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의 서사는 단순한 전쟁 서사가 아니라,
자유를 찾아 헤매고, 도피를 반복하며, 결국 성장과 결심에 이르는 이야기다.
하지만 일부 관객들은 <아바타 2>의 이야기가 잘 싸우던 애가 도망갔다가 다시 싸우겠다는 결론이면 걍 원점 복귀 아니냐,
쓰잘데기없었고 그냥 건너뛰고 3편으로 바로 가도 되는 이야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플롯 위주, 목적 위주 서사는 이야기가 목표를 향해 직진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관점에서는 RDA의 무자비한 확장주의 정책의 앞에서 제이크는 어차피 결국 주인공으로 싸워야 되고 도망도 결국 무의미하다면,
이 과정은 필요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하지만 <아바타 2>의 서사는 전쟁의 성과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이크(그리고 가족들)의 내면의 여정을 그린다.
즉, 이야기가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이크가 왜 도망쳤고, 왜 다시 돌아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깨달았는가에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1편에서부터 이어진 제이크 설리의 캐릭터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이크는 특수부대 출신이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휠체어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상이군인에게 별다른 혜택도 없는 디스토피아, 그에게 "사람"으로서의 삶은 휠체어 하나와 방 한칸이 전부였다.
그는 "자유와 해방"을 꿈꿨고,
판도라에서의 삶은 그에게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결국 현실(지구)에서 도망치는 또 다른 형태의 도피였다.
1편에서 그는 처음엔 임무를 위해, 나중엔 사랑과 정의를 위해 싸웠고,
결국 토루크 막토가 되어 나비족을 이끄는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결핍’이 해결되었는가?
그는 정말 완전한 존재가 되었고 그의 성장은 끝났으며 새로운 갈등도 없을것인가?
2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제이크는 이제 나비족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그가 꿈꿨던 자유로운 삶과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책임과 의무에 짓눌려 있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 고민 속에서 또다시 도망을 택했다.
(토루크 막토로 부족민에게 귀환하던 1편의 위 장면과 정확하게 대비되는 구도)
1편에서 현실에서 벗어나 판도라로 도피했던 것처럼,
2편에서는 숲 부족을 떠나 바다 부족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편의 중요한 대사가 반복된다.
"하나의 삶이 끝난다, 다른 삶이 시작된다...."
(One life ends, the other begins.....)
이 말은 원래 1편에서 판도라로 떠날 때 나온 대사였다.
하지만 2편에서 같은 대사가 반복될 때, 그것은 단순한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또다시 도망치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기최면적인 언어로 변한다.
카메론 감독은 이 대사를 통해 제이크의 본질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제이크 설리는 영웅이 되었지만, 완성된 캐릭터가 아니었다, 사실 완성된적도 없었다.
그는 토루크를 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보았지만,
오프닝에서의 대사처럼 여전히 가슴 한켠에 구멍이 뚫려있는 존재였고 그 구멍은 메꿔진적이 없었다.
2편에서 그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가족과 부족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경험하며,
결국 도망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과정이 단순히 "없어도 되는 이야기"였는가?
이는 제이크 설리가 완전한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과정이었다.
혹여는 "바다 부족도 인류가 쳐들어왔으면 당연히 싸웠을테니 새로운 아군을 얻은 것도 아니고, 도망간 결과 RDA를 괴멸시키지도 못했다.
결국 숲 부족에 남아서 싸웠어도 달라질 게 없었고 구심점을 잃은 오마티카야는 확실히 ㅈ됐다,다 설리 (그리고 각본가)탓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에서 이겼느냐, 적에게 타격을 줬느냐가 아니라,
주인공이 이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다.
<아바타 2>는 전쟁 서사가 아니라, 제이크가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울 결심을 내리는 이야기다.
그는 처음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도망쳤지만,
결국 가족이야말로 함께 싸울수 있는 존재이며,
이 거대한 대지의 순환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기능중심 서사' 위주 작품이 좋다고 모든 경우를 그 기준하에 재단하는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부적절할수 있다.
툴쿤의 불살주의 설정 역시 전개를 지연시키는 장치처럼 보일 수 있다.
"툴쿤들이 싸웠다면 영화가 30분은 짧아졌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런 관점에서의 불만이다.
하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핵심은 전쟁의 결과가 아니라, 전쟁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였다.
툴쿤이 처음부터 쉽게 싸우는 존재였다면, "폭력의 선택"이 가지는 무게와 갈등이 사라졌을 것이고,
외톨이 신세인 자신에게 찾아와줬던 단 한명의 친구를 구하고 싶어 수면 위로 날아오르던 파야칸을 보며 감동받지도 못했을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서사가 무조건 우월한 방식도 아니고, 모든 관객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객들은 제이크의 성장 과정이 감정적으로 와닿지 않았거나, 단순히 대규모 전쟁을 기대했기에 실망했을 수도 있다.
이런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는 정당한 불만이다.
결국 영화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으며,
만약 감독이 그런 피드백도 받아들이고 싶다면 차기작에서는 보다 명확한 변화와 서사적 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바타 2>는 단순한 원점 복귀가 아니라,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마이너스로 깊이 내려갔다가 다시 제로로 돌아온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거리는 절댓값만큼의 깊이이며, 단순한 제자리행이 아니라 이전의 나와 다른 자신이 되는 여정의 일부다.
제이크 설리는 마이너스로 추락하며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온몸으로 깨달았고,
자신이 놓치고 말까봐 두려웠던 것들이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내 곁에 있을것임을 배우게 됐다.
그는 다시 원점에 선 것을 넘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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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보다는 사헤일루(그 신경삭교감)이 되어야지 그 ㅈ간 죽이자 ㅈ간은 우리의원쑤 명령을 하달받는데 이크란이나 숲속 짐승들과는 다르게 툴쿤들은 신경삭이 입속 깊숙히 있어서..... | 25.07.06 00:5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