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제 RPG의 원신이 될까, ‘붕괴: 스타레일’ CBT 체험기
※ 금번 테스트는 PC로 진행하였으며, 조작에 대한 모든 설명은 키보드/마우스 기준입니다.
‘원신’으로 국내외서 인기몰이 중인 호요버스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나왔다. 이번에는 은하계를 누비는 열차 여행이다. PC, 모바일 크로스 플랫폼 타이틀인 ‘붕괴: 스타레일(崩壞:星穹鐵道)’은 제목에서 보듯 ‘붕괴’ IP에 기반한다. 다만 ‘붕괴학원’, ‘붕괴학원 2’, ‘붕괴3rd’로 이어지는 넘버링은 붙지 않았는데, 본작이 어디까지나 외전에 해당한다는 의미인지 그저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인지는 확실히 않다. 하기야 ‘붕괴: 스타레일’은 실시간 액션에서 턴제 RPG로 선회하여 시리즈 사상 가장 이질적인 작품인지라, 여러모로 ‘붕괴 4’로 명명하고 받아들이긴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붕괴: 스타레일’은 기존 ‘붕괴’와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 이달 25일 시작된 ‘붕괴: 스타레일’ 2차 CBT를 통해 지난 1차 때보다 한층 완성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우주정거장 헤르타에서 혹한의 행성 야릴로-VI로 이어지는 초반부가 정돈되었고, 앞으로 주요 콘텐츠가 될 듯한 시뮬레이션 우주와 전쟁의 여운이 추가됐다. 유물, 성혼 등 캐릭터 육성에 관여하는 요소도 늘어났고 진행도에 따라 보상을 주는 개척 기록은 스타피스 가이드로 재개장했다. 열계 심연도 망각의 정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군데군데 비어 보이던 1차 CBT와 달리 드디어 제대로 윤곽이 잡혔다.
이번에는 턴제 RPG! 호요버스 신작 '붕괴: 스타레일' 2차 CBT가 진행 중이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정거장엔~ 햇빛이 쏟아지네~
우주를 개척하라, 은하열차에 타고서
모처럼 ‘붕괴’라는 제목을 쓰긴 하지만 ‘스타레일’은 기존 시리즈와 그다지 접점이 없다. 앞서 작년 10월 공개된 ‘붕괴3rd’ 단편 애니메이션 ‘Reburn:II’서 은하열차가 등장한 바 있는데, 웰트 양과 캐롤이 우주로 향하는 장면뿐이라 자세한 정황은 알기 어렵다. ‘지구에서 [붕괴]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 [천상]을 향한 여정—'이라니까 동일 세계관이겠지만 미묘한 점도 적잖아서… 이 부분은 게임이 출시된 후 차차 떡밥을 풀어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적어도 야릴로-VI까지 초반부 전개만 봐서는 기존 시리즈를 잘 모르더라도 ‘붕괴: 스타레일’을 즐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하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작중 은하에는 무수한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에이언즈라는 신적 존재가 있다. 파멸의 에이언즈 나누크는 문명을 암으로 간주하여 은하계에 재난의 씨앗 스텔라론을 뿌리고, 어떠한 경위로 그 중 하나가 우주정거장 헤르타에 보관된다. 이 때문인지 나누크의 사도인 반물질 군단이 우주정거장을 습격하는데, 정작 스텔라론은 혼란을 틈타 잠입한 스텔라론 헌터 카프카와 은랑에게 넘어간다. 여기서 이들이 스텔라론을 삽입한 인간형 운반체가 바로 우리의 주인공. 그대로 기억을 잃은 채 쓰러진 주인공을 은하열차 일행이 발견하며 게임 본편이 시작된다.
'붕괴3rd' 단편 애니메이션 'Reburn:II'를 통해 두 작품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파멸의 에이언즈 나누크가 남긴 스텔라론이 주인공에게 심어지며 모든 게 시작된다.
운명의 노예 엘리오, 만계의 암 스텔라론, 지니어스 클럽, 순항의 레인저, 혼돈의 의사, 충황 타이츠론스 등등… 가뜩이나 A라 쓰고 B라 읽는 재패니메이션 테이스트가 강한데 SF까지 끼얹어 고유명사가 정말 많이 나온다. 하물며 초반부터 등장인물이 쏟아지니 자칫 정신이 없을 수 있다. 그래도 당장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은 꽤 직관적이므로 통 이해가 안되는 (NPC들이 당연히 알 거란 듯이 떠드는)이야기는 적당히 흘려 듣자. 정체 모를 주인공이 은하열차에 탑승하여 다양한 행성을 전전하고 동료들이 늘어가는 전개 자체는 오히려 무척 왕도적이라 누구라도 즐길 만하다.
아직 야릴로-VI밖에 나오지 않았으나 ‘붕괴: 스타레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큰 틀은 이미 잡혔다. 소재에서 쉬이 연상되듯 본작은 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 999’를 오마주했다. 그렇기에 마치 메텔과 테츠로처럼 은하열차가 정차하는 행성마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겪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할 듯하다. 각 행성은 저마다 독특한 환경과 문제를 안고 있을 텐데, 일례로 야릴로-VI는 오래 전 떨어진 스텔라론으로 인해 혹한의 땅이 되어버렸다. 아울러 문명이 쇠퇴한지 수백 년이 흘러 주인공 일행이 우주에서 왔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못하여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고유명사를 좀 남발하긴 하지만 전개 자체는 왕도적이므로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은하열차에 합류하여 각기 다른 환경과 갈등을 지닌 여러 행성을 방문하게 된다.
손맛 대신 전략, 턴제 RPG로의 도전
기존 ‘붕괴’ 시리즈를 즐겼던 팬이라면 다른 무엇보다 실시간 액션에서 턴제 RPG로의 변화가 크게 다가올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전작 ‘붕괴3rd’가 ‘데빌 메이 크라이’와 ‘베요네타’를 닮았다고 할 만큼 액션성을 높이 평가 받지 않았던가. 턴제보다 실시간이 각광받는 작금의 시장 환경에서 호요버스도 고민이 많았을 텐데, 이미 ‘붕괴3rd’와 ‘원신’이 있고 신작 액션 RPG ‘젠레스 존 제로’도 준비 중이니 한 번쯤 변화구를 던져본 모양. 순발력을 요하는 실시간 조작에 어려움을 느끼는 게이머가 은근히 많은데다, 자잘한 지연 현상이 잦은 모바일에 턴제가 더 어울리기도 하니까.
‘붕괴: 스타레일’은 전체적으로 ‘붕괴3rd’보다 ‘원신’에 더 가까운 UI/UX 및 그래픽을 보여주지만, 필드가 오픈월드가 아니라 여러 존으로 구분된다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실시간으로 돌아다니다 적을 타격 시 턴제 전투 화면으로 넘어가는, JRPG를 자주 즐긴다면 익숙할 심볼 인카운터 방식이다. 캐릭터 4인으로 일개 파티를 편성하며 필드에서 선두는 1~4 숫자키로 언제든 교체 가능하다. 적의 약점 속성을 노려 전투를 개시할 경우 큰 이득을 얻으니 그때그때 바꿔주자. 참고로 속성은 물리, 화염, 얼음, 번개, 바람, 양자, 허수까지 일곱 가지다.
심볼 인카운터 방식이다. 적의 약점 속성을 찌르면 유리하게 전투를 개시할 수있다.
적의 머리 위 약점 속성을 확인하고 강인성 게이지를 깎아 쓰러트리는 게 기본.
턴제 전투 화면으로 넘어가면 아군과 적이 마주보고 대치한다. 각자 속도에 따른 차례를 왼쪽 상단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적들 머리 위에 약점 속성이 표시된다. 혹은 Z를 누르면 적의 설정 및 스킬셋이 보다 자세히 나온다. 보통 다수의 약점을 지녔고 명시된 상성 관계는 없으나 얼음덩이 같은 적은 불 속성이 약점인 식이라 나름 알기 쉬운 편이다. 약점 속성이 아니라도 대미지는 들어가나, 약점을 노리면 강인성 게이지를 깎아 상태이상과 함께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를 약점 격파라 하며 어떤 속성이었는지에 따라 상태이상도 달라진다. 살짝 ‘원신’이 떠오르는 부분.
스킬셋은 일반 공격(Q), 전투 스킬(E), 필살기(Space)이란 단출한 구성이다. 일반 공격은 말 그대로 단일 대상 평타고, 전투 스킬은 광역기거나 아군에게 버프를 주는 등 캐릭터마다 효과가 다양하다. 전투 스킬 발동에 쓰이는 포인트는 파티원 전체가 공유하며 일반 공격으로 채워진다. 이외에도 적을 공격하거나 역으로 당했을 때 캐릭터 에너지가 충전되어 가득 차면 필살기 발동이 가능하다. 필살기는 자기 차례가 아니라도 에너지만 충전됐다면 언제든 발동할 수 있다. 필살(必殺)이라지만 캐릭터에 따라 치료나 조력 기술인 경우도 적잖으니 시기적절한 사용이 중요하다.
일반 공격으로 전투 스킬 포인트를 벌고, 전투 스킬로 필살기 게이지를 채우고.
필살기 연출이 하나같이 굉장하다. 캐릭터 수집욕을 부채질하는 요소 중 하나.
스킬셋이 단출한 건 신규 캐릭터를 계속 팔아야 한다는 어른의 사정이 작용했겠으나, 비슷한 제약을 지닌 ‘원신’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차피 다수의 캐릭터를 조작하는지라 단조로움이 덜하고 오히려 스킬을 고르는 수고가 줄어들어 템포도 빨라졌다. 캐릭터 하나당 숫자는 적어도 동료를 일시적으로 강화하거나 실드를 부여하고 반격까지 날리는 등 스킬 효과는 무척 다채롭다. 즉 어떤 조합이 최고의 시너지를 낼까 파고들 여지가 많고 전략성의 깊이가 상당하다. 보통 전략성에 무게를 두다 보면 진입장벽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았다.
정리하자면, 일반 공격 → 전투 스킬 → 필살기로 게이지를 채워가는 순환과 약점 격파가 ‘붕괴: 스타레일’ 전투의 핵심이다. 따라서 파티를 편성할 때 속성과 스킬셋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조합을 따져볼만치 충분한 캐릭터가 모여야 할 테고, 당연히 이 지점이 정식 서비스 후 여러분이 가장 돈을 많이 쓰게 될 핵심 BM이다. 그래도 스토리 진행상 무료로 주는 캐릭터도 꽤 되고 성능도 나쁘지 않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 필자의 경우 남자는 파티에 들이지 않는다는 신념에 따라 버퍼만 둘을 넣어 동레벨대 전투도 이 악물고 겨우 깨는 헬팟을 굴리는 중이다.
캐릭터에 따라 아군을 강화하거나 보호하는 등, 여러 전략적 선택지가 주어진다.
남캐를 쓰기 싫어서 억지로 버퍼만 둘 넣었더니 파티가… 굴러가질… 않는다…
익숙함과 완성도, 호요버스 스탠다드
상술했듯 ‘붕괴: 스타레일’서 전투 외적인 부분은 ‘원신’을 해봤다면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오픈월드만 아닐 뿐 그 외에는 거의 똑같다. 내용 전개에 따라 새로운 지역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서브 퀘스트를 수행하거나 간단한 퍼즐로 보물을 찾는 등의 탐사 활동을 벌인다. 이렇게 모은 마일리지로 개척 레벨을 올려야만 실질적인 성장과 추가 진행이 가능하다. 메인 스토리만 쭉 밀어서는 개척 레벨 제한에 막혀 넘어갈 수 없고 중후반 콘텐츠도 열리지 않는다. 결국 강제인 셈이지만 탐사 활동을 통해 소소한 설정이나 숨겨진 풍광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나름 있다.
캐릭터 육성도 마찬가지다. 세계관이 다르니 명칭만 살짝 바꿨지 전체적으로 ‘윈신’과 대동소이하다. 기본적으로 레벨업으로 HP, 공격력, 방어력을 챙기고 총 여섯 부위의 유물로 자잘한 추가 능력치와 세트 효과를 얻는다. 특정 레벨마다 승급이 요구되며 그 제한은 앞서 설명한 개척 레벨에 따른다. 아울러 광추라는 일러스트 카드 형태의 장비가 중요한데, 캐릭터마다 지닌 운명의 길과 맞는 걸 장착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광추가 워프(가챠)에서 함께 나오는 터라 사람들 뒷목 잡게 만드는 주역이다. 캐릭터를 중복 획득할 경우 성혼이라는 추가 효과를 해금하는데 쓰인다.
전투 외적인 부분은 '원신'과 가장 닮았다. 여기서도 탐사와 개척 레벨이 중요하다.
콘텐츠 중에는 로그라이크 요소를 가볍게 차용한 시뮬레이션 우주가 흥미로운 편.
현재까지 공개된 주요 콘텐츠는 시뮬레이션 우주와 망각의 정원, 고치가 있다. 고치는 평범한 파밍용 반복 전투이며 망각의 정원은 고난도 스테이지 공략으로 ‘원신’ 나선비경과 유사하다. 특기할 점은 시뮬레이션 우주인데 로그라이크 요소를 가볍게 섞어 반복 플레이의 지루함을 덜어냈다. 전투를 이어가며 강화 효과인 축복을 계속 쌓고 파티를 늘려 더 높은 단계에 도전한다. 여기에 에이언즈의 간섭이라는 일종의 스테이지 기믹도 추가된다. 수집형 RPG서 로그라이크 요소를 차용하는 게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나 어쨌든 즐길만한 콘텐츠가 늘어나는 건 좋은 소식이다.
‘붕괴: 스타레일’도 ‘원신’처럼 앞으로 훨씬 더 많은 걸 보여주겠지만, 필자가 진행한 개척 레벨 20까지는 멀티 요소가 없어 완전한 싱글 게임처럼 느껴졌다. 오픈월드가 아니어서인지 혹은 그간 편견이 희석되어서인지 ‘원신’만큼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 대신 ‘과연 호요버스’라는 묘한 납득이 들었다. 이쪽 방면으로 최고 수준인 일러스트와 3D 모델링, 덕심을 십분 이해하는 설정과 서사, 국산 게임보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더빙 등등… 심지어 새롭게 도전한 턴제 전투 시스템조차 준수하다. 적어도 개발력에 있어서 이제는 ‘호요버스 스탠다드’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원신' 때처럼 충격을 받진 않은 대신, 호요버스에 대한 인정이랄까 납득이 된다.
물론 게임의 완성도와 별개로 가챠는 이번에도 무척 맵고 곶통스러울 전망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