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경찰-변호사-학생-교수',이들의 '아청법' 토론회
*아청법 2조 5호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
토론회의 주요 쟁점은 '만화, 애니메이션 처럼 실제 아동-청소년이 아닌, 표현물로써의 아동-청소년(다른 말로, '가상의 아동-청소년'이라는 용어도 쓰임)이 등장하는 음란물도 처벌하도록 규정한 아청법 조항이 과연 합리적인가'였다. (현재 조항이 가지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민희 의원 등이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한쪽에서는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은 '아청법'이 아닌 '음란물 규제법'으로 처벌하는게 맞다', '중형을 내리면서까지 가상의 아동 청소년을 보호할 실익이 있느냐', '실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것보다, 가상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배포한 것에 대한 처벌이 더 큰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아청법은 실제 아동-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률인 만큼, 수사기관은 가상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에 대한 규제를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실제 아동 청소년 보호에 더 집중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른쪽에서는 '가상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하고 보는 것이,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인과관계'가 있는지까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상관관계'는 있다고 볼 수 있는 자료가 많이있다',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가상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에 대해 법으로 처벌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편, '실제 아동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처벌하는 것에 대한 이의는 없지만, 가상 음란물에 대한 단속은 우리도 현장에서 부딪히고 고민하고 마찰이 생기는 문제다. 이런 논의가 계속 진행되어서 입법적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
이하는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박경신 교수 "'가상 아동-청소년' 음란물은 '아청법'이 아닌 '음란물 관련법'으로 규제해야"
아청법 2조 5호가 개정되면서,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각종 표현물도 처벌해야하나'라는 문제가 등장했다. 박경신 교수는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음란한 표현물을 처벌하고 규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음란물을 '아청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이런 표현물은 음란물 관련 법률로 처벌하지, '아청법'으로 처벌하진 않는다.
음란물 규제법과 아청법은 애초에 취지가 다르다. 음란물 규제법은 음란물이 범죄를 조장하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덕의 타락을 막기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아청법은 아동-청소년 포르노를 제작하는데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학대를 금지하고자 만들어진 법률이지, 아동-청소년 포르노를 본 사람이 그것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 아니다.
그는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처벌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으로 처벌하느냐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마약을 미화한 표현물을 처벌한다면 '마약미화죄' 정도의 죄목으로 처벌하지 '마약죄'로 처벌하진 않을 것이다"며 "처벌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 상황에 맞게 처벌해야한다"고 말했다.
처벌의 수위도 문제다. 실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자에 대한 처벌보다, 가상의 아동-청소년을 등장시킨 음란물을 제작/배포한 자에 대한 처벌이 더 높다. 실제 아동-청소년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은 사람이, 실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사람보다 오히려 더 큰 형벌을 받는 구조다.
그는 "전체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법률을 국제규격에 맞게 고치자는 취지로 이 작업이 시작됐는데, 문제는 국회가 이 작업을 너무 급하게했다. 실제 아동 청소년이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표현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벌할지를 토론을 통해 법률을 정교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형벌과 규제가 가상의 표현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며 "이런식으로 법률이 개정된 것에 대해서 찬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경신 교수
■ 여성부 고의수 과장 "가상 아동-청소년 음란물,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와 '상관관계'는 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 고의수 과장은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충동을 일으키고 유도한다는' 시각에서 법률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가상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과 성범죄가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상관관계'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이 기술의 발달로 인해, 오히려 더 충동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합리적인 기준을 도출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부 고의수 과장
■ 서찬휘 만화칼럼리스트 "모호한 규정으로 누군가를 처벌할 수는 없다"
서찬휘 만화칼럼리스트는 아청법 조항의 모호함을 지적했다. 그는 "만화의 경우 어느 정도의 표현이 '실제와 비슷하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 어느 정도 표현을 흔히 말하는 '극 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느냐. 그리고 이 개념을 법률로 규정할 수 있으냐"며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정의할 수 없는 것은 처벌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 죄형법정주의 -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법률이 범죄라고 규정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으며, 범죄에 대한 형벌은 미리 법률로 정해야한다는 원칙.
현실을 보면 이미 만화가들은 '알아서 기고' 있다. '이 부분에서 이런 표현은 안될 것 같으니 수정해달라'는 요청도 계속 받고 있다. 창작자들에게 자신의 창작물은 자식과 같은 존재다. 그것을 수정하라는 요구는 매우 아프다. 그리고 수정에 그치치 않고 자신이 창작한 것이 삭제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빼놓고 아청법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아청법이 보호해야하는 대상은, 지금 이 시점에도 어딘가에서 납치당해서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에 이용당하는 아이들이다. 대중문화 탄압법으로 오도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아청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찬휘 만화칼럼리스트
■ 경찰청 이병귀 기획수사팀장 "깊은 논의가 진행되서 입법적으로 해결되길"
이병귀 과장은 "명백하게 가릴 수 있는 경우는 문제가 안되지만, 경계선상에 있는 분들이 문제가됐다. 그리고 일선 경찰관들의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서 음란하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것은 경찰관에 대한 교육으로 수정해야할 문제들이다"며 "그리고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에 대한 처벌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의 경우 우리도 현장에서 부딪히고 고민하고 마찰이 생긴다. 좀 더 논의가 진행되서 입법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찰청 이병귀 팀장
■ 양홍석 변호사 "클릭한번 잘못해서 10년간 취업제한에 걸리는 과도한 처벌"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는 "아청법 관련 소송 실무를 하다보면, 대부분 학생, 대학생, 사회초년생들이 초범으로 수사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검사들도 대부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준다"며 "이런 사건을 담당하다보면, 과연 이 법이 막고자하는 것, 보호하자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하게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과도한 처벌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의대생이 호기심에 클릭한번 잘못하면 10년 동안 의사가 못되는 '취업제한'도 규정되어있다. 과도한 처벌로 한 젊은이의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 동영상 다운로드 받은 사람들의 취업을 제한하고 처벌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만화를 스캔한 파일을 번역한 사람들이 수사받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만화책을 스캔한 파일에서 일본어를 지우고 한국어를 넣은 행위는, 저작권법상의 '2차 가공 행위'로 볼 수는 있겠지만, 이 행위가 과연 아청법에서 이야기하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에 해당하는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
토론회 마지막에는 청중들의 질의 응답도 이루어졌다. 이하는 그 내용이다.
Q. 중학생: 우리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야한 장면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정도는 봅니다. 그러면 현행법상으로 따지면, 이런 학생들이 모두 성범죄자와 같은 중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것인가요? 그리고 취업제한까지 되는 것인가요?
이병귀 팀장: 일단 아청법 시행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좀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성년자는 입건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단, 미성년자라도 웹하드 사이트를 통해 다수의 동영상을 올려서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에는 수사하고 있습니다.
이현숙 탁틴 내일 대표: 일단 사법부에서 '취업제한'까지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Q. 만화가: 작가들의 경우에 2조 5호의 모호한 조항이 걸립니다. 이 조항을 문맥대로만 본다면, 창작물에 있는 가상의 캐릭터들의 권익도 보호해야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가상의 캐릭터의 권익도 보호하자는 취지로 이런 조항이 만들어진 것인가요?
고의수 과장: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의 경우, 이런 음란물을 불특정 다수가 볼 경우에는 그것을 본 사람들의 의식이 왜곡되어서, 실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를 일으키면, 그 범죄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이 피해를 본다라는 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런 입법이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Q. 대학생: 일본과 한국은 '성년'의 나이 기준이 다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미성년자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미성년자가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양흥석 변호사: 성년 기준이 외국은 대부분 18세이지만, 한국은 19세입니다. 예를들면, 18세 6개월 된 여배우가 등장한 음란물은 일본에서는 일반 음란물로 간주되자만, 한국에서는 '아청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결과적으로 처벌의 불균형도 발생합니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해서 검찰과 법원간의 다툼이 있습니다. 이것은 법률이 해결해주지 않는 이상, 법원이나 검찰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 토론회 마지막에는 박제동 만화가가 발언을 하셨습니다. 그분의 발언, 최대한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박재동 만화가: 제가 법에 대해서 잘아는 것은 아니지만, 제 가슴속에 법을 떠나서 하고 싶은 말이있습니다.
실제 현실의 아이들이 '야동'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아시나요? (남자는) 중학생 정도되면 야동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여성분들은 그걸 잘 몰라요. 여성분들은 자기 아이들이 아무것도 안보고 크길 바라겠죠. 그 심정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아요. 14살 정도되면 몸이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렇게 큽니다. 술도 먹기도 하고 담배 피기도 하고 야동보면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서로 교환도하고
그렇게 큽니다.
거기에 나오는 팬티가 문제가 아니예요. 아이들은 '우리는 괜찮은데 순진한 부모님들이 볼까봐' 걱정할 수는 있습니다. 이걸 보고 '아 이렇게 끔찍할 수가 있나'는 어른들이 하는겁니다. 애들은 그거보고 '아 이거 새로나왔네 좀 보자' 그럴 수 있어요. 그게 현실입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서 야동도 안보고 그거하나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정상입니까? 그게?
어떻게 이런식으로 법을...현실도 모르고 아이들도 모르고...제가 법 조항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해달라'고 말은 못합니다만, 제 가슴속에 끓어오릅니다. 애들은 그렇게 크는 겁니다. 그렇게 면역력을 기르고, 이정도는 서로 보면서 웃을 수 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법을 어떻게 정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습니다.
박재동 만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