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3주의 부산 여행이 끝나고 타마모 크로스와 트레이너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날씨가 오락가락하던 첫 주와 달리 2주, 3주 차에선 아주 일관적인 하늘 아래에서 돌아다녔다.
폭염경보가 심심하면 뜨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 소나기도 내렸고 더위를 피한다는 이유로 그 더운데 냅다 온천장에 가기도 했으니까. 해수욕만큼은 트레이너가 반대했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한 바다에 들어가면 탈 날 수도 있다’라는 것 때문이었다.
다분히 부산이 고향인 사람 시점에서 하는 말이긴 했지만, 대체 사람이 얼마나 많기에 저런 말을 하나 싶었던 타마모도 해운대 해수욕장과 광안리 해수욕장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곱게 생각을 포기했을 정도니까.
“아따, 저건 좀.”
이건 무리다.
저런 사람의 바다에 들어가면 빠져나오는 게 더 힘들다.
고로 부산 여행임에도 바다에는 한 번도 몸은커녕 발도 안 담그고 온 기묘한 여행이 지속되었다. 통도사같이 부산 인근 시원한 동네도 가보고, 기장까지 가서 멸치랑 갈치조림도 흡입하고, 부산서 유명한 곳에 가서 낙곱새랑 복어탕도 조지는 등 식도락은 확실했으니 아무튼 된 걸로 치자.
여행은 먹는 것만 잘하면 반 이상은 성공한 거다.
그렇게 올 때보다 살이 쪼끔 더 불어난 타마모 크로스는 돌아갈 때 가져갈 선물 거리도 꼬박꼬박 샀다. 하나씩 하나씩 사 모은 선물들은 어느새 그녀의 몸집만 한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고, 막판 검역의 철퇴에 당하지 않도록 트레이너가 선별해 줬다.
“까딱해서 이상한 거 섞여 들어가 있으면 진짜 큰일난데이. 고기 특히 드간 건 절대 넣음 안 된다.”
“우예 그리 잘 아노, 또레나는.”
“예전에 초짜 때 멋모르고 집에서 만들어준 소고기볶음 들고 입국하려다가 싹 폐기당한 적이 있어서 글타.”
“앗, 아아.”
이런 데서도 경험자라니,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인생 참 힘들다고 해야 하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하얀 번개는 선물 거리를 정리했다. 물론 그녀가 받은 선물도 있었는데, 워낙 부산 음식이 입에 잘 맞았다고 하니 트레이너의 집안에서 아예 고추장하고 된장을 바리바리 싸서 줬다.
“어무이, 잘 먹겠슴더. 꼭 연락 드릴게예”
어느새 더 살갑게 트레이너의 부모님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 그녀는 로밍이 된 휴대전화로 그들과 직접 통화하며 연거푸 감사를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물건들은 출국 이틀 전에 택배로 날아와 오피스텔에 도착했으니까. 진짜로 식구, 아니 가족처럼 된 타마모 크로스의 태도는 나날이 트레이너의 식구들 내 호감도를 천원돌파 시켜나갔다.
그 외에는 뭐 딱히 없었다.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편하게 김포공항에서 항공기에 몸을 실어 오사카로 날아갔으니, 편하다면 편했다. 구태여 자취방이 있는 도쿄로 가지 않고 오사카에 도착하는 걸 선택한 건 이유가 있었다.
“동생들하고 부모님 선물 왕창 사가니께, 잠깐 집에 들르고 싶구마.”
커다란 캐리어 안에 꽉꽉 담아온 선물들을 먼저 주고 가야 하니까.
그리고 그 속내에는 다른 뜻도 있음을 트레이너는 알고 있었다. ‘우리 집안에도 함 얼굴 비추고 가자, 또레나’라고. 이미 도주 경로가 전부 사라졌음을 깨달은 그였기에 이참에 최대한 모든 걸 해결하고 도쿄로 가고자 순순히 표를 바꿨고, 그게 지금에 이르렀다.
“자자, 선물 사 왔대이!”
“와아아아!”
오랜만에 본가의 문을 쾅, 하고 열면서 외친 한 마디에 달려 나오는 그녀의 동생들.
그리고 생각보다 까무잡잡하게 변한 타마모와 트레이너를 보고 달려오다가 멈칫하기까지 단 3초.
“와, 엄마! 누나야가 타코야키처럼 갈색이 돼서 왔대이!”
“아가 참, 말을 해도 그따구로 하나!”
남동생이 빙글, 돌아 들어가며 외치는 말에 그녀가 버럭 외치는 가운데 여동생도 뒤따라 도도도, 달려갔다.
“또레나 오빠야도 왔대이! 엄마! 언니야랑 또레나 오빠야가 왔대이!”
“뭐라꼬?”
안에서 들리는 간사이벤의 향연에 트레이너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번에도 타마모가 알아서 잘하겠지, 싶어서.
-⏲-
취소.
속 안 좋아 죽겠다.
트레이너는 가시방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하며 그 큰 덩치를 움츠리고 있었다. 아니, 기껏해야 타마모의 부모님하고 동생들만 있을 줄 알았지.
“허허, 타마의 트레이너인감. 퇴원하고 나선 처음 보는 구먼.”
“아, 아, 예.”
왜 여기 타마의 은사님까지 같이 계시는 걸까.
뭐, 그가 병원비를 아낌없이 드린 건 맞긴 하지만, 타마의 조부와 함께 느긋하게 바둑을 두고 있던 장년의 남성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워요, 아저씨. 저 이러다 소화불량 걸립니더. 라는 외침이 안에서 울리는 가운데, 타마모는 억지로 닫다시피 하여 온 캐리어를 열고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것들을 나누고 있었다.
“아이고, 돈도 항상 부족한 가스나가 뭔 놈의 선물을 이리 사왔노.”
“에헤이, 여행 가면 가족들 선물 사는 맛이 또 있다 아입니까. 잔말 말고 받으이소.”
어머니께 드릴 화장품 하며, 아버지께 드릴 술, 할아버지께 드릴 과자….
진짜 골고루 사 온 가운데, 동생들한테는 실로 악마의 선물을 줘버렸다.
“자자, 느그들도 받으래이.”
“어라, 누나야. 이거 로봇 장난감 아이가?”
“한국에선 인기라 카대, 10종 합체도 된다 캐서 함 사와봤다.”
“와!”
예컨대 남동생에게는 또○.
학교에 가는 나이임에도, 성인이 된 후에도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건 역시 변신 로봇이다! 라는 트레이너의 말에 타마는 일부러 백화점과 쇼핑몰을 돌며 같은 상표의 장난감들을 몇 개 사다가 챙겨왔다.
여동생에게는?
“니 줄 것도 사왔대이, 받그라.”
“와, 귀여워.”
“이것도 시리즈가 원채 많아서 뭘 살지 고민 좀 했다 아이가, 맘에 드나?”
“언니야가 준 건 뭐든 좋대이!”
하○핑.
지갑을 털어가는 악마의 인형.
이건 트레이너가 아니라 타마가 스스로 골랐는데,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한참을 생각하다 몇 개 집었다. 그 무시무시함을 잘 아는 트레이너는 그녀가 고른 걸 보고 흠칫하긴 했지만, 뭐 아무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설마 저거에 꽂혀서 수집하는 취미 가지진 않겠지, 라는 생각도 함께.
“타마야, 이건 뭐꼬. 비닐 봉다리 안에 뭐가 있네?”
그렇게 짐을 풀던 중,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타마모의 어머니가 묻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쾌활히 답했다.
“아, 그거. 또레나의 어무이가 주신 기대이.”
“…어머?”
그리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트레이너로 쏠리는 가운데, 그는 실감했다.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됐다.
동생아, 이 형이 죽고 나면 부디 방 컴퓨터 하드는 부산 앞바다에 다이빙시켜다오.
-⏲-
일순간 침묵이 감돌았던 집안 분위기가 급변한 건 타마모 크로스의 당당한 말 때문이었다.
“솔찌 말할게, 낸 또레나 없인 더는 못 살겠다 안 카나. 그래서 또레나의 집에 가서 말하고 왔대이.”
그 말에 그제야 묘한 안도감이 감돌면서 공기가 풀어졌다. 일단 동생들의 반응부터 폭발적이었으니까.
“또레나 형아야, 가족 되는 기가?!”
“언니야가 말한 거 진짜가?!”
뭐, 한국 어린이날에 맞춰서 휴대폰까지 선물로 보내줬었으니 이상할 정도로 좋아하는 건 그럴 수 있다 치자. 애들은 선물 주는 사람들 엄청나게 좋아하니까.
“트레이너 군 정도라면 안심하고 타마를 맡길 수 있지. 이거 참 잘 됐구먼.”
“타마, 저 괄괄한 애가 저리 말할 정도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제.”
“암암, 그렇지.”
아니, 아저씨는 왜 그러세요.
등골에 식은땀이 축축해진다.
“주니어 시즌 때 전화 왔을 때 일본어가 유창하길래 당연히 일본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한국 사람이라는 거 알았을 때 을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개안캔나, 타마?”
“에이, 아부지는 뭔 말을 그리 하심꺼. 당연히 좋으니 이러지예.”
“네가 개안으면 그걸로 됐다.”
마지막으로 막아주리라 생각했던 타마모의 아버지도 빠르게 이해해주며, 길을 비켜주셨다. 진짜 망했구먼.
“어무이는 우예 생각하는교, 또레나랑 내랑 아예 가족이 되뿌는거.”
그리고 최후의 한 사람, 어머니.
“트레이너 같은 사람이 어디 더 있긴 하겠냐만은, 둘이 의향이 맞는 건 맞제?”
제일 중요한 걸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좌불안석에 앉은 상황인 게 느껴지니까.
여기서 거절한다면, 분명 무를 수 있겠지.
“저도 괜찮지 말입니더. 타마가 원하는 게 곧 제가 원하는 거 아이겠슴꺼.”
근데 입에서는 거절이 나오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자기 자신을 관짝에 넣은 후, 묫자리에 넣고 흙을 덮어버렸다.
안녕, 솔로 인생이여.
곰같은 또레나
인생의 무덤으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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