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의 두목 닌텐도가 극적인 사장 교체를 발표한 것은 2002년.
반세기에 걸쳐 군림한 카리스마 경영자, 당시 74세의 야마우치 히로시가 선택한 사람은 42세의 이와타 사토루였다.
매스컴의 관심은, 이 32세의 연령차이로 향했다. 6명이 대표이사가 되는 이례적인 집단지도 체제.
이와타는 최연소, 게다가 2년전에 중도 입사한 이른바 "영주의 무사에 불과한 신분"이였기에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와타를 예측하지 못한 상태엿다.
「게임에 집단지도 체제는 불가능하다」 「야마우치 전사장의 카리스마가 넘치던 회사. 이번 결정으로 닌텐도도 둔해진다」.
후계자와 신체제에, 업계인이나 어널리스트는 신랄한 말을 던져 그것이 매스컴의 지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4년후 증명된 것은 야마우치의 선택은 결국 옳았다는 사실..
현재, 닌텐도는 절호조. 재작년부터 투입하기 시작한 휴대 게임기 「닌텐도 DS」시리즈의 매출은 매장에서 품절을 일으킬 기세.
국내(일본) 누계 판매 대수는 사상 최고 속도로 1000만대에 이르렀을 정도이다.
「뇌를 단련하는 어른의 DS트레이닝」이나 「영어 트레이닝」등의 소프트가, 여성, 중노년등 지금까지 게임에 무관심했던 유저층에 보급되기 시작해, 일종의 사회 현상화를 이르키고 있다.
또, 「PS(플레이 스테이션)」의 후진을 배회하던 거치형도 이번 가을 발매되는 신형기 「Wii」에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게임 상품 전시회 「E3」에서는 금년, 닌텐도 부스에 기록적인 행렬이 생겼었다.
야마우치는 이와타의 무엇을 발견해, 무엇을 맡겼는가. 「Wii」에 대한 설명을 멈추지 않는 이와타에게 직접 들어 보았다.
무엇을 계승해, 무엇을 바꾸었습니까. (경칭생략)
―――경이적인 DS의 붐이다.
일본의 게임 시장은 1997년부터 04년까지 계속 시장이 축소되고 있었습니다. 아주 대단한 위기감이 형성되기 시작했죠.
이대로라면 우리들에게 미래는 없다. 흐름을 바꾸고 싶은, 다시 게임 인구를 늘리고 싶은, 그러한 절실한 생각이 DS의 출발점입니다.
닌텐도가 패밀리 컴퓨터를 발매했던 것이 83년. 그후, 게임 업계는 하드의 성능을 올려 보다 호화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을 우선시 해왔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축소 경향으로 변해가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생활필수품이라면, 손님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 오락의 세계는, 손님을 놀래키는 것이 곧 장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 스스로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왜 하지 않는 것인지, 그만두어 버렸던 사람은 왜 그만둔 것인지를..
야마우치 전 사장으로부터도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2 화면으로 즐기는 새로운 것을 만들면 어떻겠나?」라고.
이 의견을 수렴해 사내에서 연구를 하던중 2화면에 터치스크린을 추가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문제 의식, 야마우치의 제안, 사내의 아이디어, 여러 가지들이 복합된 결과였습니다.
결과적으로 DS는, 평상시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제 주변의 친척, 아는 사람들로부터도 [그 게임은 재미있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게임 하게 되었습니까?」라고 답해드린적도 있습니다.(웃음).
―――계획대로였는지
애초에 노린다고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어느 정도는 노력이나 선견성, 발상으로도 가능할 수 있으나, 지금의 DS는 그것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노려 만들었던 것이라고 그냥 말할수도 있으나, 우리들 역시 알 수 없었던 일이였습니다.
사원들이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도 저의 일입니다.
――자만심의 경계?
예측할 수 없었던 행운이 많이 있엇던 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뇌트레이닝을 개발하자 라고 말하기 시작한 장본인이나 소프트 2개로 500만개를 넘겨 버렸죠...
그게 여기까지 도달하리라곤 전혀 생각치 못했습니다.
야마우치의 말버릇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마 초대 패밀리 컴퓨터가 대히트 한 당시부터 하기 시작했던 말인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힘과 행운을 냉정하게 나눠서 생각해라. 행운을 타고난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는..
―――우리들의 힘이란, 재현 가능성이 있는 편인가.
그렇습니다. 힘이 있어 노력하는 쪽이 보다 더 높은 성공의 찬스를 거머쥐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힘이 있어도 노력하면 절대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치 않습니다.
그동안 이룬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들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전락은 이미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DS는 04년 12월 발매. 처음부터 잘팔리는 편은 아니였다.
이는 유저층이 확대되기 이전의 이야기로 게임에 관심이 있는 손님들은, 곧바로 매장에 달려가 물건을 구입합니다.
그러나 게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정보가 전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회사의 동료로부터 「그 게임은 재미있는 것 같다」라는 몇번의 정보로, 겨우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거기에서 또다시 실제로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게 되죠.
―――DS와 동시기에 소니·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가 휴대 게임시장에 참가.
PSP는 발매일에 대단한 행렬이 생겨 화제를 독점해서 당시엔 초조하지 않았었나?란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 딱히 그렇진 않았었습니다.
그당시엔 일본에 제가 없었던터라.. DS의 발매일쯤인 12월 2일, 뇌트레이닝의 시제품을 가지고 토호쿠대의 카와시마 선생님을 만나나기 위해 해외로 출장을 나갔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프트가 생길 것 같다, 라는 예감이 들었었죠.
게다가, 게임에서 개를 기르는 「닌텐독스」도, 사전 조사에서 여성들의 반응이 예상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이런 것을 몇개인가 출시해 가면, 어디선가부터 게임에 대한 문턱이 내려가 이해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그 변화가 언제 일어나, 그것이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엇죠..
그렇지만, 믿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게임 인구는 점차 줄어들어 갈 뿐으로 종래의 연장선에서 아무리 노력해본들, 결국은 생명을 겨우 연장하는 연명술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장 저부터 생각해봐도,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것일 뿐이엿죠 제가 사장을 하는 의미도 없었을 겁니다.
―――4년전 사장 취임 당시는, 확실히「Whois」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시 다른 곳과 비교해도 애송이였고. 계승할만 하니까 닌텐도를 계승한다고는 스스로도 생각한적이 없었으니..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야마우치씨로부터는 어떤 타이밍에 어떤 말을 들었나?
명확하게 후계하는 말은 들은적 없습니다만 저는 닌텐도에 신세를 진 사람입니다.
보은할 수 있다면이란 생각에 닌텐도에 오게 되엇습니다만 그런 직무를 맡게 될것이란 건 전혀 예측 할 수 없엇었죠.
입사후 경영 기획실장을 맡고,[왜?」라는 물음이 생겨 야마우치 사장에게 질문을 하니 선문답같은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되고 싶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도망칠 수는 있다」라고..
다만, 야마우치의 닌텐도에 대한 생각과 게임 업계의 위기감은 뼈져리게 느 낄수 있는 자리엿습니다.
만약 정말로 그러한 일이 현실로 닥친다면 도망치지 않을 각오만은 하자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죠(웃음).
―――신세를 졌다니?
저는 원래 게임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개발의 책임을 도맡아 하다 보니 불행하게도 그 회사가 서서히 기울어지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사장이란 직책까지 주어지게 되엇습니다.(할 연구소)
그 때 닌텐도에서 기울어가던 회사를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들이 만든 소프트「별의 카비」등을, 닌텐도가 전세계에서 적극적으로 판매해 주어, 덕분에 재건의 궤도에 올라설수 있었엇죠.
그러나, 한 개발자가 갑자기 사장으로 올라가 버린상황이라, 경영같은 건 전혀 모르던 상태엿습니다.
당시 저에게 있어 야마우치씨는 경영의 선생님이였죠, 지금도 해마다 몇차례 뵈어,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학교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군요(웃음)
―――매니지먼트의 원풍경?
그것이 원점입니다. 사물의 우선도를 결정하는 방법, 하지 않는 것은 대담하게 버리는 자세, 어중간한 결정은 안된다는 것을 배웠었죠.
―――당시는, 대표이사 6명에 따른 집단지도 체제에 부정적인 견해도 많았엇다.
걱정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엇습니다. 그들과 저는 아주 방대한 량의 이야기를 해나갔었습니다.
당연, 저 혼자 떠드는 것만으로 닌텐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두 야마우치와와 쭉 함께 해왔었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위기감은 처음부터 공유하고 있엇었죠.
「다들 야마우치 시대와 이와타 시대」라고 나누어서 비교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바뀐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오락 산업 역시 언제나 똑같은 걸 반복하다보면 손님들이 지겨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잇달아 새로운 것을 제안하지 않으면 회사는 번성 할 수 없게 될것입니다.
이전 성공 체험에 매달리기만 한다면 아주 쉽게 회사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생각은 야마우치 시대와 모두 공통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환경이 바뀌면 방식도 바뀔수 밖에 없습니다. 야마우치는 사훈도 회사방침도 남기지 않았었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훈이나 회사방침을 말로 하면 반드시 시대와 함께 낡아져서 맞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뿌리의 부분에서 만나며, 환경이 바뀌면서 최적화로 변화되기 때문이죠.
―――그 환경 변화가 아주 대단하다.
지금이 인류의 역사상, 가장 격렬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많은 조직들과 공유할 수 있을지,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기감을 공유하려면.
특별히 그런걸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저는"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원들은 「사장은 몇번식이나 같은 것을 말해야 기분이 내킨다」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나..
세상엔 한번을 듣고 바로 받아드리는 사람들도 있으나 다섯번을 넘게 듣고 겨우 이해하기 시작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건 머리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일지 여부의 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키가 크다 작다의 개인차와 같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 내에선 언제나 같은 말만 반복 하고 있습니다.(웃음)
-주간 동양 경제(7/15호) 웹거제 2CH -
반세기에 걸쳐 군림한 카리스마 경영자, 당시 74세의 야마우치 히로시가 선택한 사람은 42세의 이와타 사토루였다.
매스컴의 관심은, 이 32세의 연령차이로 향했다. 6명이 대표이사가 되는 이례적인 집단지도 체제.
이와타는 최연소, 게다가 2년전에 중도 입사한 이른바 "영주의 무사에 불과한 신분"이였기에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와타를 예측하지 못한 상태엿다.
「게임에 집단지도 체제는 불가능하다」 「야마우치 전사장의 카리스마가 넘치던 회사. 이번 결정으로 닌텐도도 둔해진다」.
후계자와 신체제에, 업계인이나 어널리스트는 신랄한 말을 던져 그것이 매스컴의 지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4년후 증명된 것은 야마우치의 선택은 결국 옳았다는 사실..
현재, 닌텐도는 절호조. 재작년부터 투입하기 시작한 휴대 게임기 「닌텐도 DS」시리즈의 매출은 매장에서 품절을 일으킬 기세.
국내(일본) 누계 판매 대수는 사상 최고 속도로 1000만대에 이르렀을 정도이다.
「뇌를 단련하는 어른의 DS트레이닝」이나 「영어 트레이닝」등의 소프트가, 여성, 중노년등 지금까지 게임에 무관심했던 유저층에 보급되기 시작해, 일종의 사회 현상화를 이르키고 있다.
또, 「PS(플레이 스테이션)」의 후진을 배회하던 거치형도 이번 가을 발매되는 신형기 「Wii」에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게임 상품 전시회 「E3」에서는 금년, 닌텐도 부스에 기록적인 행렬이 생겼었다.
야마우치는 이와타의 무엇을 발견해, 무엇을 맡겼는가. 「Wii」에 대한 설명을 멈추지 않는 이와타에게 직접 들어 보았다.
무엇을 계승해, 무엇을 바꾸었습니까. (경칭생략)
―――경이적인 DS의 붐이다.
일본의 게임 시장은 1997년부터 04년까지 계속 시장이 축소되고 있었습니다. 아주 대단한 위기감이 형성되기 시작했죠.
이대로라면 우리들에게 미래는 없다. 흐름을 바꾸고 싶은, 다시 게임 인구를 늘리고 싶은, 그러한 절실한 생각이 DS의 출발점입니다.
닌텐도가 패밀리 컴퓨터를 발매했던 것이 83년. 그후, 게임 업계는 하드의 성능을 올려 보다 호화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을 우선시 해왔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축소 경향으로 변해가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생활필수품이라면, 손님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 오락의 세계는, 손님을 놀래키는 것이 곧 장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 스스로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왜 하지 않는 것인지, 그만두어 버렸던 사람은 왜 그만둔 것인지를..
야마우치 전 사장으로부터도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2 화면으로 즐기는 새로운 것을 만들면 어떻겠나?」라고.
이 의견을 수렴해 사내에서 연구를 하던중 2화면에 터치스크린을 추가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문제 의식, 야마우치의 제안, 사내의 아이디어, 여러 가지들이 복합된 결과였습니다.
결과적으로 DS는, 평상시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제 주변의 친척, 아는 사람들로부터도 [그 게임은 재미있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게임 하게 되었습니까?」라고 답해드린적도 있습니다.(웃음).
―――계획대로였는지
애초에 노린다고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어느 정도는 노력이나 선견성, 발상으로도 가능할 수 있으나, 지금의 DS는 그것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노려 만들었던 것이라고 그냥 말할수도 있으나, 우리들 역시 알 수 없었던 일이였습니다.
사원들이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도 저의 일입니다.
――자만심의 경계?
예측할 수 없었던 행운이 많이 있엇던 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뇌트레이닝을 개발하자 라고 말하기 시작한 장본인이나 소프트 2개로 500만개를 넘겨 버렸죠...
그게 여기까지 도달하리라곤 전혀 생각치 못했습니다.
야마우치의 말버릇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마 초대 패밀리 컴퓨터가 대히트 한 당시부터 하기 시작했던 말인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힘과 행운을 냉정하게 나눠서 생각해라. 행운을 타고난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는..
―――우리들의 힘이란, 재현 가능성이 있는 편인가.
그렇습니다. 힘이 있어 노력하는 쪽이 보다 더 높은 성공의 찬스를 거머쥐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힘이 있어도 노력하면 절대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치 않습니다.
그동안 이룬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들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전락은 이미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DS는 04년 12월 발매. 처음부터 잘팔리는 편은 아니였다.
이는 유저층이 확대되기 이전의 이야기로 게임에 관심이 있는 손님들은, 곧바로 매장에 달려가 물건을 구입합니다.
그러나 게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정보가 전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회사의 동료로부터 「그 게임은 재미있는 것 같다」라는 몇번의 정보로, 겨우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거기에서 또다시 실제로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게 되죠.
―――DS와 동시기에 소니·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가 휴대 게임시장에 참가.
PSP는 발매일에 대단한 행렬이 생겨 화제를 독점해서 당시엔 초조하지 않았었나?란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 딱히 그렇진 않았었습니다.
그당시엔 일본에 제가 없었던터라.. DS의 발매일쯤인 12월 2일, 뇌트레이닝의 시제품을 가지고 토호쿠대의 카와시마 선생님을 만나나기 위해 해외로 출장을 나갔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프트가 생길 것 같다, 라는 예감이 들었었죠.
게다가, 게임에서 개를 기르는 「닌텐독스」도, 사전 조사에서 여성들의 반응이 예상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이런 것을 몇개인가 출시해 가면, 어디선가부터 게임에 대한 문턱이 내려가 이해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그 변화가 언제 일어나, 그것이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엇죠..
그렇지만, 믿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게임 인구는 점차 줄어들어 갈 뿐으로 종래의 연장선에서 아무리 노력해본들, 결국은 생명을 겨우 연장하는 연명술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장 저부터 생각해봐도,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것일 뿐이엿죠 제가 사장을 하는 의미도 없었을 겁니다.
―――4년전 사장 취임 당시는, 확실히「Whois」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시 다른 곳과 비교해도 애송이였고. 계승할만 하니까 닌텐도를 계승한다고는 스스로도 생각한적이 없었으니..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야마우치씨로부터는 어떤 타이밍에 어떤 말을 들었나?
명확하게 후계하는 말은 들은적 없습니다만 저는 닌텐도에 신세를 진 사람입니다.
보은할 수 있다면이란 생각에 닌텐도에 오게 되엇습니다만 그런 직무를 맡게 될것이란 건 전혀 예측 할 수 없엇었죠.
입사후 경영 기획실장을 맡고,[왜?」라는 물음이 생겨 야마우치 사장에게 질문을 하니 선문답같은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되고 싶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도망칠 수는 있다」라고..
다만, 야마우치의 닌텐도에 대한 생각과 게임 업계의 위기감은 뼈져리게 느 낄수 있는 자리엿습니다.
만약 정말로 그러한 일이 현실로 닥친다면 도망치지 않을 각오만은 하자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죠(웃음).
―――신세를 졌다니?
저는 원래 게임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개발의 책임을 도맡아 하다 보니 불행하게도 그 회사가 서서히 기울어지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사장이란 직책까지 주어지게 되엇습니다.(할 연구소)
그 때 닌텐도에서 기울어가던 회사를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들이 만든 소프트「별의 카비」등을, 닌텐도가 전세계에서 적극적으로 판매해 주어, 덕분에 재건의 궤도에 올라설수 있었엇죠.
그러나, 한 개발자가 갑자기 사장으로 올라가 버린상황이라, 경영같은 건 전혀 모르던 상태엿습니다.
당시 저에게 있어 야마우치씨는 경영의 선생님이였죠, 지금도 해마다 몇차례 뵈어,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학교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군요(웃음)
―――매니지먼트의 원풍경?
그것이 원점입니다. 사물의 우선도를 결정하는 방법, 하지 않는 것은 대담하게 버리는 자세, 어중간한 결정은 안된다는 것을 배웠었죠.
―――당시는, 대표이사 6명에 따른 집단지도 체제에 부정적인 견해도 많았엇다.
걱정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엇습니다. 그들과 저는 아주 방대한 량의 이야기를 해나갔었습니다.
당연, 저 혼자 떠드는 것만으로 닌텐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두 야마우치와와 쭉 함께 해왔었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위기감은 처음부터 공유하고 있엇었죠.
「다들 야마우치 시대와 이와타 시대」라고 나누어서 비교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바뀐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오락 산업 역시 언제나 똑같은 걸 반복하다보면 손님들이 지겨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잇달아 새로운 것을 제안하지 않으면 회사는 번성 할 수 없게 될것입니다.
이전 성공 체험에 매달리기만 한다면 아주 쉽게 회사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생각은 야마우치 시대와 모두 공통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환경이 바뀌면 방식도 바뀔수 밖에 없습니다. 야마우치는 사훈도 회사방침도 남기지 않았었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훈이나 회사방침을 말로 하면 반드시 시대와 함께 낡아져서 맞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뿌리의 부분에서 만나며, 환경이 바뀌면서 최적화로 변화되기 때문이죠.
―――그 환경 변화가 아주 대단하다.
지금이 인류의 역사상, 가장 격렬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많은 조직들과 공유할 수 있을지,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기감을 공유하려면.
특별히 그런걸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저는"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원들은 「사장은 몇번식이나 같은 것을 말해야 기분이 내킨다」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나..
세상엔 한번을 듣고 바로 받아드리는 사람들도 있으나 다섯번을 넘게 듣고 겨우 이해하기 시작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건 머리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일지 여부의 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키가 크다 작다의 개인차와 같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 내에선 언제나 같은 말만 반복 하고 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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