞이 한뒤 임창용은 간통이라는 단어로 팬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고, 파문속에도 전반기를 어느정도 잘 넘겨가고 있었는데 6월 즈음에 들어서는 임창용이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삼성팬들은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구위가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마운드에서 본인조차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 했습니다.
삼피게시판도 난리가 났었죠.
<태업>,<코치진과의 불화>,<사실 트레이드를 요구중이다.>등등 각종 소문도 횡횡 합니다.
02시즌 204와 1/3이닝을 던졌으니 많이 던지기는 했지만 구위가 이제는 누가 보아도 눈에 보일 정도로 떨어져서 선발로테이션을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연초에 안좋은일이 있었던 것이 영향을 준 듯 했지만 그는 결국 2군행을 맞이하게됩니다.
코치진과 불화설, 트레이드설등 임창용에 대한 각종 소문은 악성 기사로 다시 태어나 활개를 치고 삼피 게시판도 페이지마다 반이상이 임선수에 대한 글로 채워지는등 힘든 시기를 맞이 합니다.
그래도 임선수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앞서고 본인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 했는지 2003년8월30일 게시판에 선수로서는 드물게 심경을 밝힙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목:안녕하세요 임창용입니다
작성자:임창용 3939lcy 2003-8-30
1군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경기해야할때 혼자 대구에 와 있게되어
팬들에게 조금은 죄송스럽습니다.
에이스라면 다른 투수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선수여야 하는데
2군에 오게 되어서 오히려 더 짐을 준 것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팬들이 저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요즘 공의 구위가 떨어진것에 대해서 저도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휴식을 취하고 훈련도 열심히 해서 좋은 컨디션으로
다시 1군에 올라가서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제가 이 게시판에서 팬들의 글을 몇가지 읽었습니다.
트레이드에 관한 말이 많은 것 같아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기아로 가고 싶다는 발언을 한적이 없구요..
그것은 그당시에 기자들이 기아의 입장에서 기사를 낸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입니다. 전혀 다른 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FA가 끝나는 내년까지.. 삼성의 승리를 위해서 열심히 뛰고 싶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 팬들께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초에 있었던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말 다시 드리고 싶고요
전 다 잊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 진것 같네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뿐입니다.
삼성의 선수로서 그리고 에이스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글을 올린 후 얼마안가서 복귀한 임창용선수는 13승 3패 1세이브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위글에서 본인도 자신의 구위가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구설수에 대해 사죄를 표하고 있는데 선수로서 쉽지는 않은 발언이었을 겁니다.
복귀 후 그는 1점대 방어률을 유지 했지만 벤취의 신뢰를 그다지 받지는 못한 듯 했습니다.
지난 시즌 그는 다시 크로져 역활을 하며 구원1위를 차지했지만 구위도 돌아오지 않았고 후반기의 그는 솔직히 그다지 믿음직하지 못했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특히 더 했죠.
그리고 FA자격 취득 후 또 그는 갈팡 질팡하며 연일 기자님들만 신이 나게 만드는 역활을 하게 되니 그의 팬들의 가슴은 정말 숯덩이가 됩니다.
차후 가족 관계가 복잡히 계약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다소 수긍을 할 수 있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참 구설수가 많았던 선수입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통산 10시즌 동안 93승 51패 168세이브 방어률 2.85 탈삼진 1039개의 놀라운 성적을 올리면서도 아직 만 29세밖에 되지 않은 투수가 이토록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올시즌 우리팀과 계약 이후 계약 철회파동까지 이어져 결국 구단은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임창용 선수로부터는 '앞으로 구단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와 부모로부터는 '향후 임창용 선수에 절대 관여하지 않고 구단에 누가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각각 받았다.> 라는 공지까지 띄우는 웃지못 할 헤프닝까지 벌이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그의 행보를 데뷔시절 부터 쭉 보니 물론 그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팬들도 많이 계시지만 대다수의 팬들에게서 그다지 사랑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저 나름대로 정리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양준혁을 밀어내고 들어온 선수다.
저도 조금은 그렇기는 했지만 <임창용은 양준혁을 빼았겨가면서 데려온 선수다.>라는 이미지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임창용은 삼성 프런트가 선수협 사태로 관계가 불편해진 양준혁을 내보내고 데려오기에 적절한 카드일 뿐이였고 양준혁이 아깝기는 하지만 분명히 우리팀에 필요한 선수였습니다.
즉 양준혁을 임창용의 의지로 밀어내고 들어온것은 아니라는 건데 당시 제 눈에는 왜 그리도 밉게만 보였는지 모릅니다.
2. 겸손과 거리가 먼 선수,지나친 자신감, 자만심이 팽배해 보인다.
친분이 있는 삼성팬들과 임선수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건방져 보인다.>, <자만심이 가득하다.>,<겸손이라는 것은 모른다.>라는 말씀들을 많이들 하십니다.
지난해 구원 타이틀 경쟁시 인터뷰에서 <이미 제거 아닌가요?>라는 말을 할때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분명히 자신감이 언제나 넘치는 사람입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분명히 자만심이 가득해 보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가 일반인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 조차 하나의 덕목으로 표현되는 운동선수이고, 투수입니다.
美 메이져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중 한명인 세첼 페이지는 자서전에서 이런말을 합니다.
<나에게 투구의 비법을 묻는 사람은 헤아리기 조차 힘들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자신있게 던지라는 것이다.
충분히 연습해서 좋은 볼을 가지고 있는 투수가 자신감 있게 뿌리는 볼은 마구와 같아서 쉽게 칠 수 없다.
혹시 잘친다고 그래봐야 삼할이고 자신이 있을때는 그 조차 맞지 않는다.
자신있게 던지고 야수들을 믿는다면 투수가 컨디션이 정상적 일때 자기 역활을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타자는 안타를 치든 못 치던 관계없이 타석에서 다음 타자에게 타석을 인계 해야만 하지만 투수는 그렇지 않다.
설령 최악의 경우 홈런을 맞는 다고 하더라도 벤취가 나를 믿으면 나는 다음 타자를 상대 할 수 있다.
또 나에게 홈런을 때려낸 타자가 나왔을 때도 그렇다.
어차피 걸려 보낼 것이 아니라면 두려워 하며 피하기 보다는 <너 따위에게 두번 맞지는 않는다>라는 자신감이 최고의 구질로 승화한다.
어느 정도의 볼만 던질수 있다면 투수에게 최고의 무기는 자신감이다.>
즉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일명 새가슴 피쳐는 좋은 투수가 되기 힘들 다는 소리입니다.
<너 따위는 내 볼에 손도 못댄다!>라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자세가 투수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이 전설적인 투수 세첼 페이지의 생각인 것입니다.
저는 마운드에서의 자신감 만큼은 임창용에게 배워야 할 선수도 우리 팀에는 아직 많다고 생각합니다.
3.복잡한 사생활 <간통>
이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좋게 보기는 힘든 문제이지요.
유교사상이 엄연한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정말 한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수도 있는 화두입니다.
이 사건에 관계된 기사들을 좀 보면 2002년 11월 이미 임창용선수와 이모씨는 파경을 맞었습니다.
부인 이모씨의 사치를 임선수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파경당시 이유로 들었지만 이모씨 측은 임선수의 상습적인 폭행이 주된 원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이모씨가 월 1000만원 단위의 쇼핑을 했던 카드내역과 임선수의 부친 임영치씨와 불화가 주된 이유였던 것으로 드러났고 10월 이전 이미 별거 중이 었던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이모씨가 주장하는 시점에서 임선수의 폭행혐의를 찾기 힘들다는 겁니다.
허나 이혼 합의 과정에서 임영치씨와 이모씨 측의 의견 충돌로 위자료 지급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서 이혼판결이 지연되고 있었는데 위자료 지급 문제에서 임선수가 FA를 앞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씨측을 자극 한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분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임선수는 2003년 다른 여자와 교제를 시작했고 이 사실을 알게된 이모씨 측은 법적으로는 아직 부부인 점을 내세워 간통으로 2003년 4월29일 임창용 선수를 고소 하게 됩니다.
이후 상황은 사회적으로 임선수를 고립시키며 임선수는 결국 5월 8일 부터는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가 되게 됩니다.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삼성구단이 중재에 나서서 이씨측과 합의에 성공해 5월 11일 이씨측은 결국 고소를 취하하고 이혼에 합의 했습니다.
이때 이씨측은 1차협상서 6억, 2차에서는 5억을 요구 하였고 돈을 누가 얼마를 지급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만 이씨측은 충분한 보상의 받고 물러났을거라 봅니다.
이 사건 후 임창용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8월에는 결국 2군행을 하게 됩니다.
이때 삼피게시판에 위와 같은 글을 임선수가 직접 올리기도 한것입니다.
구단 측은 9일 임창용선수를 품위유지 소홀 등의 이유로 엄중 경고 조치했으며 삼성 선수단은 벌금 380만원의 자체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김재하 단장은
<모두가 이 문제를 빨리 끝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소속 선수가 물의를 빚어 팬 여러분께 죄송하다>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위 내용이 제가 간통사건에 대해서 알아본 바입니다.
임선수의 법적 이혼이 이루어 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재를 시작한 잘못도 크지만 위자료 문제를 질질 끌어서 간통고소의 빌미를 제공한 부친의 잘못도 없지는 않다고 보여집니다.
전처 이씨에게도 문제가 없지는 않아 보이는 것도 물론입니다.
여하튼 이사건은 임선수가 큰 타격을 받기에 충분했고 넘치는 지탄을 받았으며 본인도 많이 뉘우치고 있는 듯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문제가 제발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제는 이 문제도 우리 팬들이 보다듬고 덮어주어야 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팬들마저 외면하면 임선수는 정말 설자리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4. 계약파동
이 문제는 앞서 거론한 간통 문제를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면서 도덕성 문제를 심하게 대두 시켰습니다.
이 사건에서의 임선수의 실수는 바로 임창용은 에이전트 계약을 남발이었습니다.
여러 에이전트가 임창용을 서로 자기 선수라고 주장하고 나섰기에 혼란은 더욱 가중 되었습니다.
관심을 보이던 해외 구단들도 어느 에이전트의 말을 믿어야할지 혼란스러웠기에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는 사실 상 일찌감치 손을 떼고 있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부친 임영치씨는 11월 중순에 미국은 안토니오 남, 일본은 문용운씨가 해외 진출의 실무를 책임지기로 정리 했지만 에이전트와의 계약 남발로 인한 분쟁으로 임창용의 이미지는 이미 추락했습니다.
이 과정도 부친과 형제들, 본인이 각기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 했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여하튼 에이전트 문제로 해외진출이 좌초된 임창용을 데려갈 구단은 어차피 없다고 봐야 했습니다.
일단 높은 연봉이라는 걸림돌이 있었고, 거액에 영입하더라도 간통, 에이전트 파동 등의 사건에 연류되며 도덕성 논란이 있는 선수를 영입한 뒤 돌아올 언론과 여론의 화살을 타 구단들은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임선수는 다들 아시는 조건데로 우리팀과 계약을 했고, 또 다시 파문을 일으키게 됩니다.
계약철회!
제 기억으로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일이 아닌가 싶은데 정말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2005년 1월 25일 본인과 부모의 위에서 보신내용의 서약서를 쓰고 마무리 되었는데 부모님이 계약 조항을 오해해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이상 4가지가 제가 본 임창용선수에 대한 팬들의 혐오 사항입니다.
여하튼 이제 조금은 수그러 들었습니다.
임창용 선수에 대한 비난과 질타, 마녀사냥에 가까운 인간성 재판들 말입니다.
물론 도덕성까지 갖춘선수가 존경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허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 것도 올바른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선수로서 다시 마운드에 섭니다.
비록 구위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는 아직도 만 29세이고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통산 10시즌 동안 93승 51패 168세이브 방어률 2.85 탈삼진 1039의 좋은 성적과 464경기에서 1243이닝을 던진 값진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외에서 떨어진 구위를 다른 것으로 메꾸며 장수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불사조 박철순과 팔색조 조계현이 대표적인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하튼 임선수의 구위가 돌아와 준다면 최고 겠지만 투수가 구위만으로 승부하는 것은 아니기에 임창용도 노력만 한다면 다른 모습으로 태어날수 있을거라 기대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명강사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세미나에서 그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강의 도중 그 강사는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10만원 짜리 수표 한 장을 높
이 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돈을 갖고 싶지요?
어디 이 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십시요.!!"
그러자 세미나에 참석한 그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한 사람에게 이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먼저 나의 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쳐들었던 10만원 짜리 수표를 손으로 이리저리 마구
구겼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이 수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강사의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역시 거의 모든 사
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좋아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 수표를 땅바닥에 던지더니 구둣발로 밟으며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구겨지고 더러워진 그 10만원 짜리 수표
를 집어들고, 아직도 그 돈을 갖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또 다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때 강사는 힘찬 어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10만원 짜리 수표를 마구 구기고 발로 짓밟고 더럽게 했
을지라도 그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10만원 짜리 수표는 항상 10만원 짜리 수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또는 패배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그 아픔들...
그런 아픔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 합니다.
허나 놀라운 사실은 당신이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가치
는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구겨지고 짓밟혀도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수표처
럼 말입니다"
분명히 이젠 이름으로 야구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임창용입니다.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또 자신에게 너무도 힘들었던 사람 그는 임창용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연이 있었고 또 많은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어도 그는 임창용입니다.
저는 자존심 강한 그가 이대로 주저 앉을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임창용은 팬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아 왔지만 분명히 강한 남자였습니다.
트레이드가 되었다고 주눅들지도 않았고, 파경을 맞이하고도 방황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평생 한번 당해보기 힘든 일들을 당하고도 그는 자신을 더욱 채찍질 하며 다시 일어납니다.
언제나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넘치던 그는 그의 이름과 자신감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믿습니다.
임창용선수가 다시는 그의 팬들에게 미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임창용선수의 2005시즌 힘찬 도약을 기원합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통산 10시즌 동안 93승 51패 168세이브 방어률 2.85 탈삼진 1039개의 놀라운 성적을 올리면서도 아직 만 29세밖에 되지 않은 투수가 이토록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박지원 님의 이말에 크게 동감을 표하며 그를 오랜만에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글이었습니다. 상당히 긴글이라 읽기 귀찮을 수도 있지만...
단 한분이라도 좋은 글을 읽으셨으면 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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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찬호선수가 fa로 텍사스로 이적후 계속 부진 할 때 버젓이 i모 스포츠 지의 1면 톱 타이틀로 <라이어 박>이라고 나온걸 본적이 있습니다.
거듭해서 부상을 숨긴 양치기 소년같은 거짓말장이라는 텍사스 지역 언론 인용기사였는데 i스포츠는 한술 더 떠서 이미 챙길걸 다 챙긴 박찬호가 목적의식을 잃어 부상 치료에 전념을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공격 했고, 국내 모 야구인의 말을 빌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부진의 원인이 있으며 야구에만 전념 해야 한다는 기사였지요.
그 기사 뿐이 아니였지요.
박찬호선수에 대한 갖은 비난과 비웃음으로 좋은 기사거리를 잡으신 한동안 기자분들은 참으로 즐거워 하셨습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 일색이었지요.
불과 6개월전만 하더라도 <코리아 특급>이라 칭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몰고 가더니 이번에는 박선수를 마치 매장이라도 시킬 듯한 기세로 몰아붙이더군요.
그러더니 이젠 그 마저도 관심 밖이 되어버린 탓인지 지독했던 기세를 한풀 꺽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극적인 인간성 재판으로 여러 선수를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굳이 누구라 말하지 않더라도 언론 횡포의 피해자들이 누군지 아실거라 믿습니다.
저는 임창용선수도 예외는 아니라 봅니다.
fa과정 중에 일이나 이혼,간통,계약파기등의 일들이 임창용선수의 잘못도 없지는 않겠지만 언론이 조장한 부분도 간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힘들고 괴로운 부분을 그렇게 까발려야만 하는 기자님들의 기분도 깨끗하지만은 않겠지만 공인이라는 이유로 그는 안그래도 힘들 일을 더욱 더 힘들어야 했습니다.
임창용 그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1994년 12월 연고지명선수로 계약금 3,000만원 연봉 1,200만원에 해태에 입단한 임창용선수는 사실 입단초기만 하더라도 180cm 68kg의 작은 체격 탓인지 그다지 주목 받는 투수는 아니었다고 기억합니다.
입단 첫해인 95시즌 그는 29 1/3이닝을 던지며 5.83의 방어율에 2패만을 기록하며 기록상으로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만 신인 답지 않은 대담성과 구위에 많은이들로 하여금 가능성을 논하게 만들었고 이듬해인 96시즌에는 49경기에 출장하며 114와 2/3이닝동안 방어률 3.22에 7승 7패를 기록하여 해태 마운드의 한축을 이루게 됩니다.
벤취와 프론트,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97년 시즌 중반이후부터는 해태의 뒷문을 담당하게 됩니다.
97년과 98년 2시즌 동안 임창용은 123경기에 나서 268과 2/3이닝을 던지며 2.10에 방어률과 22승 15패 60세이브를 기록 했고 삼진도 무려 261개나 잡아내며 많은 타자들의 고개를 떨구게 만드는 무서운 영건으로의 성장을 보입니다.
크로져로서의 위치가 확보된 98시즌은 구원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두시즌 동안 마무리로서는 승패가 많고 세이브가 적은게 아니냐는 의견을 다실 분이 계실까 모르지만 이때 까지도 마무리투수의 위치가 정립이 잘 안된 상태였기에 6회가 지나가서 이길수 있는 경기는 다 나오는게 마무리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 였고 실제로도 크로져가 3이닝이상을 던지는 경우도 허다 했으니 괜찮은 불펜투수들의 혹사가 지금보다도 더 완연하던 시기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여하튼 모두들 기억 하시겠지만 당시 임선수의 직구는 종속과 초속의 변화가 매우 적으면서 공끝의 움직임이 현란하기에 일명 <뱀직구>라 불리우기도 했는데 정말 살아 움직이는 듯한 공이라 기억 됩니다.
당시 저는 주로 포수 뒤쪽에서 관전을 했는데 스텐드에서 그의 공을 볼 때에도 150km대를 넘나드는 그의 볼의 무브먼트와 구위는 대단하였고 그를 상대하는 타자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엄청났으리라 봅니다.
정통파가 아닌 그가 공식 최고 구속 153km (비공식155km)를 뿌려대니 타격코치들도 공략법을 생각하느라 보통 곤욕이 아니였을 거라봅니다.
98년 23세의 그가 구원 1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린 그해 우리는 놀랄 만한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98년 12월14일이 었습니다.
<임창용(해태) ↔ 양준혁·곽채진·황두성(삼성)> 이라는 헤드라인이 적힌 스포츠 신문을 받아든 저는 치솓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어 종로 한복판에서 일갈의 괴성을 지르며 포효한 기억이 있습니다.
작지 않은 몸에 곱지 않은 인상의 제가 형용할 수 없는 일갈을 외치며 뛰어다니자 많은 인파가 깜짝 놀라 홍해가 갈라지듯 갈라졌던 종로거리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여하튼 선수협 사태가 있기는 했지만 양준혁이라니......!!
양준혁 선수는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선수였기에 이만수씨나 장효조씨때보다 더욱 가슴이 아렸고, 삼성구단에 느낀 배신감은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고 많은 야구 팬에게 충격파가 정말 컸던 트레이드였습니다.
양팀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두 선수를 선수협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트레이드 했다는 것에 대해 야구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양준혁선수가 선수협과 간련해 구단의 지침을 따르지 않자 구단측은 마땅한 트래이드 카드를 찾고자 당시 감독이던 서정환(97.11.1 - 99.11.10 삼성감독)에 의견을 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서정환씨는 해태시절부터 눈여겨 봐온 마무리 임창용의 영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피력 했고 구단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인데 사실 선동열이 떠난 후 이종범(98~2000 日주니치 드래곤즈)마저 떠난 마당에 해태 역시 쉽게 임창용을 내 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양팀 관계자들은 순수한 선수간 교환이라고 발표했지만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얼마가지 않아서 십억원대 비자금이 삼성에서 해태로 전달됐다는 게 사실로 확인됐었습니다.
지금은 <10억이 큰 돈인가?>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돈이었기에 엄청난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양준혁 선수는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양준혁선수의 광팬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더군요.
게다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타팀에 지명되었지만 삼성에 오기위해서 상무까지 다녀온 양선수의 기분이 어디 온전 했을리가 있겠나 싶습니다.
미치지 않은게 다행이지요.
결국 해태의 끈질긴 설득으로 양준혁선수가 해태에 입단하면서 사태는 진정됐지만, 당시 파장은 대단했습니다.
때문인지 저는 임창용선수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지만 곱게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나 이제 삼성응원 안할란다. 그냥 양 준혁선수나 응원 할란다.>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게 말처럼 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여하튼 서정환씨는 임선수가 들어오자 기대렸다는 듯이 그를 마구 돌리기 시작합니다.
99년 71경기에 등판한 임창용선수는 마무리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138과 2/3이닝을 소화 하며 2.14의 방어률에 13승 4패 38세이브를 올리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당시 그는 <에니콜>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웠는데 참 가슴 아픈 닉 네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참 더울 때인 6월 5일부터 30일까지 13경기(30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6월 14일부터 7월 10일까지 14경기 연속 세이브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플레이오프 롯데전에서는 5경기에 출장, 17.1이닝 2패 2세이브 방어율 4.67을 기록하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만 저는 지금도 임창용이 지탄 받을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적 문제로 동계훈련기간도 모두 소화하지 못한데다가 시즌중에도 심하게 많이 나왔기에 포스트시즌에서의 기대치는 애초 부터 낮추어 잡는것이 좋았을거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임창용은 99년 당시 선발 김진웅과 비교하면 얼마나 자주 나왔는지 잘 알 수가 있는데 99년도 34경기에 등판한 김진웅은 11승 13패를 기록 했는데 이때 던진 이닝수가 171과 2/3라는 겁니다.
그러나 등판 간격을 지켜가며 올라오는 선발과 비교 자체가 무리이기는 하지만 선발과 마무리에 이닝수차가 33이닝이라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다가 제 기억으로는 팀내에서 투구이닝이 노장진- 김진웅에 이어 3위였고 출장 횟수는 전체투수 중 2위로 기억 됩니다. .
여하튼 당시 서정환씨의 야구는 말도 안되는 기용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정말 많았습니다.
투수도 투수지만 저는 시즌 대부분의 기간을 공포의 0.244타율을 자랑하는 빌리홀을 톱타자로 기용하고 통산 타율 0.155의 김영진을 그 앞에 포진시키는 가공할 타선을 고수하는 서감독을 많이도 원망했습니다.
팬들의 마음은 그렇다고 해도 투수들이 어디 던질 의욕이 날런지...
결국 서정환씨는 감독에서 물러나게 되고 김용희(99.11.11 - 2000.10.29 삼성감독)씨가 감독직에 오르는데 김용희감독이 표방한것은 이른바 <무작전 야구>였습니다.
경기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
여하튼 덕분에 00년 임창용은 전년도에 비해서 많이 감소된 88과 2/3이닝을 던지게 됩니다.
정말 교체와 작전에 인색한 야구였습니다.
52경기에 나서서 1.52의 방어율을 보이며 5승 4패 30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언듯 기록 상으로 보면 99년 보다 더 좋은 것도 같지만 공이 조금은 달라진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록 상으로 보더라도 99년 피안타률 0.218 36볼넷 141삼진 피출루율 0.305 였던 반면 00년에는 피안타률은 0.218로 같지만 31볼넷 95삼진 피출루율 0.344을 기록 하며 평균 투구수가 늘어난데다가 구속도 150대에서 140대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기사중에는 임창용이 구위가 단순하기에 스피드를 줄이고 제구력과 볼배합위주로 승부하기에 그렇다라는 c모 스포츠신문의 기사가 있었고 김동수와 진갑용이 모두 까다로운 볼배합을 요구하는 포수라는 점을 드는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일단 투구폼에서 킥킹자세에 변화가 있었고, 왼쪽어깨도 이전 보다는 빠르게 열렸으며 직구의 구속도 140대로 떨어졌습니다.
초속과 종속의 차이도 조금 더 나기 시작했으니 구위는 분명 이때부터 떨어졌다고 보는것이 맞습니다.
01시즌에 김응룡감독이 오고 난후에 임창용은 15승 투수지만 불안불안 했던 노장진과 보직을 변경합니다.
선발 전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많았지만 승리, 탈삼진, 투구이닝에서 팀 최고 성적을 보이며 선발로 우뚝선 그는 전 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되면서 01시즌 14승 6패 1세이브를 거두워 냅니다.
2002챔프시즌에도 그는 36경기 출장(29경기 선발), 17승 6패 2세이브 방어율 3.08의 성적을 거두며 우리의 염원이던 우승을 이루는데 에이스로서의 역활을 톡톡히 해냅니다.
우승에 강물이 푸른물결을 일렁이며 격정처럼 감동을 몰아친 02시즌을 지나고 03시즌을 맞이 한뒤 임창용은 간통이라는 단어로 팬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고, 파문속에도 전반기를 어느정도 잘 넘겨가고 있었는데 6월 즈음에 들어서는 임창용이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삼성팬들은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구위가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마운드에서 본인조차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 했습니다.
삼피게시판도 난리가 났었죠.
<태업>,<코치진과의 불화>,<사실 트레이드를 요구중이다.>등등 각종 소문도 횡횡 합니다.
02시즌 204와 1/3이닝을 던졌으니 많이 던지기는 했지만 구위가 이제는 누가 보아도 눈에 보일 정도로 떨어져서 선발로테이션을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연초에 안좋은일이 있었던 것이 영향을 준 듯 했지만 그는 결국 2군행을 맞이하게됩니다.
코치진과 불화설, 트레이드설등 임창용에 대한 각종 소문은 악성 기사로 다시 태어나 활개를 치고 삼피 게시판도 페이지마다 반이상이 임선수에 대한 글로 채워지는등 힘든 시기를 맞이 합니다.
그래도 임선수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앞서고 본인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 했는지 2003년8월30일 게시판에 선수로서는 드물게 심경을 밝힙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목:안녕하세요 임창용입니다
작성자:임창용 3939lcy 2003-8-30
1군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경기해야할때 혼자 대구에 와 있게되어
팬들에게 조금은 죄송스럽습니다.
에이스라면 다른 투수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선수여야 하는데
2군에 오게 되어서 오히려 더 짐을 준 것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팬들이 저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요즘 공의 구위가 떨어진것에 대해서 저도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휴식을 취하고 훈련도 열심히 해서 좋은 컨디션으로
다시 1군에 올라가서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제가 이 게시판에서 팬들의 글을 몇가지 읽었습니다.
트레이드에 관한 말이 많은 것 같아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기아로 가고 싶다는 발언을 한적이 없구요..
그것은 그당시에 기자들이 기아의 입장에서 기사를 낸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입니다. 전혀 다른 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FA가 끝나는 내년까지.. 삼성의 승리를 위해서 열심히 뛰고 싶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 팬들께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초에 있었던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말 다시 드리고 싶고요
전 다 잊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 진것 같네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뿐입니다.
삼성의 선수로서 그리고 에이스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글을 올린 후 얼마안가서 복귀한 임창용선수는 13승 3패 1세이브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위글에서 본인도 자신의 구위가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구설수에 대해 사죄를 표하고 있는데 선수로서 쉽지는 않은 발언이었을 겁니다.
복귀 후 그는 1점대 방어률을 유지 했지만 벤취의 신뢰를 그다지 받지는 못한 듯 했습니다.
지난 시즌 그는 다시 크로져 역활을 하며 구원1위를 차지했지만 구위도 돌아오지 않았고 후반기의 그는 솔직히 그다지 믿음직하지 못했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특히 더 했죠.
그리고 FA자격 취득 후 또 그는 갈팡 질팡하며 연일 기자님들만 신이 나게 만드는 역활을 하게 되니 그의 팬들의 가슴은 정말 숯덩이가 됩니다.
차후 가족 관계가 복잡히 계약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다소 수긍을 할 수 있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참 구설수가 많았던 선수입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통산 10시즌 동안 93승 51패 168세이브 방어률 2.85 탈삼진 1039개의 놀라운 성적을 올리면서도 아직 만 29세밖에 되지 않은 투수가 이토록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올시즌 우리팀과 계약 이후 계약 철회파동까지 이어져 결국 구단은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임창용 선수로부터는 '앞으로 구단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와 부모로부터는 '향후 임창용 선수에 절대 관여하지 않고 구단에 누가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각각 받았다.> 라는 공지까지 띄우는 웃지못 할 헤프닝까지 벌이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그의 행보를 데뷔시절 부터 쭉 보니 물론 그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팬들도 많이 계시지만 대다수의 팬들에게서 그다지 사랑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저 나름대로 정리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양준혁을 밀어내고 들어온 선수다.
저도 조금은 그렇기는 했지만 <임창용은 양준혁을 빼았겨가면서 데려온 선수다.>라는 이미지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임창용은 삼성 프런트가 선수협 사태로 관계가 불편해진 양준혁을 내보내고 데려오기에 적절한 카드일 뿐이였고 양준혁이 아깝기는 하지만 분명히 우리팀에 필요한 선수였습니다.
즉 양준혁을 임창용의 의지로 밀어내고 들어온것은 아니라는 건데 당시 제 눈에는 왜 그리도 밉게만 보였는지 모릅니다.
2. 겸손과 거리가 먼 선수,지나친 자신감, 자만심이 팽배해 보인다.
친분이 있는 삼성팬들과 임선수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건방져 보인다.>, <자만심이 가득하다.>,<겸손이라는 것은 모른다.>라는 말씀들을 많이들 하십니다.
지난해 구원 타이틀 경쟁시 인터뷰에서 <이미 제거 아닌가요?>라는 말을 할때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분명히 자신감이 언제나 넘치는 사람입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분명히 자만심이 가득해 보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가 일반인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 조차 하나의 덕목으로 표현되는 운동선수이고, 투수입니다.
美 메이져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중 한명인 세첼 페이지는 자서전에서 이런말을 합니다.
<나에게 투구의 비법을 묻는 사람은 헤아리기 조차 힘들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자신있게 던지라는 것이다.
충분히 연습해서 좋은 볼을 가지고 있는 투수가 자신감 있게 뿌리는 볼은 마구와 같아서 쉽게 칠 수 없다.
혹시 잘친다고 그래봐야 삼할이고 자신이 있을때는 그 조차 맞지 않는다.
자신있게 던지고 야수들을 믿는다면 투수가 컨디션이 정상적 일때 자기 역활을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타자는 안타를 치든 못 치던 관계없이 타석에서 다음 타자에게 타석을 인계 해야만 하지만 투수는 그렇지 않다.
설령 최악의 경우 홈런을 맞는 다고 하더라도 벤취가 나를 믿으면 나는 다음 타자를 상대 할 수 있다.
또 나에게 홈런을 때려낸 타자가 나왔을 때도 그렇다.
어차피 걸려 보낼 것이 아니라면 두려워 하며 피하기 보다는 <너 따위에게 두번 맞지는 않는다>라는 자신감이 최고의 구질로 승화한다.
어느 정도의 볼만 던질수 있다면 투수에게 최고의 무기는 자신감이다.>
즉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일명 새가슴 피쳐는 좋은 투수가 되기 힘들 다는 소리입니다.
<너 따위는 내 볼에 손도 못댄다!>라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자세가 투수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이 전설적인 투수 세첼 페이지의 생각인 것입니다.
저는 마운드에서의 자신감 만큼은 임창용에게 배워야 할 선수도 우리 팀에는 아직 많다고 생각합니다.
3.복잡한 사생활 <간통>
이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좋게 보기는 힘든 문제이지요.
유교사상이 엄연한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정말 한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수도 있는 화두입니다.
이 사건에 관계된 기사들을 좀 보면 2002년 11월 이미 임창용선수와 이모씨는 파경을 맞었습니다.
부인 이모씨의 사치를 임선수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파경당시 이유로 들었지만 이모씨 측은 임선수의 상습적인 폭행이 주된 원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이모씨가 월 1000만원 단위의 쇼핑을 했던 카드내역과 임선수의 부친 임영치씨와 불화가 주된 이유였던 것으로 드러났고 10월 이전 이미 별거 중이 었던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이모씨가 주장하는 시점에서 임선수의 폭행혐의를 찾기 힘들다는 겁니다.
허나 이혼 합의 과정에서 임영치씨와 이모씨 측의 의견 충돌로 위자료 지급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서 이혼판결이 지연되고 있었는데 위자료 지급 문제에서 임선수가 FA를 앞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씨측을 자극 한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분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임선수는 2003년 다른 여자와 교제를 시작했고 이 사실을 알게된 이모씨 측은 법적으로는 아직 부부인 점을 내세워 간통으로 2003년 4월29일 임창용 선수를 고소 하게 됩니다.
이후 상황은 사회적으로 임선수를 고립시키며 임선수는 결국 5월 8일 부터는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가 되게 됩니다.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삼성구단이 중재에 나서서 이씨측과 합의에 성공해 5월 11일 이씨측은 결국 고소를 취하하고 이혼에 합의 했습니다.
이때 이씨측은 1차협상서 6억, 2차에서는 5억을 요구 하였고 돈을 누가 얼마를 지급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만 이씨측은 충분한 보상의 받고 물러났을거라 봅니다.
이 사건 후 임창용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8월에는 결국 2군행을 하게 됩니다.
이때 삼피게시판에 위와 같은 글을 임선수가 직접 올리기도 한것입니다.
구단 측은 9일 임창용선수를 품위유지 소홀 등의 이유로 엄중 경고 조치했으며 삼성 선수단은 벌금 380만원의 자체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김재하 단장은
<모두가 이 문제를 빨리 끝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소속 선수가 물의를 빚어 팬 여러분께 죄송하다>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위 내용이 제가 간통사건에 대해서 알아본 바입니다.
임선수의 법적 이혼이 이루어 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재를 시작한 잘못도 크지만 위자료 문제를 질질 끌어서 간통고소의 빌미를 제공한 부친의 잘못도 없지는 않다고 보여집니다.
전처 이씨에게도 문제가 없지는 않아 보이는 것도 물론입니다.
여하튼 이사건은 임선수가 큰 타격을 받기에 충분했고 넘치는 지탄을 받았으며 본인도 많이 뉘우치고 있는 듯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문제가 제발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제는 이 문제도 우리 팬들이 보다듬고 덮어주어야 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팬들마저 외면하면 임선수는 정말 설자리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4. 계약파동
이 문제는 앞서 거론한 간통 문제를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면서 도덕성 문제를 심하게 대두 시켰습니다.
이 사건에서의 임선수의 실수는 바로 임창용은 에이전트 계약을 남발이었습니다.
여러 에이전트가 임창용을 서로 자기 선수라고 주장하고 나섰기에 혼란은 더욱 가중 되었습니다.
관심을 보이던 해외 구단들도 어느 에이전트의 말을 믿어야할지 혼란스러웠기에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는 사실 상 일찌감치 손을 떼고 있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부친 임영치씨는 11월 중순에 미국은 안토니오 남, 일본은 문용운씨가 해외 진출의 실무를 책임지기로 정리 했지만 에이전트와의 계약 남발로 인한 분쟁으로 임창용의 이미지는 이미 추락했습니다.
이 과정도 부친과 형제들, 본인이 각기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 했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여하튼 에이전트 문제로 해외진출이 좌초된 임창용을 데려갈 구단은 어차피 없다고 봐야 했습니다.
일단 높은 연봉이라는 걸림돌이 있었고, 거액에 영입하더라도 간통, 에이전트 파동 등의 사건에 연류되며 도덕성 논란이 있는 선수를 영입한 뒤 돌아올 언론과 여론의 화살을 타 구단들은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임선수는 다들 아시는 조건데로 우리팀과 계약을 했고, 또 다시 파문을 일으키게 됩니다.
계약철회!
제 기억으로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일이 아닌가 싶은데 정말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2005년 1월 25일 본인과 부모의 위에서 보신내용의 서약서를 쓰고 마무리 되었는데 부모님이 계약 조항을 오해해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이상 4가지가 제가 본 임창용선수에 대한 팬들의 혐오 사항입니다.
여하튼 이제 조금은 수그러 들었습니다.
임창용 선수에 대한 비난과 질타, 마녀사냥에 가까운 인간성 재판들 말입니다.
물론 도덕성까지 갖춘선수가 존경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허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 것도 올바른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선수로서 다시 마운드에 섭니다.
비록 구위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는 아직도 만 29세이고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통산 10시즌 동안 93승 51패 168세이브 방어률 2.85 탈삼진 1039의 좋은 성적과 464경기에서 1243이닝을 던진 값진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외에서 떨어진 구위를 다른 것으로 메꾸며 장수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불사조 박철순과 팔색조 조계현이 대표적인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하튼 임선수의 구위가 돌아와 준다면 최고 겠지만 투수가 구위만으로 승부하는 것은 아니기에 임창용도 노력만 한다면 다른 모습으로 태어날수 있을거라 기대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명강사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세미나에서 그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강의 도중 그 강사는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10만원 짜리 수표 한 장을 높
이 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돈을 갖고 싶지요?
어디 이 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십시요.!!"
그러자 세미나에 참석한 그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한 사람에게 이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먼저 나의 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쳐들었던 10만원 짜리 수표를 손으로 이리저리 마구
구겼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이 수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강사의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역시 거의 모든 사
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좋아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 수표를 땅바닥에 던지더니 구둣발로 밟으며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구겨지고 더러워진 그 10만원 짜리 수표
를 집어들고, 아직도 그 돈을 갖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또 다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때 강사는 힘찬 어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10만원 짜리 수표를 마구 구기고 발로 짓밟고 더럽게 했
을지라도 그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10만원 짜리 수표는 항상 10만원 짜리 수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또는 패배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그 아픔들...
그런 아픔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 합니다.
허나 놀라운 사실은 당신이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가치
는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구겨지고 짓밟혀도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수표처
럼 말입니다"
분명히 이젠 이름으로 야구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임창용입니다.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또 자신에게 너무도 힘들었던 사람 그는 임창용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연이 있었고 또 많은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어도 그는 임창용입니다.
저는 자존심 강한 그가 이대로 주저 앉을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임창용은 팬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아 왔지만 분명히 강한 남자였습니다.
트레이드가 되었다고 주눅들지도 않았고, 파경을 맞이하고도 방황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평생 한번 당해보기 힘든 일들을 당하고도 그는 자신을 더욱 채찍질 하며 다시 일어납니다.
언제나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넘치던 그는 그의 이름과 자신감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믿습니다.
임창용선수가 다시는 그의 팬들에게 미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임창용선수의 2005시즌 힘찬 도약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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