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노 페인 노 게인, 또 한 명의 고독한 여전사 ‘에이아이리밋’
‘에이아이리밋(AI LIMIT)’ 또는 ‘无限机兵(무한기병)’은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 지원 하에 센스 게임즈가 개발 중인 3인칭 액션 RPG-세부적으로 소울라이크-다. 갑작스러운 재난과 전쟁으로 문명이 몰락한 미래를 배경으로 주인공 알리사의 싸움을 그린다. 아름다운 은빛 머리칼과 붉은 안광이 마치 우리와 같은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 정체는 신비한 기술로 창조된 기병. 그녀는 몇 번이고 쓰러져도 거듭 재생성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오래 전 재앙의 진실을 쫓기 시작한다.
진즉 공개된 트레일러도 그랬지만 시연을 개시하며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알리사다. 짧은 단발과 붉은 완갑, 미래적이기도 중세스럽기도 한 의상이 퍽 인상적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답게 배경이 시종일관 어둡고 황량한 반면 거기서 싸우는 캐릭터들은 애니메 스타일로 렌더링돼 색다른 느낌을 준다. 2019년작 ‘코드베인’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 소울라이크가 현실적인 디자인을 택한 만큼, 미소녀 주인공 그 자체가 ‘에이아이리밋’이 지닌 경쟁력이자 차별화인 셈이다.
인류가 몰락한 먼 미래, 미소녀 기병의 싸움을 그린 '에이아이리밋'
알리사의 움직임은 무겁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뭐랄까, 정직하다. 여느 소울라이크처럼 현실적인 속도로 걷고 뛰고 구르며 절도 있게 베고 찌른다. 전투 조작은 약공, 강공, 모아 치기, 달려 찌르기, 낙하 공격이 가능하고 방어 대신 회피와 쳐내기로 적에 맞선다. 높이뛰기가 없으므로 낙하 공격은 지형지물을 활용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살살 패고 아프게 얻어맞기 때문에 졸병 무리라고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시야와 운신이 제한되는 지하도 같은 곳이라면 특히 주의하자.
무기는 쌍도, 일본도, 대검 등이 있으며 게임을 진행하며 순차 획득한다. 아쉽게도 직접 다뤄보진 못했으나 낫과 같이 더 많은 무기가 존재하는 모양. 각 무기는 듀얼센스 기준 R1 +L2로 고유 기술을 발동하는데, 일례로 쌍도는 일순 칼날이 불타오르며 화려하게 주위를 베어버린다. 또한 서로 다른 두 무기를 장착한 다음 공격 도중에 변경하여 콤보를 물 흐르듯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어떠한 연계가 가장 효과적일지 찾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 역시 프롬의 영향을 받은 작품, 날렵한 외형과 달리 액션은 묵직하다
그렇다면 무기를 들지 않은 왼손, 상술한 붉은 완갑은 대체 뭘까. 평범한 패션 아이템은 당연히 아니고 설정상 술식에 필요한 변형 기구다. 판타지 RPG로 치면 주문 내지 마법으로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적에게 견제기로 날리거나 스스로 이로운 효과를 부여하는 것. 술식이 수십 개가 넘는다는데, 무기와 마찬가지로 다 확인할 순 없었다. 정리하자면 ▲무기 전환을 통한 콤보 ▲무기 고유 기술 ▲술식 세 가지로 전투를 풀어가게 된다. 그 와중에 재빠른 회피와 반격은 기본이다.
물론 고난도 액션 게임서 기술과 마법이 공짜일리 없다. 원액(Mud Energy)이라 불리는 일종의 MP를 소모한다. 참고로 정체모를 적들이 우후죽순 발생한 원인도, 알리사 같은 기병이 신체를 재구축하는 자원도 다 이 원액이라는 설정이다. 어쨌든 여기서 핵심은 보유한 원액이 줄어들수록 ‘동기화율’이 함께 감소한다는 것. 화면 왼쪽 상단 UI를 통해 HP, MP-원액-, 그리고 동기화율을 차례로 확인 가능하다. 동기화율은 0~50%, 50~80%, 80~100% 세 단계로 표시된다.
무기 연계, 고유 기술 그리고 술식이 숱한 난관을 돌파하게 해줄 열쇠
고유 기술과 술식은 강력하고 유용하지만 원액이 필요하다. 원액이 줄면 동기화율도 떨어진다. 그 다음은? 동기화율 단계에 따라 알리사가 약화되거나 강해진다. 평타가 위력을 발하려면 동기화율이 가장 높은 단계, 그러니까 80~100% 사이에 머물러야 한다. 기술과 마법이 당장 효과적일지 몰라도 결국 전투 지속력을 저해하는 셈이다. 또한 단순히 피격되더라도 동기화율은 감소한다. 대신 역으로 적에게 일반 공격을 가하면 동기화율이 상당히 빠르게 복구된다.
즉 평타로 기술 자원을 수급하고, 기술은 강력하지만 평타를 약화시키고, 다시금 그걸 평타로 만회하는 순환식이 완성된다. 가만히 따져보면 ‘블러드본’이나 ‘코드베인’처럼-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게이머로 하여금 끊임없이 적과 치받게 유도하는 퍽 흥미로운 설계다. 맹렬히 싸울수록 그만큼 기술과 마법 발동의 기회가 늘어나지만 실제로 쓸 경우 한동안 약세를 감내하라는 식. 그렇다고 물러서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전형적인 ‘노 페인, 노 게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동기화율 시스템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도록 유도한다
앞서 기병은 거듭 재생성한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먼저 맵 곳곳에 신비한 가지(Branch)를 활성화해야 한다. 정지수복(晶枝修復)이라고도 하며 기능 자체는 ‘다크소울’ 화톳불과 거의 완전히 같다. 부활 거점이자 빠른이동 기점이며 알리사를 육성하고 회복제 충전 등 다음 여정에 앞서 정비 일체가 이루어지는 곳. 참고로 능력치는 체력, 민첩, 힘, 기술, 정신 다섯이고 물리, 불, 전기, 충격(또는 파쇄, Shatter)에 대한 방어력과 독, 찌르기, 감염 저항 수치도 존재한다.
알리사가 챙겨 다니는 장비는 투구, 갑옷, 무기 둘, 술식 하나, 중핵(Nucleus), 그리고 사용 아이템 여섯 개까지. 이 가운데 중핵은 목걸이 모양의 액세서리로 보유율, 흡수율, 에너지 전환이란 항목이 눈길을 끈다. 보유율은 죽었을 때 보유한 기본 재화인-요컨대 돈- 수정을 얼만 보전할지 결정한다. 보유율 75%라면 수정 1,000개 중 250개만 잃는 것. 흡수율은 적이 주는 총 XP서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느냐고. 끝으로 에너지 전환은 동기화율을 높이는 속도에 관여한다.
쉼터 노릇을 하는 가지, SF 세계관치고 판타지스러운 설정이 독특
이처럼 게임 플레이의 순항을 돕는 여러 장치에도 불구하고 ‘에이아이리밋’은 어렵다. 시연하는 동안 몇 번인가 HP가 화면 중단 아래 표시되는, 척 봐도 보스는 아닌데 골목대장쯤은 되는 적과 악전고투를 벌였다. 그러다 진짜 보스구나 싶은 위압감의 로스트 랜서와 마주하자 듀얼센스를 꼬나쥔 손이 살짝 떨렸을 정도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튜토리얼 미숙지와 몇몇 해금되지 않은 성장 시스템 탓에 시연이 본편보다 어렵지만 말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워낙 제한된 환경, 짧은 시연이라 명작이다 아니다 논하긴 다소 섣부르겠다. 소울라이크야 이런저런 시스템 얼개보다 매력적인 레벨 디자인, 박력 넘치는 보스가 더 중요한 법이니. 그래도 한 줄 평하자면 플레이 경험의 밑바탕이 되는 만듦새, 가령 타격감이나 메뉴로 넘어갈 때 끊김 등 곳곳에서 소규모 개발사답지 않게 원숙함이 느껴졌다. ‘차이나 조이 2019’로부터 어느덧 5년. 슬슬 세상에 나설 때가 됐다. ‘에이아이리밋’은 2024년 PS5, PC로 발매 예정이다.
암울한 미래에 고독한 여전사가 또 한 명, 이 조합은 언제나 옳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