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맺음이 되기까지, 청강크로니클
예비 창작자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지만, 그 열기는 여느 게임 쇼 못지 않다. 학생들은 자신의 팀이 만든 결과물을 학교 내부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여러 측면에서 피드백을 받는다. 게임 외부적으로 수익과 관련된 담론이 앞서는 현재의 국내 게임 업계와 달리. 오직 게임의 디자인과 플레이. 재미를 만들기 위한 고민들이 눈에 띈다.
판교에 자리한 네오위즈 1층에서 진행되는 만큼, 관련 업계 사람들의 방문도 잦다. 가장 가까운 네오위즈 직원들부터 다른 회사의 개발자들이 얼굴을 비추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중에는 이미 학교를 졸업해 현업에서 재직 중인 사람들. 혹은 전시회 이전 취직이 결정되어 재직 중인 팀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청강크로니클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게임 개발에 관련된 인물들이 자리를 비추기도 하고. 청강문화산업대와 협력 관계에 있는 여러 회사들이 방문해,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는 결과물을 직접 보고. 그리고 플레이하며, 자사에 새로운 인력과 방향성을 점검하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청강크로니클의 구성은 오직 게임 그 자체에 집중한다. 이미 국내 몇 회사의 대표들은 일찌감치 행사장을 방문해 학생들을 만나고. 이들이 만든 작품을 플레이 하기도 했다. 각자 1부스 정도의 공간을 배정 받아 여느 인디 게임 쇼와 같이 시연을 진행하고 피드백을 받는 형태다.
부스마다 시연할 사람을 모집하는 방법론도 다르다.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소소한 굿즈가 자리하기도 하며, 서로 다른 부스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나누고. 시연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기도 한다. 판데믹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프라인 행사 자체는 이들에게 있어서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한정된 공간을 넘어서, 오프라인. 그것도 국내 게임사들이 모인 판교에서 피드백을 받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도 값진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판데믹 상황이기에.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개발도 비대면으로 진행한 학생들이기에, 장르 자체는 국내 업계의 메인 스트림과 떨어져 있는.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타이틀을 만든’ 것에서 출발한다.
장르 자체도 다종다양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1인칭 근접 슈팅부터 3인칭 플랫포머 + 슈팅. 반격과 회피 중심의 3인칭 액션. 자주 시도하지 않는 3D 비행 슈팅까지. 아트와 게임 플레이 모두 눈여겨볼 만한 타이틀 11종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존의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여기서 어떻게 자신들의 의도를 덧붙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몇 개의 작품은 레퍼런스와는 다른 형태가 되기도 했다. 플랫포머와 슈팅을 결합한 작품 ‘Strange ONE’이 대표적이다.
Strange ONE을 만든 KINGSPEAR CLAN의 팀장이자 프로그래머인 이우민 군. 그리고 레벨 디자인을 맡은 임세혁 군은 초기 레퍼런스였던 ‘완다와 거상’에서 플레이가 달라진 이유를 되돌아보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전했다.
“초기에는 프로토타이핑을 진행하면서 완다와 거상을 따라서 제작하는 것으로 했었어요. 완다와 거상을 보면, 적이자 생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거상의 몸이 플랫폼인 셈인데요. 저희가 감당을 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운 감도 있었고.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보스의 크기를 줄이되, 플랫폼 면에서는 맵과 연관이 되도록 변형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보스와 전투하는 게임으로 방향을 틀었고요. 보스의 패턴에 따라 플랫폼을 통한 공격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졌죠” (이우민, 팀장 / 프로그래머)
실제 개발도 방향성 측면에서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레퍼런스가 있기는 하지만, 개발 환경 또는 상황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게임콘텐츠 스쿨 학생들은 여느 개발자들이 경험하는 고민과 시도들을 그대로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프로그래밍 영역 뿐만 아니라 기획이나 세부 시스템의 변화에도 이어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작품이 가진 색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큰 몬스터를 클라이밍해 공격하는 구조에서. 변형을 가하려고 해도 완다와 거상에서 벗어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근접 공격을 없애고. 기믹을 풀이하는 측면에서, 활의 역할을 에너지 런처가 대체하도록. 그리고 기믹 풀이와 공격을 합쳐서 플레이하도록 만들었어요. 이러한 과정에서 적의 크기도 줄어들었고. 조금 더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런앤건 플레이가 되기도 했고요” (임세혁, 레벨 디자이너)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우민 팀장/프로그래머, 임세혁 레벨 디자이너
그간 게임콘텐츠스쿨의 커리큘럼을 따라가면서 배웠던 것들. 그리고 졸업 작품을 만들며 고민하고 시도했던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 이러한 보고서는 각자 직무를 담당한 학생 별로 파트가 구분되어 있다. 즉, 프로그래밍과 기획. 아트에 이르기까지 분야가 다른 학생들의 시각이 모두 녹아 있는 셈이다. 취재를 하는 입장에서도 탐이 날 만큼, 보고서의 내용은 가볍게 쓰여져 있지 않다.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이기에.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나오고. 팀원들이 이를 공유하고 있다. Cat Pickax를 만든 ‘NeedOne’ 팀에게 현재 근접 공격이 삭제된 이유를 묻자 “원거리 공격이 있는데, 굳이 리스크가 있는 근접 공격을 해야할 필요가 있느냐?는 피드백이 있었다”는 답변이 바로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 QA를 담당한 학생들의 시도는 다른 책자에 종합적으로 사용된다. QA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금은 놀랍다. 졸업작품을 대상으로 QA를 진행한 내용을 세세하게 적어뒀고. 발견한 버그나 오류 등을 주고받은 게시글 / 메일 들이 보고서에 가득 담겨있다. 이러한 점을 보면, 이들이 재학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만하다. 업계 전반에 걸쳐서 고도화된 QA 인력이 부족한 만큼, 실무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된 프로세스는 졸업 이후의 구직 과정에도 충분히 자랑스럽게 선보일 수 있는 수준이다.
이제 막 졸업을 앞둔 상태이기에.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고민도 있다. 현실적인 문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졸업 작품과 관련한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학생 본인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문제와도 연결된다. 게임콘텐츠스쿨의 이득우 교수는 학생들의 진로와 관련하여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올해 240명의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 됐는데. 학생 개개인이 가진 시각이 다릅니다. 요즘은 돈에 따라서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개개인의 핏에 맞는 곳을 자원해서 간 친구들도 있고요. 회사마다 지향하는 고유한 운영 철학이나 가치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진로 외적으로는 졸업 작품이 단편적으로 끝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다. 어디까지나 학생이기에. 그리고 게임을 하나 완성하는 데에는 여기에 수반되는 자금 / 인력 측면에서의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게임이 70% 정도가 완성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나머지 30%를 더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들이 더 많이 들어갈지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맨몸으로 가겠다’는 결심이 필요한 지점인 셈이다.
학생들 또한 이러한 목표 측면에서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서로 취직을 앞두거나. 이미 취직이 된 상태이기에. ‘프로젝트를 조금 더 확대하는 것은 어렵지만. 버그나 오류를 보완해서 스팀에 올리는 과정을 고민 중’임을 이야기하는 팀도 있었다. 올해 청강크로니클은 전시회의 빌드를 스토브를 통해서 제공 중이다. 하지만 전시회 이후에도 빌드를 선보이고 싶다는 의도에서다.
12월에 접어들며 무척이나 온도가 내려가고 있지만, 예비 착장인들이 보여준 열정. 그리고 결과물은 뜨겁다. 누군가가 게임 외적에서 움직이는 시장이 흐름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 업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게임을 구성하는 디자인과 프로그래밍. 아트에 집중하고. 자신들의 꿈을 키우고 있다. 게임을 게임답게 구성하는 본질적인 부분이자, 자신들이 꿈꾸는 콘텐츠의 형태를 말이다. 부디 이들의 고민과 생각. 그리고 열정이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동시에 그럴 수 있는 업계가 되기를 기원한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게임콘텐츠스쿨 졸업생들의 전시회는 오늘로 끝이 났지만. 이들이 만든 결과물은 오는 12월 24일까지. 청강크로니클 x STOVE인디 페이지 에서 직접 내려 받아 플레이할 수 있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