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과 미소녀가 좋은 지휘관이라면, 아터리 기어: 퓨전
크고 육중함, 작고 가녀림. 날카로운 직선, 부드러운 곡선. 차가운 금속, 따스한 살결. 서로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두 서브컬처 장르, 메카닉과 미소녀. 하지만 마치 파인애플과 피자가 만나 파인애플 피자가 되듯, 메카닉과 미소녀가 만났을 때 비로소 탄생하는 제3의 장르가 존재한다. 빌리빌리가 지난 14일 국내 양대 앱마켓에 정식 출시한 ‘아터리 기어: 퓨전(Artery Gear: Fusion)’ 역시 이른바 기갑소녀 비주얼 RPG를 표방하는 작품이다.
빌리빌리가 14일 론칭한, 기갑소녀 비주얼 RPG '아터리 기어: 퓨전'
눈길을 사로잡는 미래의 기동전희
머나먼 미래, 인류는 유기체는 물론 기계까지도 흡수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변이종 괴뢰(傀儡)로 인해 멸망의 기로에 놓인다. 훗날 제1차 괴뢰전쟁으로 이름 붙은 전란 속에서 인류는 가까스로 슈퍼 A.I 아틀라스를 만들어내고, 그녀가 입안한 전략전술에 힘입어 어느정도 안전지역을 확보한다. 이렇게 지상 면적의 약 32%를 수복한 인류는 프론티어라는 연합 국가로 뭉치고, 이와 별개로 우주 콜로니로 피신하여 참사를 면한 이들이 또 하나의 세력 오토루나를 이룬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프론티어와 오토루나가 괴뢰의 완전한 격퇴를 목표로 연합하며 시작된다. 새롭게 출범한 연합군의 명칭은 문자 그대로 유니온(Union). 제1차 괴뢰전쟁의 관계자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 없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지휘관으로 취임하는데, 이자가 바로 주인공 즉 유저가 감정 이입할 대상이다. 또한 대괴뢰 저항력이 높은 소녀들이 전투용 의수, 의족을 착용하고 군의 주력으로 활약하니, 그녀들을 기동전희(机动战姬) 또는 AG(Artery Gear)라 부른다.
사람이든 기계든 닥치는 데로 흡수하고 변이시켜 파괴하는 괴뢰의 위협.
그리고 그에 맞서 전투용 의수, 의족을 달고 전장에 나서는 미소녀 AG들.
인류의 양대 세력 프론티어와 오토루나, 거기에 속하지 않는 의문의 조직까지.
어디선가 나타난 천재 지휘관이 미소녀 부대를 이끌고 수세에 몰린 인류를 구하고자 침략자와 맞선다…니까 어딘지 퍽 익숙하다. 그야 이런 설정의 게임이 한두 편이 아니니까. 캐릭터 및 배경 묘사가 여타 경쟁작보다 좀 더 미래적이고 착용한 기계 장비가 부각된다는(즉 미소녀 + 메카닉에서 후자의 비중이 크다) 차별점이 있긴 하나, 그 정도로 ‘아터리 기어: 퓨전’만의 영역을 뚜렷이 구축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저 적당한 SF 메카닉 미소녀물 테이스트다.
매분기 신작이 범람하는 수집형 RPG에게 적당하다는 건 칭찬이 아니라 흉이다. 후발주자치고 괴뢰나 AG 등이 뭇 유저의 흥미를 끌 만큼 참신한 설정이라 보긴 어렵다. 대신 ‘아터리 기어: 퓨전’은 익숙한 컨셉, 장르, 콘텐츠를 최대한 고품질로 제공함으로써 나름의 경쟁력을 갖는다. SF 메카닉 미소녀물 자체는 흔하디 흔할지라도 빼어난 일러스트, 깔끔한 SD 모델링, 역동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것. 전원 라이브 2D를 지원하고 전투 연출도 수준급이다.
흔히 이러한 게임을 ‘미소녀 수집형’ RPG라 통칭하는 건 다른 무엇보다 그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관이 그럴싸하고 인물 개개인도 매력적이며 서사와 전개가 흥미진진해야 하지만, 그 모든 게임적 요소는 결국 더더욱 미소녀를 수집하고 싶도록 만드는 유인일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빌리빌리는 ‘아터리 기어: 퓨전’과 비슷한 컨셉의 경쟁작이 있든 없든 충분히 승부수를 띄워볼 만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어차피 미소녀가 더예쁜 쪽으로 몰릴 테니까.
미소녀 + 메카닉이라는 소재도, 수집형 RPG로서 시스템과 콘텐츠도 새롭진 않다.
마니아적 시선으로 볼 때 장비한 메카닉의 비중이 여타 경쟁작보다 크다는 정도?
참신하지 않은 대신 전체적인 완성도와 품질은 뛰어나다. SD 모델링도 좋은 편.
화면을 가득 채우는 컷신도 상당히 많이, 자주 나온다. 그야말로 눈이 호강한다.
참신함 대신 안정적인 수집형 RPG
참신하진 않아도 안정적이라는 감상은 ‘아터리 기어: 퓨전’ 컨셉뿐 아니라 콘텐츠 전반에 통용된다. 상설 및 픽업 가챠(랜덤 박스)를 통한 캐릭터 수집, 4인 1조 파티 구성, 다섯 타입과 세 속성의 상성 관계, 레벨업과 장비 강화를 통한 캐릭터 육성, 호감도 관리, 스테이지를 하나씩 깨나가는 스토리 모드, 각종 재화 획득을 위한 반복 전투 등 좋게 말하면 수집형 RPG의 스탠다드 그 자체이고 나쁘게 말하면 본작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
전투의 전략성도 평이한 편이다. 일단 전열 개념이 희미해서 누구나 공격 당할 수 있는데 맨 앞 캐릭터가 그 확률이 좀 높은 정도다. 캐릭터 스킬은 3종으로 각 타입에 따른 탱딜힐 역할 구분과 연계 방식을 알기 쉽다. 그만큼 괜히 머리 싸맬 필요가 없다는 건 장점일 테고, 그냥 고티어 캐릭터로 찍어 누르면 끝이라는 건 단점일 수 있겠다. 그래도 적 보스가 부하를 계속 소환하고 그 부하는 보스를 회복시키는 식으로 어느정도 공략이 필요한 기믹은 존재한다.
행동력만 충분하다면 성장에 필요한 경험치와 재화는 어렵잖게 수급 가능하다.
역할 구분은 명확하나 전열 개념은 미묘한 편. 결국 레벨과 장비가 핵심이긴 한데…
자동전투 시 스킬 발동 순서, 조건, 대상까지 세밀히 설정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물론 모바일 게임 특성상 대다수 콘텐츠는 자동으로 돌리기 마련이다. 여기서
‘아터리 기어: 퓨전’의
편리한 점은 자동전투 시 캐릭터마다 스킬별 발동 조건과 대상을 미리 설정할 수 있다는 것. 가령 공격할
때 ‘HP 잔량이 가장 낮은 적을 우선적으로’ 겨냥하거나, 회복기의 경우 ‘아군에 HP 60%
미만인 대상이 있을 시’로 발동 조건을 제한하는 식이다.
이렇게 조정한 나만의 스킬 설정은 최대 4개까지 저장되므로 콘텐츠마다 딱 맞는 파티 운용이
가능하다.
캐릭터 수집의 경우 일부 고티어 캐릭터가 초반 확정 가챠에서 나오지 않는 듯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5성 하나를 갖고 시작하게 되고 론칭 이벤트로 곧장 5성 하나를 더 준다. 론칭 초기라 뿌리는 재화가 많고 도전과제도 이제 막 달성 중임을 고려해야겠으나, 어쨌든 며칠간 10연차를 꽤 여러 번 돌려볼 수 있었다. 유료 재화 1개당 20원꼴로 10연차에 1800개가 든다. 5,900원짜리 월간패스 외에 크고 작은 유료 상품이 있는데 BM조차 수집형 RPG의 스탠다드다.
다만 ‘아터리 기어: 퓨전’의 BM이 가볍냐 무겁냐와 별개로 중국에 비해 해외 서버 정책이 악화된, 이른바 ‘헬적화’가 벌어진 건 좌시해선 안되겠다. 본작은 가챠의 부수입인 입대서란 재화를 모아서 원하는 캐릭터로 교환하는 일종의 ‘천장’이 있는데, 이 기준이 중국보다 훌쩍 높은 200개로 설정된 것. 요즘같이 국경을 초월하여 인터넷서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시대에 해외 서버라고 BM을 달리하는, 그것도 더 악화시켜 파는 근시안적 정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BM조차 평이하다. 물론 수집형 RPG가 다 그렇듯 돈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최소한 5등급 하나는 무조건 들고 시작한다. 그래도 리세마라 할 사람은 하겠지만.
론칭 초기임을 감안해야겠으나, 현재로선 짜다는 생각은 안 들 정도로 퍼주는 중.
다만 그와 별개로 일본, 한국 서버는 중국보다 천장이 훨씬 높아지는 '헬적화' 당했다.
무난한 게임, 운영도 안정적이어야
빌리빌리는 중국을 대표하는 서브컬처 커뮤니티이자 동영상 플랫폼이면서, 최근에는 게임 퍼블리셔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걸카페건’, ‘파이널기어’ 심지어 ‘아터리 기어: 퓨전’과 동시기 사전예약을 받은 ‘이터널 트리’도 빌리빌리다. 문제는 상술한 ‘헬적화’처럼 논란을 부르는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 한국은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유저와의 소통이 중요한 시장이다. 계속 이렇게 방만하게 운영하다간 머지않아 ‘믿고 거르는 빌리빌리’라 불리게 될지 모른다.
여담이지만 노년의 지휘관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새로웠다. 옆에 꼬마는 대체…!?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