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아쉬운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게임의 보스전은 내가 했던 게임들 중 가장 재미있는 전투 경험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그 재미를 위해 거의 대다수의 시간을 재미없게 보내야 한다는 점이 나의 평가를 크게 깎아먹었다. 지나치게 긴 튜토리얼, 사실상 강제되는 서브퀘, 반복적인 에셋 활용과 개성 없는 레벨 디자인은 개발사가 훌륭한 전투 시스템을 만들어놓고도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상당히 헤맸다는 인상을 준다. 게임의 모든 요소가 훌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면 적어도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게임을 구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튜토리얼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이다. 1회차에 약 20시간이 걸렸는데, 체감상 그중 8시간 정도는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전투 메커니즘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지나치게 안전 지향적인 설계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신규 유저들을 배려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귀무자를 플레이할 정도라면 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이 상당수일 텐데, 이들이 느낄 지루함까지 감수하면서 게임의 메커니즘을 하나하나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오히려 세키로처럼 액션 게임 마니아들에게 먼저 좋은 평가를 받고, 그 평판을 바탕으로 신규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방향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몬스터들의 패턴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회피를 해보세요', '방어를 무너뜨려보세요', '일섬은 이렇게 사용하는 겁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적들이 너무 많다. 물론 액션 게임에서 적의 패턴을 통해 새로운 전투 메커니즘을 학습시키는 것은 좋은 설계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보니 이 게임이 하나의 완성된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라기보다는 전투 연습 시뮬레이터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적들이 세계관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술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배치된 장치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개발진이 훌륭한 전투 시스템을 만드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은 알겠지만, 정작 그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만드는 부분에서는 다소 성의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지나치게 많은 반복 서브퀘 역시 문제다. 서브퀘가 선택 사항이라면 굳이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필수에 가깝다. 강화 없이 게임을 진행하려면 다른 액션 게임 기준으로 3회차 정도의 난이도를 감수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정상적인 성장 곡선을 따라가려면 서브퀘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문제는 그 서브퀘들이 대부분 흔한 심부름 퀘스트라는 점이다. 흔히 유비식 오픈월드에서 볼 법한 밀도 낮은 콘텐츠들이며, 스토리적으로도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전투가 재미있는 게임에서 정작 전투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재미없는 활동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레벨 디자인 역시 많이 아쉽다. 맵의 종류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에셋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맵 자체는 상당히 큰 데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렇다고 그 넓은 공간이 탐험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동에 시간을 많이 소비하게 만든다는 인상이 강하다. 몹과 보스의 종류 역시 체감상 10종류 남짓한 수준인데, 그마저도 색칠놀이나 슈퍼아머, 무적 회피기 등을 추가한 강화형으로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적과 에셋의 재활용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키로 역시 상당히 많은 적을 재활용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게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세키로는 기존 적의 배치를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지형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익숙한 전투에도 긴장감을 부여한다. 여기에 수직적인 레벨 디자인과 갈고리를 이용한 이동까지 더해져 같은 적을 상대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진다. 적당히 지루해질 때쯤 새로운 맵과 적이 등장하고, 기존 패턴에 익숙해질 무렵 강화형 보스를 등장시키는 등 전체적인 템포도 상당히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반면 귀무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몬스터를 얼마나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는지, 새로운 적을 언제 등장시켜야 하는지, 플레이어가 어느 시점에서 지루함을 느낄지에 대한 고려보다는 그저 남는 공간에 적당히 콘텐츠를 채워 넣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단순히 몬스터의 종류가 적다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종류의 몬스터를 활용하는 방식마저 아쉽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맵의 크기와 콘텐츠의 양은 상당하지만, 그것들이 플레이 경험을 얼마나 풍부하게 만들어주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귀무자의 전투는 내가 경험한 액션 게임 중 가장 훌륭한 편에 속한다. 일섬, 받아치기, 교착 상태, 회피, 패링 등 전투 메커니즘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점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투를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매우 자연스럽고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다. 단순히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넘어, 각 보스마다 고유한 연출과 피격 모션이 존재하고 검술을 구사하는 방식 역시 매우 자연스럽다. 서로의 검이 부딪히고 공격을 받아치거나 자세가 무너지는 과정이 하나의 검술처럼 이어진다는 점에서 단순히 화려한 액션을 보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실제로 상대와 검을 맞대고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굉장히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보스의 절대적인 숫자가 적다는 것은 분명 아쉽지만, 개별 보스들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 각 보스마다 고유한 패턴과 연출이 존재하고, 그 패턴 역시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놓았다. 단순히 공격 속도를 높이거나 슈퍼아머를 추가하는 식으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보스마다 서로 다른 검술과 공격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다양한 전투 메커니즘들이 보스전에서 자연스럽게 활용되도록 만들어놓았다는 점에서도 개발진의 역량이 충분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전투 시스템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보스 디자인까지 고려하면 세키로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기에 더욱 아쉽다. 장점이 이렇게 확실한 게임이라면 맵의 규모를 줄이는 대신 몬스터의 종류를 늘리고, 적의 배치와 레벨 디자인을 더욱 치밀하게 구성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니면 차라리 보스 시뮬레이터처럼 보스전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하면서 전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구성이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굳이 방대한 맵과 수많은 서브퀘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투에서 보여준 완성도를 생각하면 나머지 부분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이 더욱 크다.
결국 이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전투가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훌륭한 전투를 제대로 즐기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길고 지루하다는 점이다. 개발사가 가진 역량을 고려하면 6년이라는 개발 기간에 비해 결과물이 상당히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실제 개발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완성된 게임을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개발 자원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배분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전투 시스템을 만들어놓고도 그것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 이 게임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단순히 콘텐츠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전투가 이 정도로 훌륭한 개발사라면 다른 부분을 조금만 개선해도 훨씬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